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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서민 출신이다. 비천한 출신 때문에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도요토미처럼 이 대표도 기초단체장에서 대선후보를 거쳐 당대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운동권 적자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각종 사법 리스크와 ‘비명횡사 친명횡재’라 불린 4·10 공천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강성 지지층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반면 2022년 3월 열린 20대 대선 이후 집권 세력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념적 지향성의 균열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급기야 2024년 4월 22대 총선에서 이념의 동질성이 의심되는 이가 다수 공천되기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니 일본의 침략을 앞두고 서로 다른 말을 했던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처럼 친윤·비윤·반윤·친한 등으로 갈라져 동일한 사안을 놓고도 판단하고 실행하는 방향이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공포가 만드는 배신
임진왜란 개전 초기 부산진첨사 정발이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했다. 반면 이 소식을 들은 경상좌병사 이각은 공포에 휩싸여 동래성을 함께 지키자는 동래부사 송상현의 간청에도 이를 뿌리치고 ‘내가 이 꼴을 보려고 병사가 됐는가’ 한탄하며 관물을 훔쳐 첩과 줄행랑을 쳤다. 당장 맞서 싸울 수 있던 육군의 주력을 스스로 붕괴한 것이다. 경상우수사 원균 또한 왜선 700여 척을 바라보고 공포에 질려 ‘나라고 어쩔 수 있겠는가’ 하며 판옥선 70여 척을 자침시키고 도망쳐 조선 최강의 수군 전력을 상실케 했다. 한마디로 비겁한 배신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집권 세력이 보여준 모습도 혼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배출한 대통령이었음에도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렸다. 탄핵 표결을 주도한 한동훈 대표의 입에서 “내가 투표를 했느냐?”는 어이없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 가장 의연하게 행동해야 할 장성들은 민주당 의원 개인 유튜브에 출연, 공포에 질려 양심 고백하듯 계엄 당일의 상황을 폭로하거나 국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언론사를 비롯한 공기관의 몇몇 수장도 지금 누리는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바로 태세를 전환하거나 미래 권력에 적극적으로 줄을 댔다는 소리도 들린다. 계엄 또는 탄핵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의 저열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도를 점령하고 임금을 사로잡아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목표하에 앙숙 관계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선봉장으로 삼아 서로 경쟁하게 했다. 그 결과 한양은 개전 20일 만에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보병 위주의 군대가 몇몇 전투를 치르며 당시의 부실한 도로를 이용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20일 만에 당도한다는 것은 무리한 진격이었고 상상을 초월한 속도전이었다. 이미 다 이긴 전쟁이라 판단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목표는 실패한다. 선조는 파천했고, 최단시간 내 한양 점령을 목표로 비워놨던 지역들을 기반으로 의병의 저항이 일어났으며, 특히 임진왜란 초기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 곡창지대인 호남이 반격의 근거지가 된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일부 의원의 도움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에 성공했고 권한대행까지 탄핵소추했다. 계엄 반대 여론은 민주당의 정권 획득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그러나 국회 최대 입법 세력으로서, 휘청거리는 민생은 뒤로한 채 정권 획득의 전제 조건인 탄핵 인용만을 목표로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다 보니 내란죄 삭제,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이 집권 세력이 조기에 스스로 붕괴될 것을 기대하고 전방위적으로 정치적 압박 수위를 높였으나 그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정규전인 레거시 미디어에서 밀린 보수 우파가 비정규전인 소셜미디어를 근거지 삼아 활약하는 디지털 의병들의 전투력에 힘입어 여론의 반전을 꾀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급로 차단한 조선군, 서둘러 후퇴한 일본군
맥없이 붕괴한 임진왜란 초기 전황과는 달리 개전 후 두어 달이 지나자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수군이 재해권을 확보하며 해상 군수물자 공급을 차단시켰고, 의병과 재집결한 지방군은 각지에서 공세를 퍼부으며 육상 보급로를 압박했다. 게다가 겨울이 일찍 찾아오면서 의병과 지방군이 땔감의 공급을 차단하자 일본군의 상황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륙병진이라는 일본군의 전략에 차질이 생겨 함경도 온성까지 진출했던 가토 기요마사와 평양성에 주둔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남쪽으로 서둘러 후퇴한 것이다. 한편 선조는 일본군을 잡아오거나 동태를 파악해 오는 자는 양천은 물론이고 벼슬도 내릴 것이라는 교지를 모든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초로 한글로 작성·배포해 양민과 천민의 저항을 독려했다. 이후 전황은 전란이 끝날 때까지 고착 상태에 빠졌다.
계엄 초기 탄핵 찬성과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절대적이었으나 두어 달이 지난 지금 탄핵을 반대하고 정권 재창출을 희망하는 여론도 반등에 성공했다. 이재명 대표는 호감도와 지지율에서 절대적 1위지만, 반대로 비호감도와 찍지 않을 후보로도 1위다. 절반을 넘지 못하는 지지율과 절반 바로 아래에 있는 비호감도에 발목을 잡혀 있다. 일본군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군수물자의 보급이었듯 이재명 대표에게는 표의 보급이 절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마치 선조가 한글 교지를 내리듯 윤 대통령 측도 지지층을 향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의 끝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떠버렸다. 어린 아들 히데요리가 권력을 승계했으나 결국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도요토미 일가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조선도 인조반정을 거쳐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고, 서서히 국력이 쇠퇴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만약 일본이 거창한 승리를 거머쥐었다면 도요토미 일가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역시 전란을 교훈 삼아 치세에 치중했다면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파와 좌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혈투를 벌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쇠퇴하거나 몰락하지 않기 위함이다.
역사의 줄기를 바꾸는 변수, 탐욕과 공포
그러나 일본이 크고 작은 수십 번의 전투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조선 정복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으니 결코 승리한 전쟁이라 할 수 없다. 조선 역시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이 참담한 고통을 겪었기에 이겨도 이긴 것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엄령의 정당성이 인정되든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든 결론이 난다 해도 그 결론을 가지고 진정한 승패를 논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과 동일하다.
인간은 탐욕과 공포에 지배받는다. 조선을 치고 명을 정벌하겠다는 탐욕으로 가득 찬 일본군의 무력시위에 공포에 질린 조선 졸장들의 배신이 속출했지만, 이후 수도를 서둘러 점령하고 선조를 사로잡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일본군의 패착으로 조선은 공포에서 벗어나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대통령 탄핵을 서둘러 정권을 획득하겠다는 민주당의 탐욕에 보수 절멸의 공포를 느낀 국민의힘이 반격의 기회를 마련한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닮을 수 있는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탐욕이나 공포는 늘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특히 탐욕이나 공포가 결정적 순간에 기능하면 역사의 줄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탐욕은 최대한 억제하고 공포는 빨리 극복해야 승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승자가 리더가 돼야 세상이 편하다.
*에필로그: 내란죄로 기소된 윤 대통령이나 ‘반일’을 앞세우는 민주당을 감안하면 이 글의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탐욕은 억제하고 공포는 빨리 극복하자는 취지로 든 비유이니 오해는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