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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한국 조직폭력 현주소

“주먹계에도 호남 역차별 있다”

  • 조성식 mairso2@donga.com

“주먹계에도 호남 역차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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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출신 사업가 C씨에 따르면 벤처업계는 최근 주먹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망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벤처기업 설립신고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몇 가지 서류를 조작하고 위조하면 된다. 정부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면 80억 원을 뒤로 빼돌린다. C씨는 “(검찰이) 벤처기업을 제대로 두드리면 걸리는 게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외국인과 합작, 벤처기업을 설립한 40대 중반의 K씨. 일부 언론에 ‘떠오르는 벤처기업가’로 소개되기도 한 그는 1980년대에 꽤 이름을 날렸던 주먹이었다. 몇 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사업가로 변신해 귀국했다.

광주 출신 사업가 M씨도 벤처업계에 진출한 대표적인 주먹.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잘 나가던’ 주먹이었던 그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현지에서 도박자금을 빌려준 후 국내에서 수금하는 과정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였다. 그 후 사설금융, 아파트·백화점 점포 분양 등으로 큰돈을 벌어 강남에 큰 식당을 차리더니 최근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주먹으로 꼽힌다. 검찰은 그를 동아파의 두목급으로 파악하고 있다.

골프장·경마장도 요즘 주먹들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이다. 골프장은 특히 해외로 진출한 주먹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로 나간 건달에도 등급이 있다. 1군 주먹들은 홍콩·마카오, 한 수 아래인 2군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지에 자리잡고 있다. 교민사회에서 각종 단체의 간부 직함을 갖고 있는 이들은 유흥업소를 장악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골프장에서 버는 돈은 이른바 ‘꽁지’ 수입이다. 골프장을 찾는 한국 기업체 임원이나 일반 관광객을 상대로 내기골프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수금하는데, 선이자로 1할을 떼는 게 관례다. 꽁지란 바로 선이자를 뜻하는 은어. 건달들은 카지노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불로소득을 올린다.



해외로 진출했던 주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과거 범서방파 간부였던 이아무개씨. 일찍이 동남아에 진출, 카지노 사업으로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현재 서울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경마장 진출도 눈에 띈다. 여기에서도 1군과 2군의 차이가 있다. 1군은 경마 승부조작에 관여한다. 기수를 포섭해 ‘크게 한탕’한 뒤 발을 뺀다. 반면 2군은 골프장에서처럼 경마꾼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꽁지 수입을 올린다.

이처럼 요즘 건달들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은퇴한 주먹인 A씨는 “예전엔 주먹 하나로 통제했지만 요즘은 경제력이 있어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희준 검사에 따르면 최근 주먹계 풍토는 크게 바뀌었다. 전엔 철저하게 계파별로 움직였으나 지금은 계파를 뛰어넘어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한다는 것. 공동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그 결과물을 공평하게 나눈 뒤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계파의 이합집산 현상은 조직폭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폭의 행동양식이 바뀌어 예전과 달리 ‘범단(범죄단체조직)’ 혐의로 묶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점에서 요즘 서울에서 가장 세력이 크다는 동아파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동아파라는 이름은 1960년대 대호파와 더불어 광주 주먹계를 양분했던, 같은 이름의 폭력조직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양은·김태촌씨도 광주에 있을 때 동아파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진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동아파는 광주 동아파에서 파생된 조직이다. 형성시기는 1980년대 중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동아파는 요란스런 소문에 비하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조직”이라며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몇몇 계파가 연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남경찰서 고병천 형사계장은 “조무래기 주먹들이 동아파라는 이름을 팔고 다녀서 그렇지 동아파는 실존하지 않는 조직”이라며 그 실체를 부정했다.

동아파 실체에 대한 논란은 명분보다 실속을 중요시하는 요즘 주먹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허영범 경찰청 폭력계장은 “조직폭력배 검거사례를 분석해보면 요즘은 큰 조직이 거의 사라지고 소규모 조직이 판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먹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3대 패밀리는 옛날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김희준 검사는 “예전과 달리 독주하는 조폭이 없다”고 말한다.

골프장에서 만나는 보스들

조직간 다툼이 사라진 것도 큰 특징이다. 노상균 대검 강력과장은 이를 “수입원이 다양해지고 활동영역이 넓어진 결과”로 해석한다. 좁은 영역에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시절이 지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전국 주먹들은 각자 지역 연고에 따라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평소 어떤 관계였든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먹들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했다. 그들은 서울 시내 N, L 호텔 등에서 매주 한 번씩 비밀스러운 모임을 갖고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우리끼리는 치고 받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주먹 출신 사업가 C씨는 “이권이 다양해진 요즘은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광주지검 박충근 부부장검사는 “요즘 조직들은 이권을 협의·조정하므로 과거와 같은 칼부림이나 집단보복극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도 중요한 변화다. 요즘 각 계파의 실세는 3대 패밀리의 전성기에 행동대장급으로 활동했던 주먹들이다. 40대가 주축이다. 앞서 소개한 동아파의 김아무개씨, OB파 칼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조아무개씨, 양은이파 계열의 강아무개씨, 장안파의 이아무개씨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은 과거 계보를 존중하긴 하지만 그에 속박되는 것을 싫어한다. 대부분 독자적인 계보를 꾸려 나가고 있다. 그런 만큼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라는 이름 석 자는 이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김희준 검사의 분석에 따르면 요즘 폭력조직은 철저하게 자금논리로 움직이고 돈 많은 사람이 보스를 맡는다.

이 40대 두목급 주먹들은 그야말로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이들은 80∼90평에 이르는 고급 아파트에 살며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품위 유지(?) 를 위해 운전기사를 따로 둔다. 이들 중엔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한 수족관에 상어를 넣고 기르는 사람도 있다.

이들 ‘무서운 40대’들은 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장소로 애용하는 곳은 골프장이다. 이곳에서 주요 조직의 보스들은 친목을 다지며 ‘사업’에 대해 얘기한다. 부킹 예약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것도 황금시간대인 오전 10시경에.

주먹계의 최근 동향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호남주먹 득세설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호남주먹들이 권력층과의 친분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 발생한 정현준 사건은 이런 소문에 불을 지른 셈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신양팩토링 사장 오기준씨가 과거 호남주먹의 대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경자씨와 고위층을 연결해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오씨는 사건이 터진 직후 괌으로 출국,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태촌씨의 직계 선배인 오씨는 김씨에 앞서 서방파의 두목으로 활동하다 1977년 구속된 적이 있다. 또한 1989년엔 김씨가 조직한 신우회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오씨는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호남주먹들로부터 예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먹계 사정에 밝은 B씨는 “오씨는 정치권에 발이 넓다”며 “고위층과의 친분관계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유흥업소는 호남주먹, 그 중에서도 목포 출신 주먹들이 장악하고 있다. 대개 중간급 보스들로서 각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정치권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일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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