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중소기업인 성공학|한국아스텐 문재식 대표

돈벌고 환경지키는 아스팔트 재활용 개척자

  • 곽희자 < 자유기고가 >

돈벌고 환경지키는 아스팔트 재활용 개척자

2/3
이렇듯 힘든 생활로 절망에 빠져 있던그는 한 동포의 소개로 한국인 교회를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목사에게 위로와 힘을 얻었다. 걸핏하면 “죽고 싶다”고 하니까 “죽는 거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죽을 용기로 뭐든 한번 해보기나 하고 죽어라. 죽으려는 놈이 뭘 못 하겠느냐”고 새벽마다 불러 기도해주며 용기를 줬다. 덕분에 그는 포기했던 삶을 다시 추스른다.

당시 그는 ‘1억 원만 벌면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기도했다. 이 약속은 훗날 노숙자 쉼터로 결실을 보게 된다. 이 쉼터에선 지난해 현재 사옥으로 옮길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200여 명의 노숙자에게 점심을 제공했다.

그 후 문씨는 피혁원단 가공공장에서 가죽옷을 재단해 만드는 봉제공장으로 직장을 옮겨 열심히 일했다. 사장에게 성실성을 인정받은 문씨는 86년부터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일본으로 나르는 일을 맡았다. 그러다 회사가 이 업무를 중단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일본 피혁회사들의 주문을 받아 국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그렇게 돈을 좀 모으자 그는 한국에서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볼 계획을 세우고 91년 귀국했다.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0년 전 낯설고 물선 일본땅에 홀로 던져졌던 것처럼 학연과 지연, 인맥 하나 없는 서울에 다시 홀로 섰다. 일본에서 벌어온 돈으로 자코라는 회사를 세워 가죽옷과 가방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했다. 그러나 불량품 사고가 크게 두 차례 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얼마 후 다시 동도인터내셔널을 만들어 피혁사업과 폐아스팔트 재생사업을 함께 벌인다.

“앞으로는 정보통신산업이나 환경산업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거리를 찾던 중에 일본에서 폐아스팔트 재생기를 보게 됐어요.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선 폐아스팔트의 70∼80%를 재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죠.”



기대에 부푼 그는 일본에서 100kg짜리 폐아스팔트 재생기 3대를 사들였다. 하지만 카탈로그를 들고 관공서를 찾아가도 설명을 들어주려는 이들이 없었다. 아이템은 좋았지만 그때만 해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극히 낮았기 때문에 사업전망이 불투명했다. 기계 용량이 적다 보니 사업성도 떨어졌다.

그런데도 문사장은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분명 가능성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며 대용량 기계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는 폐아스팔트 재활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피혁사업을 정리하고 94년 7월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을 설립, 7명의 직원들과 함께 기계 개발에 들어갔다. 모아둔 3억 원과 일본의 지인들에게서 빌린 3억 원을 보태 6억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성수동 뚝섬 야적장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그 안에 처박혀 기계에 매달렸다.

아스팔트가 쏟아지다

당시 일본의 재생기는 자체 동력을 사용했던 탓에 많은 양의 폐아스콘을 구울 수도 없었고 아스콘도 잘게 부숴 넣어야 했다. 문사장은 1t짜리 재생기를 만드는 데 LPG 가스를 이용했다. 재생기는 드럼통처럼 생겼는데, 내벽에 4∼6개의 바이트가 부착돼 아스콘이 잘 섞이게 한다. 통을 돌리면서 열을 가하는데, 이때 버너의 온도는 1200℃쯤 된다. 1t의 폐아스콘을 굽는 데는 18∼20분이 걸린다. 폐아스콘을 재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폐아스콘이 연소되지 않게 하는 것. 이때 회전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너무 빨리 회전하면 재생이 제대로 안 되고 너무 느리게 회전하면 아스콘이 탄다.

아스콘의 주 성분은 아스팔트유와 자갈, 석분 등. 아스팔트유는 원유 찌꺼기이므로 정지 상태에선 라이터 불만 갖다대도 타버린다. 이렇게 쉽게 타버리는 아스팔트유를 1200℃의 열에서도 연소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재생 아스콘을 만드는 기술이다. 만약 아스팔트유가 타버리거나 녹지 않으면 접착력이 없어져 아스팔트를 깔 수 없게 된다. 문사장이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시간, 회전속도, 열의 온도, 그리고 재료가 떨어지는 각도까지 정확해야 제대로 된 아스콘이 나온다. 이 모두가 맞아떨어지는 조건을 찾아내기까지 문사장과 직원들은 김포 쓰레기 매립장에서 폐아스콘을 실어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밤낮없이 부수고 구워댔다. 그렇게 구워낸 폐아스팔트가 수백t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던 95년 말, 마침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아스팔트가 쏟아져 나왔다.

기술 개발이 끝나자 기계를 만들기 위해 성수동에 500평 건물을 얻었다. 직원도 더 뽑았다. ‘회사를 위해서 가정을 버린다. 회사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한다’는 전투적인 사훈을 내걸고 30명의 직원과 함께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문사장은 전 직원이 관리와 영업, 애프터서비스, 현장공사까지 모두 치러낼 수 있게끔 교육했다. 직원이 들어오면 누구나 6개월간 공장 근무부터 시켜 기계에 대한 기본지식을 쌓게 했다. 그런 다음에는 현장으로 내보내 실습을 받게 한 후 영업이나 관리를 맡겼다. 사장인 자신도 기름때에 전 작업복을 입고 공장과 현장을 뛰어다녔기 때문에 아무도 불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전 직원의 일당백 능력경영’을 시도하자 적은 인원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기계가 만들어지자 카탈로그를 들고 다시 관공서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무원들에게 “폐아스팔트를 버리는 데도 돈이 들고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데도 돈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아스콘 재생기를 사용하면 폐아스팔트가 나오는 즉시 그 자리에서 새 아스콘으로 재생해 바로 깔 수 있다. 그러니 돈도 절약하고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다”고 열을 올렸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무료로 폐아스팔트를 처리해주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문사장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 기존 폐아스팔트 처리업체와 새 아스팔트 생산업체 모두 타격을 입게 될 뿐 아니라 일부 담당공무원들 이들과 얽혀 있었기 때문. 그는 그제서야 중소기업은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관(官)을 못 뚫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사장은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사람 사귀기에 나섰다. 이렇다 할 인맥도 없던 그는 한번 안면을 튼 사람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상대방 역시 자신을 잊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카드 한 장을 보낼 때도 받은 사람이 오래 기억하도록 직접 글을 썼다. 지난 연말에도 그는 600장의 카드에 각기 다른 글을 써 보냈다고 한다.

2/3
곽희자 < 자유기고가 >
목록 닫기

돈벌고 환경지키는 아스팔트 재활용 개척자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