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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취재

“포철 뛰어들고 LG 물러간다”

청와대 直報 비밀 문건을 통해 본 통신산업 구조조정 시나리오

  • 이나리 byeme@donga.com

“포철 뛰어들고 LG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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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사장이 정통부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서를 올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8일 경에도 통신업계 구조조정과 관련된 견해를 피력한 문건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는 아직 IMT2000 사업자 선정 전이라 1월 건의서와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핵심은 같아 ‘포철의 IMT2000 사업 참여를 유도해 한국통신-SK로 양분된 통신업계를 3자 구도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정통부에 같은 내용의 건의를 수차례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권 핵심인 청와대에 직접 보고서를 제출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했던 건 그간 포철이 통신사업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철강산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으니 풍부한 자금을 활용, 미래형 산업인 정보통신, 에너지 등의 분야에 진출하겠다는 것이 포철의 장기 계획. 그래서 벌인 일이 신세계통신에 대주주로 참여했다 지분 전체를 SK텔레콤에 매각한 것, SK-IMT에 지분 15%를 가진 2대 주주로 참여한 것, 한전 자회사인 파워콤 지분 5%를 인수한 것 등이다. 파워콤은 한국통신망에 대적할 만한 전국적 규모의 통신선로를 가진 국내 유일의 회사다.

그러나 파워콤의 새 주인이 되려던 포철의 계획은 SK와 LG의 견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SK, LG 모두 파워콤 인수를 통해 IMT2000 사업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나아가서는 한국통신에 대적할 유무선통합 통신업체로 발돋움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부처간 갈등도 한 몫을 했다. 파워콤의 실제 주인 격인 산업자원부와 공기업민영화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처는 포철을 지지한 반면, 통신사업자 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통부는 국내외 기간통신사업자 또는 컨소시엄으로 자격 제한 규정을 둬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양 세력의 의견충돌로 매각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포철뿐 아니라 자금 사정이 악화된 LG, SK도 인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파워콤은 아직도 민영화되지 못한 채 ‘주인 없는 회사’로 남아 있다.



이렇듯 포철을 ‘딴 식구’ 취급해온 정통부의 태도는 1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적극적인 구애’ 쪽으로 180도 선회했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구조조정에 대한 업계 안팎의 요구가 거세진 까닭이다.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그럴 시기는 이미 놓쳤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당장 IMT2000 사업에 참여하는 데만도 1조원 가량이 든다. 국내에서 이만한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회사는 포철과 롯데, 삼성전자 정도다. 이 중 롯데와 삼성전자는 오래 전부터 통신서비스업에 진출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남은 카드는 포철 한 곳.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포철은 단기간 최대 16조원의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요즘 정통부의 행보는 “하나로통신과 밀월관계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사장이 제안한 구도에 근접해 있다.

“포철 기침에 업계 감기 걸릴 판”

여기서 다시 신사장의 청와대 보고 문건으로 돌아가보자. 건의서의 주내용은 ‘포철의 정보통신사업 참여를 유도해 업계를 ▲한국통신그룹 ▲SK통신그룹 ▲LG텔레콤·하나로통신 등 기존통신사업자 및 포철 중심의 신규 통신그룹 등 3대 종합통신그룹체제로 재편해달라’는 것이다.

문건은 포철의 통신사업 진출 방안까지 적시하고 있다. ‘1단계-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동기식 사업권 획득, 2단계-포철의 LG텔레콤·하나로 통신 경영권 확보 및 군소통신기업 흡수 통합’의 순서이다. 예상 소요액은 1조5000억 원. IMT2000 지분 20% 확보, 하나로통신 및 LG텔레콤 지분 30% 인수를 기준으로 추정한 액수다. LG텔레콤과 관련해서는 비동기 사업권 획득 실패와 자금난 등으로 통신사업에서 퇴출이 예상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따로 만들어진 요약문에는 ‘문제점 - 포철 회장은 통신사업 참여에 대한 포철 실무진의 긍정적 검토결과와 산자부 장관, 정통부 장관의 통신사업 참여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결정을 유보함으로써 기회를 놓치고 있음’이라는 구절이 덧붙어 있어 궁금증을 더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건의서 제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포철의 동기식 IMT-2000 컨소시엄 참여설이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포철 유상부 회장과 신사장이 만났다, 청와대·정통부·산자부에서 유회장에게 동기식 참여 압력을 넣고 있다, LG텔레콤이 포철에 매입 의사를 타진했다는 등의 각종 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졌다.

급기야 지난 1월 중순,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동기식 그랜드컨소시엄 구성을 위해 중복참여 금지조항을 완화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는 SK-IMT에 2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포철에 동기식 컨소시엄 참여 길을 열어 주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포철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포철의 한 고위인사는 “이곳 저곳에서 들어오는 압력 때문에 곤혹스럽다”며 “하나로통신 신사장과 유상부 회장이 만난 거나, 정통부·산자부는 물론 정권 핵심부로부터도 동기식 참여를 종용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즈음 업계에는 “포철이 기침만 해도 업계 전체가 감기에 걸릴 판”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신사장의 의도대로 포철이 통신산업 구조조정에 핵으로 떠오른 것이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유상부 회장은 지난 2월8일 기자회견을 갖고 “동기식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보통신, 에너지, 바이오, 환경 등 미래 성장산업을 집중 육성키로 했다”는 계획을 밝혀 ‘통신산업 진출’이라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이와 관련, 포철의 한 임원은 “솔직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포철은 분명 통신산업에 진출할 뜻이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뛰어드는가다. 포철 정도 되는 회사가 남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식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 통신산업이라는 대양에 배를 띄웠으면 항공모함 정도는 끌고 가야지 거룻배로 잔물결이나 타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여기에 포철의 고민이 있다.”

‘항공모함’이란 쉽게 말해 유무선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통신그룹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선통신, 즉 IMT2000 사업자로 나서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동기식은 수익성이나 장래성 면에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전체 주식의 51% 이상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도 우려된다. 산업정책적 측면보다는 수익률을 중시하는 그들이 포철의 동기식 컨소시엄 참여를 달가워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이 되는 길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한국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최대 주주 혹은 주요 주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기업이 공기업을 인수했다’는 비난을 듣기 알맞은 구조다. 포철이 완전 민영화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공기업적 성격이 강하다. 더 큰 문제는 ‘공기업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포철이 보기에 한국통신은 그리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포철의 한 고위인사는 “노조 문제 해결 등 사전정지작업이 완결되고, 30% 이상의 지분을 가져와 명실상부한 지배주주가 될 수 있게 해준다면 모를까…” 하고 말끝을 흐렸다.

배포를 확 줄여 파워콤, 하나로통신 인수로 만족하자니 이 또한 여의치 않다. 파워콤은 기간통신망을 보유하고 있고 하나로통신은 시내전화 사업권을 갖고 있으니만큼 두 업체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도 나쁜 포석은 아니다. 실상 지난해 9, 10월 포철은 파워콤과 하나로통신 인수를 적극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 그 수준에서 인수할 경우 주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돼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하나로통신은 지분 30%를 넘기는 대가로 1조원을 요구했다. 요즘은 이 ‘가격’이 20% 인수시 500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포철로서는 단가가 더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정통부의 견제도 큰 몫을 했다. 하물며 포철이 끝까지 동기식 참여를 거부할 경우 정부가 파워콤 인수를 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쩌면 포철의 행보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상부 회장을 비롯, 포철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전방위 압박인지도 모른다.

유회장이 동기식 컨소시엄 및 한국통신 입찰 불참을 밝힌 2월8일 저녁, 업계 정보통들 사이에는 “유회장의 처사에 대해 정부 여당의 비난이 거세다”는 설이 돌았다. 심지어는 ‘유회장이 창(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쪽 사람이 된 것 아니냐’ ‘누구 덕분에 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하는 이야기까지 오갔다는 소문이었다. 낭설일 가능성이 훨씬 크지만 유회장과 정부 여당의 관계, 아울러 포철의 행보에 대한 업계 안팎의 시각이 어느 지점에 못박혀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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