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조세형·권희로의 ‘영웅 스트레스’

  • 표창원 cwpyo@cwpyo.com

    입력2005-05-03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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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어둠 속에서 쫓기고 의심받던 조세형과 권희로가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환경 변화다. 우리는 가끔 벼락부자나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 운동선수가 마약에 빠지거나 음주운전 사고, 문란한 성생활로 파멸하는 예를 보아왔다.
    • 주위에서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대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갑자기 생긴 돈과 명예가 낯설기만 하다. 그 낯섦은 고독감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술과 마약, 쾌락을 좇는 것이다. 조세형과 권희로는 이런 심리 상태였던 것 같다.
    범죄자에서 사회 저명인사로, 다시 범죄자로 극적인 변신을 하며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세형과 권희로의 심리세계에는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조세형은 1943년 일본제국주의가 막바지로 치닫던 때 태어났다. 항일투사로 알려진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어머니마저 일본경찰의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된 끝에 세상을 떠나 유일한 혈육인 형의 손에 이끌려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권희로는 1928년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는데 부두 목재하역 인부로 일하던 아버지는 권희로가 4세 때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의붓아버지와 살게 된 권희로는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희로’로 불리면서 가난과 차별에 찌든 삶을 살게 된다. 어린 조세형과 권희로의 심리와 성격형성 과정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고아가 되거나 일본 땅에서 차별받으며 자란 아이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는 힘든 어린 시절을 성공에 이르는 추진력으로 승화시킨 사람들도 있고 죄 짓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불우한 환경이 조세형과 권희로의 범죄행각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선택, 주변 사람들의 역할 역시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두 사람의 심리세계를 들여다보자.

    아동학대와 애정결핍이 만든 범죄자

    유아기와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은 욕구불만, 욕구의 비정상적 편중, 입·항문·성기·외음부에 대한 병적인 집착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세형처럼 생후 18개월 동안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경우 손톱을 물어뜯거나, 음식을 토할 때까지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줌을 싸거나 토하는 행동을 커서까지 나타낸다. 조세형의 말이다.

    “저는 매일 밤 이불과 옷에 세계지도를 그렸습니다. 열서너 살까지도… 오줌싸개는 어디를 가나 붙어다니는 제 별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성결핍이 범죄로 이어지면, 어머니 같은 따뜻함을 주는 불에 매료되어 방화범이 되거나 결핍된 모성을 채우기 위해 여성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도 조세형은 유아기 큰형이 얻어 물린 동네 아주머니들의 젖 때문이었는지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세형이 절도과정에 보인 귀금속이나 장신구 등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모성결핍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권희로는 감정 조절을 배우는 시기인 4살 때,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할 아버지를 잃는다. 이 시기에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감정 조절을 못해 곧잘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어머니나 형 또는 주위의 다른 어른들이 아버지 노릇을 해주면 극복될 수 있지만 권희로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 조세형에게는 형의 존재와 엄한 고아원 규율이 아버지 노릇을 충분히 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세형은 결코 피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아 ‘신사도둑’으로 불린 반면, 권희로는 갈등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반응을 보여 문제를 악화시켰다.

    조세형과 권희로가 아동기에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학대’였다. 조세형은 고아원에서, 권희로는 일본의 학교와 길거리에서였다. 아동 학대는 아이들에게 정서 불안과 자신감 결여, 탈출 욕구, 심한 허기, 피해 의식, 가학성을 일으킨다. 또 피난처와 휴식처로 삼을 대상에 몰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배고픔을 해결하면서 동료애도 느낄 수 있는 길거리 친구들과의 절도행위가 그 탈출구였다. 규범의식과 도덕, 죄책감 같은 것은 배울 틈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그 결과 둘 다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을 드나들며 점점 더 범죄세계와 범죄문화로 빠져들었다.

    ‘말썽꾸러기’라는 낙인

    조세형과 권희로에게는 일찍부터 ‘말썽꾸러기’ ‘골칫덩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조세형은 ‘오줌싸개’ 버릇 때문에, 권희로는 ‘조센징’이라는 사실과 참을성 없는 격한 성격 때문이었다. 권희로가 밝힌 학교와 거리에서의 낙인찍기 예다.

    “찌그러진 도시락에 들어 있는 보리밥을 본 일본 아이들이 심하게 놀리자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는데,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슬리퍼로 마구 때렸다. 맞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난한 탓에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백질은 집에서 구워먹는 돼지발이 전부였다. 돼지발을 먹으며 다가가면 어른들까지도 ‘더러운 조센징, 저리 가’ 하며 물벼락을 끼얹던 일은 영영 잊을 수 없다.”

    ‘말썽꾸러기’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들의 심리는 처음에는 ‘왜 나만’이라는 반발 심리와 함께 노력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보려 애쓰지만 낙인 찍기와 처벌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아예 자기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말썽꾸러기’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쯤 되면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생각과 함께 말썽 부리고 일탈행위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여겨 처지가 비슷한 일탈자들과 함께 어울린다. 절도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갖고 싶은 것을 손에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절도 유혹에 별 저항 없이 빠져드는 데는 이처럼 ‘자신이 일탈자라는 인식’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바로 조세형과 권희로가 일찍부터 절도죄로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을 출입하게 된 심리적 배경이다.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에서는 더 경험 많고 기술 좋은 선배 수감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로부터 전문적인 범죄수법과 함께 ‘범죄자라는 정체성’을 물려받게 되며 범죄자 세계의 말투, 행동, 수칙 등 ‘범죄 문화’에 편입되고 그 습성에 젖게 된다. 출소하면 사회는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고 차가운 시선으로 대한다.

    그래서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돌아가기가 힘들다고 느끼는 반면, 익숙해진 범죄자 세계에서는 더 나은 절도 기술로 손쉽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어 ‘범죄자 삶’이 체질화된다. 이처럼 청년기까지 조세형과 권희로의 삶은 범죄꾼으로 경찰의 감시대상 리스트에 올라 일정한 때가 되면 ‘단속’ 또는 ‘검거’되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생활이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조세형과 권희로는 각기 다른 범죄적 삶의 궤적을 그린다. 조세형은 거리생활에 익숙했고 뛰어난 몸놀림과 리더십을 발휘, 따르는 무리가 많아 폭력조직 보스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폭력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꼈다. 그가 빠진 것은 절도였다. 절도는 부잣집을 들락거리며 보석과 현금을 훔쳐 손쉽게 억제된 욕구를 충족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공’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조세형의 절도심리에 대해서는 범죄학자 머튼(Merton)의 아노미 이론이 어느 정도 설명을 제공한다. 머튼에 따르면, 세상은 사람들에게 ‘돈’ ‘명예’ ‘권력’ 같은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추구하게 만든다. 반면 이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머튼은 사람들의 반응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이러한 목표를 향해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순응형(conformity)’이다. 둘째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희망이나 욕심은 없으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법이나 규칙을 준수하는 ‘의례형(ritualism)’, 셋째는 목표를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정신병자, 부랑자,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자 같은 ‘도피형(retreatism)’, 넷째는 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좇는 히피, 사회운동가, 혁명가 같은 ‘반항형(rebellion)’, 마지막은 목표는 달성하고 싶으나 합법적인 수단 방법이 없어 불법적인 절도, 강도 같은 행동을 하는 범죄자인 ‘혁신형(innovation)’이다. 조세형이 이에 해당한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배경과 이유는 다양하다. 조세형의 경우는 불우한 환경으로 인한 애정 결핍과 배고픔이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또 고아원과 거리에서 겪는 경쟁과 야생적 삶이 성공욕구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강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손쉬운 불법 수단이 눈앞에 다가오자, 자기를 통제해서 도덕과 윤리, 법을 지키기보다는 사회 규범을 팽개치고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나 할까.

    또한 조세형의 침착하고 계획적인 수법은 그의 절도 행각이 순간적 ‘충동’이나 ‘격정’이 아닌 철저한 ‘합리적 계산’에 따른 것임을 말해 준다. 조세형은 절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쾌락과 이익 및 검거될 가능성과 그럴 경우 당할 고통과 불이익을 신중하게 저울질했다. 아울러 조세형은 검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과 수법을 개발해왔다. 몇몇 범죄심리학자들은 상습절도범들이 절도행위를 통해 성적 자극과 흥분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의 사적인 물건들을 뒤지며 야릇한 쾌감을 얻는다는 말이다. 조세형이 실제 그러한 자극과 흥분, 쾌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테러로 울분을 푼 권희로

    권희로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조세형과 달리 성공욕구가 강하지 않아 절도 기술이 발전하지도 않았다. 교도소를 드나들며 익힌 것도 노력과 학습이 필요한 절도보다는 공갈, 협박 같은 폭력에 의존하는 범죄였다. 그는 1952년에 총기불법소지와 강도죄로 복역했다. 권희로는 일본이라는 적대적 환경에 거듭되는 차별과 학대 속에 피해의식을 키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형성된 과격하고 격정적이며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성정 때문에 끊임없이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일탈과 반항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조센징’이라는 딱지와 내키지 않는 양아버지와의 삶,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따돌림당하고 공격당하는 일상은 권희로의 마음 속에 강한 욕구불만과 사회와 주위환경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키웠다. 그래서 목표를 설정하고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아무렇게나’ 살며 기분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 같다.

    학교 선생님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대하던 경찰관, 소년보호원·교도소 교도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대응도 권희로가 사회에 깊은 반감을 가지는 데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싫어하는 양아버지 성을 따라 ‘김희로’로 불려야 했다는 점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아울러 강한 거부감과 반발감을 만들었다고 판단된다.

    급기야 41세 때인 1968년 권희로는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며 그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퍼붓는 야쿠자 행동대원 2명을 총을 쏘아 살해하고 현장에서 45㎞ 떨어진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난다. 그는 결국 여관주인과 가족,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인질극 도중에 권희로는 한국인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한 경찰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등 재일동포 차별문제를 부각하려고 했다. 자신의 범행이 개인적 이유에서 저지른 이기적 범죄가 아니라 부정의에 항거하고 공공 이익을 위한 ‘항거’임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심리다. 이런 심리는 여관 주인에게 여관비 대신이라며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주는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체포 직전 혀를 깨물어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에서 당시 권희로의 심리는 ‘자포자기’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적대적 사회 속에서 그간의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어머니와 자기 핏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일본 사무라이식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

    조세형과 권희로는 자존 의식과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범죄자다. 비록 범죄행위로 이어진 인생이었지만 스스로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조세형은 도둑질로 생긴 금품을 노숙자나 걸인 같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유명해서 의적(義賊)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행동에 대해 그는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고 진술하고 있다. 홍길동이나 괴도 루팡, 쾌걸 조로 같은 소설 속의 의적과는 달리 조세형은 자신의 생존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하였으며 ‘도둑질이나 하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흥적이고 무작위적으로 금품을 뿌렸던 것이다.

    조세형이 한창 고관대작 집을 털던 1980년대는 서슬 푸른 5공 군사정권의 철권통치 치하였고 일반대중과 언론은 드러내놓고 정권을 비판하지 못한 채 불만과 반발심을 억누르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조세형이라는 특이한 도둑은 사람들의 대리만족 도구로 적합했고 언론도 ‘의적’ ‘대도’라는 용어로 포장하며 마치 억눌린 민중을 대신해 세도가들을 응징하는 영웅인 양 묘사했다.

    조세형 자신도 그런 ‘영웅 만들기’에 맞장구를 쳤다. 당대 세도가 부유층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만 골라 본인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은 귀금속과 골동품을 훔쳐 집에 쌓아두고,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다녔던 것이다. 이미 ‘생계형 절도’의 범주를 벗어났으며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심리적 공황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절도였던 것이다.

    ‘권희로 영웅 만들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반일 감정’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에 대한 집단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던 한국사회는 살인과 인질 납치극이라는 ‘테러행위’의 배경에 일본사회의 재일 한국인 차별문제가 드리워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 권희로를 마치 독립투사인 양 치켜세웠다. ‘김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제작할 정도로. 일본에 대한 항거라는 명분 앞에 절도와 사기, 협박, 공갈, 강도, 불법무기 소지 등의 범죄 경력은 ‘투쟁의 역사’로 미화되었다.

    허영과 강박관념

    이러한 분위기에서 권희로는 교도소 수감중에 일본사회의 민족 차별과 전쟁을 벌였다며 자신을 명분 있는 투사로 합리화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을 정직하고 심각하게 되돌아볼 기회를 앗아가버렸고 일본 사회와 법집행기관 눈에는 교화하거나 순화할 여지가 없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로 비칠 뿐이었다.

    15년이라는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조세형을 맞이한 사회의 시각은 ‘영웅의 부활’이었다. 전 생애를 지배했던 범죄생활을 초인적 의지와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새사람으로 태어난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방범경비시스템 회사는 조세형에게 고액의 월급을 주며 ‘자문위원’으로 모셨고 경찰행정학이 개설된 대학은 강사로 초빙했고 전국의 교회들은 줄을 이어 신앙 간증을 요청했다.

    조세형도 ‘영웅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심지어 ‘늘빛 선교회’라는 자신의 선교단체까지 설립하고 재소자와 전과자, 불우한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여 새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떠들썩하게 내놓았다. 조세형의 소영웅심은 일본 땅에까지 뻗쳐 ‘일본의 노숙자들을 구원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자주 일본을 방문했다.

    권희로 역시 태극기와 모친의 유해를 안고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국했고 언론과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그의 영웅심을 부추겼다. 청소년을 비롯한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며 ‘인생의 지도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또 불우청소년 돕기와 재한 일본여인 거주 마을에 성금을 기부하고 “여생을 청소년을 선도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바치겠다”고 큰소리치며, 마치 영웅이나 된 듯 세상에 화젯거리를 뿌렸다.

    다 좋은 일이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가뜩이나 전과자에 대한 냉대가 심한 우리 사회에서 모처럼 중죄를 저질렀던 전과자에게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데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

    문제는 조세형과 권희로의 영웅심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영웅심은 불우하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일생을 살며 범죄와 수감생활로 이어진 삶에서 오는 피해의식을 보상받고자 하는 의식이었고 무의식적 가식행위였다. 세상이 무책임하게 던져준 호기심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인 동시에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오랜 수감생활 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꿈꾸던 밝은 세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이들은 아직 전혀 다른 환경인 일반사회에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것이다. 걷지도 못하는 병아리가 날려고 했다고나 할까?

    언제나 어둠 속에서 쫓기고 의심받는 삶을 살던 조세형과 권희로가 밝은 세상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강의를 하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실로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엄청난 환경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가끔씩 갑자기 떼돈을 번 졸부나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마약에 빠지고 음주운전 사고를 내거나 문란한 성생활 끝에 회복할 수 없는 벼랑으로 추락하는 예를 보아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이다. 주위에서는 그들을 치켜세우며 세상을 다 얻은 사람으로 대접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실감할 수 없고 갑자기 생긴 돈과 명예가 낯설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괴리감은 곧 외로움과 고독감으로 바뀌고, 남들이 보는 자신과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신 사이의 이질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술, 마약,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조세형과 권희로 역시 구체적인 부분은 차이가 있지만 갑작스레 환경이 변화하자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겪은 것 같다. 조세형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엄상익 변호사는 최근 조세형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들떠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조금은 흥분된 상태에서, 선교 활동과 자선 및 강연으로 생긴 ‘스타가 된 듯한’ 느낌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권희로 역시 주변 여인들이 원인을 제공한 탓도 있었지만 갑자기 달라진 현실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들뜬 상태였던 것 같다. 이러한 환경 부적응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추김과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전문가의 심리상담과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관찰과 배려다.

    충격적 경험 스트레스 증후군(PTSD)

    결국 조세형은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일본 땅에서 다시 절도를 하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비참하게 체포되었고, 권희로는 예의 그 과격하고 폭력적인 성정을 억누르지 못해 폭력범죄자로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이번에는 ‘의로운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명분조차 서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게 치정에 얽혀 흉기를 휘둘렀다. 어떤 문제가 원인이었든지간에 이들이 다시 특유의 범죄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범죄자는 역시 범죄자야”라며 평소 지론인 ‘인간 본성 변화 불가론’이 옳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른 이들은 모처럼 마음을 잡고 새 삶을 살려던 이들을 다시 범죄의 나락으로 내몬 주위 사람들을 탓하고 있는 듯 하다. 조세형과 권희로가 여느 사람과는 다른 범죄적 유전인자를 타고났는지, 환경이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범죄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여간 사회가 새로운 환경과 기회를 마련해준 마당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조심스레 ‘충격적 경험에 따른 스트레스 증후군(PTSD)’의 가능성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원래 PTSD는 가정폭력, 아동학대에 오랫동안 시달리거나 대형사고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정신·심리적 질환으로 규정한 데에서 비롯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980년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부인이 남편이 잠든 사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PTSD로 인한 순간적 정신이상(temporary insanity)’상태임을 인정, 살인 책임을 면탈해 준 사례가 있다.

    조세형과 권희로가 오랜 수감 생활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뒤 비정상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책임성이 감면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우리 나라 법정에서는 PTSD에 의한 책임성 감면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조세형과 권희로가 주는 교훈

    “조세형과 권희로에게 범죄 책임이 있다. 사회 일각의 잘못된 영웅 만들기와 소영웅주의에 들떠 비정상적 행동을 했다.”

    이런 비난은 충분히 한 것 같다. 이제 그들의 범죄심리 형성에 일조한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먼저, “역시 사람의 본성은 어쩔 수 없어”라며 전과자나 고아, 일탈 청소년을 냉대하고 차별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상처가 크고 깊고 오래되었을수록 장기간의 치료와 섭생, 세심한 보호관찰이 필요하다. 언뜻 나은 것 같다고 약을 끊고 술을 마시면 상처는 이내 덧나고 만다. 60∼70년 평생 뒤틀리고 패고 덧난 조세형과 권희로의 마음과 심리상태를 한순간의 비행기 태우기와 돈 뭉치로 치료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마음의 병자들을 새로운 지도자나 스타인 것처럼 부추기고 떠밀었던 우리 사회의 얄팍한 상혼은 이 기회에 적나라하게 들추고 치료해야 한다. 또한 ‘이지메’와 ‘왕따’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키우는 일본과 한국 사회는 조세형과 권희로의 삶을 통해 새로이 깨달아야 한다. 나만,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부메랑처럼 범죄 피해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한 인간의 심리는 그 인간이 성장하며 만난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담은 거울이다. 우리가 주변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고 불행한 이에게 따뜻한 손 내밀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나 자식들이 그 어둠과 불행의 파편에 맞아 괴로움을 당할 확률은 높아만 가는 것이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제2, 제3의 조세형과 권희로가 자라고 있음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남의 핏줄’을 싫어해서 고아 수출 1위, 한민족의 우월성을 지독히도 자랑하고 싶어 동남아인에겐 ‘치사한 외국인 차별국’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집단 따돌림이 계속되고, 보통 사람은 심리치료사나 심리상담 전문가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교정시설은 폭력과 가혹행위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전과자들에겐 취업 문이 꽉 닫혀 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나 전과자를 수용하고 보호하고 순화하고 관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상이다. 지금, 조세형과 권희로는 왜 다시 차가운 구치소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돌아왔는지 머리를 싸매고 기억을 되씹으며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침묵의 외침이다.

    “제발 다시는 나 같은 사람 만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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