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총사령관 최태원, 작전참모 최재원, 돌격대장 최창원

SK그룹 2세 경영인 3형제의 경쟁력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5-04-29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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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가 뜨고 있다. 외환위기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잇따라 대형 신규사업을 따냈다.
    •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제휴로 외자 유치도 활발하다. 이런 활기의 배경에 2세 경영인 3형제가 있다.
    “SK그룹은 자식 복이 많은 기업이다. 경영에 나선 2세들이 다 똑똑하고 일 좋아하고 사이도 좋은데다, 경영에 별취미가 없는 2세들도 사고 치지 않고 자기 본분을 지키니….”

    한 재계 인사의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경영권이 창업주에서 한 단계만 내려와도 갖은 분란과 갈등을 빚어내곤 하던 우리 재벌사에서 보면 ‘1대 오너→1.5대 오너→전문경영인 및 2대 오너 연합’으로 이어지는 SK의 경영권 이양·분산작업은 특이하다고 할 만큼 매끄럽게 진행됐다.

    SK는 비교적 일찍 구조조정에 착수한 덕분에 외환위기 파도에 덜 흔들렸고, 그 여력을 모아 지난해 말 IMT-2000 사업권을 따낸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민영화된 대한송유관공사 경영권을 확보했다. 또한 그룹의 대들보인 SK텔레콤과 SK(주)는 국내 이동통신시장과 정유시장 점유율에서 각각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에만 1조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SK가 이렇게 순풍에 돛 단 듯 사세를 키운 것도 경영권을 둘러싼 패밀리 간의 소모전을 치르지 않아 기업의 집중력과 효율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 주역은 손길승(孫吉丞·60) 그룹 회장과, 최태원(崔泰源·41) SK(주) 회장·최재원(崔再源·38) SK텔레콤 부사장·최창원(崔昌源·37) SK글로벌 부사장 ‘삼각편대’로 구성된 전문경영인·오너 패밀리 연합군이었다.

    최근에는 특히 이들 최씨 3형제의 부상(浮上)이 눈길을 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말과 올초에 걸쳐 그룹 지주회사격인 SK(주)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게 됐고, 최재원·최창원 부사장도 지난해 12월 나란히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 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랐다. 재계는 SK그룹이 창업 50주년을 맞는 2003년 이후를 내다보고 경영능력이 웬만큼 검증된 이들 세 ‘패밀리 CEO’를 전진 배치한 것으로 본다.



    보스기질 강한 최신원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사장은 故최종현(崔鍾賢·1929년생) 전 SK그룹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고, 최창원 부사장은 최 전회장의 형인 故최종건(崔鍾建·1926년생) 그룹 창업주의 3남.

    1953년 선경직물을 인수해 SK그룹의 문을 연 최종건 창업주가 73년 세상을 뜨자 형을 도와 회사 살림을 꾸려오던 최 전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최 전회장은 이때부터 형이 남긴 3남4녀와 자신의 2남1녀를 합한 5남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다. 조카들도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평소 “내 아들은 5명”이라며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워야 한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경영능력이 있는 2세는 전문경영인으로 키우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주주 자격으로 경영을 측면에서 돕도록 한다는 게 최 전회장의 후계구도였다. 그는 세 조카와 두 아들이 각자 공부를 마치는 대로 계열사를 돌며 경영수업을 받게 했다. 또한 사장단 회의와는 별도로 이들 5명과 한 달에 한 차례씩 가족회의를 갖고 그룹의 주요 사안을 토론했다.

    다섯 형제 중 장자인 故최윤원(崔胤源·1950년생)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종건 창업주의 장남. 우석대와 미국 엘런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73년 선경(주) 뉴욕지사에 입사했다. 선경합섬 이사를 거쳐 88년 선경인더스트리(98년 ‘SK케미칼’로 사명 변경) 부사장에 올랐으나,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에서 손을 떼고 93년 부회장으로 물러났다. 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경영보다는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룹내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고, 포용력 있는 장형으로 형제, 사촌 간의 화목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해 8월 별세했다.

    최종건 창업주의 차남인 최신원(崔信源·49) SKC 회장은 경희대 법학과와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81년 선경인더스트리 대리로 입사했다. 선경인더스트리 이사, 상무를 거쳐 94년 선경(주) 해외관리부문 담당전무로 승진했다. 98년에는 SK유통 부회장을 맡았고, 99년 12월 SKC 회장에 취임했다. 형과 비슷한 성격인 그도 전문경영인들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맡겼고, 선친이 사망 직전 인수한 쉐라톤 워커힐호텔에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사내를 돌며 직원들의 안부를 묻거나 신상을 챙기는 등 격의없이 지낸다. 해외출장을 가는 직원이 있으면 지갑에서 달러화를 꺼내 주는 다정한 성품이지만 보스기질도 강하다고 한다. 형이 사망한 후 최씨 일가의 가장 노릇을 하며 가족사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최윤원 전회장이 사망한 데다 최신원 회장도 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라 관심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최태원, 재원, 창원 세 사람에게 쏠리게 됐다.

    흩어지면 죽는다

    98년 8월 최종현 전회장이 별세하자 5형제를 포함한 가족들은 후계구도를 놓고 매일밤 논의를 거듭했다. 낮에는 조객을 맞고 밤에는 최 전회장의 시신을 앞에 두고 머리를 맞댔다. 한때는 양 집안의 장자인 최윤원 전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밤 이들은 오너 패밀리가 가진 지분을 최태원 회장에게 몰아줘 그를 주주권 대표에 앉히고, 그룹 회장에는 전문경영인을 앉히자는 결론에 이른다. 최종현 전회장의 지분은 최태원 회장(당시 SK(주) 부사장)에게 승계됐고, 동생인 최재원 부사장(당시 SKC 상무)과 기원씨(女)는 상속포기각서를 썼다. 그룹 회장에는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던 손길승 부회장이 추대됐다. 이로써 주주권을 쥔 패밀리와 경영권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이 파트너십을 이루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기업구조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 오너 가족들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2세 경영인들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얼마 되지 않아 ‘흩어지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종현 전회장은 생전에 아들 이름으로 돌려놓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폐암 선고를 받고도 상속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 이 때문에 부친의 지분을 한꺼번에 물려받게 된 최태원 회장은 무려 7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야 했다. 그나마 주가가 바닥을 치던 98년 8월이라 그 정도에 그쳤지, 그후 주가가 고점에 왔을 때 상속을 받았다면 2000억 원대의 세금을 낼 뻔 했다.

    재산 분쟁이 없었던 또다른 이유는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을 욕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세 형제 중 가장 연장자이자 이미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최태원 회장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 특히 최윤원 전회장이 앞장서서 10년 연하인 사촌동생이 가족대표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최태원 회장은 91년 그룹 미주 경영기획실에서 경영수업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SK상사 사업개발팀장(이사), 상무를 거치면서 신규사업과 기획업무를 맡아 그룹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유학시절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던 정보통신사업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를 꾸준히 공부했다고 한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에는 아예 실리콘밸리의 한 정보통신회사에서 일도 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통신을 SK의 주력사업으로 설정하고 제2 이동통신사업 수주전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SK텔레콤을 인수한 뒤에는 SK상사와 SK(주)에 몸담고서도 그룹 정보통신사업을 직접 챙겼다.

    부친 타계 직후인 98년 9월 SK(주) 회장에 취임한 그는 그룹 구조조정은 물론, 외환위기 이후 5대 그룹 사이의 사업 구조조정 협상에도 관여했다. 또한 이 무렵부터 주력 계열사의 핵심 브레인을 자신의 인맥으로 구축했다.

    최태원 회장은 손길승 회장을 깍듯이 예우하면서 자신을 낮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행여 손회장에게 누가 될까봐 언론 접촉도 극도로 기피한다. 손회장은 최회장 형제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졸업할 때면 함께 손잡고 가서 아버지 노릇을 한 사람이다. 최종현 전회장이 그런 가족행사를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비서실장이던 손회장이 집안 일까지 도맡았던 것. 형제들이 공부를 마치고 경영수업을 받을 때 손회장은 지엄한 스승이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패밀리와 전문경영인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심코 내뱉는 말을 새겨들으면 그의 그룹내 위상이나 미국 유학파 경영인다운 기업관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SK 계열사들이 외국 기업들도 탐을 내 언제라도 매각이 가능할 정도의 수익모델을 갖추도록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계열사나 자산을 팔 수 있다는 말은 한 세대 전이라면 오너라도 입밖에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5월에는 한 초청강연에서 “총수가 계열사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스템은 경쟁력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며 이른바 ‘재벌소멸론’을 펴 화제가 됐다. 사원과의 대화 시간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경영자가 나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견 겸양의 표현 같지만 경영자로서 넘치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SK의 한 임원은 “실무자에게 재량권을 주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은 꼭 챙기고 토론을 벌여 임직원을 설득하는 최회장의 업무 스타일은 ‘경영 디스커션이 내 취미’라고 했던 최종현 전회장과 흡사하다”며 “계획서를 올리면 대충대충 보는 것 같은데도 미진한 부분을 금방 짚어낸다”고 말한다. 다만 미국 기업식의 생산성과 효율을 너무 강조해 거리감을 갖는 임원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SK(주)가 99.7%의 지분을 소유한 SK에너지판매는 SK상사와 0.52대 1의 비율로 합병했다. 이로써 SK(주)는 SK상사 주식 38%를 확보했다. 그 결과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SK상사는 SK(주)의 자회사가 됐다. SK상사는 SK에너지판매, SK유통과 합병, SK글로벌로 거듭났다. 이에 따라 SK(주)는 SK글로벌 지분 39.16%, SK텔레콤 지분 25.7% 등을 확보, 그룹을 지배하게 됐다.

    이같은 지분정리는 최종현 전회장의 2세들에게는 SK(주)와 SK텔레콤을, 최종건 전회장 2세들에겐 SK글로벌을 할양하는 재산분할로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SK(주)와 SK텔레콤은 최종건 전회장 사후에 최종현 전회장이 인수해 키운 기업이다.

    그러나 SK 관계자는 “SK글로벌은 주식 수가 얼마 되지 않아 특정세력이 M&A를 시도할 경우 경영권 방어가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래서 주식 수가 많은 SK(주)를 지주회사로 만들었을 뿐”이라며 ‘분할통치설’을 일축했다. 더욱이 SK(주)와 SK텔레콤은 전문분야로, SK글로벌은 판매분야로 키워 전문분야의 아웃소싱과 마케팅을 판매분야에서 하도록 만드는 게 그룹의 구상이므로 두 축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최태원 회장이 49%의 지분을 보유한 SKC&C가 SK(주) 무보증 전환사채에 대한 전환청구권을 행사, SK(주) 지분 9.3%를 확보함으로써 최회장의 개인회사나 다를 바 없는 SKC&C가 그룹 지주회사인 SK(주)의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지난 1월에는 SK글로벌이 SKC&C에 SK(주) 주식 269만주를 매각, 지분율은 10.84%로 높아졌다. 최회장은 SKC&C를 통해 SK(주), SK텔레콤 등 43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은 고려대 물리학과 재학중 도미, 브라운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에서 재료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에서 MBA를 마쳤으며,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 야마이치(山一)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한 이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파이낸싱의 귀재

    “기초 학문을 하기 위해 물리학을 선택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이건 천재들이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료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전자공학, 기계공학, 고분자공학 등의 토대가 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학위를 딴 후 일을 해보고 싶어서 선경 뉴욕지사 경영기획실에 들어갔다. 그곳 직원들은 대개 내 또래였는데, 다들 MBA 출신이었다. 그러니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특히 파이낸스쪽은 정말 캄캄했다. 2년쯤 일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MBA를 하러 갔다. 파이낸스에서도 첨단분야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 자본시장이라고 하기에 그쪽 공부를 많이 했다. 그래서 학위를 받고 나서도 자본시장 경험을 쌓으려고 야마이치에 들어갔다. 채권 세일즈, 주식거래, 정보수집 등 여러 업무를 맡으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최태원·재원 형제가 학부에서 과학을 전공한 것은 선친의 바람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종현 전회장은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따라서 경제를 잘 알려면 ‘理’, 즉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전회장도 미국 위스콘신대 화학과를 나온 후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최 전회장이 직접 집필, SK그룹의 ‘경국대전’으로 일컬어지는 SKMS(SK Mana- gement System)도 모든 임직원에게 고교 수준 이상의 물리·화학·생물 실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최재원 부사장은 94년 SKC 사업개발팀장으로 출발, 96년 SKC해외사업담당 이사로 그룹 역점사업인 미주 필름공장 건설 등 신규사업에 참여했고, 99년 SKC 구조조정본부 전무를 거쳐 12월 SK텔레콤으로 옮겼다. 그후 지난해 12월까지 IMT-2000 사업추진위원회 상근위원 전무로 사업권 확보전을 주도했고, 사업권을 따낸 뒤 전략지원부문장(부사장)으로 승진, SK텔레콤의 전략기획실, 재무관리실, 법무실, IR 등을 총괄하며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

    최부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MBA 시절에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데다 월 스트리트 경험도 있어 특히 숫자에 밝다고 한다. 그의 책상 옆에는 미국 일본 유럽 홍콩 등지의 환율정보와 국내 주식시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무선수신 전광판이 설치돼 있어 재무통(通)다운 면모를 읽게 한다. 그는 “경영자는 주식 가치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환율 또한 계열사 경영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요소기 때문에 계속 모니터링해야 한다. 자꾸 쳐다보면 주가와 환율이 왜 오르고 내리는지 궁금해지고, 그래서 또 공부하고 연구하게 된다”고 했다. 선진 파이낸싱 기법에 정통한 그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서 이 분야의 지식을 활용, 협상과 거래를 유리하게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할 때 활용한 스와핑(주식 맞교환) 방식이 그 예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가진 포항제철. 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7000억 원 이상이 필요했다. 현금을 주고 사면 엄청난 부채를 떠안는 것은 물론 주가도 떨어질 게 뻔했다.

    하지만 SK는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절묘한 방식을 생각해냈다. 이로써 SK텔레콤은 큰돈 들이지 않고 이동통신시장 가입자 1300만 명을 확보, 시장점유율에서 확고한 1위에 오르게 됐을 뿐 아니라 포철 같은 초우량 기업이 SK텔레콤의 3대 주주가 됐다는 호재 덕분에 발표 직후 주가가 280만 원에서 450만 원까지 줄기차게 뛰어올라 꿩 먹고 알 먹는 장사를 했다.

    최근 SK텔레콤이 시도하고 있는 외자유치 기법도 눈여겨볼 만하다. SK텔레콤은 지분 매각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의 NTT도코모 등과 오랫동안 전략적 제휴 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매각규모와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자 SK측은 지난 1월 외국계 투자자문회사인 시그넘나인에 SK텔레콤 지분 14.5%를 매각했다. 하지만 지분은 서류상에서만 소유권이 바뀌었을 뿐 매각대금은 오가지 않았다. 시그넘나인은 3월말까지 이 지분을 전략적 제휴 업체에 팔고 매각대금을 SK측에 지불해야 한다. 시그넘나인은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3월말까지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

    SK가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텔레콤 지분을 시장에 매각대상으로 내놓아 공개경쟁에 붙임으로써 NTT도코모에 대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또한 조세 면제지역(tax haven)인 케이먼군도에 등록돼 있는 시그넘나인을 매각창구로 활용할 경우 절세의 이점도 있다. 최부사장이 SK텔레콤의 해외제휴전략을 전담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SKC&C를 지주회사로 만들어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안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세 형제 모두 공개적인 자리나 언론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최재원 부사장이 상대적으로 가장 활발하고 붙임성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룹의 미래가 달린 IMT-2000 사업권 유치전을 벌이며 각계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면서 사교성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출입기자들과 골프모임 때는 라운딩이 끝난 후 홍보실 임직원을 제쳐놓고 직접 폭탄주를 돌리며 분위기를 잡아 눈길을 끌었다는 것.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면서도 민감한 사안은 용의주도하게 피해가 ‘나이에 비해 노회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는 사내에서도 부장급에서 직접 보고토록 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 젊은 실무자들과도 얘기가 잘 통한다. 한때 체중이 101kg나 되는 거구였으나 1년 남짓 만에 20kg을 감량한 ‘독종’의 면모도 있다.

    최종건 전회장의 막내아들인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MBA를 받았다. 공부도 잘하고 경영능력은 물론 외모까지 선친을 빼닮아 집안에선 일찌감치 경영자감으로 기대를 모았다. 최종현 전회장도 그를 총애해 자주 대화를 나눴다는 것. 그는 선친이 47세 때 폐암으로 타계한 데 이어 숙부인 최종현 전회장과 장형 최윤원 전회장도 폐암과 후두암으로 일찍 세상을 뜬 데 자극받아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94년 그룹 경영기획실 과장으로 입사, 이듬해 선경인더스트리 재무팀장으로 옮겼으며, 96년 기획관리실장(이사), 98년 SK상사 기획조정실장(상무), 99년 SK글로벌 기획조정실장(전무)을 거치며 기획라인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12월 SK글로벌 상사부문 기획조정실장(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구조조정의 리베로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 인력의 3분의 1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난 여론이 비등했으나 60개월치 봉급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명퇴금을 지급, 별 무리없이 마무리지었다. 당시는 호황이었는데도 그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감지, 이를 관철시켰고 덕분에 명퇴금을 후하게 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채 2년도 못돼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그의 선견이 빛을 발한 것은 물론이다.

    최부사장은 SK케미칼에 이어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바람을 일으켰다. 98년 그가 SK상사로 온다는 소문이 들리자 상사 임직원들은 “칼잡이가 온다”며 떨었다고 한다.

    이런 바람은 다른 계열사로도 확산돼 SKC의 경우 3600명에 달하던 직원이 절반인 1800명으로 줄었는데, 연 매출액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조직의 효율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최창원 부사장은 SK건설의 요청에 따라 한동안 건설로 출근하며 다운사이징 컨설턴트를 자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의 리베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외환위기 이전에 구조조정을 거의 완료한 덕분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저돌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그는 특정 업무를 위해 특정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할 경우 사내에 적당한 인물이 없으면 즉시 아웃소싱한다. 96∼97년 기획관리실장으로 사업전략과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짤 때도 외부의 전문 컨설턴트 등에게 과감하게 용역을 줬으며, 당시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 인력을 스카우트해 팀을 구성했다. 최부사장은 이때 스카우트한 유능한 컨설턴트들과 사내 우수인력으로 구성된 ‘턴어라운드팀’을 중심으로 SK글로벌뿐 아니라 다른 계열 기업들의 구체적인 사업 컨설팅과 조직정비, 업무분담까지 맡고 있다.

    SK 일각에서는 최창원 부사장이 최재원 부사장보다 입지를 더 공고히 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비록 최재원 부사장이 알짜 기업인 SK텔레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SK텔레콤의 경우 그룹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회사다 보니 손길승 회장, 최태원 회장, 고종사촌형인 표문수(表文洙·48) SK텔레콤 사장 등 경영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 최부사장이 자기 색깔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에 비해 최창원 부사장은 SK글로벌의 유통, 상사, 에너지판매 부문을 비롯, SK해운, SK건설, SK케미칼 등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다툼 소지 적어

    세 형제의 우애는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차가 많지 않아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렸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유학을 하고 경영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토론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셋 다 중요한 포스트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의견을 나눴다. 당시 3형제는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무렵부터 호텔 방에 처박혀 자정이 넘도록 회의를 하는 생활을 1년 이상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세 사람 간에 재산을 둘러싼 알력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소지가 적다는 게 SK 안팎의 시각이다. SK 관계자는 “현대처럼 형제들이 각자 개인 지분을 갖고 있으면 재산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SK 3형제의 경우 자기들이 지분을 몰아준 최태원 회장말고는 개인 지분이 거의 없어 싸우려야 싸울 꼬투리가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세 사람 모두 ‘패밀리’ 보다는 ‘CEO’로서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의욕이 강하다는 것도 알력의 소지를 줄이는 요인이라고 한다.

    국내 상장기업 주가가 바닥에 가까운데다 국내 기업의 자본력이 미미한 현실에 이처럼 패밀리 개인 지분율까지 낮을 경우 적대적 M&A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게 SK의 고민이다. 그래서 패밀리 중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것을 패밀리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제 살 깎아먹는 재산다툼을 벌일 가능성은 없다는 것.

    패밀리 CEO들 사이에는 두 가지 알력이 있을 수 있다. 재산을 둘러싼 패밀리로서의 알력이 그 하나라면, ‘자리’를 둘러싼 경쟁의식이 야기하는 CEO로서의 알력이 그 하나다. SK 3형제 간에 후자의 알력은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재원 부사장이 직접 들려줬다.

    “형제들이 하나의 포지션을 놓고 똑같은 목표를 추구한다면 경쟁과 알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셋은 임무를 명확하게 분담하고 있다. 가령 나는 프로젝트 위주로 일하는 데 비해 창원이는 고장난 곳을 뜯어고치는 게 주임무다. 창원이가 내게 와서 자기 일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나는 ‘그렇겠지’ 하는 정도의 감만 온다. 내가 창원이에게 내 일에 대해 들려주면 창원이도 ‘쉬운 일 같지 않네’ 정도로만 반응한다. 이렇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경쟁의식을 갖겠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걸 가져볼 겨를도 없었다.”

    “내가 주식 없다고 무시당합니까?”

    2월14일 저녁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당초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최부사장은 “계속되는 회의 때문에 답변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다”며, 회의 중간에 잠시 대화를 나눌 짬을 냈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 입사 후 스태프와 라인을 두루 거치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관여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보람과 성취감이 컸던 사업은 무엇입니까?

    “입사 초기인 96년에 시작된 SKC 폴리에스테르 필름 미국공장 건설사업이 먼저 떠오릅니다. 필름을 만드는 기본 원리는 원자재를 늘리고 펴는 것이라 제 전공(재료공학)을 써먹을 수 있어 좋았고, 건설쪽으로는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하느라 16개 주 120여 곳의 후보지를 돌아다니며 협상을 거듭하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았어요.

    결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의 50만 평 부지를 단돈 1달러에 사들였죠. 게다가 주정부가 기본 설비는 물론 도로까지 깔아주기로 했어요. 그런 조건 역시 끈질긴 협상 끝에 얻어냈던 겁니다. 공장에 들여놓을 기계 구매협상도 독일과 일본으로 날아가 직접 했는데, 기계값을 절반 이상 깎기도 했어요. 그때의 경험이 뒷날 타이거펀드와 SK텔레콤 지분매입 협상을 할 때나 외국 통신업체와 전략적 제휴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IMT-2000 사업권 유치전을 주도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그룹내 동기식-비동기식 논쟁에서 비동기식으로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셨다고 하던데요.

    “비동기식으로 간 것은 막판에 누군가가 독단으로 상황을 뒤집은 게 아니라 토의를 거듭한 끝에 컨센서스를 얻어낸 결과입니다. 그룹회장과 SK텔레콤 임원, 네트워크와 R&D부문에 이르기까지 다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힘이 받쳐지질 않아요. 사업권 유치전에서 제 역할은 미미했습니다. 내부 논의를 코디네이션하고, 웃분들이 스케줄 때문에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일을 대신 처리한 정도였습니다.”

    IMT-2000 자신있다

    ━IMT-2000 사업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 데 비해 수익성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이 때문에 내년 5월로 예정된 서비스 실시가 연기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옵니다. 예정대로 서비스에 들어갈 경우 조기에 수익을 창출할 자신이 있습니까?

    “IMT-2000의 궤도진입 여부는 경기(景氣), 단말기 보조금제 등 여러 변수에 달렸지만, 핵심은 기술개발입니다. 이건 저희 혼자서 할 수 없고 제조업체들과 힘을 합쳐야 되는 일입니다. 저희가 CDMA를 개발할 때 밥 먹듯이 밤을 지샜는데, 그때 같은 각오와 노력만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정보통신 시장 여건이 당시와는 많이 다르지만, 기술개발을 앞당길수록 수익성도 커집니다. 기술이 개발되는 만큼 주파수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그래서 더 많은 업체들이 기술개발에 매달리면 가격도 낮출 수 있어 가입자도 늘게 됩니다. CDMA를 처음 깔 때만 해도 ‘과연 이게 돈이 되는 사업일까’ ‘아날로그면 됐지, 디지털은 무슨 디지털이야’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이렇게 보면 IMT-2000에서도 승산은 충분합니다. 다만 예정된 서비스 스케줄을 맞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답하기가 어려운데, 일정을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손해를 보면서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초기에 손해를 좀 보더라도 기술개발만 잘 돼간다면 미래사업으로 여기고 밀어붙이겠습니다.”

    ━SK텔레콤 지분 매각을 통한 NTT도코모와의 초대형 전략적 제휴가 임박했다고 들었습니다.

    “딜(deal)을 추진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와 하느냐, 언제 하느냐,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이냐는 솔직히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딜이란 것은 안 될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성사되기도 하고, 잘 되다가도 마지막에 서명하면서 사소한 문제 하나 때문에 무산되기도 하거든요. 현재로선 제휴사 후보가 두 개 정도로 압축됐다는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와 하든 글로벌한 제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동통신에서 국경을 초월한 로밍 서비스는 이제 필수거든요. 어느 나라에 가든 휴대폰 하나로 음성통신은 물론, 한국 뉴스도 실시간으로 보고, 신용카드처럼 지불수단으로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로밍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왕이면 큰 회사와 손을 잡는 게 유리하죠.

    로밍이 잘 돼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업체 간 기술 교류도 늘어납니다. 저희가 IMT-2000 유치전 때 비동기를 고수한 것도 전세계에서 80%가 이 방식을 채택해 광범위한 로밍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로컬 비즈니스에 만족하면 당장은 마음 편할지 몰라도 성장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조건이 잘 맞아야겠지만 제 손으로 꼭 제휴를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지식’과 ‘주식’ 사이

    ━패밀리 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며,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어떤 것입니까?

    “대주주인 패밀리로서 할 일과 경영인으로서 맡은 포지션에서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그게 패밀리의 위치에서 하는 것인지, 경영자의 위치에서 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해야 돼요. 가령 제가 패밀리로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으면 언제라도 손길승 회장을 찾아 뵙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제 일과 관련된 것은 부하직원으로서 반드시 정식 절차를 밟고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역할에 따라 권한과 책임이 다르니까요.

    그렇게 해야 전문경영인들도 일하기가 편해요. 패밀리로서 저는 저보다 경험과 나이가 많은 전문경영인들을 평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분들께 SK가 10년, 20년 후엔 이렇게 저렇게 돼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영인으로서 맡은 일에 대해서는 그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야단도 많이 맞아요. 제가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분들이 얘기를 잘 해주겠어요? MBA 시절까지 쳐도 제 커리어는 10년밖에 안 됩니다. 10년 만에 부사장에 오른 것은 지나치게 빠른 거죠. 너무 빨리 올라왔으니만큼 놓친 것도 많았을 겁니다. 늘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선친께서 세상을 뜨신 후 가족회의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기로 하고 스스로는 상속포기각서를 쓰셨습니다. 그런 결정에 이를 때까지 심적 갈등은 없었습니까? 그 후에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선친께선 늘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지식은 스스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니 이걸 어떻게 습득하고 사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셨죠. 지식을 가졌다는 것은 실력을 갖췄다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엔 실력만 있으면 어디 가도 고개 숙이고 살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겁니다. 저희 형제들은 다들 그렇게 교육받았고 또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주식 몇푼이 대수가 아니죠. 사실 저 같은 사람은 주식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주식이 없다고 남들에게 무시당할 것도 아니고, 주식이 생긴다고 갑자기 집을 바꾸고 더 좋은 차를 탈 것도 아니잖습니까.”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부사장을 어떤 경영인으로 평가합니까?

    “최태원 회장은 비전이 있고 매우 창의적인 경영인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내는가 싶을 때가 자주 있어요. 그건 똑같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다 보면 압니다. ‘그 사람은 위에, 나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니 그렇겠지’ 하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형제니까 더러 비슷한 레벨에서 생각해보거든요. 그러면 정말 놀라울 때가 있어요. 이건 큰 장점이죠. 그러니 저하고는 벌써 맡은 일이 다르지 않습니까.

    최창원 부사장은 궂은 일을 아무 불평없이 해내는 사람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저돌적이죠. 일에는 제가 주로 한 것처럼 빛이 잘 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최부사장이 한 일처럼 성과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있어요. 문제가 발생한 회사에 가서 조직을 뜯어고치는 것은 패밀리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형제 사이라도 ‘네가 가서 좀 수습해라’고 얘기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창원이는 스스로 그런 일을 찾아가서 해결합니다. 동생이지만 존경스러워요.”

    “패밀리 CEO의 금기는 작은 성공에 도취하는 것”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인터뷰 질문지를 받은 직후 미국 출장을 떠난 최부사장은 비행기 안에서 꼼꼼하게 답변서를 작성해 e메일로 보내줬다. 최창원 부사장이 인터뷰에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경영인으로는 드물게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최종현 전회장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최 전회장께선 ‘경영의 요체는 사람과 숫자니 대학시절에는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공부하는 학문을 하라’고 권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혜안이셨어요. 심리학을 공부한 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경영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실천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 실천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마음을 살펴 읽고, 생각을 함께 나누고, 그래서 자발적인 실천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대학 다닐 때 사회과학을 공부한 것이 커다란 이점이 될 수밖에요.”

    ━94년 SK그룹에 입사한 이래 줄곧 기획라인에서 근무하셨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무엇입니까?

    “기획업무의 핵심은 전사적(全社的) 전략을 세우고 구체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보좌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헬리콥터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기획파트는 높이 올라가서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능력과,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면서 전략적 시각과 문제해결 기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메커니즘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답은 조직 안에 있다

    ━그룹에서 ‘구조조정 리베로’ ‘다운사이징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들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공·사기업을 불문하고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조조정=감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구조조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요?

    “아직은 제가 그런 평가를 들을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전문경영인 사장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기업의 주요 구조는 사업구조, 조직역량, 조직시스템, 인력자원이라고 봅니다. 대개는 사업구조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기업이 어려워지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몇단계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첫째, 기업이 처한 환경과 자기 실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하고, 둘째, 지향해야 할 비전의 공유와 그 실천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셋째 단계에선 기존 사업에서 긴축경영으로 수익성을 높여야 합니다.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업무과정 재설계)를 통한 비용절감, 인력감축, 수익성 없는 사업의 축소 또는 철수 등을 그 방안으로 들 수 있겠죠. 넷째로는 기업 인프라와 기업문화를 혁신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다음 과제는 신규 사업을 성공적으로 파종(seeding)해 성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제에 대한 답이 대부분 조직 안에 있고, 그것을 찾아낼 역량도 내부에 있다는 것을 경영자 스스로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SK그룹이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만, SK텔레콤과 SK(주) 이외의 ‘전통업종’ 계열사들은 경영실적이나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입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과거부터 영위해오던 사업구조의 매력이 떨어져 부가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저희 그룹의 대응책은 우선 긴축경영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그 다음에는 사업을 하면서 생긴 무형자산을 활용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조직역량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현재 배수의 진을 치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SK글로벌은 지난해에 상사와 유통, 에너지판매를 포괄하는 종합상사로 탈바꿈했습니다. SK글로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기업모델과 수익구조는 어떤 것입니까?

    “과거 종합상사의 가치창출 시스템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이용, 상품을 이곳저곳으로 옮겨서 수익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글로벌리제이션이 가속화하면서 그런 가치가 빛을 잃고 있어요. 하지만 상사가 커버하고 있는 가치창출 시스템에 지식과 네트워크를 결합, 새로운 서비스 공급체계를 주도한다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룹내의 물리적 마케팅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작업부터 서둘렀고, 회사를 지식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패는 지식과 네트워크에 달려 있습니다. SK글로벌이 지향하는 모델도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지주회사입니다. 여러 사업부문을 진입과 퇴출이 용이한 구조로 바꾸고, 그에 필요한 조직력을 강화하려 합니다.”

    장점은 ‘학습능력’

    ━경영인으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한다면?

    “저는 별달리 특이한 능력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좋은 점을 잘 따라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 즉 ‘학습능력’이 비교적 좋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듯합니다. 단점은 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할 직관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이를 보완해 가겠습니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사장을 경영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합니까.

    “두 분과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습니다. 구슬치기며 딱지치기 하면서 같이 놀던 게 엊그제 같아요.

    최태원 회장의 장점은 중요하고 시급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주요 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사안을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파악하면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결정한 것을 실행에 옮길 때는 전문경영인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넘겨 소신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최재원 부사장은 촘촘한 대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합니다. 외국 기업들과 굵직굵직한 딜을 여러 차례 성사시켰죠. 실무를 소상하게 파악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현실과 밀접한 경영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패밀리 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며,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이라고 봅니까?

    “자신의 역량과 임무를 분명하게 알고 실천하는 것, 자신에게 고언(苦言)을 주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 그리고 인재를 아끼고 양성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경계해야 될 점은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자만심이나 작은 성공에 도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서둘러 이익과 성과를 내는 데 급급, 무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금기로 삼아야겠죠. 최근에 ‘상도(商道)’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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