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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인터뷰|‘利敵칼럼’ 논란 송두율 교수

“황장엽과 국정원은 거짓말 그만 하라!”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황장엽과 국정원은 거짓말 그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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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이 북한 노동당 고위간부라고 인정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그는 과연 거물급 공작원인가. 아니면 양심적인 반체제인사인가. 숨가쁘게 연결된 서울─ 베를린 직통 전화 2시간30분. 역사의 급류에 몸을 던진 한 지식인의 사상과 삶의 궤적.
“여보세요, 송교수님이세요?”

“예, 누구시죠?”

최종 마감을 며칠 앞둔 4월13일 오후.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송두율 교수(57)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구 저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봄비에 젖은 대지처럼 촉촉하고 가라앉은 목소리. 최근 자신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진 일을 의식해서일까. 그의 목소리엔 약간의 긴장감과 경계심이 배 있다.

19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33년이 지나도록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따던 해인 1972년, 한국에서 유신이 막을 올리자 그는 해외에서 반독재투쟁을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모든 논란과 시비와 의심의 출발점이었다.

오후 4시니 베를린 시각으로는 오전 8시쯤 될 터. 그는 인터뷰 취지를 듣고나서 질의 요지를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인터뷰 성사를 대비해 작성해둔 질의서가 숨가쁘게 날아갔고, 팩스를 확인한 그는 정중하고 차분한 말투로 “15분 뒤 시작하자”고 말했다.



베를린… 한국처럼 외세에 의해 분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수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은 얼마나 장엄하고 감동적이던가. 임수경씨가 북한에 몰래 들어가기 전 거쳐갔고, 5·18에 분노한 황석영씨가 한때 망명생활을 하던 도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씨가 한을 품고 죽은 바로 그곳 베를린에서 그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국정원의 확인

국정원은 그를 북한의 당 고위간부이자 해외공작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그를 떠보는 질문이 불가피할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신 북한 공작원 맞소?”라고 묻고 싶지만, 그의 삶의 행적이나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를 조금이나마 들어 알고 있다면, 우선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베를린 날씨가 어떠냐고.

“여기는 갑자기 추워졌어요. 오늘부터 부활절인데, 아침에 눈이 왔어요.”

―한국은 완연한 봄인데요.

“부럽구먼.”

그가 허허 웃었다.

―이 좋은 봄날에 뜨거운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지요?

“자세히는 몰라도 인터넷을 통해 국회에서 논란이 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한글 프로그램의 인터넷이 고장나 중앙일보와 연합통신의 영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친구들이 신문기사를 팩스로 보내줬어요.”

그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의 신분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한겨레에 써온 칼럼의 이적성에 관한 것이다. 첫째 것은 4월10일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과정에 불거졌다.

박원홍 의원(한나라당):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인가.”

임동원 장관: “우리 정보기관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고 나도 그렇게 믿는다.”

박의원: “친북성향이라고 믿나.”

임장관: “그렇다.”

둘째 논쟁은 4월12일 이한동 총리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 이총리는 국회에서 송교수의 한겨레 칼럼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이적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답변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송교수의 신분에 관한 논쟁인데, 그 사실조차 불투명하다. 정보기관 못지 않은 권위를 가진 총리가 이렇게 답변했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소송이 진행중이며 수사대상자의 실체 등을 미리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

명예훼손소송이란 송교수와 황장엽씨 사이에 진행중인 민사소송을 말한다. 송교수는 1998년 8월호 ‘월간조선’에 자신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목한 황장엽씨의 주장이 실리자 그해 10월 황씨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지법에서 진행중인 이 소송은 2년6개월째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

여기서 잠깐 송교수의 이력을 살펴보자.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고향인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진학했으며 19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972년 독일 사회철학의 거드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로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해 한국에서 유신이 시작되자 귀국을 포기하고 베를린대학을 비롯한 독일내 여러대학의 강단에 섰다.

1974년 재독학자 ·교민들과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를 결성, 초대의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반유신투쟁을 벌여나갔다. 1982년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연구논문으로 뮌스터대학 정교수가 됐다. 1991년 5월 그는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첫 방북길에 오른 후 이제껏 여러차례 북한을 갔다왔다. 지난해 ‘늦봄통일상‘ 수상을 계기로 귀국하려 했으나 준법서약서가 걸림돌이 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국내에서 출판된 저서로는 ‘역사는 끝났는가’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등 10여 권이 있다.

한겨레는 올초부터 송교수의 칼럼을 5차례 실었다. 칼럼 제목들을 보면 ‘2001 계몽의 변증법’(1.5) ‘신경제의 허와 실’(1.28) ‘JSA와 희망의 홀씨’(2.16) ‘미국 앞에서 당당해지자’(3.9) ‘교육이민이 사라지려면’(3.30) 등 ‘평범한’ 것들이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색안경을 끼고 들여다볼 만한 것은 없다. 국정원 공보관실도 “정밀 검토한 결과 이적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이총리의 답변을 뒷받침했다. 당사자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국내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인데, 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내가 해외에 오래 살아 경험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제라도 국내에서와는 조금 다른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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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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