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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전문위원의 현장고발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 주강현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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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존의 최대 논란거리는 역시 개발인가 보존인가 하는 해묵은 과제 아닐까. 지자체의 빠듯한 살림 속에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겠다는 경제논리가 문화논리를 앞서면서 문화유산 분야에도 속속 문제가 터지고 있다. 신자유시장의 밀어붙이기는 문화유산에서도 예외가 없다. 몇가지 사례만 살펴보아도 개발의 진통이 무척 심함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용인 난개발이 문제가 되어 신문지상을 뒤덮었다. 그 난개발의 파도는 문화재도 가차없이 폐기시켰다. 가령 구성면 보정리에 있는 예진산(일명 임진산)은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성을 쌓고 왜군의 북진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고 97년 개발 도중 조선시대 현자총통 2정이 발굴되기도 했으나, 깡그리 절토된 뒤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서해안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패총단지도 무분별한 개발로 크게 훼손되었다. 시화간척지에서 시흥 신도시를 잇는 2㎞의 도로공사가 진행중인데, 학계나 전문가들이 거세게 반대하였지만 도로공사는 강행되었다.

이곳에서는 흔적이 뚜렷한 선사시대 주거지를 비롯해 빗살무늬 토기 파편과 각종 토기류 1000여 점이 발견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 도로공사 때문에 주거지가 완전 파괴돼버렸고 처음 유물의 존재를 알려준 패총도 포클레인 바가지에 뭉그러져 버렸다. 물론 오이도 주민들과 시흥지역 시민단체, 시의회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인천직할시에 소속된 사적 ‘녹청자도요지’를 만나려면 골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211호 ‘녹청자도요지’가 원형을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로 골프장 필드(잔디 땅)에 반쯤 묻혀 있기 때문.



인천시 서구 검암동 438 국제컨트리클럽 구내 17번홀과 18번홀 사이에 반지하 상태로 있는 이 ‘녹청자도요지’는 10세기경(고려시대 초기) 토기에서 청자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에 생산되었던 자기를 굽던 곳으로 우리나라 초기 청자연구에 귀중한 도요지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5년 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합동으로 발굴조사, 70년 6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211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난 68년 국제컨트리클럽측은 이곳에 골프장을 조성했다. 물론 보호막사를 만들고 보호망을 쳐놓긴 했으나 이 일대를 높게 성토하는 바람에 도요지의 위치가 낮아져 물이 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구(굴뚝부위) 4곳과 요상, 굽받침(도지미) 등은 78년 보호막사 증축공사 과정에서 건축폐자재와 뒤섞여 소실돼 복원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이 93년 10월 현지 조사에 나서 도요지 부지 5809㎡중 5703㎡가 사실상 골프장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지적, 인천시에 이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보호되고 있지 않은 실정.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세수증대를 위해 추진하다 주민 반대로 무산됐던 자연휴양림 개명산과, 문화재보호구역인 서삼릉 인근 고종황제 후궁이자 의친왕 생모인 덕수장씨 묘역에 골프장건설을 재추진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컨트리클럽이 추진중인 골프장 편입부지는 전체면적의 73.4%인 31만2500㎡가 개발제한구역내 임야인데, 덕수장씨 묘역이 편입부지에 둘러싸인 채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또 올림픽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올림픽스포츠코퍼레이션은 최근 주민 86명의 동의서를 첨부해 벽제동 산2의 1일대 29만8000㎡ 에 9홀 규모의 월드컵골프장을 신설하기로 하고 도시계획변경을 추진중이다. 월드컵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오랜 수목들로 우거진 19만6300㎡의 임야가 사라지기 때문에 자연환경 훼손과 재해발생을 우려한 주민들과 고양시민회 등 시민단체들이 줄곧 반대해왔다.

보존과 개발 문제에서 정작 보존의 주체가 되어야 할 단체가 도리어 파괴에 나서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봉정암 헬기장 공사로 인한 계곡 파괴가 대표적 사례. 설악산 한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나라 사찰과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봉정암은 암자 뒤 계곡에 불법으로 헬기장을 조성하면서 주변의 수목과 바위를 마구 훼손하였다. 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인 설악산이 불법 헬기장 조성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사찰측은 93년 요사채를 신축할 때도 허가면적을 어기고 주변을 훼손했으나 원상복구시키지 않았다. 관리당국의 허술한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이 설악산 훼손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정작 인제군 당국은 훼손 현장에 대한 원상복구 여부는 상급기관인 문화재청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소극적인 자세인데다, 공사중단 지시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 못하고 있는 등 관리능력의 허점도 드러냈다.

드릴로 구멍뚫는 복원 작업?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익산미륵사지를 갈 때마다 느끼는 의문점의 하나는 왜 그렇게 ‘두부썰듯’ 반듯하게 돌을 잘라서 복원했는가 하는 점이다.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더러라도 손작업을 하여 돌을 챙겼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경기도와 광주군도 남한산성을 복원하면서 기존 화강암석과 막돌 대신 기계로 ‘두부 자르듯’ 자른 화강암석으로 공사를 진행해 문화유적을 오히려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식의 문화유적 파괴 행위는 이미 북한산성과 경기도 이천 설봉산성 등의 복원공사에서도 나타났다. 미아리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북한산성 줄기에 네모반듯하게 기계로 자른 화강암들이 ‘무식하게’ 옹벽을 들이미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화강암에는 드릴로 구멍을 뚫어 잘라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돌이끼가 끼고 풍화된 화강암석과 막돌로 쌓아올려 고색창연하던 남한산성은 오간 데 없다. 복원이 아니라 새로 신축한 성벽 같다.

더군다나 성벽 복원에 소중하게 사용됐어야 할 원래의 돌들은 새로 쌓은 성벽 안쪽에 묻히거나 길바닥에 나뒹굴어 복원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거금을 들인 남한산성 복원의 현주소다.

사적지로 지정되었다손 치더라도 현실은 명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변산반도 부안의 진서리 도요지에 가면 고작 표지판 하나 동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다. 붉은 흙을 빼놓고는 어디서고 도요지란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

연천군 전곡리 일대는 1979년에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구석기 유적지로 잡초만 무성할 뿐 방치된 상태. 임시 컨테이너 박스에 관리인조차 없이 쓸쓸하게 있다.

사적 제268호인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는 기원전 50만~30만년 전의 아슐리안계 전기 구석기인 양면 핵석기와 돌찍개, 클리버, 돌긁개, 돌망치 등 2681점의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대부분의 유물이 서울대박물관과 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주먹도끼와 찌르개가 함께 발굴돼 기존 서양 중심의 양대문화권 이론을 뒤엎는 등 당시 세계학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나 1000여평의 유적지는 울타리도 없이 좁다란 진입로에 방진막용 비닐과 짚더미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유적지 발굴지점을 표시하는 현황판조차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다. 심지어 주변 23만평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일부 보호구역에 모직공장과 사슴목장이 들어서 주변 구릉지 곳곳이 패고 돌화살촉 등 구석기유물이 파손된 채 널브러져 있다.

익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절터는 두말할 것 없이 백제문화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곳. 그러나 관광객이 온다 싶으니까 미륵사지 앞 도로는 음식점, 찻집, 심지어 노래방이 마구잡이로 번성하고 있다. 일종의 유원지다.

거기다가 미륵사지에서 겨우 1km 떨어진 곳에 아파트 업체가 아파트건립을 신청해놓은 상태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해발 428m밖에 안되는 미륵사지는 아파트 조경물로 전락할 처지다.

2001년에는 울주 반구대암각화가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지자체 쪽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그 중요한 유적지를 그대로 놔둘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반구대 일대를 선사유적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비슷비슷한 음식점과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차서 뛰어난 풍광과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암각화 유적의 경관을 망칠 것이 뻔한 일. 관련단체들이 들고일어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례는 경북 제2석굴암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석굴암을 발견하고 지정하는 단계에 미리 사유지를 매입해 모두 사적지구로 지정하지 못한 결과, 주변이 온통 음식점으로 들어차서 유적을 보러 왔는지 음식을 먹으러 왔는지 본말이 전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본질을 왜곡시킨 개발이 가져온 병폐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울주반구대의 선사문화공원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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