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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선심, 야심, 흑심 앞에 춤추는 세금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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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례행사인 ‘난장판 예산 국회’가 또 재연됐다. 졸속 심의로 넣어야 할 건 빠지고, 빼도 될 건 끼워넣는 작태도 그대로였다. 정치인과 지자체의 로비에 힘입어 어거지로 책정된 예산은 십중팔구 세금 낭비로 귀결된다. 역대 정권에서 예산이 헤프게 쓰였거나, 절감 가능한 예산을 축냈거나, 급하지 않은 일을 무리하게 추진한 사례를 살펴봤다.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12월8일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이 난장판으로 변한 가운데 새해 예산안이 처리된 뒤 정치권에 강한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기습처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은 그렇다 쳐도 여권 안에서조차 자중지란이 불거진 것. 불교계의 템플스테이와 소득 하위 70% 계층에 대한 보육비, 재일민단 지원 예산,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예산 등 여당이 추진하던 주요 예산이 졸속 심의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축소된 데 따른 책임공방이었다.

12월13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예산안 편성 경위를 듣고 정부를 질책하기 위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여의도 당사로 불러들였다. 40여 분 동안 두 사람은 면담장 밖에까지 들릴 만큼 고성을 주고받았다. 안 대표는 “우리는 바보냐. 당신들만 똑똑하냐. 애들 보육비 좀 주려고 당 대표가 약속했는데, 하나도 반영이 안 됐다”고 따졌다. 윤 장관은 “당도 예산기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맞받아치며 여당의 ‘선심성 공약’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언쟁은 예산 편성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내세우지만 여당은 민심을 확보할 수 있는 예산 편성에 주안점을 둔다.

새해 예산안이 입안되고 확정되는 과정은 이러하다. 매년 초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에서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 → 부처별로 선별, 취합 후 기획재정부로 이관 → 기재부 총괄 조정 → 국무회의 심의·의결 및 대통령 승인 → 국회에 정부안 제출 → 국회 상임위별 예비심사 → 예결위 본심사 →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세부심사→ 예결위 처리 → 본회의 처리로 확정.

각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들의 예산 따내기 경쟁은 이 모든 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1년 내내 ‘예산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예산국회가 열리면 무차별적인 로비가 벌어진다. 예산 세부 항목의 증액, 삭감을 결정하는 계수조정소위는 지역별로 위원을 할당해 구성되는데, 그들은 해당 시·도의 국비지원예산을 챙기는 책무를 떠안는다.



이번에도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는 항목 자체가 없다가 국회 예산심사 때 신규 편성하거나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과정에서 증액분으로 추가된 예산이 3500억원에 달했다. 신규 예산 중엔 여·야가 상임위 예비심사 과정에서 합의한 내용도 있지만, 일부 예산은 상임위 및 예결위 회의에서 증액요구 사항으로 전혀 언급된 바가 없어 예결위원에게 쪽지를 전달하며 편성한 끼워넣기 지역구 예산으로 추정됐다.

각 지역에서는 예산에 밝은 의원들을 소위에 포진시켜 다른 지역과 경쟁을 벌이게 한다. 소위에 들어간 의원이 해당 시·도 전체의 예산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의 지역구 예산이나 계파 보스가 관심을 갖는 예산을 따는 데만 주력해 동료 의원들의 질책을 받기도 한다. 예결위에 들어가거나 경제관련 상임위원을 맡으면 당내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을 대신 챙겨주기도 한다. 이번 예산국회에서도 예산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나라당 모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가 “지역구(대구 달성)에 필요한 예산이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했지만 “괜찮아요”라는 답변을 듣고 머쓱해서 나왔다고 한다.

지자체와 정치권이 예산 확보 로비를 벌이는 것을 두고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많지만, 지역민을 대표해 국회에 들어간 의원에겐 통상적 활동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번 예산안 파동으로 사퇴한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역구 의원이 지역사업에 예산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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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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