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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500호 기념 집중진단

한국 중심집단의 모럴 해저드 극복방안

  • 김태룡 상지대교수 최성섭 경원대교수 문형구 고려대교수

한국 중심집단의 모럴 해저드 극복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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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섭 경원대교수 >

IMF 환란 이후 ‘도덕적 해이’는 언론 매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제 용어 중 하나가 됐다. 크게는 기업, 금융,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거론됐고, 작게는 공무원,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부실기업 오너, 벤처 사업가, 그리고 변호사·회계사·의사 등 전문가 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총체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나라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만큼 도덕적 해이는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돼버렸다. IMF 환란도 바로 이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고 하지 않는가.

일반적 의미의 도덕적 해이란 ‘눈먼 돈 챙기기’ ‘무임승차’ ‘책임 떠넘기기’ 등 손실에 대한 책임 없이 이익만 찾는 경제행위를 지칭한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지위와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는 행위, 개인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적 손실을 무시하는 행위, 부당한 일을 적절히 견제치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부추기는 행위로까지 확대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으며, 특히 최근 전문가 집단마저 도덕적 해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위기의 정도가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자조 섞인 분위기가 사회 전역에 퍼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도덕적 해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이를 방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구축돼 있어서, 그 문제가 우리만큼 표면화되지 않을 뿐, 그 사람들이라고 왜 손실에 대한 부담 없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제’ 역시 시스템의 부산물로 이해해야지, 우리가 그들보다 도덕성이 떨어진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이익추구는 인간의 기본욕구

사실 그 동안 존재하지 않던 도덕적 해이가 요사이 갑자기 생겨 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지난날 자연스럽게 덮였던 문제들이 패러다임이 바뀌고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불거져 나온 측면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임하면 해결 못할 바도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찾는 일이다. 엉뚱한 해법은 비관하고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먼저 해법모색을 위한 도덕적 해이 이론을 점검해 보자.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란 계약이나 거래의 한쪽 당사자인 대리인이 취하는 행동이 다른 쪽 당사자인 의뢰인에게 영향을 주지만, 의뢰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리인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대리인)가 고객(의뢰인)의 변호를 맡았다고 하자. 그리고 이 변호사는 고객을 위해 사용한 시간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만일 그 시간에 변호사가 다른 일에 매달려 추가 수입을 올리면서 정작 이 고객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그만큼 고객에게 비용을 적게 청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이 변호사의 행동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변호사가 자기가 일하지도 않은 시간을 고객을 위해 일한 것처럼 비용을 청구해도, 고객으로선 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변호사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도덕적 해이를 저질렀고, 이로 말미암아 고객은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통상 도덕적 해이는 대리인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리인의 문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앞선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도덕적 해이를 논하기 위해선 먼저 정보가 비대칭적인 거래나 계약이 전제돼야 하고, 이런 상황에 대리인은 숨겨진 행동(Hidden Action)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사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도덕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기본 욕구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에 도덕이라는 말이 들어가긴 하지만,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 하는 사실은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는 데 상관이 없다. 물론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일차적으로 의뢰인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의뢰인이라면 이와 같은 문제를 미리 내다보고 계약 또는 거래 자체를 기피하거나, 아니면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책임을 대리인에게 지게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오히려 아쉬운 쪽은 대리인이 되고, 이번엔 대리인이 계약이나 거래를 주도하면서 반드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정보가 비대칭적이고 대리인이 무엇을 하는지 항상 관찰할 수 없는 경우엔 결코 의뢰인을 설득할 수 없고 또 설득이 안 된 만큼의 비용은 대리인이 감수하면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 소위 ‘대리인 이론’의 기본 골격이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에서 말미암은 가치 손실을 ‘대리인 비용(Agent Cost)’이라 하고 이 비용은 거시적으로는 사회 경제적 비용 또는 비효율과 연결된다.

도덕적 해이, 대리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 현상에서 비롯된다. 즉 대리인의 행동이 숨겨질 수밖에 없고 의뢰인은 대리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의 해결은 얼마만큼 정보의 비대칭 현상을 줄이는가에 달려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보 비대칭을 없애거나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리인이 숨겨진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의뢰인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일종의 유인책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선 변호사의 예에서 변호사의 행동을 의뢰인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변호사의 보상을 판결 결과와 연동시키는 등의 유인체계를 만들어 변호사와 의뢰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추가적인 방법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견됐을 경우 치러야 하는 벌칙의 강도를 높이거나, 시장을 통해 가치감소가 확연한 대상을 퇴출 혹은 인수·합병시킴으로써 도덕적 해이 문제의 심각성을 줄일 수 있다.

‘도덕적 해이’ 교정할 유인체계 확충 필요

통상 ‘사(士)’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박사. 최근 전문가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 상대적 희소가치가 줄어들긴 했어도 아직은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 계층이므로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역시 도덕적 해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의사들의 의료비리, 변호사들의 수임비리, 회계사들의 회계분식비리, 그리고 교수들의 프로젝트 비리 등 정보가 비대칭적인 환경에서 이들 나름대로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초래했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이들이니만큼 이 문제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직업윤리의식을 고취시킨다거나 도덕 재무장 운동 등의 방법을 통해 풀려고 하는 것은 엉뚱한 해법에 속한다. 전문가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투명성 확보에 장애요인이 무엇인지, 더 중요하게는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이를 교정하는 유인체계를 모색해 제도에 반영하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회계감사를 하는 회계사가 덤핑으로 수주를 받아 소수의 인원이 시간에 쫓기면서 감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감사에 대한 경쟁 시스템이나 인프라는 갖춰져 있지 않고 분식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전체 분위기라면 도덕성을 이유로 분식을 거부하기가 쉬웠을까? 최근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 강도가 높아지면서 회계사들이 분식 근절에 앞장서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회계사들로 하여금 분식의 유혹을 자연스럽게 떨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유인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유인체계의 구체적인 예로 필자의 전문 분야인 재무를 예로 들어 보자. 기업에는 여러 형태의 구성원이 있듯 이들 사이엔 여러 형태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한다. 그중 전문경영인과 주주의 도덕적 해이는 주주가 의뢰인으로 회사 경영을 부탁하고, 전문경영인은 대리인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주주는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잘 경영해서 주식 가치를 높여주길 기대하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선 경력관리, 명성 등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

도덕성 강조는 공염불

전문경영인이 사무실을 호화롭게 꾸민다든지, 불필요한 외부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일에 매달린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에 숨겨진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면 감시 감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물론 선진국처럼 M&A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면, 시장의 힘을 활용할 수는 있다. 즉 도덕적 해이가 심한 회사는 대리인 비용이 높아져서 그 회사의 주식을 저평가하게 만들 것이고 이 경우 그 회사는 M&A 대상기업이 돼 문제를 일으킨 전문경영인은 인수 후 퇴출된다). 그렇지만 전문경영인에게 직업윤리의식을 고취시키고 도덕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법은 효과적인 유인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 주식 옵션을 준다든지, 보수체계를 회사 주가와 연동시키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주가가 오르면 자신도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확신이 서면 누가 통제하고 감시하지 않아도 주가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회계사 역시 분식을 하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한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왜 알 만한 사람들이 분식을 하겠는가. 그 밖에 의사, 변호사, 교수의 도덕적 해이도 자기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본인에게 유리해지는 환경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과욕에 눈먼 일부 전문가의 통제를 위하여는 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엄중 처벌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보완책이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도덕적 파탄의 결과가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인체계의 결핍에 본질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얼마 전 종영된 인기 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는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이혼당하고 교수직에서 쫓겨나면서 단죄 되었지만, 그 동안 현실 속에선 교수 인사비리, 표절비리 같은 문제가 드러나기도 어려웠고, 설사 드러나도 그런 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문제가 드라마가 될 만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생각해 보면 전문가라고 특별히 도덕 공부를 더 한 적은 없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보통사람이며 단지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일이나 공부를 조금 더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일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에 특별히 더 실망했다면 그들은 특별히 다르리라고 기대한 탓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는 전문가라고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자신의 이익추구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만고 불변인 인간행동의 기본원리인 것을.

도덕적 해이는 선진국에서도 아주 보편화된 경제 현상이다. 앞에 언급한 ‘대리인 이론’이 선진국의 많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중심 이론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그런데도 그들이 도덕적 해이에서 우리보다 자유로운 것은 오랫동안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법으로 도덕성을 강조하지도 계몽하지도 않았다. 사람 혹은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어떻게 하면 이들의 이익과 다른 사람, 집단의 이익을 양립시킬까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제도로 정착시켰다고 본다. 물론 그들도 도덕적 해이의 굴레에 다시 빠져들기도 한다(예를 들어 미국 저축대부조합, S&L의 위기가 그렇고, 최근 러시아 위기 때 미국 헤지펀드가 물리자 서둘러 구제금융에 들어간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하여 제도를 보완해왔다고 본다.

IMF 환란 이후 우리 시장이 열리고, 경제가 급속히 개방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그 전엔 자연스럽던 일들이 이제 새삼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고, 개혁한답시고 치밀한 준비 없이 일을 벌이다가 새롭게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선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없다.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도 이제 알았다고 본다. ‘여론몰이’식 도덕운동을 벌이는 것은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접근 방식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해법은 효과적인 유인체계의 확립에 있다. 물론 여러 이해 당사자가 관련되어 있을 때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찾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선 이 문제로 고민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그들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남들은 우리를 매우 역동적(Dynamic)인 국민이라고 인정하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를 못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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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룡 상지대교수 최성섭 경원대교수 문형구 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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