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 선관위 무능과 안일함 결정판
과정에 충실했는데 억울한 결과…‘박탈감’ 느껴
출구조사 발표 후 이뤄진 투표, 공정성 훼손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민주주의를 망친다

6월 6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개표장인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탄핵 찬반 집회의 경우 주최 측이 존재했고, 심지어 대형 스피커와 집회 차량까지 등장했다. 반면 이번 집회는 주최자가 없기에 참가자들의 집단적 외침만이 존재할 뿐이다. 대형 플래카드나 깃발도 없다. 그런데 이런 집회에 편승하려는 일부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세력은 주최자 없는 집회에 익숙하지 않다. 집단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좌파에서는 민주노총과 같은 집단이 집회나 시위를 이끌고, 강경 우파의 경우 특정 종교 집단이나 ‘윤어게인’을 외치는 집단이 집회 혹은 시위를 주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집단주의적’ 집회나 시위에 익숙한 이들은 지금처럼 주최자가 없는 집회에 편승하기만 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집회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과 ‘부실’은 다르다
여기서 잠깐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후기 산업사회는 노조와 같은 ‘집단적 이익’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적 이익’이 더욱 두드러지는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이념’이라는 요소는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이번 집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후기 산업사회적 집회 양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이유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해당 집회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하면, 이들 개인적 분노를 집회의 동기로 삼는 이들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이 이런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개인적 이익 침해에 저항하는 2030세대 상당수는 집회에서 빠지고, 대신 ‘부정선거’를 외치는 세력의 숫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집단주의적’ ‘이념 지향적’ 세력이 집회를 잠식하면서 탈이념적인 2030세대가 집회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상징’으로 떠오른 서울 송파구 잠실 7동 제2투표소. 동아DB
2030세대가 이런 부실에 분노하는 이유는 참정권 박탈에 항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해당 문제가 결국 ‘공정’에 관한 것이라는 데 있다. 2019년 8월경부터 시작된, 이른바 ‘조국 사태’는 수개월 동안 진행되며 많은 젊은 세대의 공분을 샀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지점은 바로 ‘공정’이었다. 불공정한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말로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좌파들의 위선이야말로 이들 젊은 세대가 분노한 핵심이었다. 당시 20대는 지금쯤 30대가 됐고, 당시 10대는 지금 20대가 됐다. ‘조국 사태’는 입시 비리 관련 사안이었기 때문에 당시 10대 역시 상당히 분노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부러움’과 ‘박탈감’의 차이
이런 과거의 경험을 가진 세대이기에 공정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서 잠깐 ‘부러움’과 ‘박탈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러움’이란 나도 노력하면 어떤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만, 자신은 노력하지 않았고 상대는 노력했기 때문에 그 상태에 도달한 상대방에게 갖는 감정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과정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 결과 역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반대로 ‘박탈감’은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할 의지도 있고, 또 열심히 해 특정 상태에 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 그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는 과정에 충실했지만, 억울하게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됐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의 2030세대의 경우 ‘부럽다’는 감정은 수시로 가질 수 있다. 이는 과정의 정당성만 있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공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이들의 시각에서 도무지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2030세대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신들이 처한 경제 상황도 이런 ‘불공정을 향한 분노’에 일조했을 수 있다.
필자의 눈에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그 이후의 선관위 언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보인다. 선관위의 기괴한 행동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투표용지를 50% 정도만 준비했느냐 하는 점이다. 6월 8일 발표된 선관위의 입장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최근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사전투표율이 증가함에 따라 사전투표율이 높은 지역은 투표용지가 과다하게 남는 지역이 있었고, 이후 회수·보관·폐기의 과정을 고려할 때 선거일 투표소에서 사용하는 투표용지를 감축해 인쇄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선관위 입장인즉슨 “실제 선거일 투표에 사용되는 투표용지는 사전 투표를 한 선거인이 빠지기 때문에, 선거인 수의 100%를 인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예상 사전투표율 및 최근 선거의 투표율 등을 감안해 축소 인쇄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구·시·군 선관위 의결로 결정하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인 수의 60%, 다른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지방선거에서는 50%를 하한으로 산정할 수 있되, 지역 실정을 감안하여 해당 선거구 혹은 투표구별로 조정하여 인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선관위의 입장 발표만으로는 무슨 기준으로 50% 하한이 나오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선관위는 공식 회의 없이 내부 전결로 투표용지 축소 인쇄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소수의 관계자가 무슨 근거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특정 선거의 투표율을 예상할 때는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였는지, 양당의 프레임 중 어느 쪽이 우세한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해당 선거에서 분노할 지점은 없는지 등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도 투표율을 정확히 맞히기는 매우 힘들다. 특정 선거구로 범위가 좁혀질 경우, 투표율을 예상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인쇄량이 지역마다 달랐다고 하니, 선관위가 주먹구구식으로 인쇄량을 결정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6월 1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시스
과정에 심각한 하자 있는 ‘희귀한 상황’
여기에다 투표용지가 부족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매뉴얼도 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의 투표소 송부와 관련한 문제 역시 위법일 가능성이 높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는 투표 전날 배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는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 공표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한 이유는 투표하는 사람에게 여론조사 결과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구조사 발표 이후에 투표한 유권자도 다수 있었다. 즉 출구조사 결과가 일부 유권자의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문제다.선관위가 얼마나 엉망인지는 사건이 터진 이후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애초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송파구 12곳, 강남구와 광진구 각각 1곳, 이렇게 총 14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솔직히 필자도 이제는 도대체 몇 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지 헷갈린다. 용지 부족 투표소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공정과 관련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이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30세대의 재선거 요구가 논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틀린 주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선거무효가 법원으로부터 선언된 적이 있다. 2000년 총선 당시 서울 동대문을 선거 결과를 2001년 5월 31일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결하고, 재선거를 명령한 사례가 그것이다. 당시 낙선자와 당선자의 표 차이는 11표에 불과했는데, 낙선자인 허인회 민주당 후보가 당선자인 한나라당 후보 가족의 위장전입을 문제 삼아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사법부가 이를 인정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위장전입한 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거무효를 결정했다. 물론 당시와 이번의 경우를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의 경우는 과정 자체에 심각한 하자가 있기 때문에 결과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소한 기초의회 의원 혹은 시의회 의원들이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권자 역시 선거무효 소송을 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이 나서 재선거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젊은이들은 재선거를 외칠 수 있다. 이들의 외침은 여론의 압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재선거를 주장할 경우 이는 지금의 사태를 정치화할 위험이 있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과 4부 요인이 6·3지방선거 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스1
선관위 위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선관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년 뒤 치러질 총선을 지금의 선관위 체제로 치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문제는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선관위 개혁에 필요한 요소들은 대부분 개헌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동훈 의원이 선관위에 대한 감사를 가능하게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있는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변경하거나 사법부 산하기관으로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동시에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선관위 위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야 한다.그런데 이런 모든 것은 결국 개헌 사안이다. 특히 선관위를 독립기관이 아니게 할 경우, 사법·행정·입법 중 어디 소속의 산하기관으로 둘 것인지도 합의해야 한다. 일단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인원으로 구성되는 입법기관 산하로 선관위를 소속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한 나라에서 선관위를 행정부 산하 기구로 만드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선거관리를 담당하는 부처가 모두 행정부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각 주(州)의 선거 담당 부처가 상당한 자율성을 갖는다. 일본의 경우 총무성이 주로 담당하는데, 일본은 정치적 양극화와 불신이 우리만큼 심하지는 않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선관위를 사법부 산하 기구로 두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거관리에 사법부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일각에서는 왜 판사들이 시·군·구 선관위원장을 맡아야 하느냐는 목소리를 내지만, 독일도 판사들이 선거관리 업무에 참여한다. 그만큼 선거관리는 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정부 혹은 국가 기구를 향해 가진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이런 제도에 대한 불신은 결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 법치주의가 흔들린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이번에 선관위가 저지른 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민주주의를 망친다는 진리에는 예외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