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잿더미와 초록 사이에서: 지구의 피부와 나의 얼굴

[에세이]

  • 김원효 ㈜대정 대표·㈜닥터락 본부장

    입력2025-09-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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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덕군의 한 마을 주택이 산불로 전소된 광경. 시간이 지나면서 집 주변 잿더미 사이에서 초록색 풀이 돋아났다. 김원효

    경북 영덕군의 한 마을 주택이 산불로 전소된 광경. 시간이 지나면서 집 주변 잿더미 사이에서 초록색 풀이 돋아났다. 김원효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무섭게 확산됐다. 불길은 산을 타고 들을 건너 동해를 향해 거침없이 번져갔다. 마치 숨을 들이마신 괴물처럼 그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인간의 기억이 한순간에 재로 사라졌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영덕군 지품면에는 정부 복구팀이 긴급 투입됐고, 나의 회사 역시 그 팀의 일원으로 그 땅에 발을 디뎠다(나는 건설과 철거를 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화장품 회사 임원으로 일하는 ‘투잡러’다).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그곳은 말 그대로 ‘그을린 땅’이었다. 발등을 간질이는 재와 먼지, 붉은 하늘을 뒤덮은 그을음, 불타 사라진 것들이 남긴 정적이었다. 지구의 피부는 큰 화상을 입은 피부처럼 문드러져 있었고, 삶을 품고 있던 살결이 그대로 찢겨나간 듯했다. 

    거대한 상처 앞에 선 시간

    우리는 먼저 무너진 마을회관 잔해를 걷어내며 일을 시작했다. 잔해 아래엔 누군가의 하루와 계절, 그리고 평범했던 일상이 그대로 묻혀 있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폐허 위에 첫 삽을 뜨는 일은 단지 노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지품면의 땅은 검게 타 있었다. 가지 끝마다 재가 앉았다. 마치 봄날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휘날리듯 바람이 불 때마다 재와 함께 기억이 흩날렸다. 그 광경은 마치 거대한 시집의 페이지들이 한 장씩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덕군의 산과 마을 중 4분의 1 이상이 사라졌다. 수천 채의 집이 흔적도 없이 불타 버렸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았던 곳이 어디였는지도 기억 못 할 정도였다. 사라진 것은 집뿐이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그간의 삶의 기억과 시간, 장소, 관계의 좌표가 함께 탔으리라. 숫자와 통계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삶의 파편이 그곳엔 가득했다.



    노물리 마을에서는 열두 척의 어선이 바다를 등진 채 선착장에 정박해 있었지만, 불길에 휘말려 검은 뼈만 남았다. 그 장면은 마치 바다마저 등을 돌린 듯한 절망의 풍경이었다. 땅뿐 아니라, 물도 불에 패배한 셈이었다. 인근의 나무로 지어진 작은 집 안에는 반쯤 탄 고무장화가 조용히 놓여 있다. 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어르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쪽 기둥이 폭삭 내려앉은 벽에서 깨지고 그을린 가족사진 액자를 찾아내더니 조심스레 꺼내 품속에 넣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우리 애들 어릴 때 사진인데….” 그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어르신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예전 애들이 도시로 나가기 전에는 모두 함께 여기 앉아 TV를 봤어요. 여름엔 고기를 잡고, 겨울엔 그물을 꿰고…다 그랬지.”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눈동자는 멀리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까맣게 그을린 선착장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날의 바람은 목격자였다. 바람은 불을 이끌었고, 불은 삶을 뒤덮었다. 나는 현장에서 인부들을 관리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식당도 마땅찮아 식사는 도시락과 간식으로 때웠다. 필요한 물자는 읍내까지 나가서 사와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함은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시련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 하루치의 물품과 생각을 챙겨 지품면으로 향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며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날지 궁금했다.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불편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땀은, 이재민들의 눈물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작업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쓰러진 지붕을 걷고, 무너진 기둥을 해체하고, 폐자재를 분류했다. 시간은 멈춘 듯했고, 우리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망치질과 철거음만이 공기 속을 채웠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팔은 바위처럼 무거웠다. 

    “오늘 안에는 저 언덕까진 가야 해.”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하면, 나머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손끝의 감각이었다.

    상처 딛고 다시 자라나는 삶

    그러던 어느 날 작업이 익숙해지던 즈음, 나는 잠깐의 휴식 시간에 바위에 걸터앉았다. 등 뒤로는 여전히 그을음이 남아 있었고, 앞엔 탄 산자락이 누워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거대한 수묵화 같았다. 검은 선과 여백 사이로, 타버린 시간이 조용히 드러나는 듯했다. 나는 지친 얼굴에 재생 크림을 바르며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내 손끝의 감각과 눈앞 풍경이 포개지는 듯했다. 검은 땅 위에 작은 풀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말라버린 가지 끝에 아주 연한 녹색 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검은 땅 위에 솟아난 풀잎은, 나의 피부에 다시 돋아나는 살결과도 같았다. 그것은 죽음의 땅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적이었다.

    며칠 후, 그 풀잎은 셋이 됐고, 주변엔 이름 모를 작은 꽃도 피었다. 벌레가 기어다니고, 이름 모를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울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날개 소리였다. 자연은 인간의 시선 밖에서도 조용히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땅은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지구의 피부가, 비로소 다시 숨 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회복의 시작은 언제나 미세한 변화로 다가온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생명의 본능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도 자연은 자기 방식대로 다시 태어난다.

    그 순간, 불현듯 내 얼굴을 떠올렸다. 건설업에 종사하다 보니 나는 늘 현장의 긴장감 속에서 살아왔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한순간의 방심이 재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피부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햇볕, 먼지, 시멘트,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