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목청 큰 암탉, 창의적 청개구리를 키운다

제2創學 선언한 숙명여대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4-18 13: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03년이면 대학 입학정원이 지원자 수를 초과하게 된다. 대학들의 ‘학생 모셔오기’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재력과 특성화로 무장한 ‘신흥 사립대학’ 군(群)이 등장하면서 역사와 전통에만 의존하고 있는 기존 명문 사학들은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업경영에서 목표달성을 위한 기준점을 설정하는 작업을 ‘벤치마킹’이라고 하는데, 대학 사회 역시 이런 ‘따라 배우기’ 열풍이 한창이다. 획기적인 마케팅, 고객만족 경영, CEO의 결단과 추진력, 업무 효율화로 대학 개혁의 새로운 벤치마크가 되고 있는 숙명여자대학교를 찾았다.
    정숙, 현명, 정대라는 교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 동안 숙명여대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조용하고 단아한 여자대학’이었다. ‘티없이 맑고 순결함, 백설의 정기, 예지, 고고, 지조’ 등 육각형 교표(校標)에 담겨 있는 의미를 들춰봐도 숙명여대는 다른 여자대학보다 좀더 조신(操身)한 이미지가 짙게 배어 있었다.

    여성만의 공간을 상징하듯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야트막한 언덕배기 위에 홀로 둥지를 틀고 있는 숙명여대는 입구 - 교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 바로 옆에 널따란 잔디가 있었고 본관을 향해 줄지어선 은행나무가 샛노란 잎을 떨굴 때면 앳된 여대생들이 깔깔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어찌 보면 참한 색시감을 고르기 좋은 그런 이미지의 대학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숙명여대를 둘러본 사람이라면 그 변화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고등학교 교문 같던 철제 대문은 세련된 현대식 교문으로 바뀌었고, 스무 개의 건물 중 최근 5년간 증축·신축한 건물만 10여 개에 이른다. 정면에 자리잡은 본관엔 가로 6.4m, 세로 4m의 초대형 전광판이 하루 15시간 동안 학내·외의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생서비스센터는 ‘원스톱 학사행정’ 체제를 갖췄다.

    교내 전역에 무선 LAN 망이 구축돼 무선 LAN 카드가 설치된 컴퓨터만 있으면 강의실, 연구실뿐만 아니라 학내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학교측에선 200여 대의 노트북을 구비해 학생들에게 대여해 주고 있다. 학내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인터넷을 즐기는 학생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사회교육관 1∼3층에 위치한 국제영어교육원은 링구어익스프레스(Lingua Express)로 불린다. 이곳은 일종의 ‘영어나라(EOC ; English Only Community)’로 일단 이 건물에 들어서면 모든 대화는 영어로만 해야 한다.



    휴대폰과 모니터가 쭉 늘어선 다른 대학의 어학실들과 달리 이곳엔 오디오, 비디오, 인터넷 시설이 갖춰진 멀티미디어 도서관과 함께 휴게실, 테마 카페 등이 있다. 쉴 때도 영어로 대화해야 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도 영어를 써야 한다.

    대형스크린을 통해 하루 종일 미국방송이 흘러나오고, 각 강의실은 사무실, 법정, 국제 회의장 등으로 꾸며져 테마별로 상황에 맞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별천지’인 것이다.

    짧게 몇 가지만 소개했지만 이 밖에도 숙명여대의 변화된 모습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숙명여대 85학번으로 현재 모교 국문학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조연숙씨(35)는 “나무와 잔디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다소 삭막해진 느낌도 있지만 80년대와 비교할 때 지금의 숙명은 ‘정말 우리 학교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런 외견상의 변화는 돈 많은 사립대학이라면 어느 대학이나 가능한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숙명여대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최근 숙명여대의 변화가 단순히 돈 많은 사립대학의 외형적 몸집 불리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숙명여대는 운이 별로 없는 학교다. 1906년 고종 황제의 부인인 엄귀비가 세운 숙명여대는 당시 황실로부터 황해도 지방에 있는 토지를 재원(財源)으로 할애받았다. 그런데 가장 큰 밑천이던 이 농경지들을 남북 분단으로 잃어버렸고 현재 위치한 청파동 땅마저 국유지에 편입됐다. 결국 반세기 동안 숙명여대는 국가 소유의 땅을 임대해 사용해온 셈이고 학교 건물들 역시 법적으로는 불법이었다.

    이경숙 총장은 “취임식 후 총장실에 올라와 보니 책상 위에 놓인 축하봉투는 8억 원에 이르는 세금과 벌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 뭉치였다”고 1994년 3월 취임 당시를 회고한다.

    1950년대 숙명여대는 서울시 응암동에 15만평의 대지를 소유한 적도 있었다. 캠퍼스를 이전하려고 준비한 부지였는데, 이곳에 큰 태풍으로 이재민들이 몰려들면서 천막촌이 형성돼 이전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서울시로부터 남현동 토지를 환지받았지만 이곳 역시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수도방위사령부가 설치되면서 느닷없이 국방부에 수용된다. 토지에 관한 한 숙명여대는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철수하면서 옛 땅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이번엔 이 부지가 공원용지로 묶여 매입할 수 없었다. 결국 숙명여대는 학교를 일으켜 세울 토지를 확보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말 그대로 ‘제2의 창학(創學)’이었다.

    ◇ 성공비결 1 - 과감히 바꿔라

    1995년 2월22일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엔 오후부터 ‘아줌마 부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부터 이제 갓 결혼한 새댁까지. 이들을 하나로 묶어 모이게 한 이 날 행사의 명칭은 ‘숙명 제2창학 선언 발기인 대회’. 제2창학을 이루자는 뜻에서 2월22일을 대회 날짜로 잡았고 100주년이 되는 2006년까지 그 목표를 달성하자는 뜻에서 2006명의 행사 참여인원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이날 펼쳐진 이색 이벤트는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 그러나 대부분이 가정주부로 집안 살림 챙기기도 빠듯한 형편에 이미 졸업한 대학에 등록금을 다시 납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선 ‘2억원만 모금돼도 기적일 것’이라는 냉소적인 예측이 많았다.

    “유사한 형태의 대학발전기금 모금 행사를 한 다른 대학의 경우 참석인원이 1000명을 넘지 못했다”며 “더욱이 여대(女大)고 졸업인원도 4만 명 정도에 불과한데 2006명의 발기인은 너무 허황된 목표”라는 주장도 있었다. 참석자들을 위한 도시락을 주문할 때도 주문 수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너무 많은 동문이 몰려와 경찰이 나와 교통정리를 해야 할 형편이었던 것. 결국 2500여 명이 참석해 이중 2005명이 ‘5학년 1학기 등록금’을 납부했고 62억원의 약정액이 접수됐다.

    이경숙 총장은 이 자리에서 “창학 100주년을 맞는 2006년까지 교육환경 개선, 교육의 질 향상을 통해 제2창학을 이뤄내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제2창학 선언 이후 변화된 것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홍보를 통해 대외 이미지가 개선됐다는 점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숙명여대가 만들어낸 ‘전국 1호(號)’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혁신적인 대학 마케팅’이다. 그 동안 대학들이 학교 홍보를 위해 만든 팸플릿, 포스터는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담은 캠퍼스 풍경, 연구하는 교수와 학생, 첨단 수업시설 등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거기에 사법시험 합격자 몇 명, 무슨 평가에서 전국 몇 위 등을 나열하는 정도.

    숙명여대는 ‘정숙’이 상징하는 고루한 인상을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로 바꿔야 했다. 홍보실이 새로 구성되고 박천일 교수(언론정보학부)가 홍보 사령탑을 맡으면서 숙명여대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광고 전략을 짜게 된다.

    대학 홍보에 필요한 예산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고안한 방법이 재학생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 ‘왜 안돼!’라는 문구를 내건 재학생 광고모델 모집 포스터를 보고 80여 명의 학생이 몰려들었다. 숙명여대의 광고모델 공개모집은 학교 홍보모델로 재학생을 활용하는 효시가 됐다.

    그 다음은 도발적인 문구로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것. 그래서 나온 것이 ‘울어라, 암탉아’ ‘뛰어라, 청개구리’ 같은 다소 엉뚱한 문구였다.

    “처음에 이런 광고문구를 내건다고 했을 때 원로 교수님들의 질책이 많았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꼭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 ‘청개구리는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숙명여대 학생 모두를 외곬로 보이게 하려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교수는 이총장으로부터 “민족과 여성만 빼고는 모두 바꿔도 좋다”는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예쁜 여학생의 웃고 있는 얼굴 위에 크게 쓰인 청개구리와 암탉은 주요 일간지를 타고 전국으로 배달됐고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미스 콜럼버스, 미스 빌 게이츠, 미스 광개토대왕, 나와라 여자 대통령, 디지털은 숙명, 그리고 총장이 직접 모델로 등장한 광고에 이르기까지 숙명여대 홍보실은 대학 이미지 마케팅에 새 장을 열었다. 폐쇄적이고 침체적인 이미지로 평가됐던 숙명여대가 98년 이후 점차 진보적,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 것.

    1997년 0.29 대 1에 불과했던 특차모집 경쟁률이 1999년에는 2.3 대 1로 크게 올랐다. 또 학교 홍보 광고로 숙명여대는 98년 대한민국광고대상 신문부문 은상과 한국광고연구원에서 수여하는 ‘THE BEST AD’ 본상을 수상했다. 대학광고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숙명여대 따라하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전국 1호’는 학생서비스센터다. 교직원은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는 기존 가치관을 버리고 ‘학생서비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지금은 보편적이지만 학생서비스센터의 설립은 불과 몇 해 전인 97년만 해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교수 휴게실을 개조해 만들어진 학생서비스센터에서 이 학교 학생들은 각종 증명서를 자판기로 간단히 발급받을 수 있다. 또 행정처리 결과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서비스센터와 연결된 학생생활상담소, 취업지원팀 등과 관련된 학사관련 행정업무를 이곳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해외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김경하씨(27)는 “예전엔 ‘이리 가봐라’ ‘저리 가봐라’ 하는 교직원이 많았는데 이젠 한곳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교직원들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호감을 나타냈다. 또 그는 “모교 출신 직원을 채용하면 애교심은 높을지 모르지만 교육 소비자인 학생을 ‘새까만 후배’로 여겨 가볍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몇 가지 불만을 덧붙였다.

    국가나 튼튼한 재단의 지원, 혹은 크게 성공한 기업가 동문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숙명여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의 합의와 단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섬김 문화’로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돕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가장 먼저 교수회의, 교무 위원회 등의 회의 결과를 인터넷과 학교에서 발행하는 각종 소식지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교수, 학생, 교직원 간에 지켜야 할 예절을 ‘숙명 에티켓 가이드’라는 책자에 담아 배포했고 총장과 학생, 교직원 간의 간담회를 정례화했다.

    ‘고객만족경영’이라는 구호는 기업 마케팅 전략에선 흔히 사용되는 말이지만 대학에서 학생을 ‘고객’이라고 칭하고 대학 행정을 ‘경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직도 다소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경숙 총장은 “학생은 고객, 대학은 고객을 위해 봉사하고 가치를 높여주는 기업이며 나는 고객과 기업을 위해 선임된 CEO”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숙명여대는 행정부서마다 ‘고객만족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또 학생을 포함한 평가단을 구성, 기준점에 도달할 때까지 심사를 계속해 인증을 받도록 하는 ‘고객만족 인증제’와 ‘행정직원 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98년, 99년엔 숙명여대가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 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숙명여대가 얻은 점수는 64점, 이 점수는 백화점에서 느끼는 친절도와 같은 수치다.

    4월 초 숙명여대 교문 옆에 붙은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이 학교 동아리연합회에서 만든 대자보인데 내용인즉 동아리 수에 비해 방이 부족하니 좀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총장은 학생회관을 증축하라!”식의 느낌표가 들어가는 항의성 문구로 시작되는 타 대학 학생회의 대자보와 달리 이 학교 학생들이 써붙인 대자보 제목은 “총장님, 우리 동아리 방에 들러주세요”라는, 다소 애교 있게 느껴지는 문구였다.

    대자보를 붙이던 A양은 “다른 대학처럼 재단이 부정축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 시설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데 굳이 거칠게 대결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항의해도 안 되면 모르겠지만 그 동안 학교에서 알아서 잘 해줬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립 대학들이 크고 작은 재단 내부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는 반면 숙명여대는 그런 좋지 않은 행태를 외부에 보여준 예가 없다.

    매년 5월8일 숙명여대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청파은혜제’라는 행사가 열린다. 학부모들을 초청해 각종 공연과 장기자랑을 보여주는 자리인데, 인근 상가 주민들과 하숙집 아주머니까지 초대된다. 숙명을 지켜주는 모든 구성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행사에 전통으로 내려오는 공연 중 하나는 총장과 각 부처장이 보여주는 ‘춤사위’. 작년엔 이총장과 이창신 교무처장, 서영숙 학생처장 등 10여 명의 보직 교수들이 검은 바지에 티셔츠를 차려 입고 형형 색색의 가발까지 쓴 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테크노 댄스를 춰 크게 화제가 됐다. 올해는 어떤 춤을 보여줄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총장은 “학생들이 가르쳐 주면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이야 하겠지만 잘하는 것보다는 자꾸 틀리는 것을 더욱 즐기는 것 같으니 무대에서 학생과 학부모님께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었다.

    ◇ 성공비결 3 - 간소화, 규격화, 제도화

    숙명여대 교직원들의 책상 위엔 잡다한 문서나 서류가 거의 없다. 문서관리프로그램을 통해 불필요한 문서를 과감히 폐기했고 모든 정보와 사업 성과를 인트라넷을 통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서고를 뒤지고 타 행정부서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필요한 문서는 검색을 통해 바로 확인해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특정 부서에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원을 강사로 선발해 자신이 맡은 업무를 교안(敎案)으로 작성, 강의토록 함으로써 사소한 업무 하나까지 전문화·규격화했다. 그리고 모든 직원에게 개선 아이디어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함으로써 활발한 제안과 대안창출을 가능케 했다.

    ‘SOC(Sookmyung Office Challenge) 2000’으로 불리는 이 작업은 행정업무개선 전문연구기관에 위탁해 진행했다. 다음은 이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킬 단계. 숙명여대는 2000년 2월 국제 품질인증 시스템인 ISO9001 인증 심사를 통과했다. 기업도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는 ISO9001 인증을 획득한 대학 또한 숙명여대가 ‘전국 1호’다.

    최근 숙명여대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을 갖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숙명여대는 학교를 바꾸는 혁명적인 작업에 여념이 없다.

    한 교수는 “학생들 지도하랴, 제2창학 운동으로 인해 쏟아지는 각종 사업에 참여하랴 정신이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를 아예 새로 만들겠다는 의지 아래 실시된 제2창학 운동은 더 이상 과거의 영예에만 의지해 뒤처지는 대학으로 남지 않겠다는 대학 구성원들의 숨겨진 합의가 있기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숙명여대의 지난 5년은 ‘역사를 새로 쓴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변화의 연속이었다.

    숙명여대에서 발행한 학교 요람 중 학교연혁 편을 보면 100년에 이르는 역사 중 94년 이후의 증설·매입·신축 기록이 전체 7페이지 중 세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외형적인 변화는 대단했다.

    지표를 대강 훑어보아도 일단 학교 면적이 제2창학을 선언했던 5년 전에 비해 두 배가 넓어졌고, 7000명 정도의 학생 수도 1만여 명으로 늘었다. 전임교수가 100여 명이 늘었고, 2명에 불과하던 외국인 교수도 30여 명으로 늘었다. 1000억 원을 목표로 한 대학발전기금 모금은 이미 500억 원을 돌파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까진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수도방위사령부가 옮겨간 부지에 숙명여대는 미술관과 야외조각공원, 100주년 기념관, 체육관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서울 한복판의 문화예술 종합공간으로 조성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다.

    숙명인들은 그곳을 ‘숙명 르네상스 플라자’라고 부른다. 과연 숙명의 르네상스는 시작된 것인가. 이경숙 총장은 주저없이 “자신 있다”고 대답한다. (숙명사랑 전화 ARS 700-0522, 한 통화 3000원)

    “비전·리더십으로 제2창학 이끈다”

    ―최근 일부 여자 대학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했고 또 이를 고려하고 있는 대학도 있습니다. 여자대학은 외국에서는 흔치 않은 한국만의 풍토(?)라고도 생각되는데요, 21세기,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자대학이 갖는 의미, 여자대학이 갖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리더십을 배양하는 데는 여대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봐도 여자들끼리 있으니까 여자가 대표가 될 수밖에 없고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 대학은 여성 전문 지도자를 키우는 쪽으로 커리큘럼을 바꾸고, 모든 시스템을 유능한 여성 지도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대는 남녀공학 여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취업률이 30% 이상 높습니다. 남녀 공학의 경우 취업 의뢰가 오면 일단 남학생을 추천하고 그 다음에 여학생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대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식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여성들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직종이 늘고 있습니다. 여성의 섬세함과 감성을 발현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 이를 특성화하는 부분에선 여대가 훨씬 유리합니다. 여대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적극 육성하는 중입니다.”

    ―많은 사람이 숙명여대를 대표적인 ‘변화하는 대학’으로 꼽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숙명여대의 ‘변화’를 한마디로 표현해주십시오.

    “숙명여대는 지난 6~7년 동안 거의 180도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교육환경과 제도, 사람을 모두 바꿨습니다.

    예전에 ‘숙대’ 하면 현모양처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세계적인 여성지도자와 전문 인력을 키우는 적극적이고 활기 찬 이미지를 가진 학교로 바뀌었죠.

    일단 규모 면에서 두 배 이상 커졌고 커리큘럼도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전혀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숙대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해 질적인 측면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대학에서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나름대로 개혁작업을 진행중입니다. 대학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비전과 리더십입니다.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대학의 경우는 ‘제2창학’이라는 비전 아래 창학 100주년인 2006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여대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비전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보여줘야 힘을 갖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정보화, 세계화, 개방화, 민족화 라는 4대 특성화 사업으로 정리해 동의를 얻었습니다.

    비전에는 당연히 저항도 있고 냉소도 있기 마련인데, 이를 극복하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신뢰를 기본으로 합니다. 리더가 먼저 본을 보이고 사심 없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개혁에 필요조건 중 하나가 구성원들의 합의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재정적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2006년까지 세계 최상의 명문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은 다소 허황되게 들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2창학 운동을 계획하고 대강 예산을 잡아보니 1000억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06년까지 1000억원을 모금하겠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학교발전기금으로 한번에 모금된 최고 액수가 2억원인데 어떻게 1000억원을 모금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또 3억 원을 들여 ‘제2창학 선언 발기인대회’를 한다고 했을 때는 ‘학교 말아먹을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2006명의 발기인을 훨씬 넘는 인원이 참석해 62억의 발전기금이 즉석에서 마련되는 것을 보면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는 모두가 제2창학 운동의 성공을 확신,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비전이 세워지면 리더는 외롭고 힘들더라도, 가다 안 되면 나중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최고경영자가 너무 부지런하고 전권을 휘둘러 구성원들이 ‘개혁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까?

    “우리 대학은 작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됐습니다. 구성원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캠퍼스가 작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엘리베이터에서도 만나고 복도에서도 만나니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한 학기에 두 번씩 교수회의를 실시하고, 학생들과의 간담회도 일 년에 네 번이어서 대화 창구가 많이 열려 있어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교무회의, 각종 위원회에 교수들이 직접 참여해서 직원들과 함께 논의해 정책을 만들어내고, 또 이를 공개해 합의과정을 충분히 거치니까 자연히 넓은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모두가 프로그램을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추진한 사업이니 일단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숙명여대는 개성 있고 참신한 대학 광고로 세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여자가 크는 대학 숙명’이라는 광고문구는 상당히 진취적이었습니다. 자신 있고 유능한 여성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숙명의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선 영어와 컴퓨터 사용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갖추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도록 하는 ‘졸업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능력을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한 학기 100명 이상을 모집해 리더십을 키워주는 ‘차세대 여성지도자 프로그램’도 시행중입니다. 또 해외 견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선발해 2주 이상 현장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해외연수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커리큘럼도 시대에 부응하는 것으로 개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법대의 경우는 지식 공유 문화와 지적 재산권, 정치학과의 경우엔 정보와 정치, 전자 민주주의 등과 같은 과목을 개설해 시대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