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부터 습득한 난임에 관한 정보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Gettyimage
“AI에게 검사 결과 입력했더니 유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요.”
“AI로 배아 고를 수 없나요?”
최근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난임 환자들도 AI에 궁금증을 던지고 있다. 문제는 AI가 의사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최신 보조생식술까지 아는 척하는 것이다.
현대의 AI 기술이 지식 전달의 수준을 넘어 감정 교류까지 할 수 있게 된 점은 놀랍다. 하지만 인간 고유의 영역, 의지와 추억 등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나의 배란일이 언제인지를 AI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난 6개월간의 생리주기를 바탕으로 평균적 배란 예정일 정도(가임기)는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이번 달 배란일이 지난달의 배란일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오감(五感)만 해도 그렇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감각을 대신할 수 없다. 저마다 추억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벚꽃만 봐도 첫사랑과 함께한 가슴 설레는 봄날이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을 곱씹겠지만, 또 어떤 이에겐 벚꽃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청각도, 후각도, 미각도, 촉각도 저마다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데, AI가 나의 오감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객관적 설명이 주관적 감각 대신할 수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AI는 사랑에 대해 “뇌에서 특정한 화학적 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주로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엔도르핀이 조절하는 감정”이라고 답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토록 단순하지 않다. 오롯이 둘만이 아는 과거의 경험이 시간과 함께 오감으로 얽히고설키면서 뇌의 생화학적·신경학적 변화를 겪어낸 감정의 파노라마다.연인마다 사랑의 색깔도 사연도 행동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느끼려면 그들의 서사를 알아야 한다. 오늘의 감정은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관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AI에게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의 결론을 물어본다고 해서 정답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이자 사랑의 계절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AI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봄에는 햇빛의 증가로 인해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하고,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하며, 이는 기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봄에는 ‘보상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이 다량 분비돼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사랑에 빠지고 싶어진다”는 답이 돌아온다.
의학적으로는 맞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틀린 답일 수 있다. 봄이라고 모든 여성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봄만 되면 사랑을 갈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우울해진다는 이도 많다. 저마다 경험의 서사가 달라 AI식 답이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임신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혈액검사로 hCG(융모성 성선자극)호르몬 수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Gettyimage
AI의 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배란일로부터 2주 후쯤 hCG 수치가 10 이상이면 착상된 것으로 간주하고, 50 이상이면서 48~72시간마다 2배 이상 상승하면 임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 이는 의학적 평균치를 토대로 한 답일 뿐 일반화할 순 없다. AI는 어떠한 정자와 난자로 수정된 배아인 줄도 알지 못하고, 임신부의 자궁 환경(착상 환경)에 대해서도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염색체 이상 등 건강하지 않은 배아(수정란)로 임신됐다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외에도 임신을 방해하는 변수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인간의 생식기능은 오감의 자극보다 경험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 좋았던 기억과 트라우마 등은 리비도(성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뇌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자극해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들 수 있고, 생식호르몬의 균형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적·정서적 트라우마가 성욕에서부터 가임력까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극단적 예를 들자면 봄에 자식을 잃은 여성은 봄이 돌아오면 성욕이 사라질 뿐 아니라 임신이 잘 안 된다. 그녀에게 봄꽃은 설렘이나 두근거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난임은 질병 아닌 심리적 증상
난임 전문의로 38년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여성을 만났다. 임신이 안 되는 몸이라고 좌절하며 한숨과 근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진료실 문을 열던 그녀들. 저마다 임신이 안 되는 이유가 달랐지만 난임에 이른 분명한 인과(因果)가 있었다. 난임은 질병이 아니라 심리적 증상, 증후군임을 절감했다.난임 환자 상당수는 트라우마와 안 좋았던 기억에 의해 난임에 이른다, 유산을 두려워하는 여성은 매번 유산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난임 전문의는 최신 의술로 임신을 성공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심리적 치료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난임 치료의 핵심은 심리치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행히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자신의 정서적 고통을 타인에게 잘 표현하는 편이다. 여성의 수다는 치료에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감정 교류에 대한 신경 반응이 남성보다 훨씬 민감하다. 마치 음률로 하모니를 맞추듯 의사와 감정적 코드가 맞아 소통이 잘되면 고난도 난임일지라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심지어 폐경 직전 의사와 대화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후 표정이 밝아지고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하더니, 급기야 건강한 난자를 키워내 시험관아기시술(IVF)로 임신(출산)에 성공한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녀가 AI에게 자신의 난소 검사 결과를 토대로 가임력을 물었다면 “난소 예비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로, 임신에 성공할 가능성은 1% 미만”이라는 절망적 답만 들었을 것이다.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