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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전설적 주먹’ 2인 연쇄인터뷰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

  • 조성식 mairso2@donga.com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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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살인교사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은 안상민씨는 1991년 대전교도소에서 조양은씨를 만났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은 조씨는 당시 교도소에서 한 동을 혼자 쓸 만큼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조씨와 안씨는 한밤중에 통방하는 것으로 서로 안부를 확인했다. 한 달 후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안씨는 일과시간에 누군가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란다. 죄수 신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김태촌씨였다.

“아침저녁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태촌 형님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주먹세계의 허망함을 그때만큼 절실히 느낀 적도 없습니다.”

―주먹들의 이권 개입 실태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띤다고 들었습니다.

“전에는 주로 유흥업소나 도박장, 건설업계 등에서 이권을 챙겼습니다. 나이트클럽에 찾아가 지배인이나 전무 또는 사장을 불러내 ‘우리가 업소를 보호해 줄 테니 지분 20%를 달라’고 요구하죠.

건설업계의 경우 공사가 발주되면 사업주들은 아예 건달 몫으로 20%를 떼어놓습니다. 건달들은 해결사 노릇을 합니다. 말을 듣지 않는 업체를 찾아가 협박을 해 담합에 동의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해당업체 이사로 등재해놓죠. 경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매장에 어느 유명한 건달이 나타났다 하면 일반인들은 주눅이 들어 응찰을 포기하고 맙니다.



요즘 주먹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사채입니다. 주먹들이 움직이는 지하자금은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수천억 원대라고 보면 됩니다. 사채 이자수익에 비하면 유흥업소 이권은 아무것도 아니죠.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이권은 벤처기업입니다. 주먹들은 엄청난 지하자금을 배경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직접 운영하기도 합니다.

주식에도 많이 투자합니다. 주로 작전세력과 손을 잡죠. 작전에 개입할 때 주먹들이 확보하는 자금은 2000억∼3000억 원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언질을 받고 뛰어들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애꿎은 개미군단만 피해를 보는 겁니다. 제 주변에도 주식으로 재미본 주먹이 많아요. 과거 식구들이 저한테도 주식투자를 권유합니다. 2억∼3억 원만 투자하면 몇 달 안에 10억 원을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권엔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로 또 구설수에 오르면 공권력이 저를 가만두겠습니까.

과거 친분 있던 주먹들이 나보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사냐’고도 합니다. 나도 하루에 3000만 원씩 벌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 일 하지 않아도 그냥 들어오는 수입이었습니다. 200만 원짜리 구두를 사 신고 최고급 양복에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그때만 해도 세상이 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평소 주먹들에게 투자해 놓습니다. 그러다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맡기는데, 주먹들은 그때마다 용돈으로 몇 천만 원씩 챙깁니다. 그런데 쉽게 번 돈은 또 쉽게 나가더라고요.”

‘작전’에 동원되는 주먹계 자금

―얼마 전 과테말라에서 한국 동포들을 상대로 폭행과 갈취를 일삼던 폭력배들이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습니다. 검찰은 조직폭력배들의 해외 원정폭력이나 해외 범죄조직과의 연계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주먹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국내에는 설 땅이 좁거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교민사회에서 행패를 부리는 주먹들은 그야말로 양아치로 보면 됩니다. 과테말라에서 사고 친 놈들이 범서방파라는데 태촌형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놈들입니다.

잘 나가는 주먹들은 골프장, 도박장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어요. 현지에서 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수금하는 방식인데 이자수익이 엄청나죠. 또 해외에 나가 도박과 유흥비로 수억 원 또는 수십억 원을 탕진하는 주먹들도 적지 않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법망에도 걸리지 않고 놀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게 다 노태우 정부 때 실시한 해외여행자유화 탓입니다.

해외 범죄조직과의 연계에 대해 아직까지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검찰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죠. 일본 야쿠자와는 예전부터 교류가 있었지만 대개 친선 도모 차원입니다. 마피아와의 결탁은 앞으로도 10년 이상 걸릴 겁니다. 우리 건달들이 아직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선 영어부터 배워야겠죠. 그러나 국내 조직이 국제 조직과 손잡는 단계에 이르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조직간 전쟁이 눈에 띄게 준 점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지요?

“지금이야 건달들이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제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건달의 활동영역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이른바 나와바리(영역) 싸움이 치열했죠. 제한된 영역을 서로 차지하려다 보니 조직간에 피 튀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엔 오로지 유흥업소였어요. 호텔 나이트클럽 하나만 가져도 식구들 수십 명 먹여 살리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입원이 다양해졌습니다. 싸울 일이 별로 없죠. 예전엔 ‘다 내놓아’였는데 요즘은 ‘너 반 나 반’입니다. 웬만하면 타협하고 서로 피 흘리는 일을 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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