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싱크홀 빈발하는 곳이라도 알려달라”

[특집① | ‘싱크홀 패닉’ 불안한 시민들] 빈발하는 수도권 싱크홀 사고, 주민은 공포에 떤다

  • 박세준 sejoonkr@donga.com

    입력2025-05-19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싱크홀 사고 확실한 컨트롤타워 부재

    • 국토부는 사고 수습, 지자체는 피해 지원 맡았으나

    • 붕괴 위험 정확히 몰라 피해 지원도 늦어져

    • 국토부 권고에도 지자체 안전 검사 실시 않기도

    • 2014년부터 지하공간 통합지도 만들었으나

    • 지반침하 이력, 지하수 흐름 등 정보 없어

    • 서울시 지반침하 지도도 아직 미공개 상태

    5월 9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장 붕괴 사고 현장. 박세준 기자

    5월 9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장 붕괴 사고 현장. 박세준 기자

    “아직 사고 원인은 물론 이후 안전관리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불안하다고 하는데 당장 집을 옮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답답함만 커져간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 도로 붕괴 사고 인근 주민 정모(43) 씨의 말이다. 4월 11일 신안산선 공사 현장 붕괴,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지반침하 사고 등 이른바 ‘싱크홀’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올해에만 11건이 발생했다. 

    특히 신안산선 공사 현장 붕괴는 규모가 크다. 사고 당일 643가구 2444명의 주민이 대피했고, 아직 21가구 55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붕괴 사고 여파로 가스 공급이 끊겨 영업을 중단한 식당, 주유소, 카센터가 17곳에 달한다. 

    ‘신동아’는 5월 9일 직접 사고 현장 인근 지역을 찾았다. 사고 발생 인근 현장의 공사 관계자는 “처음 공사 설계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고 입을 열었다. 이 관계자는 “사전 지반 검사 결과와는 달리 붕괴 위험이 큰 현장이었다”며 “공사 초부터 설계를 다시 해 버팀목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우왕좌왕 대책에 주민 불안 커져

    사고 현장 인근은 거주자 밀집 지역이다. 다른 지하 공사 업계 관계자도 “(신안산선 붕괴 사고가 있던 지역은) 붕괴 여파가 컸다면 더 큰 피해가 있었을 위험도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KTX 광명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우측에 64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다. 아파트 맞은편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근처에는 다가구주택이 밀집해 있다. 초등학교 뒤편 일직 수변공원을 지나면 중학교가 나온다. 이 공원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운동장 대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하교 시간이 지나면 중학교 학생들도 여기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고 당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은 정상 등교했다. 인근 주민 김모(40·여) 씨는 “단축수업은 했지만,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으면 아예 휴교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주민들은 광명시의 사고 직후 대응에도 불만을 표출했다. 광명시는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인 4월 11일 오후 5시 23분 인근 아파트와 다가구주택 및 상가에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가 약 7시간 뒤 해제했다. 

    광명시는 그러나 대피령을 해제한 지 하루 만인 4월 13일 오전 11시 사고지점 반경 50m 이내에 있는 주택 12가구(38명)와 상가 4곳에 추가 주민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인근 주민 이모(42·여) 씨는 “대피하랬다가 복귀하랬다가 정부 대응부터가 우왕좌왕이라 ‘안전하다’는 발표도 신뢰가 가질 않는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광명역 인근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사고 현장과 서독산을 연결하는 길목의 ‘구석말 마을’은 도시가스 공급이 멈췄다. 추가 지반침하 위험 때문이다. 현재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대피한 상태다. 임시 대피소는 마련됐으나, 오래 머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주민들은 사비를 들여 숙소를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을 주민 윤모(52) 씨는 “추가 사고 위험이 있으니, 대피는 당연하지만 지원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이 같은 문제가 생긴 이유로는 싱크홀 컨트롤타워 부재가 꼽힌다. 사고 현장 수습을 담당한 것은 국토교통부이지만, 주민 대피 및 추후 지원 대책 등을 담당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이기 때문. 광명시 관계자는 “국토부 등과 회의한 결과 추가 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민 대피령을 추가로 내린 이유를 밝혔다. 구석말 마을 지원 대책에 관해서는 “신속하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공사 등에 촉구 공문을 발송하고,피해 주민과 공동 기자회견 등 적극적 중재에 나설 방침”이라 설명했다.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교 사거리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 동아DB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교 사거리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 동아DB

    11년 전 만든 싱크홀 안전대책도 지켜지지 않아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도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조가 미비해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강동구 명일동 동남로 대명초교 앞 도로에 사방 폭이 20m, 18m, 깊이 30m의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했다. 발생 당시 이 도로를 지나던 배달 라이더 한 명이 싱크홀에 빠져 사망했다. 이후 강동구에서만 깊이 20~150㎝ 싱크홀 4개(4월 2일, 3일, 13일, 30일)가 더 발생했다. 

    싱크홀 사고가 발생하기 4개월 전에 국토부 산하 기관은 사고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서울시에 알렸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에 대해 추가 대응을 하지 않았다.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이하 관리원)은 지난해 11월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1공구 일대 특별점검에 나섰다. 관리원은 사고 발생 지역에서 500m 떨어진 지역까지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시행했다. 

    이 구간에서 일부 ‘노면 침하’ 현상이 발견됐다. 노면 침하는 대표적인 싱크홀 전조 증상으로 꼽힌다. 관리원 측은 “노면 침하 구간은 주의 관찰을 시행하고 필요시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며 “노면 침하에 그쳤기 때문에 (담당 기관과 지자체 측에) 주의 관찰과 필요시 안전조치를 하라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미 11년 전 마련해 놓은 싱크홀 안전대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2014년 8월 서울시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에 발생한 대형 싱크홀 사고 이후 방지 대책을 내놨다. 도로 함몰 전담 감리원 배치와 지하공간 통합지도 구축이다. 하지만 강동구 사고 현장에는 감리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감리원을 모든 공사 현장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하공간 통합지도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국토부는 8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만들었으나 싱크홀 예측에 필요한 땅속 공동과 지하수 흐름 등 핵심 정보가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망양보뢰  격이지만 국토부는 5월 2일 “지하공간 통합지도 고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하공간 통합지도에 지반침하 이력, 건설공사 정보, 홍수 범람 이력 등 데이터를 담아 싱크홀 위험 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보안 문제로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종이로만 제공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대용량 파일 전송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성도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도 4월 23일 싱크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확대, △하수관 정비 예산 2배 증액, △지반침하 예측 신기술 도입, △전담 조직 신설 등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차량형 GPR 장비를 3대 추가 구매해 확대 운용하고, 도로 기준 탐사 범위도 기존 30%에서 60%로 늘린다. 지하 20m까지 실시간 감지가 가능한 지반침하 관측망도 도입한다. 지반침하 관측망은 지하 2~5m까지만 관측할 수 있는 GPR의 한계를 보완한 장비다. 다만 움직이며 관측할 수 있는 GPR과 다르게 고정 설치가 필요하다. 이 관측망은 5월부터 서울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 시범 도입한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국내외 신기술을 공모해 우수성이 확인된 기술은 붕괴 위험이 큰 지하 공사 현장부터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지반침하 조사 및 안전지도 만들었지만 공개는 안 돼

    국토부와 서울시의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최모(29) 씨는 “(공사 현장은 물론) 지하철 공사가 있던 부분 도로를 지날 때마다 불안하다”며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섞여 빠르게 달리는 도로에서는 싱크홀이 작게 발생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서울시는) 아직 어떤 지역이 위험한지도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자체는 지하공간에 대한 조사는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시는 ‘2024년 지반침하 특별점검 공동조사용역’을 통해 지반이 내려앉을 위험이 있는 서울 도심 1930㎞ 구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도로 아래에 무려 329곳의 공동이 있는 걸로 확인됐다. △강남구 65곳 △광진구 28곳 △서초구 25곳 △중구 21곳 △송파구·서대문구 20곳 △종로구 19곳 △용산구 18곳 △강서구 15곳 △노원구 13곳 △관악구·강동구 12곳 △동작구 11곳 △성동구 10곳 △성북구 8곳 △강북구·도봉구·영등포구 7곳 △마포구 6곳 △은평구 4곳△중랑구 1곳이다. 가로 세로 60~70㎝ 크기에서부터 크게는 1m 60㎝가 넘는 구멍까지 무더기로 포착됐다. 이 조사 보고서는 “지하철 굴착공사가 진행된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빈 공간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2024년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모래내 고가차로 부근의 한 차도에서 발생한 싱크홀에 승용차가 빠져 있다. 뉴스1

    2024년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모래내 고가차로 부근의 한 차도에서 발생한 싱크홀에 승용차가 빠져 있다. 뉴스1

    서울시 측에 따르면 현재는 이 공동이 전부 메워진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동 329곳 중 247곳은 발견 즉시 채움재를 주입해 복구를 끝냈다”며 “나머지 82곳도 지난해 12월 굴착 복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지도가 제작된 지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이 지도 역시 싱크홀 사고를 겪고 만든 재발 방지 대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29일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도 싱크홀 사고가 있었다.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모래내 고가차로 부근에서 가로 6m, 세로 4m, 깊이 2.5m의 싱크홀이 발생했고, 지나가던 승용차가 이 싱크홀에 빠졌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가 중상을 입었다. 

    서울시는 이 사고 직후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만들었다. 지반침하 안전지도는 땅꺼짐 위험도에 따라 서울 전역을 5개 단계로 나눠 등급을 매기고, 지하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곳 등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해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4월 2일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 공공운수노조 등 시민단체가 서울시에 지반침하 안전지도 공개를 요구했으나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4월 7일 이들 단체는 서울시에 이의 신청했지만, 서울시는 4월 23일 이를 기각했다. 

    정보공개센터 관계자는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상의) 우선정비구역도를 기준으로 예방 공사를 해왔다면서 정작 (싱크홀) 사고가 터지고 나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계속 숨기며 시민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며 비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선정비구역도는 GPR 탐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내부 관리용으로 만든 지도일 뿐”이라며 “향후 안전 목적에 맞는 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겠다”고 해명했다. 

    사고 지역 인근 주민들은 “지도가 아니더라도 어떤 지역이 위험한지 정도는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동구 주민 임모(32·여) 씨는 “싱크홀은 주로 도로에 발생하는데, 어떤 구간이 위험한지 정도는 알려줘야 그 구간을 지날 때 속도를 줄인다거나, 이를 피해 갈 수 있다”며 “(지반침하 안전지도 공개가 어렵다면) 서울시내 도로 중 싱크홀 위험도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 주민 손모(38) 씨도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주로 사고가 나는 만큼 공사 현장 인근 지반 위험도라도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