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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히딩크 신드롬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 박정욱 jwp94@sportsseoul.com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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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감독은 지난 1월10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불과 10여일 동안의 울산 전지훈련을 통해 그는 한국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노르웨이와의 데뷔전은 2-3패배.
  • 그러나 파라과이를 제물도 첫승을 챙기고, 두바이 4개국 대회에서는 축구팬들의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로봇’처럼 뛰어다니는 데만 전념했던 선수들이 ‘생각하는 선수’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히딩크’라는 세 글자는 축구계의 최고 화제이자 화두다.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히딩크’를 얘기한다. 도대체 ‘히딩크’가 뭐기에.
히딩크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이지만,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아니다. 그는 1946년 11월8일 태어났으니 올해로 55세다. 선수시절은 네덜란드와 미국 프랑스를 전전하며 그럭저럭 보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1960∼70년 중반까지 그의 고향팀인 스포르트 바세벨트를 시작으로 그라프샤프 등 2∼3부 리그를 거쳐 PSV아인트호벤, NEC브레다 등에서 프로생활을 했다. 76년 미국 워싱턴 디플로매츠, 77년 미국 새너제이, 1978~81년 프랑스 니즈메강에서도 활약했다. 국제대회 경력은 없다. 물론 A매치 골도 없다.

반면 그의 지도자 생활은 화려했다. 친정팀인 그라프샤프에서 4년 동안 유소년 코치를 지냈고 PSV아인트호벤에서 3년간 코치수업을 한 뒤 86년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부임해 90년까지 재임했다. 이때 그는 지도자로서 탄탄한 초석을 다졌다. 88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86~89년 네덜란드리그 4연속 우승, 88~90년 네덜란드 FA(축구협회)컵 3연속 우승 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90~91년 터키 페너바흐체 이스탄불을 거쳐 91년 스페인리그로 옮겨 발렌시아를 94년까지 지휘했다.

유럽리그에서 명성을 쌓은 그는 95년부터 98년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끈다. 4년 동안 재임하며 96유럽선수권대회와 98프랑스월드컵이란 두 차례의 굵직한 대회를 치렀고 나름대로 성과도 남겼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를 4강에 진입시켰다. 또 그는 쿠코, 오베르마스, 다비즈 등 대스타를 발굴했다.

곧이어 그는 스페인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1년 만에 스페인 레알 베티스로 자리를 옮겼고 2000년 5월까지 감독을 역임했다.

히딩크 감독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3월 초,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도 가족을 데려오지 않고 혼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레지덴셜룸에서 지낼 계획이다.





왜 히딩크인가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과 올림픽이 열리는 2년을 주기로,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감독들을 물러나게 한다는 부담을 안고 히딩크 감독을 선택했다. 왜 그인가? 감독 영입에 전권을 쥐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세종대교수)의 설명에서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이위원장은 한국 감독이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 외국인 감독의 영입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유명한 감독이고, 둘째 한국이 높은 벽으로 느끼는 유럽 감독일 것, 셋째 크라머, 비쇼베츠 등 그 동안 한국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동구권 감독은 배제한다는 것 등이었다. 여기에 지금 당장 한국 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지도자면 금상첨화였다.

몇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에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엠므 자케, 한국 프로축구 부천 SK 감독을 지낸 니폼니시, 크로아티아를 98프랑스월드컵 3위로 이끈 블라체비치 감독 등.

한국 축구 사정에 밝아서 적임자로 손꼽히던 니폼니시 감독은 협회의 미온적이고 때늦은 움직임으로 일본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블라체비치 감독은 한국행에 적극적이었으나 동구권이라는 점에서 차순위로 밀렸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한 감독은 자케와 히딩크였다. 이 가운데 자케는 한국행에 난색을 표했다. 남은 것은 히딩크 감독뿐이었다. 그 역시 한국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협회 가삼현 국제부장이 영입작전에 뛰어들어 히딩크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부장이 현지에서 어떻게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한국 쪽으로 끌어당겼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히딩크인가. 앞서 말한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도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설마’라는 반응을 보였다. 히딩크라는 거물급 감독이 세계축구의 변방인 한국에 와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고 가는 곳마다 좋은 성적을 남겼으니 한국으로서는 기대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월드컵을 유치해놓고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잔치 벌여놓고 남에게 떡이나 선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히딩크’라는 처방전을 들고 16강의 염원을 풀려는 것이다. 히딩크를 택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명 감독을 받아들여 한국 축구의 기틀을 새롭게 잡아보려는 거시적 안목일 것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이번 월드컵은 외국인 감독으로 치르지만 다음에는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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