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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전설적 주먹’ 2인 연쇄인터뷰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

  • 조성식 mairso2@donga.com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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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선때 모정당의 정치공작 거절했다”

《검찰은 폭력배들의 개과천선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조직폭력과 전쟁을 벌이는 강력부 검사들은 출소한 폭력배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한다. ‘새 삶’을 선언한 주먹도 예외가 아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것이 강력부 검사들의 신조. 주먹계에 몸담았던 사람이 그 세계를 떠나기는 이토록 힘든 것이다. 아니, 떠났음을 인정받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끊임없는 유혹의 손길과 의혹의 눈초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씨(44)는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주먹이다.

안씨는 네 차례에 걸쳐 약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1999년 1월 출소 이후 고향인 충남 서산에 정착한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시장에서 이불가게를 한다. 현재 청소년선도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거의 매일같이 아내의 가게에 들러 이불 배달을 거들고 있다.》

당대 최고 주먹

안토니파는 80년대 서울 종로와 명동 및 강남 일대를 주름잡던 폭력조직. 20대 초반에 고향인 서산과 당진 홍성 대천 예산 등 충남 일대를 평정한 후 서울로 진출한 안씨는 타고난 싸움 솜씨를 인정받아 이른바 ‘전국구 주먹’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서울 주먹계를 좌지우지하던 3대 패밀리의 명성이 조직력과 ‘연장질’에 힘입은 것이라면 안토니파의 위력은 보스 안씨의 주먹 실력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유난히 ‘맞짱(일대일 승부)’을 즐겼으며 패한 적이 거의 없는 당대 최고 주먹 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은 1987년 살인교사혐의를 받았던 그가 자수했다가 탈주, 경찰의 추적을 받을 때였다. 언론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외제 방탄차를 타고 다니는 폭력계 대부’라고 표현했다. 1992년 10월 그가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 그의 ‘아우’들은 교도소 정문 앞에 관광버스 3대와 승용차 30대를 포진시켜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비행청소년 선도하는 재미

기자가 서산을 찾은 지난 2월3일 그는 이마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사정인즉 이랬다. 전날 밤 서산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는 평소처럼 그날도 차를 몰고 밤거리 순찰에 나섰다. 오토바이 폭주족을 발견하곤 뒤를 쫓았는데, 눈길에 차가 굴러 전신 타박상에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매일 밤 11시∼새벽 2시까지 밤거리를 순찰합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한 2년 하다 보니 재미가 덜해요. 밤거리에 비행청소년이 거의 사라졌거든요.”

―젊은 애들이 반항하지는 않습니까.

“아직 망신당한 적은 없습니다. ‘거물 아저씨’라면 아이들이 다 알아보고 꼼짝 못하지요. 무서워서 못 돌아다니게 하는 것도 선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물’은 1999년 10월 그가 펴낸 책 제목이다. 출판기념회 때 서산시장이 축사를 했다. 일부 언론에 소개도 됐던 이 책은 지금까지 30만 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사업은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하는 일입니까.

“내 돈 들여 자발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시나 수사기관으로부터 ‘청소년선도위원회’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몇 차례 받았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자기 과시나 하는 사람들 틈에 끼이기 싫어서입니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가두행진하는 것보다는 밤거리에서 한 아이라도 붙잡고 대화해 설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도방법이라고 봅니다. 비행청소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된 선도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가 겪어보니 정말 좋지 않더라. 처음엔 멋있어 보이지만 결국엔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고 결과가 비참하더라’고.”

주먹사회에서는 깡패니 조직폭력이니 하는 말보다 건달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안씨는 건달에도 족보가 있다고 말한다. 주먹 건달, 화류계 건달, 라인 건달, 양아치 건달이 그것이다. 주먹 건달은 말 그대로 정통파 주먹을 일컫는다. 돈보다 의리를 중시하고 나름대로 의협심이 있는, 이른바 ‘건달 정신’을 가진 부류다.

이에 비해 화류계 건달은 연예계나 사창가를 기반으로 한 주먹을 가리키는 것이고, 라인 건달이란 슬롯머신이나 카지노 등 도박 계통에서 성장한 건달을 일컫는다. 논두렁 건달로도 불리는 양아치 건달은 서민을 등쳐먹는, 말 그대로 동네 양아치 수준의 조무래기 주먹을 뜻한다.

안씨는 “진정한 건달은 돈을 좇아가면 안 되는데 요즘 주먹들은 오로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건달사회의 낭만이나 매력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건달에도 등급 있다

―자서전을 보니 ‘마지막 낭만파 주먹’으로 자처했던데, 무슨 뜻입니까.

“강아지에게도 혈통이 있듯 건달세계에도 혈통과 족보가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주먹들은 아주 잔인하거나 파렴치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하지만 혈통 좋은 건달들은 나름대로 멋이 있고 룰을 지킵니다. 정의감이 있고 신의를 소중히 여기죠. 저도 그런 점을 건달의 매력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싸움은 많이 했지만 절대 서민을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건달들 보면 똥개들, 참 많아요. 먹을 것만 주면 아무나 따라가고 무슨 짓이든 하는. 가수도 1류 2류가 있듯 건달도 등급이 있습니다. 3류 건달의 못된 짓을 두고 건달 전체를 매도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사회악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생활 안 했겠죠. 지금 생각하면 폭력은 어떤 경우라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인데, 그때는 마치 사회정의라도 구현하는 양 열심히 싸웠습니다. 유흥업소 이권 따위를 차지하는 일도 탈세 등 부정과 불법을 일삼는 놈들의 돈을 나눠 갖는 것쯤으로 여겼어요. 그런 돈은 뺏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서민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죠.”

―최근 검찰이 조직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대표적인 조직들의 우두머리나 중간급 보스들을 구속했는데, 요즘도 3대 패밀리와 같은 거대 조직이 주먹계를 휘어잡고 있습니까.

“지금은 양은이파니 서방파니 하는 거대 파가 없어요. 조직 자체도 의미가 없어졌고요. 그저 누구 밑에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내가 활동할 때만 해도 조직이라고 해봐야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소 조직이 수백 개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애들은 3대 패밀리에 관심도 없습니다.”

―검찰은 조양은씨나 김태촌씨를 조직폭력계의 대부로 여기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크다고 보지 않습니까.

“양은형님이나 태촌형님이 악명을 떨치게 된 데는 매스컴도 한몫 했습니다. 더 심한 사건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두 사람 말이 먹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다만 맹목적 추종자들이 어느 정도 있는만큼 영향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요즘 애들은 기존 세력을 인정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겸상’을 싫어합니다. 똑같은 범죄라도 양은이파니 태촌이파니 하는 과거 조직과 관련되면 1년 살 것을 10년 살게 되니까요. 그러니 과거 조직의 보스를 떠받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안토니파는 호남이나 서울 조직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세력이었다. 그렇긴 해도 굳이 구분하자면 호남 주먹패들과 가까운 편이었다. 그 탓에 경찰은 한때 안씨를 범서방파 부두목으로 잘못 파악하기도 했다. 그는 조양은·김태촌씨를 모두 형님으로 부른다. 그들이 전국구 주먹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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