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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전문위원의 현장고발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 주강현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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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굴범들이 한번 휘젓고 지나간 다음에 고고학자들이 뒤늦게 ‘역사적 발견’이란 식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으며 발굴에 들어가는 나라,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주체가 오히려 파괴에 적극적인 이상한 나라, 유적을 복원한다며 드릴로 화감암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희한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보존 현주소다.
캄보디아의 고대 앙코르왕국(657∼1432년)이 전성기를 누리던 12세기 초에 세워진 앙코르와트사원. 둘레 6㎞에 달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미국 CNN방송은 지난해 처참하게 잘려나가고 있는 앙코르와트사원의 실상을 방영하여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도굴꾼들은 기계톱을 동원하거나 원시적인 지렛대는 물론이고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사원 벽면과 석상을 잘라냈다. 불상은 머리통이 잘린 채 흉물스러운 잔흔을 남기고 있다. 약탈된 문화재들은 이웃 방콕으로 넘어가서 국제시장으로 팔려나간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뜻있는 한국인들도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에 의하여, 더 나아가 6·25전쟁 기간을 통하여 이와 같은 도굴과 파괴가 한반도 전역에서 비슷한 상황으로 벌어졌음을 고려할 때 남의 일이라고 비판만 할 수 있을까.

현재 중국언론에서는 양쯔강 중류에 건설되고 있는 산샤(三峽)댐 건설 속보를 속속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양쯔강에는 불후의 명작‘이소(離騷)’의 작가인 초나라 굴원(屈原)의 옛집과 삼국지의 무대 백제성(百帝城)이 있다. 상류의 펑제(奉節)에서 하류의 이창(宜昌)에 이르는 곳곳에는 명·청조의 누각을 비롯한 수천 점의 중요 문화재가 산재한다. 유구한 양쯔강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수량으로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매장문화재가 숨겨진 곳이다. 또한 강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해온 이들의 오랜 취락과 그네들의 삶의 양식이 간직한 문화총량은 도저히 계산 불가능할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보도는 천편일률적이다. 수몰될 8만명의 이주 완료, 세계 최대규모의 댐, 280억달러의 예산, 연간발전량 850억㎾/h 등이 거론될 뿐이다. 세기적 대역사로 중국정부의 21세기 야심작임에 틀림없으나 문화재파괴는 ‘보도통제’되고 있다. ‘현대화 신화’에 몰입한 중국정부의 개발드라이브 정책에서 ‘거추장스러운’ 문화재보존 따위는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샨샤댐보다는 작지만 우리에게도 크고작은 댐, 저수지, 간척지, 공장부지, 항구, 도로, 아파트단지 등이 건설되었거나 앞으로도 속속 들어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유산이 정처없이 쫓겨나거나 파손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중국의 샨샤댐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를 무조건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또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원목을 ‘고급 취미’로 선호하게 되었다. 이면지를 쓰자는 구호만 들릴 뿐 종이낭비 지수도 세계적이어서 나무 소비량이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남방으로 진출하여 원시림을 벌목, 일부는 들여오고 일부는 재가공하여 제3국에 수출한다. 벌목으로 인하여 숲은 줄어들고, 수천년간 숲에 의지하여 살아온 소수민족들의 문화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있다. 단순한 문화 차원이 아니라 삶의 근거지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

이런 일은 멀리 극동시베리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의 무형문화 파괴에 한국기업이 일조하고 있는 사례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이처럼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문제는 일국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와 산업화, 현대화 등의 담론으로 무장한 개발론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화유산의 보존이란 담론과 대척점에서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의 2001년 현주소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의연한 전통, 멈추지 않는 도굴 행렬

오늘의 문화유산 보존을 가로막는 최대문제의 하나는 역시 절도와 도굴이다.

2000년 국내 고고학계가 세운 커다란 성과 중 하나는 고려말 박익의 무덤에서 발견된 사면 풍속화 발굴일 것이다. 그런데 서쪽면과 동쪽면에 그려진 인물행렬도를 통하여 고려 후기 남녀 복식과 생활풍속을 확인케 해준 박익의 무덤도 이미 도굴범에게 털린 상태에서 발견되었으며, 도굴범들은 한쪽 벽면을 허물어 풍속화를 망쳐놓은 상태였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무령왕릉과 다호리고분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적인 발굴 야사를 들추어보면, 도굴범들이 한번 휘젓고 지나간 다음에 고고학자들이 뒤늦게 ‘역사적 발견’이란 식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으며 발굴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도굴범의 솜씨가 한 수 위라는 말이다.

부질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도굴범을 국가공무원 자격을 갖춘 매장문화재발굴단으로 변신시킨다면? 물론 농담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성공 사례도 있다. 광복 직후에 고고학발굴단을 만들면서 한때 도굴세계를 주름잡던 이들을 ‘사상개조’해서 발굴단에 편입시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도둑놈 한 놈을 열 명이 막을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도굴범을 막기 위한 감시원 숫자도 터무니없이 적다.

가령 경주는 시내뿐 아니라 시 외곽에도 문화유산이 지천이다. 도심에 자리잡은 유산들은 사람 눈에 잘 뜨이는 관계로 그런 대로 보존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도심 외곽의 유산들이다. 인적조차 드문 산길에 자리잡거나 숲속의 호젓한 왕릉을 기십명밖에 안 되는 경주사적관리소감시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문화재에 대한 제반 규제는 정부에서 행하지만, 관리는 빈약한 재정에 시달리고 있는 지자체에서 떠맡는 현실 때문이다. 도굴범에게는 천혜의 작업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격. 더욱이 쓸쓸한 산야에 퍼져 있는 민묘(民墓)는 아무런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11월26일 한나라당 하순봉의원에게 제출된 국감자료에 의하면, 경북지역에서만 1997년 사적 24호 진덕왕릉, 1998년 국보40호 정혜사지 13층석탑이 각각 도굴됐다. 이런 식으로 경북에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국보와 보물 등 12건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도난·도굴·화재로 파손되거나 분실되었으며 지방문화재는 무려 33건이 훼손되었다.

등록이 되어 있고 간판이라도 서 있기 때문에 세인의 주목을 받는 지정문화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문제는 비지정문화재다.

불교 조계종은 전국 각지의 산야에 흩어져 있는 사찰의 비지정문화재가 문화재 절도범들의 집중 표적이 되자 비지정 문화재 보호를 위한 법령을 마련해 정부에 입법청원했다. 전국 사찰에서 관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이전 문화재급 유물은 모두 1만5000여 점에 이른다. 문제는 상당수가 비지정이며, 도난의 주공격대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9월4일 문화재청은 비지정문화재 절도사범에 대해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정한 문화재보호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비지정문화재 절도사범은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단순절도범과 큰 차별성이 없어 재범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 도굴범들에게는 도굴이 하나의 직업일 뿐으로 대부분 비지정문화재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세인들은 지정문화재가 월등히 뛰어나고 비지정문화재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정문화재가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또는 사료가치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 비지정문화재가 덜 중요하거나 문화재적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비지정문화재가 빛을 못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비지정문화재가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개인 소장가를 비롯하여 곳곳에 산재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것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비지정문화재 보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도굴과 도둑질은 무형문화 쪽에도 예외가 없다. 구체적 사례로 장승절도사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수백년간 우리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해온 장승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남 강진 병영을 지켜주던 자그마한 벅수 한쌍, 경남 사천군 축동리의 벅수 한쌍도 사라졌다. 현재 그런 대로 보존되고 있는 다른 장승들도 무형문화정책의 무관심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제주도에서는 동자석이 수난을 겪고 있다. 무덤을 지켜주는 동자석은 자그마한 키에 완상적 취미를 자극하는 미묘한 표정 때문에 오래 전부터 수난을 겪어 왔다. 우선 크기가 작아 훔치기 편하고, 자동차 트렁크에 쉽게 실리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동자석이 놓인 곳은 모두 마을에서 떨어져 한적한 숲속 무덤들이기 때문에 도둑들이 마음놓고 훔쳐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훔쳐낸 동자석이 수만 기를 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제주도에 가도 진짜 동자석은 숫자를 헤아리게 되었다. 차제에 도난당한 장승 중 대표적인 것 2기를 지명수배한다.



도갑사를 지키던 도갑사의 호법장승. 1989년 무렵에 사라졌다. 도갑사 들어가는 길목에 한 쌍이 서 있었다. 조선후기에 호남일대에서 널리 세워졌던 전형적인 돌장승이다



마을의 안녕을 빌던 장승으로 해마다 장승제를 지내고 소뼈를 목에 매달았다. 역신과 악귀를 쫓는데 효험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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