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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화제|국산차 최장수 모델

쏘나타를 타면 한국차가 보인다

  • 윤영호 yyoungho@donga.com

쏘나타를 타면 한국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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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현대가 앞바퀴 굴림방식을 채택한 것에 대해 ‘반 발짝 앞선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처음에는 뒷바퀴 굴림방식과 앞바퀴 굴림방식 두 가지를 다 고려했으나 당시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마쓰다 626 등 선진 메이커 중형차들이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앞바퀴 굴림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를 따랐다.

‘반 발짝 앞선 전략’은 메이커 쪽에서는 모험을 피할 수 있고, 보수적인 소비자들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기술이 부족한 현대차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 좋아 ‘반 발짝 앞선’ 것이지, 선진 메이커들의 기술을 뒤늦게 채용, 국내 시장에 적용한 것을 좋은 말로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쏘나타를 오너 드라이버가 탈 수 있는 최상의 자동차로 포지셔닝한 것 역시 주효했다. 당시 쏘나타의 광고 컨셉트는 ‘성공인의 상징 쏘나타’였고,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쏘나타의 엔진용량, 엔진출력, 차의 크기 등 과거의 소형차와는 차별화된 요소를 집중 홍보했다. 사회적으로 웬만큼 성취했고 경제적 능력도 갖춘 40대를 겨냥한 전략이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가격정책도 소비자를 끄는 요인이었다. 대우자동차 임진 상품기획팀장은 “현대가 명실상부하게 국내시장을 장악한 것은 쏘나타 모델 때부터였다”면서 “포니, 엑셀 때의 대량 생산기반을 활용, 쏘나타를 1000만 원 안팎의 가격으로 치고 나오면서 대우 로얄 시리즈 등을 저만치 밀어낸 게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국내 중형차 시장이 소형차 시장보다 볼륨이 커진 것은 현대와 쏘나타엔 더없이 큰 행운이었다. 자동차 내수시장은 96년을 기점으로 중형차 시장이 가장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급속한 변화를 겪는다. 소비자들의 소득이 늘어난데다 승용차 대체 수요가 신규 수요를 앞지르면서 중형차 시장이 자연스럽게 최대 시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97년 중형차 시장은 전체 시장의 30.8%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80년대 후반에 자동차 대중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두 번째 차’를 사려는 대체 수요는 시장 변화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소형차를 타던 사람들이 대거 중형차로 차종을 바꿔가는 과정에 쏘나타는 자연스럽게 고객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중형차가 한국시장에서 갖는 장점은 또 있다. 오너 드라이버가 소유할 수 있는 최고의 차라는 점이다. 대형차로 넘어가면 고용 운전사를 둔 자가용이란 인식이 강해 대형차를 살 만한 사람도 풀옵션을 갖춘 중형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다간 운전기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쏘나타가 많이 팔릴 수 있었던 사회적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쏘나타는 대다수 운전자, 특히 여성 운전자도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차로 평가된다. 쏘나타는 품질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가볍고 운전하기 편한 차’의 성격이 강하다. ‘무겁고 부담스러운 차’라는 이미지 때문에 여성 운전자들이 대우차를 기피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비마다 경쟁차 제압

쏘나타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경쟁업체의 ‘도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쏘나타는 그때마다 도전을 물리쳤다. 최대 고비는 96년 무렵이었다. 당시 대우차는 DOHC 엔진을 얹은 뉴 프린스를 내놓았고(대우는 97년에 레간자까지 내놓았다), 기아차의 크레도스는 페이스 리프팅(face lifting·주요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차의 ‘얼굴’만 살짝 바꾸는 것)이 예정돼 있었다. 이에 대한 현대차의 대응이 96년 2월에 선보인 쏘나타Ⅲ였다.

그 이전에도 기아 콩코드, 대우 프린스 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쏘나타와 대적할 만한 상대가 못 됐다. 특히 콩코드의 경우 일부 마니아가 찾긴 했지만 판매량을 늘리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일본 마쓰다 자동차의 구형 모델을 베이스로 개발된데다 크기도 쏘나타에 비해 작은 편이어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힘들었다.

하지만 크레도스와 레간자는 달랐다. 이들은 쏘나타와 대등한 상품성과 품질로 중형차 시장을 파고들었다. 특히 레간자는 ‘쉿! 소리없이 강하다’는 광고를 통해 중형 세단의 새로운 가치 기준을 내세우면서 한때 쏘나타를 맹추격했다. 게다가 현대차에 다소 싫증을 느낀 소비자들도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있던 터라 현대로선 위기를 느낄 만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대우차의 도전은 거품이었음이 외환위기 이후 확연하게 드러났고, 크레도스는 디자인이 너무 얌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쏘나타Ⅲ의 최대 화제는 디자인이었다. 공격적이고 볼륨있는 외모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고, 곡선이 풍부하게 들어간 헤드 램프와 선명한 보닛 굴곡, 삼각형 테일 램프 등이 강한 인상을 줬다.

더욱이 크레도스는 론칭 단계에서 새 차의 이미지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 1만㎞ 정도 주행한 뒤부터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체가 심하게 떨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기아차에는 비상이 걸렸고, 거의 1년 남짓 만에 이 문제를 해결했으나 그때는 이미 크레도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진 이후였다.

또 한 번의 고비는 98년 3월 삼성자동차가 SM5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였다. 현대차는 이 모델에 대항하기 위해 EF쏘나타를 내놓았다. 당시 삼성쪽에서는 “성능 면에서 삼성차와 비슷하게 느껴지게 하고 내장이나 스타일에서는 삼성차보다 더 호화롭게 보이도록 개발한 차가 EF쏘나타”라는 얘기가 나왔다.

현대차 관계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현대차가 이미 SM5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SM5의 베이스 모델이었던 닛산의 맥시마를 미국에서 들여와 분해해보는 등 충분한 조사·연구 작업을 마쳤다. 그 결과가 EF쏘나타 개발에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차는 삼성차도 결국 쏘나타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좋은 차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자동차 회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정세영(鄭世永) 현대차 명예회장은 97년 말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 좋은 차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수많은 인원을 일본에 보내 훈련시켰고, 수많은 일본인을 불러 시운전을 거듭한데다, 부품을 만드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으니 그렇게 하고도 좋은 차를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옛 소련처럼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돈을 들인다면 누구라도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 정말 어려운 것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 품질에서 쏘나타를 앞선다고 평가되는 SM5로 쏘나타 추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우차 해외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차종이 등장할 수 있다. 지난해 현대가 대우차 인수에 적극적으로 매달렸던 것도 절박한 상황임을 현대가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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