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격정토로 6시간

“정권재창출이요? 3김연합 영남후보가 정답이요!”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정권재창출이요? 3김연합 영남후보가 정답이요!”

2/4
지난해 연말 한나라당 내 일부 민정계 의원들은 김대표와 이회창 총재의 화해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이 과정에 “이총재가 ‘허주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김대표는 “먼저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16대 총선 공천파동을 거치며 갈라섰던 두 사람이 재결합할 경우 정국은 새롭게 재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총재 얘기가 나오자 김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짧게 답했다.

―김대표가 이총재와 다시 손잡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지금 이회창이와 손잡으면 나는 영남에서 ‘미친 놈’이 되는 거야. 나는 자존심도 없나? 어떻게 그런 수모를 당하고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가?”

―이총재가 과거의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럴 사람이 아니지. 사과를 할 거라면 벌써 했을 거고.”



―이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총재로 재추대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후회하지. 후회할 상황을 이회창이가 만든 거지. 내가 한나라당에 남아 있었으면 이회창이는 내년 대선에서 100% 당선되는 거야. 지금 이회창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양정규(梁正圭), 정창화(鄭昌和), 김기배(金杞培)…. 그 사람들이 낫나? 나나 이기택(李基澤)이가 낫나? 이회창이가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 총재가 차기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오는데.

“여론조사에는 허수가 많지. 지금 영남 사람들이 이회창이를 좋아해서 지지하는 줄 아나? 이회창이말고 대안이 없기 때문 아니가? 이회창이로 안 되겠다는 여론이 퍼지면 상황은 급속히 달라지게 돼 있어. 그래서 판짜기가 중요하다는 거야. 3김씨와 내가 연합할 수 있는 영남후보가 나오면 영남이 바뀔 거야.”

김대표 입에서 영남후보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이제 관심은 그가 누구를 마음속에 두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김윤환 대표에게 “형님께서 영남후보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 속에 나도 포함시켜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공공연하게 영남권 대표주자를 자처하는 김중권 대표, 그에 대한 허주의 의중이 궁금했다.

“김중권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영남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지. 왜냐? 아직은 ‘영남’의 김중권이가 아니라 ‘민주당’의 김중권이잖아. 먼저 판짜기가 되지 않으면 민주당에서 누구를 내세워도 비슷할 거야. 노무현(盧武鉉)이나 정몽준(鄭夢準)이도 마찬가지지.”

김중권은 아직까지…

―김대표가 구상하시는 판짜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지금은 김영삼(金泳三)씨와 김대중씨가 싸우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두 사람을 잘 알아. 김대중씨는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정권 재창출을 시도할 거야. 지금 상황에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영남후보를 내세우고 호남이 지지하는 방법밖에 없어. 그게 아니면 힘들어. 김영삼씨도 이회창하고 손을 잡느냐, 3김씨와 나까지 포함해 4김이 동의할 수 있는 후보를 내세우느냐 양자 택일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3김이 연합해서 영남후보를 내세우자고 주장하는 거야.”

―김영삼 전대통령이 이회창 총재와 손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가능성은 있지만, 그리 높지 않을 걸. 이회창이가 상도동 다녀간 다음날 내가 김 전대통령을 찾아갔거든. 그날 김 전대통령이 뭐라 했는지 알아? ‘이회창이는 인간이 안됐다. 나를 찾아오고 어떻게 하루만에 저런 짓을 하나?’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더라고. 그날 이회창 측근인 김영일(金榮馹) 의원이 ‘강삼재 의원이 했다’는 말을 흘렸거든. 이회창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깊은 것 같더라고.”

김대표가 제안한 3당 정책연합은 구체화되기 전에 공개됐다. 2월22일자 ‘동아일보’는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이 조만간 정책연합을 선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때부터 민국당은 심각한 내부갈등을 빚었다. 정책연합에 반대하는 비주류 최고위원들은 김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자 김대표는 “전당대회를 개최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이왕 정책연합을 할 거면 당당하게 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었다.

3월23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민국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주류와 비주류는 초반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모처럼 연단에 선 이기택 최고위원은 김대표의 사퇴를 촉구했고, 장기표(張琪杓) 최고위원은 “불신임이 통과되지 않으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전당대회는 비주류측이 대리투표자를 발견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비주류측은 전당대회 무효를 주장한 반면, 김대표는 강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 비주류측이 연단을 점거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맨 앞줄에 여유있게 앉아 있던 김대표의 얼굴은 어느새 일그러져 있었다. 김대표의 입에서 하소연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다 관두자. 이런 당을 뭐하러 하나. 이것도 당이라고….”

상황은 좀처럼 수습되지 않았다. 대의원들은 곳곳에서 설전을 벌였다. 연단 앞쪽에서는 흥분한 대의원들이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자 비주류측 김동주(金東周) 최고위원이 허주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더 이상 추하게 만들지 말고, 전당대회를 무효로 하자.”

김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대로 가라고.”

주류와 비주류는 막판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허주는 개각 전에 신임을 받겠다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민국당 한승수(韓昇洙) 의원은 전당대회 파행과 무관하게 사흘 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김대표는 4월4일 당무회의를 열어 3당 정책연합을 공식화했다. 이어 12일엔 3당 정책위의장 연석회의가 열렸고 다음날 3당 대표와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회동을 갖고 공조를 재확인했다. 이로써 3개월 가까이 끌어온 3당 공조의 기본틀이 짜였다.

4월13일 오후 2시. 서울시내 모호텔에서 김대표를 만났다. 앞서의 인터뷰가 미진해 한번 더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 1년 전 이날 김대표는 생애 최대의 치욕을 당했다. 16대 총선에서 텃밭이나 다름없는 경북 구미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김대표는 ‘변화의 달인’이라는 별명답게 3당 정책연합의 파트너로 부활했다. 일흔의 나이에 마지막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김대표께서 원하던 그림이 나왔습니다. 다소 원론적인 질문이 될 것 같은데 3당 정책연합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의회정치에서 집권당이 소수면 국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어. 세계 60여 국에서 소수 정당들이 모여 과반수 정권을 만들었다니까. 국정을 책임지고 일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가? 지나간 일이지만 13대 총선이 끝나고 난 뒤 민정당이 1당인데 과반수가 안 돼서 야당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법 하나도 만들 수 없고 아무것도 안되더라. 그러다 보니까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를 구현할 수 없어서 3당 통합을 했잖아.”

―김대표께서는 과거 민정당이 집권당이지만 과반수가 안되다 보니까 국정 혼란을 가져왔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당을 통합했다, 이런 말씀이신데 정치의 묘미라는 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설득하는 것 아닙니까? 김대표의 논리대로라면 항상 과반수를 유지하고 야당보다 우위에 서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인데….

“수의 우위가 확보되지 않으면 국정을 책임지고 정책을 수립할 수 없지. 모든 것을 야당과 타협해야 된다면 일이 될 수 없어. 예를 들면 여소야대 때 한참 폭력시위가 심각해서 화염병제조방지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서 화염병제조방지법이 아니라 최루탄제조방지법을 만들게 됐어. 여당은 화염병 만들지 말라, 야당은 최루탄 쏘지 말라면서 싸운 거지. 이래가지고는 아무것도 안돼.”

―‘우리 정치의 현실은 어쩔 수 없이 한쪽이 수의 우위를 갖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된다’ 이런 말씀입니까.

“대화로 정치를 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정치야. 하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어떻게 하겠어? 과반수를 만들어서 타협안이 나오도록 만들어야지.”

김대표에 따르면 3당 정책연합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2월 중순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중진의원이 김대표에게 지원 요청을 했고, 김대표가 정책연합 형태의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에서는 언제부터 정책연합을 구상했을까? 일단 16대 총선 이후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제1당을 차지하면서 민주당은 과반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던 것. 캐스팅보트에 대한 구애작전도 이때 시작됐다.

2/4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목록 닫기

“정권재창출이요? 3김연합 영남후보가 정답이요!”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