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한국 중심집단의 모럴 해저드 극복방안

  • 김태룡 상지대교수 최성섭 경원대교수 문형구 고려대교수

    입력2005-04-15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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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 환란 이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언론매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제용어가 됐다. 사회 각 분야에 만연된 도덕적 해이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 김태룡 상지대교수 >

    도덕적 퇴폐, 부패가 극에 달했던 서로마 제국은 서기 476년에 멸망했다. 패배를 몰랐던 로마가 내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해 제국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년 전 외환위기는 외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두 나라 국치의 원인이 같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유일까?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한국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다른 부문들은 그래도 건전한데 금융기관만 유독 도덕적 해이에 빠져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그랬을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진단인데도 국민들은 이런 주장을 믿고 싶어했고 금융기관이 다시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은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는 집단은 오히려 정치권과 관료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보험정책의 좌초, 실업자 100만 돌파, 빚더미 지자체, 교육의 붕괴, 성과급 나눠먹기, GDP의 절반이 넘는 나라빚, 무책임한 공적 자금관리, 공기업 낙하산인사, 공기업의 퇴직자에 대한 거액 위로금 지급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경제위기의 주 원인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과 관료집단이 변하지 않는 한, 회자되는 그 많은 개혁들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다.

    도덕적 해이란 원래 보험산업에서 보험제도의 완벽한 성립을 방해하는 요인(시장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 거래나 계약을 맺을 때 정보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나 행동, 즉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적 해이를 통제해야 할 제도적 장치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어, 경제 주체들을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긴장시키지 못함으로써 정상적인 시장질서를 해치고 나아가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경제적 의미로만 사용되던 도덕적 해이 개념은 그 후 의미가 확대되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태만하게 행동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게 된다.

    도덕적 해이를 넓은 의미로 해석할 때, 관료의 도덕적 해이란 시민의 대리인인 관료가 윤리적 혹은 법적 대리인 노릇을 다하지 않거나 게을리해 주인인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료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결과 사회질서는 위협받고 정부정책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전문성, 통합성의 부재

    최근에 이르러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사회질서와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관료들은 발전의 역군이라는 평가를 뒤로 한 채 위기의 관리자가 아닌 조성자로 변모했다. 이처럼 한국의 관료집단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은 관료들이 지닌 정보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업무의 전문성이나 관료조직 내의 통합성은 대단히 열악하다.

    의료정책의 실패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관료집단은 정책을 수립하면서 의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문제 해결방식이 의료정책의 수혜자인 시민을 배제하고 의사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전문성이 결여된 관료집단의 정책은 시민들의 의료비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더해 의료보험재정 파탄의 경우는 정부 부처간에 정보교환의 부족은 물론 시종일관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김대중 정부만 지닌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결정에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 부처장들과 관료집단 간의 상치된 이해 때문에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현 정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실 붕괴, 공적 자금 관리 그리고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파행적인 행정관리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부처 장관이나 자치단체장의 대중주의(populism)에 근거한 개혁방식과 이에 대한 기존 관료조직 간 마찰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즉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 자치단체장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관료제적 현실과 대중적인 개혁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인지하고도 이를 거부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켰다.

    합리적인 인센티브 제도와 공평한 인사정책이 관료집단에 갖춰지지 않은 것도 도덕적 해이를 가속화한 원인 중 하나다. 어느 조직에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지만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의 부재가 관료들의 무임승차를 조장해왔다. 관료들은 스스로 전문성을 배양할 필요성도, 더 나은 행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자극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관료 내부의 불공정한 인사정책은 수혜과정에 배제된 관료들을 도덕적 해이의 유혹에 빠지게 했다. 그럼에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권은 관료집단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였으니 애초부터 기대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었으며, 대리인인 관료를 감시해야 할 주체인 시민들은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 연명하기에도 급급했으니 관료집단이 보이는 도덕적 해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국가 경쟁력 저하의 원인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져오는 악영향은 실로 심각하다. 공적 자금의 관리부재로 인한 손실은 기하학적인 숫자라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책임하게 사업을 벌여 진 빚은 20조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의 관료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속셈으로 수익도 크지 않은 지방공기업 설립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실업자는 100만을 돌파하고 주식은 곤두박질치는데 경제부처의 장들과 관료집단은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일관된 원칙도 없이 끌려 다니고만 있다. 당장 끌어들이기 쉬운 연기금을 동원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관료들의 안이한 발상도 그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 갈지 의문을 갖게 한다. 향후 시민들에게 부채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이런 정책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이로 인한 사회적 자원의 낭비와 국가경쟁력의 저하를 어떻게 담보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참으로 심각하다.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다시 국치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우선 관료의 주인인 국민은 정보의 비대칭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해 그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많은 학자가 이미 언급해온 것이지만 관료란 기본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을 증가시켜 조직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속성을 지닌 존재다. 시민의 대리인인 관료는 자신들의 주인인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계약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본능이 더욱 강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에 나섰지만 관료 조직은 오히려 커졌고 인력 감축도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관료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관료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관료의 선정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장관의 임면이나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그들이 모셔야 할 주인인 국민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또 일단 선출된 뒤의 감시도 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모든 정부부처 장을 포함한 관료의 선발과 사후 과정에 이들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시민감사제나 시민소환제 그리고 고위직 관료에 대한 평가결과 공개제 등과 같은 제도를 현실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관료집단 내부의 할거주의와 급격한 분권화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 국민들이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을 통해 관료집단을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경쟁 무풍지대, 한국의 관료집단

    다음으로는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 하나는 적극적 유인체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는 방식이다. 한국의 관료집단은 오랫동안 집단주의문화에서 성장해왔다. 이 집단주의문화가 지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에 대한 성과가 무시되는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 과도한 집단주의문화는 조직 내에서 관료가 성과를 올릴 필요도,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당위성도 없는 경쟁 무풍지대로 만들었다. 심지어 관료들이 조직의 성과에 무임승차해도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풍토가 조성됐다. 그 결과 관료집단의 생산성과 전문성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따라서 역선택에 따른 부작용과 과도한 집단주의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관료들의 실적과 정책성과에 대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개된 정보에 따라 보상체계가 결정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조직의 성과에 무임승차해도 정년퇴직 때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종신 고용제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정 행위에 대한 투명성 제고와 사회적 관계를 통한 통제장치의 강화도 요구된다. 행정행위에 대한 투명성 확립이야말로 도덕적 해이 극복의 핵심 요소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도 누가 잘못했는지, 그 많은 공적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누가 이를 집행했는지, 의약분업의 실시로 보험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누가 이를 계획하고 집행했는지를 추적하지 않는 관료조직의 불투명성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고 추적할 수 있는 정책실명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정책실명제와 함께 주식회사나 은행에서 실시하고 있는 피해에 대한 임직원들의 연대책임제도를 관료조직에도 도입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에 의해 손실이 발생한 경우엔 관료들이 손해 액수의 일정 비율을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도 강화돼야 한다. 현재 유명무실하다고 평가받는 공무원윤리법에 관료들이 이행해야 할 계약조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의무의 불이행이나 해태가 가져오는 손실을 관료들이 보상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필요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 통제장치로 정책수립단계에서부터 종결단계에 이르는 전 과정의 정책 내용을 공개해, 철저하게 검증을 거치는 시민정책 평가제도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대안과 더불어 관료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외적 요인인, 정치권의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민정부라는 미명하에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대중주의적 개혁은 전문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정책수립의 장에서 관료들을 소외시켜 관료집단이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정책수립의 장에서 소외된 관료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됐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료들이 대중주의적 개혁의 단순한 집행자로 전락해,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개혁세력의 행태도 관료조직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개혁정책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하고 실패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개혁정책을 ‘선’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사고로 무장돼 있는 이들의 개혁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는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현재 개혁 주체들이 보이는 비합리적·대중주의적 개혁방식, 행태가 바뀌어야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파생되는 천문학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관료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현재와 같은 정치집단의 대중주의적 개혁방식이나 행태가 아닌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관료의 도덕적 해이의 제거는 집권에만 눈먼 정치 집단들의 개혁만능주의, 개혁을 내건 전시적이고 공허한 도덕 재무장 같은 구호성 운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윤리성을 갖추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관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허한 도덕 재무장운동이나 개혁을 위한 개혁운동은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관료와 그렇지 않은 관료를 동일선상에 놓는 우를 범할 수 있고 그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최성섭 경원대교수 >

    IMF 환란 이후 ‘도덕적 해이’는 언론 매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제 용어 중 하나가 됐다. 크게는 기업, 금융,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거론됐고, 작게는 공무원,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부실기업 오너, 벤처 사업가, 그리고 변호사·회계사·의사 등 전문가 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총체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나라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만큼 도덕적 해이는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돼버렸다. IMF 환란도 바로 이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고 하지 않는가.

    일반적 의미의 도덕적 해이란 ‘눈먼 돈 챙기기’ ‘무임승차’ ‘책임 떠넘기기’ 등 손실에 대한 책임 없이 이익만 찾는 경제행위를 지칭한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지위와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는 행위, 개인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적 손실을 무시하는 행위, 부당한 일을 적절히 견제치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부추기는 행위로까지 확대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으며, 특히 최근 전문가 집단마저 도덕적 해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위기의 정도가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자조 섞인 분위기가 사회 전역에 퍼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도덕적 해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이를 방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구축돼 있어서, 그 문제가 우리만큼 표면화되지 않을 뿐, 그 사람들이라고 왜 손실에 대한 부담 없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제’ 역시 시스템의 부산물로 이해해야지, 우리가 그들보다 도덕성이 떨어진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이익추구는 인간의 기본욕구

    사실 그 동안 존재하지 않던 도덕적 해이가 요사이 갑자기 생겨 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지난날 자연스럽게 덮였던 문제들이 패러다임이 바뀌고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불거져 나온 측면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임하면 해결 못할 바도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찾는 일이다. 엉뚱한 해법은 비관하고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먼저 해법모색을 위한 도덕적 해이 이론을 점검해 보자.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란 계약이나 거래의 한쪽 당사자인 대리인이 취하는 행동이 다른 쪽 당사자인 의뢰인에게 영향을 주지만, 의뢰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리인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대리인)가 고객(의뢰인)의 변호를 맡았다고 하자. 그리고 이 변호사는 고객을 위해 사용한 시간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만일 그 시간에 변호사가 다른 일에 매달려 추가 수입을 올리면서 정작 이 고객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그만큼 고객에게 비용을 적게 청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이 변호사의 행동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변호사가 자기가 일하지도 않은 시간을 고객을 위해 일한 것처럼 비용을 청구해도, 고객으로선 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변호사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도덕적 해이를 저질렀고, 이로 말미암아 고객은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통상 도덕적 해이는 대리인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리인의 문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앞선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도덕적 해이를 논하기 위해선 먼저 정보가 비대칭적인 거래나 계약이 전제돼야 하고, 이런 상황에 대리인은 숨겨진 행동(Hidden Action)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사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도덕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기본 욕구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에 도덕이라는 말이 들어가긴 하지만,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 하는 사실은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는 데 상관이 없다. 물론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일차적으로 의뢰인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의뢰인이라면 이와 같은 문제를 미리 내다보고 계약 또는 거래 자체를 기피하거나, 아니면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책임을 대리인에게 지게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오히려 아쉬운 쪽은 대리인이 되고, 이번엔 대리인이 계약이나 거래를 주도하면서 반드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정보가 비대칭적이고 대리인이 무엇을 하는지 항상 관찰할 수 없는 경우엔 결코 의뢰인을 설득할 수 없고 또 설득이 안 된 만큼의 비용은 대리인이 감수하면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 소위 ‘대리인 이론’의 기본 골격이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에서 말미암은 가치 손실을 ‘대리인 비용(Agent Cost)’이라 하고 이 비용은 거시적으로는 사회 경제적 비용 또는 비효율과 연결된다.

    도덕적 해이, 대리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 현상에서 비롯된다. 즉 대리인의 행동이 숨겨질 수밖에 없고 의뢰인은 대리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의 해결은 얼마만큼 정보의 비대칭 현상을 줄이는가에 달려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보 비대칭을 없애거나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리인이 숨겨진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의뢰인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일종의 유인책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선 변호사의 예에서 변호사의 행동을 의뢰인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변호사의 보상을 판결 결과와 연동시키는 등의 유인체계를 만들어 변호사와 의뢰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추가적인 방법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견됐을 경우 치러야 하는 벌칙의 강도를 높이거나, 시장을 통해 가치감소가 확연한 대상을 퇴출 혹은 인수·합병시킴으로써 도덕적 해이 문제의 심각성을 줄일 수 있다.

    ‘도덕적 해이’ 교정할 유인체계 확충 필요

    통상 ‘사(士)’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박사. 최근 전문가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 상대적 희소가치가 줄어들긴 했어도 아직은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 계층이므로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역시 도덕적 해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의사들의 의료비리, 변호사들의 수임비리, 회계사들의 회계분식비리, 그리고 교수들의 프로젝트 비리 등 정보가 비대칭적인 환경에서 이들 나름대로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초래했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이들이니만큼 이 문제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직업윤리의식을 고취시킨다거나 도덕 재무장 운동 등의 방법을 통해 풀려고 하는 것은 엉뚱한 해법에 속한다. 전문가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투명성 확보에 장애요인이 무엇인지, 더 중요하게는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이를 교정하는 유인체계를 모색해 제도에 반영하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회계감사를 하는 회계사가 덤핑으로 수주를 받아 소수의 인원이 시간에 쫓기면서 감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감사에 대한 경쟁 시스템이나 인프라는 갖춰져 있지 않고 분식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전체 분위기라면 도덕성을 이유로 분식을 거부하기가 쉬웠을까? 최근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 강도가 높아지면서 회계사들이 분식 근절에 앞장서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회계사들로 하여금 분식의 유혹을 자연스럽게 떨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유인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유인체계의 구체적인 예로 필자의 전문 분야인 재무를 예로 들어 보자. 기업에는 여러 형태의 구성원이 있듯 이들 사이엔 여러 형태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한다. 그중 전문경영인과 주주의 도덕적 해이는 주주가 의뢰인으로 회사 경영을 부탁하고, 전문경영인은 대리인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주주는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잘 경영해서 주식 가치를 높여주길 기대하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선 경력관리, 명성 등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

    도덕성 강조는 공염불

    전문경영인이 사무실을 호화롭게 꾸민다든지, 불필요한 외부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일에 매달린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에 숨겨진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면 감시 감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물론 선진국처럼 M&A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면, 시장의 힘을 활용할 수는 있다. 즉 도덕적 해이가 심한 회사는 대리인 비용이 높아져서 그 회사의 주식을 저평가하게 만들 것이고 이 경우 그 회사는 M&A 대상기업이 돼 문제를 일으킨 전문경영인은 인수 후 퇴출된다). 그렇지만 전문경영인에게 직업윤리의식을 고취시키고 도덕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법은 효과적인 유인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 주식 옵션을 준다든지, 보수체계를 회사 주가와 연동시키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주가가 오르면 자신도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확신이 서면 누가 통제하고 감시하지 않아도 주가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회계사 역시 분식을 하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한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왜 알 만한 사람들이 분식을 하겠는가. 그 밖에 의사, 변호사, 교수의 도덕적 해이도 자기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본인에게 유리해지는 환경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과욕에 눈먼 일부 전문가의 통제를 위하여는 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엄중 처벌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보완책이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도덕적 파탄의 결과가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인체계의 결핍에 본질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얼마 전 종영된 인기 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는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이혼당하고 교수직에서 쫓겨나면서 단죄 되었지만, 그 동안 현실 속에선 교수 인사비리, 표절비리 같은 문제가 드러나기도 어려웠고, 설사 드러나도 그런 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문제가 드라마가 될 만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생각해 보면 전문가라고 특별히 도덕 공부를 더 한 적은 없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보통사람이며 단지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일이나 공부를 조금 더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일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에 특별히 더 실망했다면 그들은 특별히 다르리라고 기대한 탓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는 전문가라고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자신의 이익추구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만고 불변인 인간행동의 기본원리인 것을.

    도덕적 해이는 선진국에서도 아주 보편화된 경제 현상이다. 앞에 언급한 ‘대리인 이론’이 선진국의 많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중심 이론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그런데도 그들이 도덕적 해이에서 우리보다 자유로운 것은 오랫동안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법으로 도덕성을 강조하지도 계몽하지도 않았다. 사람 혹은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어떻게 하면 이들의 이익과 다른 사람, 집단의 이익을 양립시킬까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제도로 정착시켰다고 본다. 물론 그들도 도덕적 해이의 굴레에 다시 빠져들기도 한다(예를 들어 미국 저축대부조합, S&L의 위기가 그렇고, 최근 러시아 위기 때 미국 헤지펀드가 물리자 서둘러 구제금융에 들어간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하여 제도를 보완해왔다고 본다.

    IMF 환란 이후 우리 시장이 열리고, 경제가 급속히 개방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그 전엔 자연스럽던 일들이 이제 새삼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고, 개혁한답시고 치밀한 준비 없이 일을 벌이다가 새롭게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선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없다.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도 이제 알았다고 본다. ‘여론몰이’식 도덕운동을 벌이는 것은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접근 방식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해법은 효과적인 유인체계의 확립에 있다. 물론 여러 이해 당사자가 관련되어 있을 때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찾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선 이 문제로 고민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그들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남들은 우리를 매우 역동적(Dynamic)인 국민이라고 인정하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를 못 믿는가?

    < 문형구 고려대교수 >

    오늘날 한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과 기업활동의 정당성 정도는 아직도 낮은 편이다. 기업이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공헌하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분배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시각 역시 아직도 곱지만은 않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1999년에 발표한 뇌물공여지수(Bribe Payers Index) 결과에 따르면 전세계 19개 주요 수출국가 중 한국이 18위를 차지했다. 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기업이 외국 기업에 비해 뇌물을 공여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의 부정적 시각의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 waterhouseCoopers)는 지난 1월 불투명지수(Opacity Index)를 발표했는데 35개 조사대상 국가 중 한국은 불투명 순위 5위를 차지했다. 특히 회계처리기준과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은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보여준 행동(즉 모든 것을 금전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는)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던 신뢰의 붕괴를 초래했다. ‘사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구호는 더 이상 힘을 지니지 못하고 사람은 비용을 구성하는 일개 요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기업조직의 구성원들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참고 일하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여서 언제라도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마음을 갖고 있는 존재다.

    이렇듯 기업조직이 외부로부터 그리고 내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에 기업 혹은 기업인들을 더욱 더 곤경에 빠뜨리는 현상들이 하나씩 둘씩 드러나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남으로써 기업 존재의 정당성이 더욱 더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 발전의 주요 원동력으로서, 또한 사회의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서 기업이 다시 한번 일어서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정당성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며 따라서 도덕적 해이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는 경제학 용어로, 최근에는 야구의 지명대타 제도와 사사구 수의 증가를 투수의 도덕적 해이로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등 스포츠 현상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이기주의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또한 법적으로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많다. 도덕적 해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도덕적 해이가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찾아내 제시하기는 비교적 용이하지만, 특정 기준을 사용하여 유형을 나누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 글에서는, 인간사회는 서로 협력하면서 동시에 유한한 자원의 배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과 협력이 일어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도덕적 해이의 유형을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나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도덕적 해이의 유형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공유지의 비극, 지대추구, 집단이기주의, 정보 혹은 권력의 비대칭성, 이해관계자의 갈등 측면에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첫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의 측면에서 도덕적 해이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공유지가 누구의 단독 소유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원보다 공동의 자원을 먼저 마음대로 쓰는 현상을 일컫는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공동 소유의 자원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유자원이 소진됨으로써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기나 물 등과 같은 자연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훼손시키는 경우, 사회간접자본을 사용할 때는 자신의 것인 양 그러나 관리함에 있어서는 남의 것인 양 사용하는 기업의 경우가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둘째, 지대추구(Rent-seeking)행동으로부터 도덕적 해이의 유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대추구행동이란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위적으로 조성된 이익을 획득하기 위하여 자원을 지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경쟁자와 경쟁이나 협력을 하지 않고 로비를 통하여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으려는 행동을 의미한다. 진입장벽을 높이거나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정관계에 벌이는 기업의 치열한 로비-우리 눈에 상당히 익숙한 활동-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전략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을 개발·선택·시행하여 평균 이상의 경제적 이득을 얻게 만드는 자원과 역량을 획득하려 하는 행동도 지대추구행동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경쟁자와 경쟁과 협력 중 어느 한 쪽에 초점을 맞추거나,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강조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대추구를 전략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집단이기주의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내집단(In-group)과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을 분리하는 외집단(Out-group)의 구분이 분명하다. 이 경우 내가 소속된 집단의 이해를 위하여 다른 집단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도덕적 해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 우리의 주목을 받고 잇는 퇴출기업의 업무거부 방해, 퇴출 혹은 구조조정기에 종업원들의 자기 몫 챙기기, 자회사 혹은 관계회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넷째, 정보 또는 권력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기업의 소유주와 전문 경영인의 관계에서처럼 경영인은 소유주나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기업운영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확대하거나 정보를 모호하게 왜곡하는 회계처리 등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도덕적 해이에 관련된 논의에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기업 조직 내에서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 현상도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경영자는 조직 구성원의 선발, 교육, 평가, 보상에 관해 결정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권한에 비례하여 경영자는 또한 종업원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할 수탁적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경영자가 자신의 결정으로 인하여 종업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경우에도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기업의 이해 관계자들이 기업에 바라는 바가 무엇이며 그 이해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도덕적 해이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다. 기업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견해에 따르면 기업의 주요한, 어쩌면 유일한 목적은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독자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시민으로서 사회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더 나아가 기업에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정당한 이해가 조화를 이루도록 기업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세력을 얻고 있다. 이때 도덕적 해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 않고 일부 이해관계자끼리 이익을 나누는 행위 역시 도덕적 해이로 여겨진다.

    전문가 의식 갖춰야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도덕적 해이 현상은 인간의 본질인 이기주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비난의 소리를 드높인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성질의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 해이 현상 모두를 법적으로 규제하기도 어렵다. 평범한 해결 방안일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극복방안을 생각해보자. 우선 어떻게 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의식을 각성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의식을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쟁과 협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업인의 경우 프로페셔널리즘의 고양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전문경영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대체로 전문가(expert)를 의미하고 있다. 전문가는 특정분야에서 상당기간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프로페셔널’은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다. 즉 강한 윤리의식과 이타주의적 성향이 전문적 지식 및 경험과 결합될 때 비로소 프로페셔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소설가의 말을 빌리자면 ‘에스프리가 있는 테크니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진정한 궁극적 목표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없이 효율성만을 지고한 가치로 여기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도덕적 해이 현상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사결과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이른바 경영마인드를 다투어 도입한 수많은 비영리 공공기관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행태들이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효율성뿐만 아니라 정당한 목표의 달성에도 초점을 맞추는 효과성도 강조하는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각될 때마다 우리가 듣는 수많은 핑계를 없애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핑계의 예는 내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든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핑계를 드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핑계로 지금까지 누구나 해온 관행에 불과하다든지, 로마에 가면 로마식으로 하여야 한다는 핑계도 있다. 또 ‘나 하나쯤이야’라는 의식상태를 들 수 있다. 즉 내 행동이 끼치는 영향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이러한 핑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기업 내에 도덕적 의사결정의 기준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 현상이 일어날 경우 그것을 분명히 찾아내 그에 따른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사회적 처벌이 공정하고 일관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도덕적 해이는 불확실성 정보의 비대칭성 혹은 공유지에 대한 개인이익 우선 등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발각될 확률을 높임으로써 빈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발각될 경우 단호한 조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절차의 공정성, 과정의 정당성이 중시돼야

    모든 절차에 공정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즉 일관성 있는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기업인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는가. 현재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사회에 법 집행기관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에 있는 우리의 현실,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는 미래 언제 어느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날벼락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유혹을 강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 그리고 한탕주의는 미래가 불확실할 때 생겨난다. 사회가 건강할 때는 합의된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따라서 사회의 구성원들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협력을 통한 공존이라는 커다란 틀 아래서 경쟁하기 마련이다. 개혁이란 이름 아래 수시로, 아무런 경고도, 합의도 없이 바뀌는 규칙들, 규정이나 정책이 바뀔 때에는 소급적용을 하지말고 새로운 규칙에 해당되는 현상에만 적용을 하고 그 외는 경과조치를 분명히 함으로써 ‘왜 나만’이라는 의식이 발붙일 여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소집단주의를 넘어서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남이가’ 의식을 없앨 수 있을까. 조직 혹은 집단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외부에 알려 시정하고자 하는 행동이 배신자의 행동으로 취급되어 ‘왕따’당하는 현실에서 가능할 것인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지 않으면 과연 누가 챙겨줄 것인가라는 의식을 우리는 없앨 수 있을까. 앞서 지적한 규칙의 일관성 확보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누구나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의 확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결과만을 보고 싸잡아서 책임을 묻는 현재 한국사회의 풍토는(즉 극단에서 극단으로 오가는) 또 다른 형태의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 즉 자신에게 권한과 함께 책임이 부여된 과업에 소홀히 하는 현상이 실제로 만연하고 있다. 무사안일과 소극적 업무수행,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언제라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증거를 남기는 것,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정하고 집행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남기는 것,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따져 묻기보다는 속죄양 찾기에 급급하여 속죄양을 찾으면 잊어버리는 풍토 아래서는 ‘왜 나만?’ 이라는 의식은 사라지기 어렵다. 따라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정당성을 더 중시하는 풍토가 절실히 요구된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성 문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는 어쩌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기주의와 남을 배려하고 함께 살려는 의지를 어떻게 균형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항상 고민해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경쟁을 수반하는 자유경쟁체제 속에서 우리의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제각기 다른 처방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및 정당한 경쟁을 통하여 공존하려는 노력, 즉 도덕적 해이라는 현상을 본질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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