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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500호 기념 집중진단

한국 중심집단의 모럴 해저드 극복방안

  • 김태룡 상지대교수 최성섭 경원대교수 문형구 고려대교수

한국 중심집단의 모럴 해저드 극복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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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 환란 이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언론매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제용어가 됐다. 사회 각 분야에 만연된 도덕적 해이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 김태룡 상지대교수 >

도덕적 퇴폐, 부패가 극에 달했던 서로마 제국은 서기 476년에 멸망했다. 패배를 몰랐던 로마가 내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해 제국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년 전 외환위기는 외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두 나라 국치의 원인이 같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유일까?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한국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다른 부문들은 그래도 건전한데 금융기관만 유독 도덕적 해이에 빠져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그랬을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진단인데도 국민들은 이런 주장을 믿고 싶어했고 금융기관이 다시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은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는 집단은 오히려 정치권과 관료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보험정책의 좌초, 실업자 100만 돌파, 빚더미 지자체, 교육의 붕괴, 성과급 나눠먹기, GDP의 절반이 넘는 나라빚, 무책임한 공적 자금관리, 공기업 낙하산인사, 공기업의 퇴직자에 대한 거액 위로금 지급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경제위기의 주 원인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과 관료집단이 변하지 않는 한, 회자되는 그 많은 개혁들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다.

도덕적 해이란 원래 보험산업에서 보험제도의 완벽한 성립을 방해하는 요인(시장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 거래나 계약을 맺을 때 정보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나 행동, 즉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적 해이를 통제해야 할 제도적 장치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어, 경제 주체들을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긴장시키지 못함으로써 정상적인 시장질서를 해치고 나아가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경제적 의미로만 사용되던 도덕적 해이 개념은 그 후 의미가 확대되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태만하게 행동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게 된다.

도덕적 해이를 넓은 의미로 해석할 때, 관료의 도덕적 해이란 시민의 대리인인 관료가 윤리적 혹은 법적 대리인 노릇을 다하지 않거나 게을리해 주인인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료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결과 사회질서는 위협받고 정부정책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전문성, 통합성의 부재

최근에 이르러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사회질서와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관료들은 발전의 역군이라는 평가를 뒤로 한 채 위기의 관리자가 아닌 조성자로 변모했다. 이처럼 한국의 관료집단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은 관료들이 지닌 정보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업무의 전문성이나 관료조직 내의 통합성은 대단히 열악하다.

의료정책의 실패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관료집단은 정책을 수립하면서 의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문제 해결방식이 의료정책의 수혜자인 시민을 배제하고 의사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전문성이 결여된 관료집단의 정책은 시민들의 의료비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더해 의료보험재정 파탄의 경우는 정부 부처간에 정보교환의 부족은 물론 시종일관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김대중 정부만 지닌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결정에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 부처장들과 관료집단 간의 상치된 이해 때문에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현 정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실 붕괴, 공적 자금 관리 그리고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파행적인 행정관리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부처 장관이나 자치단체장의 대중주의(populism)에 근거한 개혁방식과 이에 대한 기존 관료조직 간 마찰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즉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 자치단체장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관료제적 현실과 대중적인 개혁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인지하고도 이를 거부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켰다.

합리적인 인센티브 제도와 공평한 인사정책이 관료집단에 갖춰지지 않은 것도 도덕적 해이를 가속화한 원인 중 하나다. 어느 조직에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지만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의 부재가 관료들의 무임승차를 조장해왔다. 관료들은 스스로 전문성을 배양할 필요성도, 더 나은 행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자극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관료 내부의 불공정한 인사정책은 수혜과정에 배제된 관료들을 도덕적 해이의 유혹에 빠지게 했다. 그럼에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권은 관료집단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였으니 애초부터 기대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었으며, 대리인인 관료를 감시해야 할 주체인 시민들은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 연명하기에도 급급했으니 관료집단이 보이는 도덕적 해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국가 경쟁력 저하의 원인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져오는 악영향은 실로 심각하다. 공적 자금의 관리부재로 인한 손실은 기하학적인 숫자라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책임하게 사업을 벌여 진 빚은 20조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의 관료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속셈으로 수익도 크지 않은 지방공기업 설립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실업자는 100만을 돌파하고 주식은 곤두박질치는데 경제부처의 장들과 관료집단은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일관된 원칙도 없이 끌려 다니고만 있다. 당장 끌어들이기 쉬운 연기금을 동원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관료들의 안이한 발상도 그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 갈지 의문을 갖게 한다. 향후 시민들에게 부채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이런 정책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이로 인한 사회적 자원의 낭비와 국가경쟁력의 저하를 어떻게 담보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참으로 심각하다.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다시 국치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우선 관료의 주인인 국민은 정보의 비대칭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해 그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많은 학자가 이미 언급해온 것이지만 관료란 기본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을 증가시켜 조직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속성을 지닌 존재다. 시민의 대리인인 관료는 자신들의 주인인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계약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본능이 더욱 강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에 나섰지만 관료 조직은 오히려 커졌고 인력 감축도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관료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관료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관료의 선정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장관의 임면이나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그들이 모셔야 할 주인인 국민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또 일단 선출된 뒤의 감시도 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모든 정부부처 장을 포함한 관료의 선발과 사후 과정에 이들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시민감사제나 시민소환제 그리고 고위직 관료에 대한 평가결과 공개제 등과 같은 제도를 현실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관료집단 내부의 할거주의와 급격한 분권화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 국민들이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을 통해 관료집단을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경쟁 무풍지대, 한국의 관료집단

다음으로는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 하나는 적극적 유인체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는 방식이다. 한국의 관료집단은 오랫동안 집단주의문화에서 성장해왔다. 이 집단주의문화가 지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에 대한 성과가 무시되는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 과도한 집단주의문화는 조직 내에서 관료가 성과를 올릴 필요도,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당위성도 없는 경쟁 무풍지대로 만들었다. 심지어 관료들이 조직의 성과에 무임승차해도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풍토가 조성됐다. 그 결과 관료집단의 생산성과 전문성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따라서 역선택에 따른 부작용과 과도한 집단주의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관료들의 실적과 정책성과에 대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개된 정보에 따라 보상체계가 결정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조직의 성과에 무임승차해도 정년퇴직 때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종신 고용제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정 행위에 대한 투명성 제고와 사회적 관계를 통한 통제장치의 강화도 요구된다. 행정행위에 대한 투명성 확립이야말로 도덕적 해이 극복의 핵심 요소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도 누가 잘못했는지, 그 많은 공적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누가 이를 집행했는지, 의약분업의 실시로 보험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누가 이를 계획하고 집행했는지를 추적하지 않는 관료조직의 불투명성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고 추적할 수 있는 정책실명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정책실명제와 함께 주식회사나 은행에서 실시하고 있는 피해에 대한 임직원들의 연대책임제도를 관료조직에도 도입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에 의해 손실이 발생한 경우엔 관료들이 손해 액수의 일정 비율을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도 강화돼야 한다. 현재 유명무실하다고 평가받는 공무원윤리법에 관료들이 이행해야 할 계약조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의무의 불이행이나 해태가 가져오는 손실을 관료들이 보상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필요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 통제장치로 정책수립단계에서부터 종결단계에 이르는 전 과정의 정책 내용을 공개해, 철저하게 검증을 거치는 시민정책 평가제도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대안과 더불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외적 요인인, 정치권의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민정부라는 미명하에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대중주의적 개혁은 전문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정책수립의 장에서 관료들을 소외시켜 관료집단이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정책수립의 장에서 소외된 관료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됐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료들이 대중주의적 개혁의 단순한 집행자로 전락해,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개혁세력의 행태도 관료조직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개혁정책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하고 실패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개혁정책을 ‘선’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사고로 무장돼 있는 이들의 개혁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는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현재 개혁 주체들이 보이는 비합리적·대중주의적 개혁방식, 행태가 바뀌어야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파생되는 천문학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현재와 같은 정치집단의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이나 행태가 아닌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관료의 도덕적 해이의 제거는 집권에만 눈먼 정치 집단들의 개혁만능주의, 개혁을 내건 전시적이고 공허한 도덕 재무장 같은 구호성 운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윤리성을 갖추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관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허한 도덕 재무장운동이나 개혁을 위한 개혁운동은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관료와 그렇지 않은 관료를 동일선상에 놓는 우를 범할 수 있고 그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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