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청사진 없는 DJ노믹스 사람부터 바꿔라”

金鍾仁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쓴소리

  • 黃鎬澤 <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5-04-15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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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노믹스는 정권 출범 초에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 탄생 2년쯤 돼서 등장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정권에서는 신경제라고 했지요. 신경제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무너졌습니다. DJ노믹스의 내용을 보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골간으로 경제를 운용한다는 건데 실제로 나타나는 정황을 볼 것 같으면 종래 패턴하고 다를 게 없어요.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종전과 똑같이 하고 있는데 달라질 수 있나요.”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서강대 교수,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경제수석 비서관, 국회의원 등을 지냈지만 늘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불린다. 6공화국 정부의 경제수석으로 재직할 때 재벌개혁 정책을 독하게 밀어붙여 경제수석의 이미지가 각인된 까닭이다. 그는 “6공화국 초기의 재벌개혁 정책이 중간에 좌절되지 않고 다음 정부로 이어졌더라면 한국이 97년과 같은 경제위기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입각 소문, 신경쓰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고비마다 탄탄한 이론에 경제정책 운용 경험이 접목된 그의 견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학계와 정·관계를 오가며 지인이 많지만 이런 저런 눈치를 살피지 않고 경제정책에 관해 직설법으로 쓴소리를 하는 편이다.

    DJ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구조조정은 바로 그가 6공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에 추진했던 주력업종제도, 비업무용 토지 매각 등 재벌개혁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런 개혁성이 높이 인정돼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 경제팀 개편이 있을 때마다 경제팀장(재경부장관) 또는 경제수석 물망에 오르내렸다.

    ―이번 3·26 개각에는 혹시 연락이 없었습니까.



    “그런 거하고 전혀 관계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작년에는 정운찬(鄭雲燦) 서울대교수가 천거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모르겠어요. 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의미가 없다고 봐요.”

    주먹구구로 책정하는 공적자금

    ―증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환율, 수출 등도 불안합니다. 정부 사람들은 하반기에는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 경기 문제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현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경기변동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 직전까지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펀더멘털에 이상이 없으니까 외환위기는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책을 다루는 사람은 물론이고 각종 연구기관, 경제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론마저 외환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98년에 마이너스 성장(-6.7%)을 하지 않았습니까. 기본적인 경제 구조에 큰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을 자꾸 경기 문제에 결부시켜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행 이후 한번도 경제 구조조정 정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처럼 구조조정은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에게조차 생소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포커스를 경기에 맞춘다고 봅니다.

    98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경제가 99년에는 성장률 10%를 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98년 이후 특별히 실시한 대책이 있었다면 공적 자금 투입뿐입니다. 그 효과가 99년 10% 이상의 성장률로 나타났고 이것이 2000년 중반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러자 경제팀은 ‘한국 경제가 정상화됐다’ ‘이대로 끌고 가면 대통령 임기 말까지 별 이상 없다’ ‘여기서 안정만 실현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 이후 상황은 다시 나빠졌습니다. 작년 4/4분기(10∼12월) 경제 성장률이 -0.4%입니다. 10%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0.4%로 떨어진 것을 정상적인 경기변동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구조상의 문제가 또 돌출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109조원 가까운 공적 자금의 효력이 다해 가니 다시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경제활동이 위축된 것이지요. 이런 것을 경기에 결부시켜 설명하려고 드니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것입니다.

    정기국회에서 공적 자금 40조원을 추가 동의받고 연말에 갑자기 회사채 긴급인수제도를 도입하니 금융시장 경색이 풀려 1∼2월에는 약간 나아진 듯한 상황을 보였어요. 그러니 또 금방 2/4분기(4∼6월)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국제 경기 상황이 조금 달라 보이니까 하반기에 가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만큼 현 시점에서는 1∼2%의 경제 성장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100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투입했는데 최근 박승(朴昇) 공적자금 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이 공적 자금을 추가로 조성해야 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발언을 했는데요.

    “한빛은행 등 몇몇 은행을 보면 1차 공적 자금을 받고도 은행이 정상화되지 않아 다시 2차 자금을 투입해 자본금 100% 감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처음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 경제를 다루던 사람들은 실질적인 금융기관 및 기업의 부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공적 자금이 약 200조원은 투입돼야 해결할 수 있지 않으냐고 봤는데 정부는 64조원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국회 동의를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책정하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올 가능성이 있지요. 그렇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실물 부문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제때 상환 못하니까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이 많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은행을 구조조정하면서 실물 사이드에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해 자금을 계속 투입하다 보니 다시 은행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결국 1차 공적 자금 투입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2차로 조성한 공적 자금 40조원도 명확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책정했다기보다는 대강 맞춘 숫자라고 봅니다. 가급적이면 은행도 ‘부실’이라는 명패를 붙이기 싫으니까 부실 규모를 축소하려고 들고 정부도 국민에게 미안하니까 많이 안 잡은 것 같아요. 그러나 막상 박승 위원장이 상황을 보니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금년에 경제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면 기업 부실이 더 늘어나고 결국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도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적 자금의 추가 조성 요인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건설, 공기업화 우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을 지켜보며 한국전력 민영화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전 발전 부문의 민영화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소유가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은 경영 효율과 직접 일치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민간 소유 기업도 부실한 곳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정부가 한국전력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유능한 경영자가 꾸려나가면 별 이상이 없다고 봅니다.

    한국전력은 독점 기업입니다. 전 산업의 피를 공급하는 기업인데 정부가 물가를 걱정해 전력요금 인상을 억제하지 않습니까. 기업의 장기적인 효율을 향상시키려고 하면 전력요금을 자유 자재로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잘 안 돼 기업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 정부 소유라 무조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이끄는 현대건설, 하이릭스반도체(옛 현대전자), 현대금융 그룹이 한국경제에 복병으로 잠복하고 있습니다. 시장 원칙을 어기며 저렇게 무한정 퍼주기 지원을 해도 좋을까요. 좋은 처방이 없겠습니까.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들이 전부 출자전환하고 기존 자본금도 100% 감자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민간 기업에서 거의 공기업 형태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전체적인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과 모순되는 것이지요.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감자를 하면서 정부가 공적 자금을 지원하니까 다 국가 소유가 돼버렸습니다. 거기에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논리를 대입하면 실질적으로 소유가 민간인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될 수밖에 없겠지요.

    더구나 건설업은 어느 나라에서나 원래 오너가 하는 기업입니다. 지금 저런 형태로 변질돼 운영하면 과연 장기적으로 효율을 내며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왜 계속해서 살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정책당국의 분명한 대(對)국민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들이 있다면 그것을 명확히 설명해 일반 국민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출자전환이 불가피하다면 정몽헌씨는 자리를 내놓게 되고 아까 말한 대로 건설업의 특성상 빨리 새 주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 주인이 금방 나올 수 있겠습니까. 과연 현대건설을 총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경영자가 있겠습니까. 그게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정도의 자본을 가진 민간인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현대산업개발 같은 기업이 현대를 잘 알고 같은 업종이니까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만….

    “잘못하면 현대산업개발까지 부실해질 수 있어요.”

    ―질문이 왔다 갔다 합니다만, 국내외 요인과 관련해 새로운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까?

    “금융위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외환 보유고가 950억 달러에 가까우니 외환 유동성으로 인한 금융위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융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최근 일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금융위기는 항상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일본은 1991년부터 경기가 침체돼 10년이 지나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왜 일본이 금융 구조를 빨리 조정하지 못 하고 오늘까지 끌고 왔느냐 하면, 외환 보유고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어 외부적인 압박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부적으로 고통 없는 개혁을 한다고 한 것이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렇게 몰고 왔다고 봐요. 우리도 외환 보유고가 950억 달러나 되니까 97년에 겪었던 것 같은, 외부 압력에 의한 위기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 근본 문제 해결 없이 장기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주의 깊게 살펴 빨리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과감하게 강구해야 합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에 경제부총리를 없앴다가 올 초에 부활시켰습니다. 팀장이 없어 부처간 정책 혼선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부활됐는데요. 재직 경험에 비추어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이상적이라고 봅니까.

    “경제부총리가 있고 없고에 경제 정책이 좌우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재경부장관은 부총리로 승격되기 전에도 경제팀을 리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선임장관입니다. 경제정책의 조정이 부총리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잘 되고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없앴다가 왜 다시 만들었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대통령 중심의 정치 제도에서 경제수석이라는 자리는 대통령에 대한 경제 자문과 경제 교육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자주 만나 얘기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알 수 있지요.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판단을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이니 매우 중요합니다.

    행정부의 경제를 조정하는 부총리와 경제수석의 관계가 제도적으로 정형화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부총리에게 경제에 대한 총괄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있고 경제수석에 그 기능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쪽에서는 남한도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북한에 너무 퍼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급격한 와해를 막고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파탄에 빠진 북한 경제를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 협력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적자 대북사업, 정부가 맡아야

    “남북경제협력을 단순하게 경제성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남북의 평화 공존이나 장기적 통일 대비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북한 경제가 자체 생존이 가능해야만 장기적으로도 상호 교류를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통일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한에 돈이 얼마만큼 갔는지, 또 너무 많이 퍼준 건 아닌지,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북 교류의 주도적 역할은 사실 정부가 해야 합니다. 정부가 재정 능력 범위 내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민간기업의 교류라고 하는 것은 자체 판단에 의해 수익이 있으면 하는 거고 수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수익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업은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이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또는 남북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건 기업이 건실하고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기업활동을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금강산관광은 북한 송금 액수를 월 12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 정도로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해 카지노와 면세점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자투성이 대북사업을 민간기업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강산관광 사업은 현대가 스스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원래 계획대로 수익이 나지 않아 적자가 쌓였단 말이에요. 개인 기업이 일을 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처리할 거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남북간 교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금강산 관광사업인데 이걸 중단해버리면 결국 남북 교류가 갑자기 멈춰버리는 모양새여서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해법을 찾는 수밖에 없어요. 관광공사와 합작을 취하는 형태도 검토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적자는 계속 날 거예요. 그 적자를 개인기업이 떠맡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정부가 알아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카지노나 면세점은 어떻습니까.

    “남북교류를 위해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같은 데서 보조를 받아서라도 금강산 사업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이런 점에 명확히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해요. 혹시 특정 민간기업의 재정을 도와준다는 비난이 두려워 사행심 조장을 통한 재원 조달을 고려한다면 이는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재벌개혁, 이룬 것 없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일본 경제도 어렵습니다. 두 나라 경제의 침체가 오래 지속되면 한국 경제도 어려움이 커질 텐데요.

    “일본 경제는 10년 동안 현재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금융 문제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해요. 미국도 1995년 이후에 지나친 호황을 타면서 증시에 상당한 거품이 생겼어요. 나스닥이 2000년 초에는 5000까지 올라갔다가 최근에는 1700선으로 빠지고 다우지수도 1만2000대 가다가 지금 9000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원래 거품이 한번 크게 생기면 그것이 꺼지는 과정도 오래갑니다.

    미국이 그렇게 되면 우리 정보통신(IT) 분야 수출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나라는 정책적 노력을 통해 경제 기반을 건실화하고 이후 세계 경제 전반이 향상됐을 때 뻗어나갈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뭐라고 보십니까.

    “85년도 9월21일 프라자 협정이 있었어요. 그 당시 달러가 일본 엔, 독일 마르크, 영국 파운드, 프랑스 프랑 등 모든 화폐에 대해 평가 절상을 했습니다. 엔이 지나치게 평가절상 돼버리니까 일본 수출업체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어요. 그걸 보완한다고 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했지요. 그때 재테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에 엄청난 돈이 몰려 땅값,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89년에는 니케이 지수가 최고 3만9750까지 상승했어요. 절정에 이른 겁니다.

    89년 노무라 보고서를 보면 95년에 가면 니케이 지수가 8만까지 간다고 예상하고 있어요. 1990년대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큰소리도 쳤지요. 일본은 그렇게 자신감에 넘쳤고 세계 각국이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순식간에 무너진 거예요.

    1991년부터 경기가 침체됐지만 일본 사람들이 어떤 자만을 보였느냐 하면, 이까짓 것 경기 조절로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경기정책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95년 중반, 96년에 들어서야 그것이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됐지요.

    일본도 한국처럼 오버 캐퍼시티(과잉 시설)와 오버 론(과잉 부채)이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에 정책적 판단 미스가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렇게 만든 겁니다. 90년대 들어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이 극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금융이 독자적 시장으로 빠르게 팽창하는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지요. 변화에 적응 못하면 일본이나 우리나 똑같은 겁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정치적 리더십이 없어 경제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경단련 회장을 맡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일본 총리를 패기있고 젊고 박력있는 사람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지난 10년 동안 10번에 걸친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1조2000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구조 문제를 경기 부양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안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겠지요.”

    ―경제위기 이후 한국 재벌도 타율에 의한 개혁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히려 한두 개 재벌이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는 영역도 확대됐고 힘도 더 생긴 것 같아요.”

    ―소위 DJ노믹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경제 운용과 관련해서 김대통령의 장점과 단점을 말씀해주십시오.

    “DJ노믹스는 정권 출범 초에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 탄생 2년쯤 돼서 등장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정권에서는 신경제라고 했지요. 신경제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무너졌습니다. DJ노믹스의 내용을 보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골간으로 경제를 운용한다는 건데 실제로 나타나는 정황을 볼 것 같으면 종래 패턴하고 다를 게 없어요. 경제 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종전과 똑같이 하고 있는데 달라질 수 있나요.”

    ―국민의 정부 3년 동안의 경제 성적표를 매긴다면….

    “외환 위기를 극복한 것은 성공이라면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구조조정을 추진해 얼마간 경제운용의 제도적 변화를 끌어낸 것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공적 자금을 많이 투입하긴 했지만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금융에도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DJ노믹스는 경제를 운용하면서 중간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대통령 책임제 아래서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확고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하는데 국민의 정부는 출범할 때 그런 것이 없었어요.

    한국 경제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되겠다는 명확한 제시 없이 그냥 상황 대처로 밀고 오다 보니까 결국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결여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IMF 관리체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선언한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고, 완료됐다던 구조조정을 다시 하는 볼썽 사나운 현상이 나타난 거지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시아 국가들이 구조조정을 연기한 위험을 지붕이 새는 것에 비유했다. 김 전수석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여기에 조금 인용해본다.

    ‘폭우가 몰아쳐 지붕이 새자 남편은 내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날이 개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97년 경제위기의 폭풍이 지난 지 4년 만에 미국경기 침체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비가 올 때 지붕을 고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김 전수석은 한국경제의 ‘지붕 수리’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직업적 관료들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느냐 할 것 같으면,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 정부가 경제정책 운용에서 ‘사람의 일관성’만큼은 유지했다고 봐야겠지요. 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경제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이 정부 출범부터 참여했어요. 경제 여건은 바뀌어도 결국 실체가 똑같은 사람들이 경제를 운용하니 달라지지 않는 겁니다.”

    ‘직업적 경제관료’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자꾸 미루면 안 돼요. 뻔히 다음에 뭐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현상을 호도해 금방 뭐가 잘 될 것처럼 말하고, 내일 모레 곧 다가올 위기를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경제를 운용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은 말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를 상실하면 경제정책은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밖에 없어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해 정책을 세워야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위기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요.”

    종로구 부암동 한국금박빌딩 3층 그의 사무실에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의 초상이 걸려 있다. 바로 김 전수석의 조부다. 그는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1년간 조부의 비서로 일했다.

    ―손자 겸 비서가 기억하는 김병로 선생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할아버지께서는 신념에 철저한 분이었기 때문에 한번 옳다고 판단하면 절대로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지킨 분이지요.”

    그는 경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고 경제에 관해 할 말이 많은 사람 같았다. 딱딱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지면 짧게 대답하고 곧바로 다시 경제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정치권에서 경제 리드해야

    “한국 경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변화를 통한 발전의 역사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발전할 수 없어요. IMF 경제위기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나라는 19세기 말엽, 그 변화의 물결을 제대로 읽지 못해 20세기 초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또 90년대 들어서는 세계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60,70년대에 하던 경제 운용을 되풀이하다 IMF 사태를 맞았지요. 스스로 변화하지 못해 외부의 강요를 받게 됐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행 상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의 기본 배경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정치권에서 경제를 리드하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 경제를 일관되게 끌고 가야 하는데, 우리는 완전히 기술 관료의 전유물이 돼버렸어요. 바로 그들이 변화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자하문 터널만 지나가면 청와대가 나타납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가 앞으로 22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의 경제정책과 관련해 충고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한 것을 백날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세부적인 것을 떠나 한국 경제의 중장기 계획을 확립하고 경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리더십을 발휘해주었으면 하는 거지요. 그러지 않으면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반짝 좋아지는 듯하다가 또 어렵고 어렵고….”

    ―김재익(金在益) 전 경제수석이 중매를 해서 만혼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35세에 결혼을 했으니까 만혼은 만혼이지요. 그 양반이 우연찮게 제 처가하고 인연이 있어 중매를 섰습니다.”

    이화여대 가정대 김미경(金美經) 교수가 부인이다. 장인은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 장인의 형이 재무부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金正濂)씨다. 이만하면 처가의 경제인맥이 짱짱한 편이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새벽에 등산을 합니다. 5시 반쯤에 일어나 1시간 10분 가량 산을 탑니다. 다른 운동은 안 해요.”

    역시 경제 외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무척 짧아진다. 일상생활과 관련한 질문에 길게 답변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 예측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경제학자는 어제 한 말이 오늘 왜 틀렸는지를 내일이 돼야 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꼬는 말도 있다.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하신 예측이 지나고 보면 틀린 경우는 없습니까.

    “92년 3월 말 경제수석을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 국제 경제의 동향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측한 대로 안 돼야지 우리 나라 경제가 잘 풀린다고 생각하는데 예측이 잘 맞아요. 좀 안타깝습니다. 사실 한국이 IMF 체제에 들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사전에 여러 형태로 위기에 대한 시그널(신호)이 왔지만 그걸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지요.

    작년 상황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봄 경제 흐름을 보고 구조상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는데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걸 부정하는 거예요. 모든 것이 다 안정돼 있는데 왜 자꾸 불협화음을 일으키려 하느냐고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예방적 처방이 나올 수 없는 거죠.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가 단두대 위에 올라가 목이 잘리면서 한 얘기가 뭐냐 하면 ‘10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걸 대강 알았다. 안 오기를 바랐는데 이게 왜 왔는지 모르겠다’였습니다.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있는 동안에는 괜찮겠지 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는 거죠.

    경제정책 책임자는 경제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변명이 많아요. 사실 이러려고 했는데 이래서 못했다는 식이지요. 그러니까 IMF 사태가 6·25 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누구 하나 거기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없어요. 아주 좋지 못한 자세입니다.”

    소신있는 경제 관료가 필요하다

    그는 소신 있는 경제관료의 사례로 독일의 경제 기적을 낳은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를 들었다.

    “그 사람은 행정경험도 전혀 없고 공부만 한 사람이었어요. 반히틀러 단체에 참여하면서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분명 패한다’는 생각을 갖고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재건할 거냐,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왔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게 할 거냐에 대한 나름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군정 시절 이 사람이 우연히 영미 공동지역의 경제 책임자가 됐어요. 그리고 48년 6월 화폐개혁을 발표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 구상을 한꺼번에 풀어버린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전후 독일을 꼼짝 못하게 계획경제 체제로 묶어놓으려 했는데 계획경제 해체, 물가통제 해체 등을 주장한 거예요. 에르하르트는 이 때문에 명령 위반으로 붙잡혀갑니다. 당시 군정장관 자문관이 그에게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시장경제가 제대로 안 되는데 너희 패전국가에서 무슨 시장경제냐”며 발표를 취소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에르하르트는 “당신네는 나를 처벌할 권한은 있어도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대들었지요. “지금 당신들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동쪽에는 공산세력이 형성돼 결국 서독과 동독이 경쟁하게 됐다. 내 이론대로 안 하면 서독이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6개월만 시한을 줘봐라. 그래도 안 되면 나를 처벌해라.”

    이 소신을 기초로 오늘날 독일 경제가 세워진 거예요. 영국의 대처 총리도 결국 보수당의 케인스적 정강정책을 바꿔 확신과 용기로 영국 사회의 병을 치유했습니다. 한국은 남의 나라 이야기를 인용하기는 좋아하면서 행동은 따라가질 못합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정확한 수치를 꿰며 준비된 답변을 했다. 늘 강연하고 쓰고 연구하는 주제들이어서 인터뷰를 위한 별도의 준비가 필요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의 내실이 튼튼하면 주가·금리·환율이 저렇게 요동치지는 않는다며 거듭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너무 끌다 보니 구조조정이란 말 자체에 식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걸 안 하면 안 되거든요. 경제 흐름은 뻔한데…. 답답한 것은 2001년 2월 말까지 4대 부문 개혁을 완료하면 3월에 경제가 나아진다고 했다가, 다시 2·4분기(4∼6월)가 되면 경기가 회복된다고 번복하더니, 이젠 하반기에 어떻게 될 거다 하는 식으로 자꾸 말을 바꾸는 겁니다. 경제는 뭘 한다고 금방 좋아질 수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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