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美, 우리 제조업 꺾으려 하는데, 광장만 신경 쓰는 與野

[노정태의 뷰파인더] ‘정쟁의 광장’ 매몰되면 ‘생존의 공장’ 놓친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05-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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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장 정치에 몰두하는 이재명, 김문수

    • 미국발 관세전쟁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

    • 美, 목표는 자국 제조업 역량↑ 타국 역량↓

    • 정치가 관세전쟁서 韓 제조업 지킬 수 있어야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5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가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두 주먹을 쥐고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5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가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두 주먹을 쥐고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헌법 제1조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바로 이 국민 주권의 현장 광화문에서 국민과 함께 희망의 새벽을 확실하게 열어젖히겠습니다, 여러분! 그 위대한 새출발의 역사, 희망의 새 길에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5월 12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연설한 내용이다. 말하는 내용 이전에 장소 선정부터,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번 대선을 ‘광장’의 대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그 대선후보로서는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시작된 조기 대선 정국이다. 계엄을 막을 때도, 탄핵안을 가결할 때도,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정을 받아낼 때에도, 민주당은 광장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니 민주당에, 이재명에게 이번 대선이 ‘광장 대선’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힘 역시 사정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경선을 뚫고 후보가 됐지만 ‘당심’에 의해 후보직을 잃었다가 당원들의 투표로 그 자리를 되찾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지난 이력을 놓고 보면 그렇다. 그는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2020년 자유통일당을 창당한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이후의 정국 속에서는 더욱 열심히 광장의 정치에 참여해 왔다. 

    광장에 빠져 놓친 ‘공장’의 중요성

    비단 이번 대선만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정치는 ‘광장의 정치’였다. 정치권에서 다루어지는 사실상 거의 모든 의제가 광장에 올라와 집회의 소재가 됐다. 광화문과 여의도, 심지어는 대법원과 대검찰청 소재지인 서초동까지 주말마다 집회로 불타올랐다.



    소설 ‘광장’의 이분법을 빌려 말하자면, ‘광장’은 당연히 ‘밀실’보다 낫다. 적어도 밀실만 있는 세상보다는 광장이 열려 있는 곳이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가 정치인과 ‘내부자’들만의 밀실에서 결정되는 것보다야 광장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논의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은 광장과 밀실로만 이뤄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밀실이 나쁘다는 이유로, 광장만으로 향하는 정치는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밀실과 광장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 수많은 곳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국면과 요소가 우리 삶을 형성한다.

    2025년 현재, 가장 중요한 곳이 있다. ‘공장’이다. 한 나라의 생산력이 좌우되는 곳,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이자 생계의 기반이 되는 공장은 언제나 중요했다. 지금은 그 중요성이 더욱 각별하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내려놓고 대선 레이스에 끼어들었다가 며칠 만에 그만두었기 때문일까.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가장 뜨거운 화제였던 미국발(發) 관세전쟁에 대한 논의가 퍽 시들해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모든 선거, 특히 대선은 시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건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대선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시 제조업 국가가 되고자 한다. 한 나라의 정책 방향이야 그 나라 사람들이 정할 일이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다. 미국이 제조업 역량을 갖추기 위해, 심지어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맹국까지 포함해, 다른 나라의 제조업 역량을 꺾어놓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책 방향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사라진 건 한국 같은 나라가 ‘빼앗아간’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임금이 상승하고, 기타 비용이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미국의 제조업체가 해외로 발을 돌리게 됐을 따름이다. 요컨대 미국인을 위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이유는 미국인 스스로가 그것을 원치 않은 데 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최근 쏟아져 나온 뉴스를 떠올려 보면 분명히 그렇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집권기에는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세제 혜택과 보조금 등 ‘당근’을 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며 타국의 제조업 역량을 방해하려 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인들은 제조업을 원치 않는다니 모순처럼 들린다.

    미국 워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 참석,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의시작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미국 워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 참석,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의시작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조업은 좋지만 그 자리에서 일하긴 싫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제조업이 표상하는 ‘좋은 일자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일 뿐이다. 다소 단정적 표현 같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4월 13일 영국의 경제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제조업 향수는 미국을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Nostalgia for manufacturing will make the US poorer)’라는 칼럼은 그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칼럼에서 인용한 미국 싱크탱크 카토 인스티튜트의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80%, 공화당 지지층의 80% 이상은 ‘더 많은 미국인이 제조업에서 일한다면 미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일하면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답한 사람은 전체 미국인과 공화당 지지자 모두 20% 초반에 머물고 있다. 제조업은 좋지만 내가 하기는 싫다는 미국인 전반의 의식이 정직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관점은 ‘내로남불’이지만 동시에 정직한 것이기도 하다. 제조업 일자리는 안정적 급료를 제공하지만,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일 테니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 진실이 담겨 있다. 제조업은 어렵다. 일할 사람을 구하고, 훈련해, 근로 의욕을 유지하게 하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다. 단지 노동력만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숙련, 에너지 가격, 지리적 여건 등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 무언가라도 부족하면 제조업은 성립하지 않거나,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해 금방 쇠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발 관세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현실적으로 업데이트해 보자. ‘4차 산업혁명’이니 ‘AI 시대의 도래’니 온갖 현란한 말이 오가지만, 정작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도전자 중국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제조업의 부흥, 육성,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그런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은 어떨까.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7% 정도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가량 되는 수치다. 제조업 전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 5위의 생산 국가다. 특히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방위산업에서의 생산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런 우리가 미국 유권자들의 비합리적 열망으로 인한 관세전쟁에 휘말려 스스로의 제조업 역량을 깎는 ‘협상’을 연이어 타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제가 엉망이 되고 그 여파가 사회 전반에 미칠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장의 불이 꺼지면 살아남을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12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찾았다. 뉴스1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12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찾았다. 뉴스1

    미국 패권 지키려면 한국 제조업 지켜야

    한국의 제조업 역량 약화는 한국만의 비극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지만, 그 군사력을 세계에 투사하려면 운송수단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의 제조업 역량으로는 전 세계 군사력 투사는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한국 등 우방의 제조업 역량까지 떨어진다면 미국이 지금의 패권을 지키기는 더 어려워진다. 한국이 제조업 역량을 지키는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키기 위한 핵심 요소인 셈이다.

    미국이 원하는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면 한미 무역관세협정에서만은 미국의 의사가 전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 가격으로 생산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조업을 지켜야 한다. 단순히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첨단 제조업 국가’로 다시 세우기 위해 사회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 청년들이 기꺼이 일하고 싶을 제조업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며, 동남권에서는 포탄과 기계 등을, 서남권에서는 농업 개편을 통해 식량이라는 제1의 안보 자원을, 쉴 새 없이 찍어내는 그런 나라로 한국을 개편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우려스럽다. 제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에 대한 관점이 기후변화를 이유로 신재생에너지에 미국과 서유럽이 ‘올인’하던 2010년대의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호남 지역 유세에서 농민들을 향해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 보조금을 받으라”고 홍보하던 모습은, 다소 과장되게 말해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반대다. 24시간 꾸준히 기저 전력을 제공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좀 더 높여나가야 한다. 동시에 농업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농업’을 ‘식품 제조업’ 중 1차 원재료의 생산 과정으로 바라보면서, 점차 기업에 문호를 더욱 개방해 한국의 식품업계가 수직계열화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 및 품질개선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농업의 공업화, 농장의 공장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두 거대 정당은 이번 대선을 ‘광장’의 선거로 여긴다. 하지만 정작 이번 대선의 핵심 테마는 ‘공장’이어야 한다. 선거운동 첫 행보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를 방문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그런 변화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나 낮은 지지율에 발목이 잡혔다.

    이것은 몹시 우려스러운 일이다. 전 세계가 공장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 한국만 여전히 광장의 정치에 매몰돼 있는 꼴이니 말이다. 2025년의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미국 중심의 안정적 국제질서 속에서 태평양을 따라 형성된 반도체 가치사슬 위에 올라탄 채, 그저 하나의 기업이나 산업 분야의 경쟁력만 신경 쓰면 됐던 시절은 이미 과거가 돼버렸다.

    지금 한국은 각국이 탐욕스럽게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만들기 위해 달려드는 시대의 입구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변화한 질서에 맞는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게 정 힘들다면 최소한 국민과 민간 영역의 발목을 잡지는 말아야 한다. 정치가 광장에서 공장으로 돌아갈 때,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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