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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해결사 朴智元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DJ의 해결사 朴智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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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석은 그의 직위와 상관없이 김대통령의 청와대 관저를 수시로 드나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8년 7월 김대통령이, 박수석과 직접 관계가 없는 노사정위원회의 협상결과를 묻기 위해 새벽 5시에 그를 호출했다는 얘기는 무슨 문제든 박수석과 상의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그러면 도대체 김대통령은 왜 이렇게 박수석에게 집착하는 걸까. 어떻게 인연을 맺었기에 박수석은 김대통령과 함께 감옥생활을 하는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함께한 가신들보다 더 밀접한 위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게 된 것일까.

박수석이 김대중 대통령과 처음 만난 때는 지난 83년, 당시 김대통령은 사실상 ‘망명객’ 신분으로 워싱턴에 머물고 있을 무렵이었다. 박수석은 성공한 재미사업가이자 뉴욕한인회장 겸 미주총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81년에는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교민환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5공시절 청와대를 두 차례나 방문하기도 했고 전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박수석과 5공 정권을 이어준 사람은 전경환씨였다. 두 사람은 전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전경환씨가 선발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인회장 자격으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됐는데, 그 후에도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수석과 김대통령 사이에 가교 구실을 한 사람은 김경재 현 민주당 의원. 김의원과 박수석은 동갑내기 친구로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김의원은 ‘독립신문’이라는 반정부 성향의 교포신문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친구 사이로 지내던 김경재씨가 ‘선생님’을 만나볼 것을 권했다. 박수석은 5공정권과 가깝게 지낸 전력 탓에 몇 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의 집요한 설득에 못이겨 함께 당시 워싱턴DC에 살던 DJ를 찾아갔다.



박수석은 자신의 자서전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에서 김대통령과 자신의 첫만남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선생님(DJ)과 나는 서로의 시국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그냥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때로 내 생각과 다를 땐 반론도 펴고 하다보니 제법 열띤 토론이 되었다. …두 시간여의 토론 동안 나도 많은 생각을 얘기했지만, 결국 그때까지의 내 삶과 생각이 크게 잘못됐음을 선생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주로 시국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해방 후부터 그때까지 우리 현대사의 문제점을 너무도 명확하게 지적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시기도 했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영삼씨와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군부세력에 빌미를 제공한 계기가 되었음을 인정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면서도 명철한 선생님의 얘기를 들을수록 내 가슴은 이상한 환희로 벅차 올랐다. 여태까지 잘못 살아왔다는 후회보다는 이제부터 정말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리고는 박수석은 DJ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선생님 제가 잘못 살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98년 여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박수석은 사석에서 우연히 ‘DJ가 좋아하는 참모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박수석이 예로 든 인물은 박상천 법무부장관(현 민주당 의원)이었다.

“야당 시절 김대중 총재를 모시고 회의를 하면 전부 벌벌 떨었습니다. 평소 국회에서 싸움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어느 의원은 김총재 앞에서 보고를 할 때면 보고서를 들고 있는 손이 멀리서 봐도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습니다. 그런데 박상천 장관은 안 그랬어요. 자기 생각과 총재 생각이 다르면 그 자리에서 ‘총재님, 그건 아닙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총재가 이런저런 말로 설득을 해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회의 끝나고 다들 나가는데 박장관은 총재를 계속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계속 자신의 주장을 설득합니다.

이런 박장관을 보고 다른 의원들이 수군거리는 겁니다. ‘저 양반 다음 공천은 다 받았다’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공천을 못 받은 것도 아닙니다. 박의원은 15대까지 내리 3선 의원을 지냈고 원내총무도 하지 않았습니까?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첫 법무부장관으로 등용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총재는 박장관의 저돌적인 성격을 높이 산 겁니다. 박장관 정도 뱃심이 돼야 고집 센 법조 공무원들을 잡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겁니다.”

DJ는 씩씩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주눅들어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보다, 씩씩하게 자기 주장을 펼 줄 아는 사람을 중용한다는 것이 박수석이 생각하는 DJ의 용인철학이었다. 박수석 자신이 83년 미국에서 김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일방적으로 DJ의 얘기만 듣지 않고 때로는 자기 소신을 밝혔던 바로 그 점이 DJ의 눈에 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DJ맨’이 된 뒤 박수석은 김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먼저 김대통령의 미국 내 근거지인 ‘인권문제연구소’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이 박수석의 몫이었다. 김대통령이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뒤로는 아예 인권문제연구소를 맡아 운영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이 낯가림 없고 씩씩한 인물을 중용한다는 사실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지 상황에서 드러난다. 김대통령은 아랫사람에게 자상하게 업무를 지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따지듯 몇 마디 묻고는 입을 닫아버리는 스타일인데, 바로 그 몇 마디에 담긴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을 하는 사람을 중용하는 반면, 알아듣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런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집권 초기 수석비서관이 유난히 자주 바뀐 청와대 부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임자였던 A수석은 덩치가 크고 얼굴도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만 성격은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이 한번 질책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겁을 먹고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 가려고 하지를 않는 겁니다.

A수석의 후임으로 들어온 B수석은 그 반대였습니다. A수석에 비해 왜소한 체격에 인상도 순해보입니다만 이 양반은 대통령이 뭐라고 질책해도 좀처럼 기죽지 않는 겁니다. 한바탕 대통령한테 깨지고 나서도 조금 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대통령 집무실로 찾아갑니다. 당시 대통령의 신임이 B수석에게 더 가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김대통령은 씩씩하게 자기 주장을 펼 줄 아는 사람을 중용합니다.”

이 인사는 “박지원 수석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당당함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누구 앞이라도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밝히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일단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었고 김대통령도 그 점을 높이 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있는 박수석을 본 사람들은 이런 해석에 동의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대통령 앞에서서도 박수석은 다른 사람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박수석이 공보수석이었을 때인데 연예인 몇몇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만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의례적으로 먼저 자리를 잡은 연예인들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뒤 김대통령이 박수석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더군요. 그런데 대통령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박수석이 큰 소리로 연예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잘 지냈느냐’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그런 박수석의 행동에 김대통령은 그냥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청와대의 주인은 대통령인데 그 주인보다 목소리를 높이고도 ‘무사한’ 사람은 아마 역대 정권에서 박수석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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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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