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분석|히딩크 신드롬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 박정욱 jwp94@sportsseoul.com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2/4
한국 국가대표팀이 히딩크 감독 체제로 출범하면서 보여준 가장 뚜렷한 변화는 전술시스템의 교체다. 한국 축구는 그 동안 대인방어를 주 개념으로 하는 3-5-2시스템으로 일관해왔다. 박종환 감독이 그랬고 차범근 허정무 감독 때도 스리백이었다. 전술상의 개념 차이가 있었지만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전임 감독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새로운 전술을 익히게 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스리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술에 변화를 가져오려고 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의 울산 훈련을 지휘하면서 곧바로 포백 일자(一字) 수비가 핵심인 4-4-2시스템을 도입했다. 4-4-2시스템이 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들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미 한국 프로축구에서 여러 팀이 포백 수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4-4-2시스템은 다소 독특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형태의 4-4-2전술은 포백 수비가 있고 그 앞의 미드필드진은 양쪽 날개와 중앙의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구성돼 있어 마름모꼴을 이룬다.

반면 히딩크는 중앙 미드필더 2명을 수비형으로 나란히 세우고 중앙의 빈 공간에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을 내려 세워 공수의 연결을 맡게 한다. 따라서 4-4-2라기보다는 4-3-3이나 4-5-1의 형태로 곧잘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 프로축구의 부천 SK에서 볼 수 있다.



3-5-2냐 4-4-2냐는 전술의 문제다. 좋고 나쁘고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감독이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선수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경기에서 소화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바뀐 시스템에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조화를 이루느냐가 포인트다.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4-4-2인가. 히딩크 감독은 “4-4-2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장점은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비에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축구는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적이고 이를 위한 공격전술의 기본은 숫자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상대 선수 11명의 개인기량을 모두 제압하고 골을 넣는 신기(神技)를 갖추지 않은 이상, 시스템과 부분 전술이 필수적이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포백이 스리백보다 공격적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포백은 말 그대로 수비수가 4명이고 스리백은 3명 아닌가. 어느 것이 더 수비적인가. 수비수의 숫자만 놓고 보면 당연히 포백시스템이 더 수비적이다.v 그렇다면 스리백이 더 공격적인가. 이것도 정답이 아니다. 3-5-2 시스템에서 윙백들이 수비에 가담하면 수비수는 5명으로 늘어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변수다. 축구는 격렬하고 어느 스포츠보다 동선이 길다. 체력의 부담이 큰 종목이다. 상황에 따라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격적일 수도 있고, 수비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포백의 기본개념은 존 디펜스, 즉 지역방어다.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이 자기 지역을 지켜가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여 그물망처럼 진영을 구축해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이다. 초창기 4-4-2는 포지션별로 바둑판처럼 늘어서서 움직였지만 팀마다 변형된 형태가 등장했다. 요즘 유행하는 마름모꼴도 초기 형태의 변형이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 철학

히딩크 감독은 1월12일 울산 국가대표팀 훈련캠프에 합류한 뒤 13일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경기 외적인 면에서 더 많은 색깔을 드러냈다. 히딩크 축구는 합리적이지만 절대권력의 카리스마가 있다.

히딩크 감독이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이 규율의 강화였다.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움직일 때는 어떤 상황이든 복장을 통일할 것, 식사시간은 전 멤버가 같이 시작해 같이 끝낼 것, 시간에 늦을 때는 벌금, 단체가 모였을 때 휴대폰이 울려서는 안 된다 등.

이런 규율은 히딩크라는 지도자의 신념인 듯했다. 그는 1월17일 울산에서 네 차례의 연습경기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정해진 규칙과 규율에 따르면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엄격하게 대처할 것이다. 너무 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규율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규율을 지키고 강조해온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규율과 규칙은 히딩크 감독을 세계적 거장으로 만든 뿌리였다.

그렇다고 히딩크 감독이 마냥 선수들을 통제하고 옥죄는 것만은 아니다. 정해진 룰만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오히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 동안 ‘튀는 행동’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고종수(23·수원 삼성)는 “훈련에만 열중할 수 있게 배려해줘 오히려 편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선수단의 공식적인 단체행동 때 정해진 규율만 지키면 별도의 통제와 지시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감독이 선수들을 방으로 불러들여 면담하고 개인 행동에 간섭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히딩크 감독은 꼼꼼하고 세밀한 성격이다.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며 일일이 챙긴다. 이는 협회 직원들이 피곤해하는 부분이고 놀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은 코치나 협회 직원의 보고를 돋보기 안경 너머로 지켜보며 말없이 듣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지시한다. 그러나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법이 없다.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하기 전의 일이다. 출국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협회에 홍콩 훈련구장의 상태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정해준 구장을 쓰면 되는데 굳이 확인을 요구했다. 운동장 사정이 좋지 않으면 장소를 옮기겠다는 말이었다. 협회는 여자대표팀과 중국 광저우에 머무르던 국제부의 이영우 대리를 홍콩으로 급파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점검하고 홍콩에서 선수단을 맞았다. 이대리는 여자대표팀 때문에 중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남자대표팀 일에 투입되는 바람에 8년 만에 성사된 남북대결을 보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 훈련 도중 대표팀 장비 스폰서인 나이키 직원이 참가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며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나이키 직원이 왔을 때 2시간 동안 직접 면담을 하며 야단도 치고 협조도 부탁했다. 이렇듯 히딩크 감독은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러 세워놓고 아주 자세하게 잘못을 따진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 어떻게 드리블을 하며, 수비수를 등질 때는 어떤 방향으로 하는지 등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일일이 꼼꼼하게 설명한다. 훈련 도중 선수들과 고함을 지르고 웃고 떠들다가도 선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을 때는 호주머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녹음한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동향이나 기량 파악에도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었다. 한국 코치들과 미팅하며 이탈리아의 안정환(페루자), 벨기에의 설기현(로열 앤트워프), 독일의 이동국(브레더 베르멘) 등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물론 일본의 황선홍(가시와) 노정윤(세레소 오사카)의 근황과 몸상태까지 챙겼다.

울산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윤정환(세레소 오사카) 이을용(부천 SK)과 박재홍(상무) 등이 부상으로 빠지자 보강선수를 선발할 때 무명에 가까운 신상우(대전) 송종국(부산) 등을 지목해 한국인 코치들을 놀라게 했다. 상비군에도 없는 신상우를 거명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선수 파악은 베어백 코치에게, 한국의 문화와 언론상황은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에게 맡겼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쉽게 노출하는 법이 없다. 기자회견에서도 속마음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원칙론에 가까운 말만 되풀이한다. 울산훈련이 끝나갈 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훈련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누구인가”라고. 그는 대답을 피했다. “나는 선수들을 칭찬은 하지만 비난하지는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는 것은 우리팀 내부에서만 한다. 그것이 나와 선수의 약속이고 신의다.” 욕먹을 말과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능구렁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선수들의 유럽 진출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것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네덜란드에서도 클루이베르트나 다비즈가 독일로 갈 때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성공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빅리그의 명문클럽에 입단해 벤치만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같은 팀에서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곧 사라지는 것보다는 경기에서 계속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용의 꼬리보다는 차라지 뱀의 대가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그의 축구관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말이다.

히딩크 감독의 선수 선호도를 파악하면 단면이나마 그의 축구철학을 알 수 있다. 그가 주목하는 선수 가운데 박성배(전북)와 심재원(부산)이 있다. 박성배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 투지를 높게 샀고 심재원을 중용하는 것은 스피드가 좋기 때문이다. 이민성(상무)도 마찬가지. 허정무 감독 시절,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던 박진섭(상무)이 경쟁에서 밀린 것이 바로 스피드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훈련 도중 “큰 소리로 말해라. 고함을 쳐라. 그래야 팀워크도 살고 상대선수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파이팅과 투지를 강조한다.

히딩크의 눈에 들려면 유럽선수에 뒤지지 않는 체력과 체격, 스피드, 전술 이해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히딩크 체제에서 선수들의 변화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2/4
박정욱 jwp94@sportsseoul.com
목록 닫기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