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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문

극우파 지식인들의 국수주의 부활 행동대

추적!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정체

  • 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kisshim@donga.com

극우파 지식인들의 국수주의 부활 행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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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일본 역사 교과서가 ‘자학사관’ ‘암흑사건’에 빠져 있다고 공격하며, 스스로 ‘자유주의사관’을 내세우며 등장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는 단 한 명도 없이 13명의 리더가 이끌어가는 이 모임의 정체와 그 배후세력은?
한일관계를 격랑 속에 몰아넣고 있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은 1996년 12월 기자회견을 갖고 창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설립 취지문을 통해 “전후 역사교육은 일본인이 계승해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잃어버리고 일본인의 긍지를 빼앗아왔다. 특히 근·현대사는 일본이 자자손손 사죄만 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죄인처럼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취지문은 이어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일본의 어린이들을 위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역사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밝혔다. ‘전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일본인의 긍지를 높이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이 단체의 회칙 제3조는 ‘본 회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아동과 생도의 손에 넘겨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또 4조는 ‘제3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한다. ①최신의 학문적 식견에 근거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기획 편집한다. ②학교용 교과서에 관한 각종 제도 및 교과서 출판 사정을 연구한다. ③각종 강연회, 역사세미나 등을 개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史)’라는 기관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고 있다.

연구단체가 학문적 업적을 토대로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모임은 아예 처음부터 역사교과서 제작을 목적으로 출범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단체 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1996년 7월 경에 공개된 기존 7개 중학교 역사교과서 개정판 내용인데, 7개 교과서 전부에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일부 불만세력은 이를 삭제하라고 요구하며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단체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다.



이들은 모임 발족 직후 문부성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문부상은 교과서 발행자에 대해 신속하게 그(종군위안부) 삭제를 요구하는 권고를 행하도록 강하게 요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문부성 장관이 갖고 있는 ‘검정통과 후 수정권고권’을 발동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주장은 모임이 어떤 성격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모임은 이번에 자신들이 집필한 교과서에 ‘종군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한 줄도 기술하지 않았고 그대로 합격했다. 모임측은 이를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모임측은 출범하며 기존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 ‘암흑사관’에 빠져 있다고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자랑할 것도 많은데 유독 일본의 나쁜 점만 강조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것이 ‘제3차 교과서 공격’이다.

1차와 2차 교과서공격은 1955년과 1980년에 있었다. 모임은 자신들의 역사인식을 ‘자유주의사관’이라고 불렀다. 모임의 이사인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교육학) 도쿄대교수가 모임 결성 전인 1995년 1월에 만든 ‘자유주의사관 연구회’에서 따온 말이다.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도 같은 해 8월 이미 ‘중학교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역사학자 참여 없었다

이 단체의 발기인은 니시오 간지(西尾幹二·독일문학) 전기통신대교수,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교육학) 메이세이(明星)대교수, 후지오카 도쿄대교수, 사카모토 다카오(坂本多加雄·일본정치사상사) 가쿠슈인(學習院)대교수,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 등이었다. 이중 니시오 교수가 회장, 다카하시 교수가 부회장, 나머지는 이사(대우)가 됐다. 그 후 이사가 몇 명 늘어나 회장 부회장 및 11명의 이사 등 13명이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는 없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교과서를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학문 외적인 이유에서 단체를 결성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99년 니시오 회장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중학 역사교과서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역사’를 집필했고 이번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도 맡았다. 그는 문부과학성의 수정지시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합격하려고 몇 군데 고치기는 했지만 일본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일본 중심의 역사교과서를 쓰겠다던 당초 취지는 살렸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후지오카 도쿄대교수는 모임의 이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4월13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들이 쓴 교과서에서 137곳을 고쳤다고 하니까 굉장이 많이 수정된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며 “처음에 교과서를 만들면 그 정도의 수정지시는 적은 편이며 실제로 문부과학성 관계자도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모임의 이사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국제정치학) 교린(杏林)대교수는 “일본은 독일에 비해 전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에 “일본은 독일처럼 인종학살을 한 적이 없다. 독일은 전후에 모든 죄과를 나치에게 뒤집어씌우고 책임에서 도망쳤다”며 독일과 비교하는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천황과 총리가 몇 차례나 사과를 했는지 알고 있느냐”며 “일본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모임에 이사로 참여한 니시베 스스무(西部邁·평론가)는 이번에 공민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이 교과서도 합격했다. 이 공민교과서의 최초검정본에는 핵무장 필요성을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등 ‘개인’보다는 지나치게 ‘국가’나 ‘사회’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어 일본 내부에서는 역사교과서보다 더욱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니시베는 공민교과서의 원본인 ‘국민의 도덕’이라는 책 집필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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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ki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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