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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부영 한나라당 부총재

“이회창 킹메이커 역할 하겠다”

  • 육성철 sixman@donga.com

“이회창 킹메이커 역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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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개혁입법 연대모임’이 있었다.
  • 이날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는 “만약 개혁세력이 뒤로 물러서도록 내부가 강요한다면 ‘결단’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탈당’으로 해석했지만, 이부총재는 ‘당내 비판’과 ‘노선 투쟁’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부총재는 ‘결단’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 그는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개혁성이 가미된 ‘통합적 리더십’이 필요하며 자신은 한나라당과 이총재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매우 신중한 정치인이다. 결코 섣불리 말하는 법이 없다. 상황이 무르익어야만 의견을 밝힌다. 이런 까닭에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은 “너무 조심스럽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부총재는 철저하게 ‘준비된’ 발언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치적 상황을 충분히 계산해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넓힐 수 있는 적절한 용어를 선택한다. 94년 ‘정치신세대론’, 95년 ‘정계재편론’, 96년 ‘국민후보론’ 등이 단적인 예다.

2001년 2월에 나온 이른바 ‘개혁세력 결단론’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한나라당의 보수화 경향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남북관계나 개혁입법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이것은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개혁세력을 대표해온 이부총재의 위상을 흔드는 사태로 볼 수 있다. 소장파 의원들마저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보수화 노선에 반발하는 상황에 이부총재의 입장 표명은 불가피했을 지도 모른다. 인터뷰는 2월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개혁세력 결단론’은 정치권에 파문을 몰고왔습니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내놓은 발언으로 보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국가보안법이나 남북 문제에 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좀 더 평화친화적이고 통일친화적인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희망을 밝힌 거죠. 나는 한나라당을 반통일적이라고 무조건 매도할 게 아니라 한나라당 안에서 설득하고, 내부에서 노선 투쟁을 벌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부영과 ‘그들’(한나라당 개혁세력)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봐요. 이젠 한나라당 내부 사정도 국가보안법을 그냥 두자고 주장할 수만은 없게 됐다니까요. 그런 얘기를 한 건데, 그냥 탈당이라고 몰아가면 어떡합니까?”

―이부총재께서는 “한나라당의 5·6공적 성격을 그대로 두고 우리 사회를 ‘평화친화적’ ‘통일친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말했는데, 여기서 ‘5·6공적 성격’은 이회창 총재 주변에 포진한 구 민정계 인사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꼭 그렇게 보지 마세요.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좌경 내지 친북으로 보려는 성향이 한나라당 내에 있잖아요. 거기에 대한 경계죠.”

―그렇다면 ‘결단’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결단이지요. 내가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이총재에게 압박을 가하면, 이총재도 자기 생각을 토해내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논쟁을 벌이면 뭔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거죠.”

벌써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일까? 이부총재는 ‘결단’의 의미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재정리하고 있었다. 화제를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 쪽으로 돌렸다.

―이회창 총재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총재가 남북문제에 대단히 방어적이어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총재가 보수 진영을 여권에 뺏기지 않으려고 방어벽을 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는 견해가 달라요. 보수세력만 갖고는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어렵다 이겁니다. 50~60대 이상만 갖고 어떻게 정권을 잡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집권 경험이 있는 구 여권의 보수세력과 15, 16대를 통해 한나라당에 들어온 신진세력이 균형을 맞춰 ‘통합적 국민정당’을 만들어야죠. 그것이 이총재가 얘기하는 남북 문제의 양면성, 즉 대결과 평화에도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보수만으로 집권 불가

―이회창 총재는 지난 8일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른바 ‘주류심판론’을 제기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류는 보수세력이고, 이총재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부총재의 논리대로 하면 집권이 어렵겠군요.

“나는 어렵다고 봐요. 아주 힘들 겁니다.”

―이부총재는 “개혁세력이 뒤로 물러서도록 내부에서 강요한다면 결단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한나라당 개혁세력이 강요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보십니까?

“강요를 많이 받았지. 이번에 통일외교 대정부 질문에서도 개혁세력에는 거의 차례가 오지 않았어요. 나도 외교 질의를 하려는데 총무가 그걸 바꿔버리더라고. 김원웅(金元雄) 의원도 빠졌잖아. 예민한 시기다 보니까 당의 공식 입장과 다른 얘기가 나올까 봐 봉쇄한 거지. 이해는 하지만 용납은 안돼요.

지금 한나라당은 집권한 뒤 남북문제나 경제정책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 건지 전망이 보이지 않아. 그냥 무작정 반대나 하고 앉아 있으니 뭐가 되겠어? 남북문제에 대해서 무슨 전망을 보여야 될 것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에 ‘3단계 통일론’이라도 얘기했단 말이에요. 그것이 중간에 우회를 하더라도 ‘아, 저 사람은 남북 문제에 대해 이런 생각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건 5공으로 돌아가자는 건지 박정희로 돌아가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부총재는 잠시 말을 끊었다. 비판은 이 정도에서 멈추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할 일을 설명했다.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당신은 5공 쪽으로 가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분명히 얘기해라 이거야.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 시대 이후에 우리의 그림이 뭐냐’ 이걸 내놓으라는 거지. 내년 대선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출마하겠다고 그러는데, 나는 나서겠다고 얘기한 적도 없고, 경제력이나 세력에서 자격을 갖췄다고 보지도 않아. 그러나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림’을 요구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과문한 탓인지 ‘그림’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그림’을 내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여야 된다고 봅니다.”

―멋있는 말씀이지만, 우리 정치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나 민주당의 대권후보들은 어떻게 하면 지역의 몰표를 얻어 권력을 잡느냐 하는 문제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고 보라고. 우리 국민이 이걸 요구한다니까. 계속 저희들끼리 모여서 ‘전라도놈 죽일놈, 경상도놈 죽일놈’ 했지만, 그런 다음에는 허탈할 거야.”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이부총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 정치가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포스트 3김’을 외치는 정치인들도 어느새 3김의 행태를 닮아가는 것이 정치판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부총재께서는 3김정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역사에 일정한 기여를 했지만, 기여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누렸다고 봅니다. 3김이 퇴장하는 2002년이 되면 새로운 리더십이 나오겠죠. 3김으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고 나머지는 극복하는 리더십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역주의와 검은돈의 정치, 보스 정치, 공천을 독점하는 정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지역주의와 공천 문제만 따진다면, 이회창 총재도 3김과 별차이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저쪽에서 저렇게 나오니까 이쪽도 그렇게 한다 이런 건데…. 양김씨도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과 싸우면서 닮은 점이 있잖아요. 권위주의라든가 뭐 비슷한 점도 있겠죠.”

―이회창 총재의 ‘차별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야당으로 몰리다 보니까 자기 캠프에 의존하게 되고 우리 같은 사람은 뒷전이 된 거지. 한나라당이 강하게 응집할 부분을 찾다가 이렇게 됐다고 봐요. 나는 이총재가 ‘3김과 다름이 없다’라는 인식이 국민들 속에서 퍼져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정해진 것처럼 돼 있어요. 그러니까 여권에서는 마음 놓고 고정타깃을 공격한단 말이죠. 군대로 치면 사격장에 타깃이 있는데, 이게 이동타깃이 아니라 고정타깃이야. 거기다 대고 활도 쏘고 총도 쏘고 창도 던지고 온갖 상처를 다 입히는 거죠. 다양한 이동타깃을 만들어서 통합적 리더십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안타깝게 대처하고 있으니….”

이부총재의 말투엔 이회창 총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배어 있었다. 사실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회창 총재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총재가 좋아서 한나라당에 있는 줄 아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대안이 없어서’ 이회창 총재 체제가 살아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부영 부총재는 달라 보였다. 이회창 총재의 보수적 이미지에 자신의 개혁적 색채를 입히고 싶은 욕망이랄까? 그는 한나라당과 이총재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총재를 열심히 설득해서 한나라당을 바꿔보겠다는 말씀이신데,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의원들 중에 의외로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가보안법 문제도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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