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이명박 전 한나라당 의원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입력2005-04-15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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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인 이명박 전의원이 ‘세금 축내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오늘의 현대건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정치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그로부터 현대건설 해법과 정계 복귀 계획을 들어봤다.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3월22일 아침, 전날 밤 세상을 떠난 고(故)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청운동 자택 빈소. 정회장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 화면에 낯익은 문상객이 여러 차례 비쳤다. 그저 의례적인 조문이 아니라 슬픔에 겨워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그의 행동이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듯하다. 그에 비하면 오랜 병 구완에 지친 듯한 상주들의 표정은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눈물 젖은 문상객’은 이명박(李明博·60)전의원이었다.

    이 전의원은 ‘원조(元祖) 현대맨’이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1992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날 때까지 꼬박 27년을 현대와 함께했다.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5년 만에 중역이 됐고, 12년 만에 현대건설 사장에 올랐으며,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6개 계열사의 회장을 역임해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정주영 창업자와 산전수전을 치르며 오늘날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의 터를 닦은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주영 회장과 이 전의원의 관계를 부자지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정회장의 죽음, 그리고 요즘 현대건설의 형편을 지켜본 그의 심사가 궁금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10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 오래 전부터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돈 그의 정치적 행보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주영과의 애증

    ―고 정회장 빈소에서 슬피 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특별히 어떤 기억이 그분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프게 했습니까?



    “학교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들어가서 관리면 관리, 기술이면 기술 어느 한 분야만 일하다 나왔다면 30년을 일했다 한들 그 기업 총수와 무슨 개인적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 경우는 좀 달랐잖아요. 입사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었거든. 나는 학생운동 전력(그는 64년 고려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6·3시위를 주도했다가 6개월간 복역했다)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국내에선 취직을 못할 상황이었어요. 국영기업이나 은행에 취직하려고 시험을 몇 번 봤는데 1차엔 붙어도 면접에선 여지없이 떨어집디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다가 당시 현대건설 같은 작은 회사에 취직하면 정부가 눈 감아줄 줄 알고 시험을 본 거예요. 우선 이런 회사에라도 들어갔다가 블랙리스트에서 빠지면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이었죠.

    물론 현대건설에서도 신원조회에 걸렸어요. 그래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고 난리를 친 끝에 두 달 만에 입사가 허락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정주영 회장이 끝까지 비밀로 했으니까- 당국은 회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내 동태를 중앙정보부에 보고하는 조건으로 입사를 허용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5년 동안 보고서를 올려야 했으니 정회장으로서도 할 짓이었겠어요? 현대건설은 내가 그런 사연을 겪으며 들어가 청춘을 바친 회삽니다.”

    그가 입사했을 때 정주영씨가 가진 회사는 현대건설 하나뿐이었다. ‘현대그룹’ 이란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시 정주영 사장은 삼성이 울산에 지으려던 공장을 하청받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있었다. 정주영씨는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나러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그런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됐습니다. 77년엔 내가 그 회사 사장이 됐고 정주영씨는 전경련 회장이 됐죠. 그러면서 현대자동차를 만들고 현대중공업을 만들며 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밟았으니 정회장과 나의 관계는 남다른 것이라고 할 수밖에요. 애(愛)와 증(憎)이 다 깃들인 거죠. 남들은 부자지간 같다고 하지만, 그런 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재벌 총수와 직원이 부자지간 같은 인간관계로 유지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두 사람의 관계는 피차의 필요에 의해 유지됐을 거예요. 내가 도움이 안 되는데 정회장이 내게 그렇게 대했을 리 없고, 나 자신도 회사에서 보람을 못 느꼈으면 그렇게 붙어 있지 않았겠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기억이 스쳐갔지만, 무엇보다 이분이 하필이면 왜 이런 때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가 안팎으로 어려울 때고, 국가도 어려울 때거든요. 직접 일을 하진 않더라도 이런 때 그런 분이 계시면 든든하잖아요. 새벽에 소식을 듣고 청운동으로 달려갔더니 내가 첫 문상객입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데….”

    “功이 過 덮었다”

    ―정주영 회장 사후 언론은 그의 공과를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고 찬양 일변도로 보도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가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궈낸 위대한 기업인임에는 틀림없지만 흠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거든요.

    “큰인물이 세상을 뜨면 우선 애도하는 것이 동양적 사고니까. 또한 공이 크면 과를 덮을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그분은 공이 많았다고 봐야겠죠. 정회장이 기업을 창업한 걸로 자기 일을 끝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분은 사회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거든요.

    또 이런 것도 있을 겁니다. 막상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인간 정주영이 정말로 검소하게 살았다는 게 드러났잖아요. 40년 된 집에 살림이 더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없고…. 아마 그 집이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걸 겁니다. 그분 방도 보세요. 평범한 직장인의 안방보다 더 검소했어요.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도했을 겁니다. 그 전에도 정회장이 소탈하다는 얘기는 들었겠지만 실제로 그런지를 본 젊은 기자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세상을 뜨고 나서 집에 들어가보니 들은 것보다 더 검소하거든요. 그러니 그분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요.

    물론 앞으로 또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에서도 ‘정주영학’ 강의를 한다니 학자들이 그분의 업적을 냉정하게 분석하겠죠. 하지만 정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후세 경영인들이 본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라든지,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대치될 때 처신했던 것 등이 그런 예죠.”

    ―하지만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이의 봉건적 정서를 혁파하지 못한 점 같은 것은 ‘과(過)’로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전에 정회장은 “앞으로 현대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간다”고 공언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말년에 부자간, 형제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분이 한때 그처럼 앞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에요. 기자들 앞에서 ‘정패밀리의 그룹총수는 나로서 끝이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또 다른 좋은 평가가 내려질 수 있었겠죠. 그런 생각이 정치상황과 건강 악화 같은 여러 요인에 부딪히는 바람에 현실화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앞선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정회장이 기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것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요즘엔 해외에 진출하는 게 대수냐 싶겠지만, 그 당시엔 한국 기업이 해외에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남다른 개척정신, 모험정신이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이명박 전의원은 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으나(한나라당·서울 종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몰리자 98년 2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이 전의원은 그 해 5월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고, 99년 8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400만 원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의 16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했다. 그는 98년 말 도미,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공부하다 지난해 초 귀국했는데, 난데없이 ‘이뱅크’라는 인터넷 증권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 가서 많은 걸 느꼈는데, 미국은 금융과 첨단 정보산업 두 가지로 21세기를 지배하려 하더군요. 금융산업의 발전속도가 첨단산업에 뒤지지 않았어요. 그 결과 다양한 금융기법이 쏟아져 나왔는데, 여기에 인터넷이 이끄는 정보산업시대가 겹쳤으니 발전이 더 빠를 수밖에.

    그건 내가 기업을 오래 하면서 겪었던 한국 금융산업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선 ‘뱅킹 비즈니스(banking business)’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나라에선 ‘금융기관’이라고 하잖아요. 일제가 우리나라에 은행을 세울 때부터 그걸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겁니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내려온 거예요. 그러니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가 있나요.

    금융정책을 이끄는 공직자나 일선의 금융인이나 일제시대 은행 기법만 계속해왔습니다. 은행은 그저 앉아서 예금 받고 돈 빌려주는 일만 했죠. ‘기관’이다 보니 정부와 권력 앞에 무기력했고. 전당포보다 못한 짓을 해온 거예요. 전당포는 돈을 뜯기진 않거든요. 금융산업이 이렇게 낙후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있다 IMF 위기를 맞은 겁니다.

    미국에서 금융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월 스트리트에서 실전 훈련을 받은 이들입니다. 루빈, 그린스펀, 올펜슨 같은 이들이 다 현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세계의 돈 흐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합니다. 그걸 맺고 끊으면서 미국 금융산업에 유리하게 방향을 틀어대는 겁니다. 우리 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금융산업부터 제대로 돼야 해요. 미국에선 은행과 증권 등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즈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투명한 금융산업의 ‘랜드마크’를 한번 세워보고 싶었어요.”

    인터넷 증권사는 이미 설립 가인가(假認可)가 났고 지금은 본인가 과정을 밟고 있다. 이 회사는 이름은 증권회사지만 인터넷에 기반을 둔 새로운 컨셉트의 금융회사라고 한다. 이 전의원은 설립 단계에만 관여할 뿐 3∼4년 후에는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외국 투자가들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올해가 환갑이신데 인터넷 사업을 하시겠다니 뜻밖입니다.

    “인터넷이나 벤처 비즈니스는 젊은 사람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 하지만 기업가정신은 똑같은 겁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벤처와 정보산업이 한참 뜰 때도 기존 산업을 유지했어요.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편으로 인터넷 기술을 도입하긴 했지만요. 이 양반 하는 말이 ‘기업가정신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예요. 이른바 ‘뉴 이코노미’도 기업가정신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거죠. 벤처를 하는 젊은 사람들이 기법은 괜찮지만 기업가정신이 없다 보니 실패하고 맙니다. 인터넷 비즈니스 시대에도 산업시대의 경험이 새로운 산업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더 높고 더 안전하다고 봅니다. 그걸 내가 보여줄 겁니다.”

    증시, 대증요법으론 한계

    ―증권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요즘 우리 증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연기금을 투입하겠다고 나섰지만 약발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인데요. 우리 증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부는 외국의 경우 증시 투자자금에서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합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정부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런 나라에서 연기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연기금을 증권에 투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란 겁니다.

    우리나라 연기금 관리자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과거에도 연기금을 증시에 넣었다가 마이너스로 만든 사람들 아닙니까. 수익 낼 능력이 없는데 증시에 연기금을 투자하면 뭣합니까. 연기금이란 게 민간자본이나 마찬가진데, 정부가 투자하라고 시켰다가 나중에 적자가 나면 정부 재정으로 그걸 메워줄 겁니까?

    주식 투자자들이 그런 사정을 모르겠어요? 우리 증시는 그런 정치적 제스처로 감당할 수준이 아닙니다. 핵심은 투명성이에요. 기업에도 끊임없이 투명성을 요구하잖아요.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할 것은 정책의 투명성입니다. 정책이 투명하질 않으니 아무도 그걸 믿고 따르지 않아요. 그래놓고 어느 한 분야에만 투명하라고 요구하니 먹혀들지 않지요. 시장경제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는 것인데, 투명한 사람이 손해보는 현실에선 누구도 룰을 지키려 들지 않아요. 그러니 기업도 경쟁에 전력을 쏟지 않고 권력에 기대 편법을 쓰는 겁니다.”

    한마디로 ‘기본’부터 챙겨야지 주가를 올린답시고 증시만을 위한 대증요법을 짜내본들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우리 증시 자금의 30%나 되는만큼 증시의 흐름을 쥐고 있는 것은 외국인들인데, 이들이 주시하는 것은 정책의 투명성, 기업의 투명성이라는 것. 그들은 특히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눈여겨본다는 얘기다.

    ―구조조정이 미진한데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 등 해외발 악재까지 겹쳐 우리 경제의 앞길이 어둡습니다. 기업에는 돈이 돌지 않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관 주도라는 게 별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데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이것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를 계기로 삼아 경제에서 정치논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정치논리에 막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닙니까. 경제는 경제 쪽으로 떼줘야 합니다. 경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 가령 경제부총리 같은 분은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경제논리로만 경제를 풀어가야 해요. 그렇게 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국내외에서 신뢰를 얻게 됩니다. 대통령이 말로는 ‘시장경제원리를 따른다’ ‘은행은 은행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걸 안 믿잖아요.

    이제 우리 경제는 비전문가인 정치권력자들이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쳐서 잘 되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에요. 고도의 전문가적 대처가 필요한 수준에 와 있단 말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자기 당의 경제정책을 설명할 뿐,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린스펀이에요. 루빈, 서머스, 오닐 등 역대 재무장관도 다 업계 출신 전문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경제정책은 그저 참고할 뿐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우리 경제가 그들 경제보다 규모는 작지만 미국, 일본 등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어요. 따라서 우리 경제도 극히 전문가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는 것도 위험합니다.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만 하면 돼요.”

    누가 현대건설 망쳤나

    ―경제논리를 강조하고, 평소에도 “이익을 못 내는 기업은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셨는데, 그렇다면 현대건설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 전의원께선 현대건설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습니다만, 저렇듯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현대건설에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로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현대건설이 무너질 경우를 걱정할 수밖에 없겠죠. 남북한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게고…. 정부가 현대건설에 저렇게 자금을 밀어넣고도 그 회사를 살리지 못한다면 엄청난 정책실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릴 수 있다면 지금 노출된 여러 문제들도 극복할 수 있는 거죠. 정부는 동아건설 처리 등 경험이 있으니 현대건설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나름대로 많이 연구했을 겁니다.

    건설회사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어려움에 처했다 해도 제조업 회사와는 달리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건설회사에서는 사람이 특히 중요합니다.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요. 유능한 사람이 들어가서 제대로만 해내면 다른 업종보다 짧은 기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때문에 지금 현대건설을 지원하는 게 잘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기왕 지원했으니 이 회사가 정말 잘 돼서 주가가 오르고, 그래서 은행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서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부가 현대건설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 현대측이 보인 자세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비운다거나, 자구노력은 등한히 하면서 손만 벌린다거나, 회계를 엉터리로 하는 등의 모럴 해저드를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건설회사에서, 특히 현대건설 같은 규모의 건설회사에서 CEO는 그때그때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임직원들이 세계 곳곳의 건설현장에 나가 있으니까요. 더욱이 현장마다 여건이 다 달라요. 똑같은 토목공사라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는 공사와 동남아에서 하는 공사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과 법률, 풍습 때문에 여건이 판이해요. 그러니 그런 데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빨리빨리 결재해 줄 일이 많을 텐데, 현대건설 CEO와 임원들은 금강산 개발에 몰두하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현대건설이 금강산 개발에 돈을 너무 많이 쏟아붓는 바람에 어려움이 닥쳤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두셋째 이유밖에 안 돼요. 첫째 이유는 결정을 해줘야 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북한사업에 매달려 왔다갔다 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출장을 가서 자리를 비웠다면 문제될 게 없어요. 그런 곳과는 24시간 통신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북한에 들어가면 그렇지 못하잖아요. 통신이 안 되는 곳에 중요한 사람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현장 책임자들은 결재를 받으려고 이틀, 사흘씩 손을 놓고 있어야 했겠죠.”

    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도 그들의 촉각은 북한에 쏠려 있었을 테니 과연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CEO를 비롯한 최고 정책 결정자들이 지금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느냐에 따라 회사 분위기가 달라진다. 현대건설에서는 대북사업에 관심을 둔 사람들만 중심세력이 되고, 다른 부문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변방으로 튕겨나 있는 것처럼 느꼈으리라는 것이다.

    “북한에 가서 도로 내고 항만 만들고 체육관 짓는 것은 우선 돈만 밀어넣는 거지, 당장 이익이 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중요한 사람들은 다 거기에 붙어 있고, 정작 돈 벌어들이는 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났으니 회사 분위기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안타까워요. 현대건설이 어떤 회산데…. 이제라도 유능한 전문가가 들어와서 전력을 쏟고, 남은 인재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고, 회사를 나간 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다시 들어와서 힘을 보태야 합니다.”

    ―엉뚱한 가정이지만, 만일 이 전의원께 당장 현대건설의 CEO를 맡아 회사를 수습하라고 한다면 어디부터 손을 대겠습니까?

    “내가 현대를 떠난 지 벌써 10년이니 소상한 사정이야 모르겠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원조정을 거쳐 앞으로 현대건설에 남게 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건설에 있는 사람들은 92년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모럴 해저드에 빠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겨난 모럴 해저드가 10년 동안 계속된 겁니다. 현대맨들로선 내키지 않겠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해요. 따라서 현대건설을 새롭게 끌고 갈 사람은 전 임직원의 정신 재무장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비록 지금은 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빨리 자립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회사로 거듭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야죠.

    지금 현대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현대건설 사원들에겐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 회사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돈으로 기술자를 데려오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시급한 것은 정신 재무장입니다. 오로지 회사를 위하는 정신, 이익을 내겠다는 정신, 비용을 줄이겠다는 정신 말이에요. 남들과 똑같이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남은 인생을 위한 준비

    이 전의원은 의원직에서 물러난 98년 2월부터 지금까지 3년 남짓한 기간을 ‘정치 공백기’라고 표현했다. ‘본의 아니게’ 쉬고 있을 뿐 앞으로도 자신의 본업은 정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지난해 광복절에 복권되면서 피선거권을 회복,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정치 공백기’에 정치인으로서 어떤 준비를 하셨습니까?

    “내가 정치판에 나섰던 것은 정치가 안정되지 않고는 경제가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회사 일을 접고 기업경영 마인드를 갖고 정치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98년에 어쩔 수 없이 정치를 그만둬야 했는데, 당시는 우리가 IMF 위기를 당하고 미국 중심의 정보산업화가 가속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내 경험에 새 시대의 경험을 보태야 탄탄한 경영마인드로 정치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격변을 주도하는 미국에서 21세기를 준비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경제환경의 새 트렌드를 직접 목격하면서 1년 반 동안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걸 굳이 ‘정치 준비’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내가 앞으로 정치를 하든 뭘 하든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인터넷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계기도 됐고.

    정보산업이 21세기를 주도한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체험입니다.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말만 앞세울 때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에서 돌아왔더니 정부가 벤처기업 2만 개를 만들어서 고용을 증대하겠다고 하더군요.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은 3∼4%도 채 안 돼요. 2만 개의 벤처가 성공하려면 적어도 100만 개의 벤처를 창업해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100만 개가 넘는 벤처가 동시에 창업할 수 있겠습니까?

    벤처 비즈니스는 산학협동에 따른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창업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산학협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대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개발된 세계적인 기술이 벤처 비즈니스에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준비도 없이 벤처를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너나 없이 벤처에 뛰어드니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요. 정부의 벤처육성기금이 사이비 벤처로 흘러들고, 기술도 없으면서 코스닥으로 한탕을 노리고, 한탕한 벤처 비즈니스는 금융으로 빠져나가서 엉뚱한 짓을 하다 망하고….

    이게 다 산업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 가서 강연을 하나 해도 체험으로 쌓은 경륜을 들려주지 않고선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내가 경험한 것은 ‘정치적 준비’라기보다는 ‘남은 인생을 위한 준비’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겁니다.”

    그는 “정치도 과거의 개념으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는 다른 부문을 뒷바라지하는 기능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 가령 기업이 앞길을 잘 개척할 수 있도록 시대 변화에 맞춰 법적 근거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라는 얘기다. 기업인들이 정권과 ‘실세’를 의식하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는데, 이 때문에 기업으로 몰려든 우수한 인재들이 좌절에 빠지고 정치와 경제가 따로 놀게 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도 사회 여러 분야의 경험자들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한 분야인 정치가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끼치는 현실에서 제 기능을 하려면 각 분야의 경륜 있는 경험자들을 끌어들여야 해요. 낙후한 정치인들에게 스스로 바꾸라고 하면 바뀌겠어요? 경륜있는 사람들을 정계로 불러오되, 지도층으로 많이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지도층은 기성 정치인 그대로인데 아래만 바꿔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러니 ‘괜찮은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똑같아진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죠. 나도 그래요. 정치는 내가 뭘 하겠다 말겠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시대가 내 전문성을 필요로 할 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륜있는 전문가’를 자처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정치 공백기를 보내는 정치인으로서 양대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지금 뭘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라 지금은 정치시즌이 와서는 안 될 시기인데, 너무 일찍 닥쳐온 것 같아요. 지금 그런 논의를 한다는 건 국민의 정서와 맞지도 않아요.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난리를 치는 정치인들이 도대체 그 전에는 뭘 하던 사람들입니까? 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 지혜를 모으기는커녕 각자의 정치목표를 갖고 흔들어대니 국민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있어요. 가뜩이나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 경험이라도 좀 쌓을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만 정치일정은 못 박혀 있습니다. 정치인은 정치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방향을 그런 쪽으로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개인들간의 정쟁(政爭)으로 갈 게 아니라. 나는 정치를 업으로 삼아 먹고 살 것도 아니고 권력을 엔조이할 생각도 없어요. 순수하게 내 경륜을 펼쳐보겠다는 것이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국민의 정서예요. 지금 국민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에 맞춰야지, 너나없이 욕심대로 뛰쳐나온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대선이든 서울시장 선거든 그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갈 자질과 요건을 갖춘, 검증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저 신문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만 나와서야 과거 정치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어요. 그렇게 본다면 인물은 만들어져야 합니다. 부시가 국회의원 한 번 못해봤지만 기업도 경영해보고 주지사도 해본 경륜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됐잖아요.”

    답답하다. 좀체 딱 부러지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선거 자체가 그런 자질과 요건을 검증하는 과정 아닙니까. 국민의 정서라는 것도 표(票)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고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그런(이름만 많이 알려진) 사람들만 놓고 표를 따진다면 의미가 없어요.”

    때를 기다린다

    ―정치권에선 이미 이 전의원의 내년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선거에 나가실 겁니까, 안 나가실 겁니까.

    “뭐, 나는 별로 못 들어봤는데… 벌써 출마설이 나와요?”

    ―한나라당에서만도 이 전의원을 포함해 네댓 사람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당에서야 그럴 수 있겠지. 내가 정치를 시작하던 92년 초에 김영삼(金泳三)씨를 몇 번 만나 분명히 제안했습니다. ‘나는 일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자리로 가겠다’고. 그해 5월에 서울시장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어요. 내 경영 마인드를 서울시장이 돼서 한번 펴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선거가 연기되는 바람에 국회의원이 됐던 겁니다. 그 후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내가 다시 얘기했습니다. 경영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서울시장을 하면 어떤 변화가 오는지 내가 보여주겠다고. 이게 잘 되면 국가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죠. 김대통령도 그러마고 했는데, 막상 선거를 앞두고는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서 그걸 못하게 한 겁니다.

    그런 사연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하려다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음 선거엔 꼭 나올 것이다’고 보는 것 같아요. 하고 싶던 걸 못했기 때문에 나한테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에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른 당 후보와 경쟁해서 이겨야 되는 거니까 내가 하고 싶지 않더라도 ‘당신이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고 있으니 내가 앞에 나설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여건이 조성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죠. 내가 전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자리로 가라는 것도 아니니까.”

    ―마냥 바깥에서 반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상황이 주어지기만 기다릴 뿐 준비는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나야 과거에 서울시 경영에 대해 구상해본 적이 있으니까 준비가 전혀 없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죠.”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른 서울시장 출마 예상자들과 비교해서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뭐, 그건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예컨대 서울의 교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하철이고, 한때는 한강 다리가 붕괴돼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았잖아요. 그런 사정을 놓고 보면 나는 서울시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해본 사람입니다. 지하철 공사도 해봤고 무너진 다리도 복구해봤어요. 젊어서부터 서울의 공사현장을 누비면서 서울시청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죠. 현장을 체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이런 일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여기에서 낭비되는 예산을 아끼면 저기를 메울 수 있는데… 하면서.

    그래서 재계 지도자들 사이에 ‘서울시장 한 자리만이라도 경영 마인드를 가진 경제인 출신이 가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고, 그러면서 내 이름이 거론됐던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하면 같은 일을 해도 예산을 줄일 길이 눈에 보이거든요. 중요한 건 경영 마인드예요.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경영자이고 서울시장은 서울의 최고경영자라야 합니다. 내가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은 선거준비를 구체적으로 했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런 경영마인드를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정치 일선에 복귀할 경우 그대로 야당으로 나가실 생각입니까? 당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까?

    “왜 그런 질문이 나오는지 모르겠네….”

    정계 개편설이 끊이지 않거니와, 이 전의원의 경우 정치를 떠난 지 3년이 지난데다 정치판에서 뼈가 굵은 인물도 아닌 만큼 당 안팎에서 그에게 ‘입질’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던진 질문이었다.

    “비록 평당원이긴 하지만 나는 한나라당에 소속돼 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주위에서 설왕설래는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어요. 뭐, 아직 출마를 결심한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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