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개혁입법 연대모임’이 있었다.
- 이날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는 “만약 개혁세력이 뒤로 물러서도록 내부가 강요한다면 ‘결단’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탈당’으로 해석했지만, 이부총재는 ‘당내 비판’과 ‘노선 투쟁’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부총재는 ‘결단’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 그는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개혁성이 가미된 ‘통합적 리더십’이 필요하며 자신은 한나라당과 이총재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2001년 2월에 나온 이른바 ‘개혁세력 결단론’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한나라당의 보수화 경향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남북관계나 개혁입법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이것은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개혁세력을 대표해온 이부총재의 위상을 흔드는 사태로 볼 수 있다. 소장파 의원들마저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보수화 노선에 반발하는 상황에 이부총재의 입장 표명은 불가피했을 지도 모른다. 인터뷰는 2월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개혁세력 결단론’은 정치권에 파문을 몰고왔습니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내놓은 발언으로 보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국가보안법이나 남북 문제에 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좀 더 평화친화적이고 통일친화적인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희망을 밝힌 거죠. 나는 한나라당을 반통일적이라고 무조건 매도할 게 아니라 한나라당 안에서 설득하고, 내부에서 노선 투쟁을 벌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부영과 ‘그들’(한나라당 개혁세력)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봐요. 이젠 한나라당 내부 사정도 국가보안법을 그냥 두자고 주장할 수만은 없게 됐다니까요. 그런 얘기를 한 건데, 그냥 탈당이라고 몰아가면 어떡합니까?”
―이부총재께서는 “한나라당의 5·6공적 성격을 그대로 두고 우리 사회를 ‘평화친화적’ ‘통일친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말했는데, 여기서 ‘5·6공적 성격’은 이회창 총재 주변에 포진한 구 민정계 인사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꼭 그렇게 보지 마세요.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좌경 내지 친북으로 보려는 성향이 한나라당 내에 있잖아요. 거기에 대한 경계죠.”
―그렇다면 ‘결단’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결단이지요. 내가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이총재에게 압박을 가하면, 이총재도 자기 생각을 토해내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논쟁을 벌이면 뭔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거죠.”
벌써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일까? 이부총재는 ‘결단’의 의미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재정리하고 있었다. 화제를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 쪽으로 돌렸다.
―이회창 총재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총재가 남북문제에 대단히 방어적이어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총재가 보수 진영을 여권에 뺏기지 않으려고 방어벽을 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는 견해가 달라요. 보수세력만 갖고는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어렵다 이겁니다. 50~60대 이상만 갖고 어떻게 정권을 잡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집권 경험이 있는 구 여권의 보수세력과 15, 16대를 통해 한나라당에 들어온 신진세력이 균형을 맞춰 ‘통합적 국민정당’을 만들어야죠. 그것이 이총재가 얘기하는 남북 문제의 양면성, 즉 대결과 평화에도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보수만으로 집권 불가
―이회창 총재는 지난 8일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른바 ‘주류심판론’을 제기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류는 보수세력이고, 이총재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부총재의 논리대로 하면 집권이 어렵겠군요.
“나는 어렵다고 봐요. 아주 힘들 겁니다.”
―이부총재는 “개혁세력이 뒤로 물러서도록 내부에서 강요한다면 결단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한나라당 개혁세력이 강요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보십니까?
“강요를 많이 받았지. 이번에 통일외교 대정부 질문에서도 개혁세력에는 거의 차례가 오지 않았어요. 나도 외교 질의를 하려는데 총무가 그걸 바꿔버리더라고. 김원웅(金元雄) 의원도 빠졌잖아. 예민한 시기다 보니까 당의 공식 입장과 다른 얘기가 나올까 봐 봉쇄한 거지. 이해는 하지만 용납은 안돼요.
지금 한나라당은 집권한 뒤 남북문제나 경제정책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 건지 전망이 보이지 않아. 그냥 무작정 반대나 하고 앉아 있으니 뭐가 되겠어? 남북문제에 대해서 무슨 전망을 보여야 될 것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에 ‘3단계 통일론’이라도 얘기했단 말이에요. 그것이 중간에 우회를 하더라도 ‘아, 저 사람은 남북 문제에 대해 이런 생각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건 5공으로 돌아가자는 건지 박정희로 돌아가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부총재는 잠시 말을 끊었다. 비판은 이 정도에서 멈추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할 일을 설명했다.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당신은 5공 쪽으로 가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분명히 얘기해라 이거야.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 시대 이후에 우리의 그림이 뭐냐’ 이걸 내놓으라는 거지. 내년 대선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출마하겠다고 그러는데, 나는 나서겠다고 얘기한 적도 없고, 경제력이나 세력에서 자격을 갖췄다고 보지도 않아. 그러나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림’을 요구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과문한 탓인지 ‘그림’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그림’을 내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여야 된다고 봅니다.”
―멋있는 말씀이지만, 우리 정치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나 민주당의 대권후보들은 어떻게 하면 지역의 몰표를 얻어 권력을 잡느냐 하는 문제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고 보라고. 우리 국민이 이걸 요구한다니까. 계속 저희들끼리 모여서 ‘전라도놈 죽일놈, 경상도놈 죽일놈’ 했지만, 그런 다음에는 허탈할 거야.”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이부총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 정치가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포스트 3김’을 외치는 정치인들도 어느새 3김의 행태를 닮아가는 것이 정치판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부총재께서는 3김정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역사에 일정한 기여를 했지만, 기여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누렸다고 봅니다. 3김이 퇴장하는 2002년이 되면 새로운 리더십이 나오겠죠. 3김으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고 나머지는 극복하는 리더십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역주의와 검은돈의 정치, 보스 정치, 공천을 독점하는 정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지역주의와 공천 문제만 따진다면, 이회창 총재도 3김과 별차이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저쪽에서 저렇게 나오니까 이쪽도 그렇게 한다 이런 건데…. 양김씨도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과 싸우면서 닮은 점이 있잖아요. 권위주의라든가 뭐 비슷한 점도 있겠죠.”
―이회창 총재의 ‘차별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야당으로 몰리다 보니까 자기 캠프에 의존하게 되고 우리 같은 사람은 뒷전이 된 거지. 한나라당이 강하게 응집할 부분을 찾다가 이렇게 됐다고 봐요. 나는 이총재가 ‘3김과 다름이 없다’라는 인식이 국민들 속에서 퍼져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정해진 것처럼 돼 있어요. 그러니까 여권에서는 마음 놓고 고정타깃을 공격한단 말이죠. 군대로 치면 사격장에 타깃이 있는데, 이게 이동타깃이 아니라 고정타깃이야. 거기다 대고 활도 쏘고 총도 쏘고 창도 던지고 온갖 상처를 다 입히는 거죠. 다양한 이동타깃을 만들어서 통합적 리더십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안타깝게 대처하고 있으니….”
이부총재의 말투엔 이회창 총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배어 있었다. 사실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회창 총재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총재가 좋아서 한나라당에 있는 줄 아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대안이 없어서’ 이회창 총재 체제가 살아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부영 부총재는 달라 보였다. 이회창 총재의 보수적 이미지에 자신의 개혁적 색채를 입히고 싶은 욕망이랄까? 그는 한나라당과 이총재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총재를 열심히 설득해서 한나라당을 바꿔보겠다는 말씀이신데,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의원들 중에 의외로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가보안법 문제도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많아요.”
―이부총재는 지난해 김용갑(金容甲) 의원이 ‘노동당 2중대’ 발언을 했을 때 영남권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고, 최근엔 이회창 총재가 상도동에 찾아간 것을 성토하다가 언쟁이 붙기도 했습니다. 이부총재가 한나라당 안에서 보수세력에 포위돼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지금 시대에 장준하나 김구 선생 같은 분을 우리 역사의 주류라고 봅니까? 비주류라고 봅니까? 그 사람들이 주류예요. 나는 정치를 그냥 국회의원 한 번 더 되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역사를 마땅히 가야 될 길로 이끌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겁니다. 나는 한나라당의 보수적인 의원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당신들이 주류가 아니라, 이부영이가 주류야’ 나는 그렇게 말한다니까.”
인터뷰가 있던 2월14일 오후 여야 소장파 의원 23명(민주당 15명, 한나라당 8명)이 ‘개혁연대’를 발족했다. 이것은 국가보안법 등 3대 개혁입법을 공동 추진하고 각종 민생관련 입법 과정에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연대기구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론 파괴’와 ‘크로스보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소장파 연대’에 대한 이부총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개혁연대’가 ‘제3’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여야가 저렇게 대립하고 끊임없이 정쟁을 하니까 국민들도 뭔가 새로운 세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새로운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부분에 유보적입니다. 이를테면 한나라당 안에 있는 젊은 의원들은 비교적 당내 문제를 자유롭게 얘기합니다. 저는 여당의 개혁적인 사람들도 ‘의원 꿔주기’ 같은 사태에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당 지도부에 엄중히 항의해야죠. 예를 들면 모의원 같은 사람은 지난번 국회법 날치기에 앞장섰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개혁세력으로 나서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이 말이야.”
―국회법 날치기 파동을 주도했던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구라고 내 입으로 얘기는 안하겠어요. 아무튼 나는 그런 문제에 얘기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개혁세력에 이름을 올리지 말아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는데, 만일 한나라당에서 안기부 자금을 받은 게 확실하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 문제에 색깔을 분명히 해야 된다고 봐요. 물론 아직까지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안기부 자금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 정보위원을 했잖아요. 안기부 예산에서 1100억 원을 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안기부 자금을 정말 썼다면, 그건 다른 문제가 돼요. 그래서 나는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안기부 자금을 썼으면 그건 용서할 수 없죠.”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은 그 정도로 해둡시다. 그때 돈을 받은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나라당에서는 민주당 개혁파를 향해 ‘3김정치의 잔당에서 무슨 개혁을 하느냐’고 비판하지만, 민주당에서도 ‘보수 일색인 한나라당에서 무슨 개혁이냐’고 반박합니다. 개혁을 표방하는 ‘제3세력’의 등장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차별성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공통분모를 늘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지금의 여야가 제3세력 운운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개혁입법 문제와 관련, 만일 당에서 강요하는 당론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생각해요. 바늘로 얼음 깨는 거 알죠? 바늘로 찌르면 확 갈라진다니까. 꼬챙이로 큰 얼음장을 깨면 그 밑에서 시원한 물이 올라오겠죠.”
‘제3세력’ 출현은 필연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중에는 이부총재가 총대를 메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부총재도 사석에서 개혁파의 움직임이 ‘당장은 아니라도 장차 정계개편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여야가 이런 식으로 전망 없는 정치를 끌어갈 경우에는 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될 거예요. 여야가 이렇게 한심하고 미래가 없는 정치를 이끌어갈 경우엔 되지 말라고 해도 제3세력이 나타날 거라니까. 앞으로 두고 보라고.”
소장파 의원들이 당론과 무관하게 연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복잡한 흐름과 관련이 있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나라당은 “현 시점의 개정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소장파 의원들은 “국보법은 여야를 초월해 다룰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시기를 더 늦출 경우 여야의 정쟁에 휘말려 표결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보법 문제에 관한 한 이부총재는 누구보다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는 89년 4월 전민련 의장을 맡고 있던 시절 국보법 위반(통신연락 등)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전민련이 북한측과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등을 추진했다는 것이 공안합수부의 구속 사유였다. 90년 2월 2심에서 구속취소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부총재는 그후 오랫동안 법정 공방전을 벌였다. 92년 3월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열린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원심파기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95년 11월 환송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시는 건 아니죠?
“나는 궁극적으로 폐지해야 된다고 봅니다. 현 단계에서는 부분 개정을 통해 폐지 내지 전면 개정 쪽으로 국민적 합의를 높여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가보안법 때문에 누구는 반(反)통일분자고 누구는 좌익세력이고, 이렇게 우리 사회를 양분하지 말고 최대한 여야 합의를 통해 개정하자는 거죠.”
―지금 쟁점은 1조 ‘정부 참칭’, 7조 ‘고무찬양’, 10조 ‘불고지죄’ 등 3개 조항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정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마 제일 문제가 되는 건 7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부분에서 의견 조정을 하는 게 ‘최저선’이라고 생각해요. 정부 참칭이나 나머지 조항은 별 문제 되겠어요? 지금 김정일 위원장이 오겠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보면 개정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보는데요.”
―이부총재의 생각대로 쟁점 조항인 7조를 조정했을 경우, 한나라당에서 국보법 개정안에 몇 명이나 찬성할 걸로 보십니까.
“60명 이상 될 겁니다. 한 절반 정도…. 나는 그래야 앞으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 희망이 있다고 봐요. 그리고 만약 당에서 자기 소신대로 못 찍게 하거나 막을 경우에는 큰 부작용이 생길 겁니다.”
이부영 부총재는 개혁파 정치인 1세대로 불린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90년 말이다. 당시 그는 재야운동권과 진보정당을 추진하던 세력으로부터 ‘개량주의자’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이부총재는 “3당통합으로 만들어진 거대 여당 민자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일야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92년 3월 치러진 14대 총선서 민자당 중진 김동규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뒤 정치권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재야인사와 운동권 출신 스타의 영입에 열을 올렸다. 새로운 인물을 ‘수혈’한다는 명분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특히 지난해 16대 총선에서는 여야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총선을 준비하던 한 시민단체 지도자가 ‘386세대가 공천을 따기 위해 기성 정치인 못지 않은 구시대적 행태를 보이는 데 실망했다’며 출마를 포기했을까?
―이부총재가 정계에 진출한 뒤 많은 후배들이 들어왔습니다. 16대 총선에서는 특히 386세대가 정치권에 많이 들어왔는데, 선배로서 386정치인들을 평가하신다면.
“그 사람들도 험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 동서 냉전체제가 깨지는 것을 경험하고, 젊은 시절 IMF 경제위기도 체험한 세대죠. 그래서 앞으로 그 세대에서 나라를 짊어질 좋은 재목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386세대는 나름대로 공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은 87년 직선제를 이끌어냈잖아요. 그래서 뭔가 성취했다는 뿌듯함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더라구요.
386세대는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해요.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거나, 소련 연방이 붕괴하는…. 그렇다 보니 자기가 가졌던 사회주의적 신념이랄까 이런 것들이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편의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강한 쪽에 더 이끌리고 강한 편에 서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그 사람들의 투쟁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은 아니었잖아요. 짧은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스타가 된 거죠. 투자는 적게 하고 소득은 많은 것 같은….”
―그건 386세대를 좀 폄훼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386세대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 그들 가운데서 좋은 지도자가 많이 나올 겁니다. 다만 너무 편안하게 큰 흐름에 얹혀가려는 것을 경계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최근 386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데는 도덕성 부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광주에서 술판 사건이 있었고….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젊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나는 그 점은 관대하게 봐주고 싶어요.”
흔히 ‘차세대 리더십‘을 얘기할 때 이부영 부총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부총재 자신도 인터뷰 초반에 “경제력이나 세력에서 그런 자격을 갖췄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로 대선 국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시사했다. 그가 꿈꾸는 역할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킹메이커’쯤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킹’으로 점찍은 사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아닐까 한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애국주의를 마음에 담고 ‘열린 세상, 열린 세계화’ 이런 것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봐요. 우리 역사에서 인물을 찾는다면 삼학사보다는 최명길, 그리고 서희 장군 같은 분을 탐구해야 할 겁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거나 다름 없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2002년이 가까워지면 계속해서 새로운 대안이 나타날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당 안에서 제일 유리한 주자는 이회창 총재죠.”
―이부총재는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비판하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런 노력이 먹혀들지 않을 때는 이회창 총재를 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 내가 밀고 안 밀고 하는 문제를 비중있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분하고 개인적으로 얘기해보면 생각이 많이 열려 있어요. 이총재의 생각이 열려 있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단념을 못하는 겁니다. 설득하고 비판하고 어떤 때는 공개비판을 하고 협박도 해야겠죠.”
민주당 장성민 의원은 1월 말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이부영, 박근혜(朴槿惠), 최병렬(崔秉烈) 부총재와 김덕룡(金德龍) 의원이 합종연횡을 통해 ‘보·혁연합’을 시도할 경우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 이부총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내부 문제를 민주당 의원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야권분열을 촉발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봄 정국, 큰 변화 온다
―한나라당 대권주자 중 이부총재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은 6·3세대인 김덕룡 의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선 국면에서 김의원과 연대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김의원도 생각이 복잡한 것 같아요. 글쎄요. 요즘은 김의원이 나하고 연대할 생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신동아’ 2월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정·부통령제 개헌을 전제로 ‘부통령으로 누가 적합하냐’는 질문에 박근혜 부총재라고 답한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대권주자로서 박부총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당에 속해 있는 사람에 대해 좋다 나쁘다 얘기하는 건 어렵고. 박 부총재도 지천명의 나이를 맞았으니까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겠죠. 다만 나는 부모님 쪽에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자기의 길을 자기가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야죠.”
―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부총재와 남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고…. 만일 김최고위원이 대권주자로 부각돼 ‘민주화 세력이 모이자’는 제안을 한다면, 이부총재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내가 한나라당에 남아 있으면서 관심을 갖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여기 있으면서 관심을 가지라고 하면,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결국 이부총재의 구상은 이회창 총재를 통합적 리더십으로 만들어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것이 정답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중간에 ‘두고 보세요’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하셨습니다. 앞으로 정국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십니까?
이부총재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끼칠 후유증을 설명한 뒤 국내정치 쪽으로 옮겨왔다.
“부시가 당선된 날 김대통령은 강공책을 결정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강한 정부’가 3~5월의 거친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나는 한빛은행 재판을 유심히 봤어요. 그건 현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법원이 던진 메시지라고 봅니다. 법원에 대한 인사가 진행되는 시점에 박지원 전장관을 의심할 만한 판결문이 나왔다니까. 이건 대통령을 재판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건 올봄쯤 정국이 파열음을 내고 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전조나 다름없어요.”
80년대부터 진보진영 사람들이 이부영 부총재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이부영 부총재는 바른 말 많이 하고 깨끗한데,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쓴소리’가 그것이다. 한 예로 그는 87년 이후 치러진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매번 다른 사람을 밀었다. 87년엔 YS를 지지하는 ‘후단’ 그룹이었고, 92년엔 ‘범민주단일후보’인 DJ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또한 97년엔 ‘DJP 공조와 내각제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회창 후보 진영에 가담했다.
30년을 끌어온 ‘3김정치’가 막장을 향해 달리고,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헌정 사상 초유의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는 지금, 이부총재는 또 다른 의미의 ‘결단’을 예고했다. 이제 그의 ‘행동’을 지켜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