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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이명박 전 한나라당 의원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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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서 많은 걸 느꼈는데, 미국은 금융과 첨단 정보산업 두 가지로 21세기를 지배하려 하더군요. 금융산업의 발전속도가 첨단산업에 뒤지지 않았어요. 그 결과 다양한 금융기법이 쏟아져 나왔는데, 여기에 인터넷이 이끄는 정보산업시대가 겹쳤으니 발전이 더 빠를 수밖에.

그건 내가 기업을 오래 하면서 겪었던 한국 금융산업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선 ‘뱅킹 비즈니스(banking business)’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나라에선 ‘금융기관’이라고 하잖아요. 일제가 우리나라에 은행을 세울 때부터 그걸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겁니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내려온 거예요. 그러니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가 있나요.

금융정책을 이끄는 공직자나 일선의 금융인이나 일제시대 은행 기법만 계속해왔습니다. 은행은 그저 앉아서 예금 받고 돈 빌려주는 일만 했죠. ‘기관’이다 보니 정부와 권력 앞에 무기력했고. 전당포보다 못한 짓을 해온 거예요. 전당포는 돈을 뜯기진 않거든요. 금융산업이 이렇게 낙후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있다 IMF 위기를 맞은 겁니다.

미국에서 금융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월 스트리트에서 실전 훈련을 받은 이들입니다. 루빈, 그린스펀, 올펜슨 같은 이들이 다 현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세계의 돈 흐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합니다. 그걸 맺고 끊으면서 미국 금융산업에 유리하게 방향을 틀어대는 겁니다. 우리 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금융산업부터 제대로 돼야 해요. 미국에선 은행과 증권 등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즈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투명한 금융산업의 ‘랜드마크’를 한번 세워보고 싶었어요.”

인터넷 증권사는 이미 설립 가인가(假認可)가 났고 지금은 본인가 과정을 밟고 있다. 이 회사는 이름은 증권회사지만 인터넷에 기반을 둔 새로운 컨셉트의 금융회사라고 한다. 이 전의원은 설립 단계에만 관여할 뿐 3∼4년 후에는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외국 투자가들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올해가 환갑이신데 인터넷 사업을 하시겠다니 뜻밖입니다.

“인터넷이나 벤처 비즈니스는 젊은 사람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 하지만 기업가정신은 똑같은 겁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벤처와 정보산업이 한참 뜰 때도 기존 산업을 유지했어요.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편으로 인터넷 기술을 도입하긴 했지만요. 이 양반 하는 말이 ‘기업가정신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예요. 이른바 ‘뉴 이코노미’도 기업가정신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거죠. 벤처를 하는 젊은 사람들이 기법은 괜찮지만 기업가정신이 없다 보니 실패하고 맙니다. 인터넷 비즈니스 시대에도 산업시대의 경험이 새로운 산업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더 높고 더 안전하다고 봅니다. 그걸 내가 보여줄 겁니다.”

증시, 대증요법으론 한계

―증권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요즘 우리 증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연기금을 투입하겠다고 나섰지만 약발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인데요. 우리 증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부는 외국의 경우 증시 투자자금에서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합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정부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런 나라에서 연기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연기금을 증권에 투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란 겁니다.

우리나라 연기금 관리자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과거에도 연기금을 증시에 넣었다가 마이너스로 만든 사람들 아닙니까. 수익 낼 능력이 없는데 증시에 연기금을 투자하면 뭣합니까. 연기금이란 게 민간자본이나 마찬가진데, 정부가 투자하라고 시켰다가 나중에 적자가 나면 정부 재정으로 그걸 메워줄 겁니까?

주식 투자자들이 그런 사정을 모르겠어요? 우리 증시는 그런 정치적 제스처로 감당할 수준이 아닙니다. 핵심은 투명성이에요. 기업에도 끊임없이 투명성을 요구하잖아요.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할 것은 정책의 투명성입니다. 정책이 투명하질 않으니 아무도 그걸 믿고 따르지 않아요. 그래놓고 어느 한 분야에만 투명하라고 요구하니 먹혀들지 않지요. 시장경제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는 것인데, 투명한 사람이 손해보는 현실에선 누구도 룰을 지키려 들지 않아요. 그러니 기업도 경쟁에 전력을 쏟지 않고 권력에 기대 편법을 쓰는 겁니다.”

한마디로 ‘기본’부터 챙겨야지 주가를 올린답시고 증시만을 위한 대증요법을 짜내본들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우리 증시 자금의 30%나 되는만큼 증시의 흐름을 쥐고 있는 것은 외국인들인데, 이들이 주시하는 것은 정책의 투명성, 기업의 투명성이라는 것. 그들은 특히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눈여겨본다는 얘기다.

―구조조정이 미진한데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 등 해외발 악재까지 겹쳐 우리 경제의 앞길이 어둡습니다. 기업에는 돈이 돌지 않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관 주도라는 게 별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데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이것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를 계기로 삼아 경제에서 정치논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정치논리에 막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닙니까. 경제는 경제 쪽으로 떼줘야 합니다. 경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 가령 경제부총리 같은 분은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경제논리로만 경제를 풀어가야 해요. 그렇게 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국내외에서 신뢰를 얻게 됩니다. 대통령이 말로는 ‘시장경제원리를 따른다’ ‘은행은 은행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걸 안 믿잖아요.

이제 우리 경제는 비전문가인 정치권력자들이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쳐서 잘 되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에요. 고도의 전문가적 대처가 필요한 수준에 와 있단 말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자기 당의 경제정책을 설명할 뿐,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린스펀이에요. 루빈, 서머스, 오닐 등 역대 재무장관도 다 업계 출신 전문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경제정책은 그저 참고할 뿐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우리 경제가 그들 경제보다 규모는 작지만 미국, 일본 등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어요. 따라서 우리 경제도 극히 전문가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는 것도 위험합니다.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만 하면 돼요.”

누가 현대건설 망쳤나

―경제논리를 강조하고, 평소에도 “이익을 못 내는 기업은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셨는데, 그렇다면 현대건설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 전의원께선 현대건설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습니다만, 저렇듯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현대건설에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로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현대건설이 무너질 경우를 걱정할 수밖에 없겠죠. 남북한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게고…. 정부가 현대건설에 저렇게 자금을 밀어넣고도 그 회사를 살리지 못한다면 엄청난 정책실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릴 수 있다면 지금 노출된 여러 문제들도 극복할 수 있는 거죠. 정부는 동아건설 처리 등 경험이 있으니 현대건설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나름대로 많이 연구했을 겁니다.

건설회사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어려움에 처했다 해도 제조업 회사와는 달리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건설회사에서는 사람이 특히 중요합니다.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요. 유능한 사람이 들어가서 제대로만 해내면 다른 업종보다 짧은 기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때문에 지금 현대건설을 지원하는 게 잘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기왕 지원했으니 이 회사가 정말 잘 돼서 주가가 오르고, 그래서 은행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서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부가 현대건설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 현대측이 보인 자세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비운다거나, 자구노력은 등한히 하면서 손만 벌린다거나, 회계를 엉터리로 하는 등의 모럴 해저드를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건설회사에서, 특히 현대건설 같은 규모의 건설회사에서 CEO는 그때그때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임직원들이 세계 곳곳의 건설현장에 나가 있으니까요. 더욱이 현장마다 여건이 다 달라요. 똑같은 토목공사라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는 공사와 동남아에서 하는 공사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과 법률, 풍습 때문에 여건이 판이해요. 그러니 그런 데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빨리빨리 결재해 줄 일이 많을 텐데, 현대건설 CEO와 임원들은 금강산 개발에 몰두하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현대건설이 금강산 개발에 돈을 너무 많이 쏟아붓는 바람에 어려움이 닥쳤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두셋째 이유밖에 안 돼요. 첫째 이유는 결정을 해줘야 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북한사업에 매달려 왔다갔다 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출장을 가서 자리를 비웠다면 문제될 게 없어요. 그런 곳과는 24시간 통신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북한에 들어가면 그렇지 못하잖아요. 통신이 안 되는 곳에 중요한 사람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현장 책임자들은 결재를 받으려고 이틀, 사흘씩 손을 놓고 있어야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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