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정부는 노인 재고용 지원, 노인은 디지털 능력 배양해야”

[특집 |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존엄한 삶과 죽음을 말하다] ‘노인이 사회에 공헌하는 나라’ 꿈꾸는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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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06-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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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어난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임시직

    • 최저임금보다 조금 나은 일자리라도 좋아

    • 정부·기업 손잡고 노인 재고용 지원 필요

    • 노인, 차별 싫다면 능력 키워 직장 구해야

    • 정치 유튜브 내려놓고, 사회 공헌 나서자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박해윤 기자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박해윤 기자

    ‘국민연금 개악 규탄.’ 젊은 세대 정치인들이 정부를 향해 내세울 만한 문구다. 하지만 이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인물은 8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다. 주명룡(79) 대한은퇴자협회(이하 은퇴자협회) 회장은 2월 26일 태국 방콕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지부 앞 광장에서 참가국 NGO 관계자들과 침묵시위를 벌였다. 

    주 회장은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껏 은퇴자협회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미국에서 맥도날드 지점 3개를 운영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뉴욕 한인회장도 맡았다. 그러나 1997년 말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졌고, 갑작스럽게 정리해고를 당해 방황하는 은퇴자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미국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2001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은퇴자협회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23년간 주 회장은 개인 재산을 털어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일자리 늘어도 팍팍해지는 노인의 삶

    은퇴자들을 위해 살아온 주 회장이 국민연금 개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필연적 일이었다. 주 회장은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의 연금 개혁을 ‘개악(改惡)’이라 했다. 그는 “저출산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앞으로 돈을 낼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많아진다”라고 지적하며 “결국 연금을 받는 기성세대보다 돈 낼 기간이 긴 미래세대의 부담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라며 연금 개혁에 반대한 이유를 밝혔다. 

    국민연금 수혜자의 대부분은 은퇴자다. 은퇴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연금은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더 받는’ 쪽에 찬성하는 이가 많을 법하다. 그럼에도 은퇴자협회장이 나서서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4월 중순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은퇴자들도 연금만 믿고 있어선 안 된다. 일해서 돈 벌 생각을 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평생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해온 은퇴자들이 다시 일하기를 원할까. 



    “은퇴한 사람들은 크게 두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은퇴 후 삶을 준비한 부류가 있다. 이들은 일하지 않아도 생계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기회가 된다면 사회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사회 공헌,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부류다. 나머지는 아무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이러한 경우인데, 생계가 곤란해 임금이 낮은 일용직, 임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자협회’의 회원이라면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한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실상은 다른가.

    “협회를 열고 얼마간은 회원들로부터 일자리 알선을 부탁받았는데, 해주고 싶지 않았다. 은퇴를 준비하지 않은 탓에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이 많아 봐야 얼마나 있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 중에서도 은퇴 후 삶을 준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자리를 원하는 은퇴자가 많아서일까. 노인 등 은퇴자를 위한 일자리는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24년 노인 일자리는 총 103만 개로 전년 대비 약 14만7000개가 늘었다. 

    실제로 노인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상 일자리가 늘었지만,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임시직 일자리다. (노인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실효는 없었다. 오히려 노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3년 기준 38.3%로 회원국 중 1위다. 동시에 노인빈곤율도 40.4%로 1위를 기록했다. 

    노인 일자리가 일용직, 임시직에 머무는 이유가 뭘까.

    “일단 노인 일자리를 담당하는 부처가 문제다. 노인 일자리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는 고용노동부지만 노인 일자리 ‘지원’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생기는 노인 일자리는 대부분 시급 2000원 남짓의 사회적 공헌이나 공익 일자리다. 여기에 식사비, 이동비를 지원해 주는데 전부 합해도 하루 일당은 2만 원꼴이다.”

    일당 2만 원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울 것 같다.

    “개인연금이나 퇴직 이후 삶에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나아가 이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러 나서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사회적 공헌 일자리는 그야말로 ‘공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일당이 적어도 영향이 없다. 문제는 이런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필요하다.” 

    노인을 위한 제대로 된 일자리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나.

    “적어도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은 받는 일자리다.”

    2025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로 기준 월급은 209만6270원이다.

    배워서 일하고, 돈 벌며 사는 노인 돼야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지금도 정부가 노인 일자리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만든 노인 일자리가 100만 개 이상이다. 정부가 노인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래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인인구의 증가세는 매년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는 1950~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지원이라면 생계가 곤란한 노인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방식의 지원이 필요할까.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기업이다.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이 고령층을 채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이 굳이 고령자를 채용하려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은퇴자는 고령자이기 전에 경력자다. 경력 인력을 최저임금으로 채용할 기회다. 기술직이라면 기술 전수를, 영업직이라면 영업 비결을 전수할 수 있다. 아직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노인 일자리보다는 청년 일자리가 급선무라는 지적도 있다.

    “노인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노년층이 찾는 일자리는 연봉이 높지도 않고, 크게 오를 필요도 없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대우를 받으며 사회에 기여하고,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이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 회장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제는 노인 등 고령자를 일터로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이라 덧붙였다. 

    이미 은퇴한 사람들을 정부가 다시 일터로 불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초고령화로 접어들며 점차 일할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장 출산율이 0.8을 넘질 못하고 있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일할 수 있는 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다. 국가 존속을 위해서라도 노년층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정년 연장과는 다른 이야기다. 정년 연장은 기업 임금 부담이 커진다. 대신 노년층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일손이 부족할 때 한 사람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인력인 데다, 임금까지 저렴하다면 기업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노년층이 한창 일하던 시대와 지금의 업무 환경이 달라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노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배워서 직업을 얻고, 일하며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 복지 혜택에 기대서 살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인, ‘사회적 배려 대상’이라는 인식 사라질 것

    주 회장은 대중교통 무임승차 이야기를 꺼내며 노인들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중교통 무임승차 가능 연령대가 된 노년층은 자신들을 ‘지공대사’라 부른다.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나는 이 제도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어떤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경로 우대 카드를 지하철 개찰구에 찍으면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소리를 듣는 일이 계면쩍다. 왜 나이 든 세대는 혜택만 보려 하는가. 당장 생계유지가 어려운 노인은 무료로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맞다. 다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씩이나마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세대에도 면이 선다. 노인의 권익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이렇게 작은 책임부터 하나씩 져나가야 한다.”

    노인 권익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일자리 지원 외에 노인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은퇴자협회의 역점 사업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기초적 사회제도는 갖춰졌다. 주택연금제도, 연령차별금지법,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이 주효했다. 지금은 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 힘쓰고 있다. 노인이라는 말보다 은퇴자, 혹은 고령층 등으로 단어도 바꾸려고 하고 있다.”

    ‘노인’ 호칭을 바꾸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노인’이라는 말에는 사회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은퇴자들도 본인을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경제력 있고, 일할 능력이 있는 은퇴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인이 대부분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다면 사회 배려의 대상이라는 인식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속도를 조금 높이기 위해 노인 인식 변화 및 명칭 변화에 힘쓰고 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인데, 노인 수가 늘고 있으니 그만큼 권익 추구 활동은 쉬워질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노인인구가 많지만 그만큼 파편화돼 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너무 다르다. 학력부터 경제력까지 모든 것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한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노인인구가 많은 만큼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일 수 있다.

    “정치권에서 가장 외면받는 세대가 노년이다. 보수정당은 노년층을 집토끼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정책적 공략 없이도 자기들을 지지할 것이라 믿는다. 반대로 진보정당은 노년층을 절대 설득할 수 없는 계층으로 인식한다. 결국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노인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권에는 노년층에 관심이 없지만 노년층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노인이나 은퇴자들이) 정치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자제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노인들의 권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향해야 할 일이나, 맹목적으로 정치집단을 따라다니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은퇴자협회 회원들은 정치 유튜브를 덜 보는 편인가.

    “덜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은퇴자협회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노년층도 디지털 기기나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워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내용, 배워서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로 올린다.”

    반응은 어떤가. 

    “잘해야 200~300명 정도 보는 것 같다. 1분 남짓의 쇼트폼 영상은 10만~20만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있다. 정치 유튜브를 이기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현재 고령층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플랫폼이 유튜브다. 지금이야 정치 관련 유튜브를 주로 보지만, (노인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다면 언젠가는 관심을 두지 않겠나. 이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다면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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