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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대통령과 코미디언

박정희의 홍보맨 김희갑, 전두환의 희생양 이주일

  • 김재화 erobian@erobiannight.co.kr

박정희의 홍보맨 김희갑, 전두환의 희생양 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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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권이 들어섰다. 그의 사투리는 시중에서 저절로 개그로 만들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방 순시 도중 연설을 했다. 그는 경제 ‘위기’를 설명하고 그 도시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노라고 역설했다.

“우리 갱재는 이깁니다.”

우리 경제가 ‘이길 거’라는 말에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는 국민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힘을 내어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을 ‘강간’ 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 청중은 험악한 표정이 되었다. 환호를 기대했던 김영삼은 의아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라까이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사람들이 뒤집어진기라…”

야사에 따르면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코미디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도 말한다.

“YS가 당시 그린벨트를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을 배출한 S대학 출신 아닙니까? 그의 머리를 의심해선 안 되죠.”

그러나 S대학을 나오지도 못한 젊은 말재주꾼 엄용수, 심형래, 김형곤 등은 ‘밀실개그’를 통해 감히 김영삼의 머리에 자꾸 시비를 걸었다. 김영삼 대통령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 모음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 과정에 사실 여부를 떠나 수많은 루머가 탄생했다. 다음은 그중 하나.

YS가 클린턴을 만나러 갔다. YS가 ‘Danger!’라는 표시를 보고 “오우, 저 단거를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수행원이 얼굴이 벌게지며 설명하길 ‘G’가 우리말 ‘ㅈ’으로 발음되어 ‘데인저’라고 하자,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Oh, my god(ㅈ).”

김영삼은 독설로도 유명하다. 그가 당내의 끊임없는 반목을 이겨내며 결국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거칠 것 없고 공격적인 발언 덕분이었다.

여기서 잠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코미디언에 얽힌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한국에는 애당초 국가원수 모독이란 죄가 성립하지도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갓 쉰을 넘긴 제이 레노는 일개 코미디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미국사회의 그 어떤 명사보다 대중 인기도가 높고, 수입도 천문학적이다. 레노는 NBC-TV의 ‘투나이트 쇼’를 진행하면서 저 유명한 CBS-TV의 명코미디언 겸 사회자 데이비드 레터맨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무엇이 제이 레노라는 밤의 황제를 만들었을까? 바로 클린턴의 ‘공’이었다. 레노의 코미디는 모두가 현실정치를 직설적으로 빗댄 조크였다. 요즘 미국에서는 누군가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을 ‘Clinton-bashing’이라고 부른다. 클린턴 시대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셈이다.

클린턴과 제이 레노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성추문만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세계 분쟁지역에 평화를 심으려는 활동을 왕성히 해서 2000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물론 우리의 대통령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지만…. 이 무렵 레노는 말했다.

“A Nobel Prize for Bill? Close but no cigar.”

우리말로 직역하면 “뭐, 빌 클린턴에게 노벨 평화상을? 하지만 아쉽게 불발로 그쳤네.” 그것 뿐이다.

그러나 레노의 말을 들은 미국인들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Close but no sigar’는 ‘가까이는 접근했지만 상(시가)을 받지 못했다(아쉽게도 실패했다)’는 관용어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특별부위’에 ‘시가’를 꽂아 피운 엽기적 성행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니 레노의 말을 듣고 그 속에 담긴 이중의 뜻을 알아차린 미국인들이 포복절도할 수밖에….

레노는 클린턴을 소재로 한 코미디뿐 아니라 클린턴과 르윈스키를 닮은 사람을 발굴해서 이들에게 토막 코미디를 시켰다.

그들도 일약 유명 코미디언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대통령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코미디 소재가 되는 미국 같은 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5공 당시 탤런트 박용식은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당했다. 또한 드라마에서 가정부 등의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순자’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실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국회 연설에서 유머를 구사하지 않으면 ‘고문’을 했다고 핀잔을 주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 사람들은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 도량도 넓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싶어한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은 암살 당할 뻔한 순간에도 유머를 구사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김대중 후보는 선거전에서 부드러운 유머를 구사해 냉철하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이회창 후보와 차별화 전략을 폈다. 그것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절대적 요소는 아니었어도 최소한 10만표는 얻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과 이경규

코미디언 엄용수는 두 번의 결혼을 모두 파경으로 끝내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살 맛이 난다고 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열광적인 김대중 지지자다. 엄용수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음성모사를 아주 잘 하는데, 그중에 백미는 역시 김대중 대통령 흉내다.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흉내가 더 쉽다고 한다.

그러나 엄용수가 제이 레노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비판력이 떨어지는 것이 그 하나다. 우리나라의 코미디에는 네 가지 금지된 영역이 있는데 종교, 군대, 섹스, 정치가 그것이다. 코미디언이 재주가 있더라도 사회적 통념 때문에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창작의 자유’를 운운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DJ는 다변가에 달변가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화술을 지녔다. 많은 독서에서 찾아낸 무궁무진한 정보량이 뒷받침해주는 후천적 기술이겠지만, 정치상황에 맞는 방어적 논리어법이 그의 뛰어난 말솜씨를 만들었다. 김대중은 웃음을 아는 사람이다. 김대중은 영어(囹圄)의 몸일 때도 화초를 길렀을 만큼 꽃 가꾸기를 좋아한다. 꽃에 물을 주면서 인상을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코미디언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바로 김대중이다. 그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에 복귀한 뒤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해 총재로 있을 때였다.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 깜짝 출연해 코미디언 이경규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은 이경규 일행의 예고 없는(그 프로그램은 유명인을 전격 방문하여 인터뷰를 따내는 파격적 방식을 썼다)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맞아주었다.

이경규 : “총재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코미디언은 누굽니까?”

김대중 : “바로 이경규씨죠.”

나중에 이경규가 진짜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김대중은 천연덕스럽게 “이경규씨라고 말하지 않으면 편집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 인연이었을까? 그 뒤로 두 사람은 팬으로 가까워진다. 이경규는 김대중의 지지기반이 아닌 영남권 출신이고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 그런 그가 야당 총재 김대중과 ‘우호적인’ 대화를 길게 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김대중을 ‘코미디를 아는 정치인’으로, 이경규를 ‘정치를 아는 코미디언’으로 느꼈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최양락 팽현숙 부부, 이봉원 박미선 부부를 따로 만나 식사를 한 일이 있다. 이들의 만남은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요청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머감각이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어했던 개그맨 부부들이 원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우연일까?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많은 코미디언이 자발적으로 유세장을 쫓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했다.

초창기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는 다분히 인신공격적 성격이 짙었다. 코미디언들은 김대중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최근 김대중을 풍자하는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목소리와 분위기에 치중하고 있다. 신세대 개그맨 심현섭이 히트시킨 DJ 성대모사만 봐도 그렇다. 심현섭은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서서 다소 쉰 듯하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를 낸다.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 역시 코미디언의 뜻과는 무관하게 홍보 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수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이른바 ‘개인기’를 선보일 때 김대중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이것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중 곁으로 다가서는 데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 정권과 비교할 때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비틀어 코미디를 만들기는 쉬운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일보했다는 진단이 가능할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유머도 가능하지 않을까?

몇 사람이 음주운전에 걸렸다.

이인제 : “젊은 혈기에 한잔 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회창 : “법대로 하세요. 나는 결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안주만 먹었어요.”

김영삼 : “내가 운전하기 전에는 몰라도 운전대를 잡고는 한 방울도 먹지 않았어요.”

김대중 : “한잔을 먹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미 술이 깼잖아요? 그래도 딱지를 떼려면 떼요. 나는 절대 보복 안 하니까….”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의 통치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좀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이런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서 어떤 스타일로 넘어갈까?

이승만 : 넘어가다가 코가 깨진다.

박정희 : 반만 밀고 간다.

최규하 : 운다.

전두환 : 깨부수고 간다.

노태우 : 누가 데려다 주길 기다린다.

김영삼 : 뚫고 가는 척하면서 뒤로 넘어 간다.

김대중 : 한없이 기다렸다 간다.

코미디는 사회의 반영

막힌 사회일수록 카더라 통신이나 유비통신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좌에 있는 사람을 평민이 질타하는 사회라면, 그나마 민주주의의 희망이 보이는 게 아닐까?

기쁨이 웃음을 만들어 내는 필요조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웃음 안에 기쁨이 서식한다는 보장은 없다. 웃음의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슬픔 감추기, 쇠약해진 인간의 몸부림, 모순에 대한 설명, 갈 수 없는 나라를 꿈에 본 여행기, 악마를 감춘 이중성, 라이벌 죽이기, 뒤틀림의 소산, 최고 통치자의 입을 빌려 펼치고 싶은 지도철학…. 어쩌면 우리 시대의 대중은 그런 코미디를 이해하는 대통령을 원할 듯하다.

신동아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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