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아토피 피부염, 면역제제와 체질의학으로 고친다

  • 안영배(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5-04-18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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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 2001년 4월3일
    • 곳: 신동아 회의실
    • 참석자 노건웅(서울알레르기클리닉 원장) 양성완(뉴코아한의원 원장)
    • 사회: 안영배 기자
    사회 : 의학계에서 21세기에 인류가 정복해야 할 10대 질환 중 하나로 꼽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은 암이나 에이즈 못지않은 난치질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0.5∼1%, 어린이의 경우 5∼10% 정도가 이 병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흔한 질환이면서도 아직 뚜렷한 치료대책이 없어 환자와 그 가족들이 애태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흔히 신생아에게 많이 나타나 태열(胎熱)로 불리는 이 병은 예전에는 자라면서 저절로 낫는 질환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성인에게서도 발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환자들은 잠을 청하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가려움증과 보기에 흉한 피부로 인해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일부 환자들이 비싼 돈을 들여 일본까지 ‘원정’ 가 치료를 받는 안타까운 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양방 및 한방 분야에서 최근 아토피 피부염 치료로 주목받고 있는 의사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독특한 치료 노하우를 갖고 계신 두 분께서 이 질환에 대한 최근 정보 및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충분히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양방과 한방의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다고도 보는데요, 먼저 양방 전문의인 노건웅 박사께서 아토피 피부염이란 과연 무엇인지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노건웅: 아토피(Atopy)란 말 자체가 ‘비정상적인’ ‘이상한’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듯이 매우 복잡한 질환입니다. 면역학을 전공한 제 입장에서 보면 유전적인 소인(素因)에 의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아토피라 하고, 또 그것이 피부염으로 나타난 것을 아토피 피부염(Atopic dermatitis)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알레르기 피부질환이면서 유전적 소인을 띠고 있는 것이 아토피 피부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양성완: 한방에서는 쉽게 말해 ‘피가 이상한 상태’라는 개념에서 접근해볼 수 있어요. 아토피는 흔히 태열로 통하는데, 이는 모태에서부터 어머니와 태아의 혈액 성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고유의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기 위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태열은 아이가 자기 고유의 항상성 유지라는 대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면역 혹은 방어기전을 취득해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죠. 보통 면역반응은 3∼4세에 완성되는데, 이렇게 되지 않을 경우 알레르기라든가 면역질환 쪽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옛날과 다른 음식문화, 공해, 스트레스 등 다른 환경 속에 놓이다 보니까 아토피 피부염이 노소의 구별없이 생기는 추세예요. 어렸을 때 태열이 없던 사람에게도 나이 40이 넘어 발병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은 자기 항상성 유지가 안 되는 불균형 상황에 놓이면 이 질환이 연령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유전과 체질의 함수관계

    노건웅 : 참고로 면역학적으로 덧붙이자면 자궁 밖으로 나온 신생아는 모태에서 가지고 있던 특수한 알레르기 상태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면역학적으로 성숙이 덜 됐기 때문에 바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질 못하지요. 바로 그때 태열이 나타난다고 해요. 그런데 ‘태열은 돌이 지나면 낫는다’ ‘걸으면 낫는다’는 등의 말을 많이 하지만 요즘 태열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므로 조기 발견해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사회: 양원장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토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노원장님은 아토피가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아토피 질환이 왜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양성완: 아토피 원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어요. 양방에서 말하는 유전적인 소인을 한방으로 표현하면 체질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아토피 질환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그 밖에 음식, 거주하는 지역, 기후와 같은 환경적인 문제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한의학 서적들을 보면 매운 음식을 많이 먹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술을 과음했을 경우 태열이 심해진다고도 하지요. 심지어 출산 후 시어머니와 싸웠더니 아토피가 생긴 경우도 목격할 수 있었고요.

    노건웅: 양의학에서는 어떤 병의 원인에 대해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나눕니다. 선천적인 것으로는 아까 말씀드린 유전적 소인을 꼽을 수 있고, 후천적인 것으로는 산업화된 이후 늘어난 대기오염이나 스트레스 등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이 작용한다고 봐야지요. 예를 들어 쥐 실험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이용해 자극을 주면 유전적 소인이 없는 쥐가 인위적으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사회: 그렇다면 양의학에서 말하는 유전적인 소인과 한의학의 체질적 소인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까?

    양성완: 한의학의 근본은 체질입니다.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해 4상체질이니 8상체질이니 또 그보다 폭넓게 32상체질이란 것도 있는데, 아무튼 체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개성이자 유전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방에서 이렇게 체질을 따지는 것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체가 아닌 편향성을 갖고 출발하기 때문에 그 편향성에 의해 생기는 불균형, 부조화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양방이 아토피 피부질환에 대해 알레르기 수치가 높다 낮다 등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해 그 이상 상태를 조절하려 한다면, 한방은 환자의 상하(上下) 좌우(左右) 전후(前後) 표리(表裏) 등 공간적인 지표에 의해 한열조습(寒熱燥濕, 더운가 찬가 습한가 말랐는가)의 체질적 편차가 어떤가를 살펴보고 그 편차를 조절해 균형 혹은 평형을 이루고자 합니다. 약물이나 여러 요법으로 음양조화의 균형을 유도해줄 경우 치료가 된다는 원리지요. 이러한 진단법은 비단 아토피뿐만 아니라 한방의 모든 질환에 적용됩니다.

    사회 : 시중에는 태열은 장가가면 낫는다 혹은 체질이 바뀌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체질이라는 게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건가요? 또 아토피에 잘 걸리는 체질이 따로 있습니까? 예를 들어 태양인, 태음인, 소음인, 소양인 등 네 가지 체질 중에서요.

    양성완: 한방에서는 질병의 원인으로 크게 내인(內因), 외인(外因), 불내외인(不內外因)으로 구별합니다. 내인이란 자기가 갖고 있는 유전적 소인으로서 고유의 자기 체질에 의해 불균형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이런 체질은 선천성이기 때문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외인은 체질과 관계없이 외부의 환경적 원인에 의해 병이 생기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불내외인은 이를 테면 방사과다 같은 것에 의해 병에 걸리는 것을 의미하지요(웃음).

    또 아토피는 모든 체질에서 올 수 있어요. 그런데 성인에 대한 임상적인 경향을 보면 아무래도 소양인과 태음인이 아토피 질환에 이완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몸이 더운 체질인 소양인은 그 화열(火熱)이 지나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열을 식혀주는 방법으로 치료하게 됩니다. 태음인은 몸에 습(濕)이 많아 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는데, 이때는 방열(放熱)하는 치료법을 택하게 되지요. 소음인은 속이 찬 대신 표열(表熱, 또는 虛熱)이 떠 피부질환이 생기는 수가 있는데, 이때는 속을 오히려 데워 겉을 시원하게 해주는 한방원리를 사용하고, 태양인의 경우 몸이 매우 건조하므로 소양인처럼 열을 바로 식혀주는 대신에 살살 달래주는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사회 : 양의학에서는 어떤지요?

    노건웅 : 일반적으로 양의학에서는 그런 체질적 구분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면역학 치료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한방적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A라는 아토피 치료약이 개발돼 연구해보니까 1000명 중 50명밖에 효과를 보지 못해 통계학적으로 치료제로서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나 저는 효과를 본 그 50명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봤더니 과연 공통점이 발견되더라 이거예요.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을 지닌 다른 환자들에게 똑같이 그 A라는 약을 사용해본 결과 80% 이상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저는 이후 각 약이 잘 들을 만한 사람들의 군(群)을 찾아내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그 결과 한의학의 체질 개념과 유사한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서 스테로이드가 잘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듣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의사들은 흔히 여성이 임신을 할 경우 알레르기 증상이 호전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임산부에게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많이 분비돼 알레르기 치료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임신을 한 뒤 알레르기가 더 악화돼 찾아오는 산모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스테로이드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사회: 아토피 피부염은 성인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의 경우 성장 장애를 겪을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너무 가려워 밤에 잠을 못자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 역시 덩달아 잠을 설치게 되고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어린이 태열 치료에 대해서 두 분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양성완: 한의학에서는 체질을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소아는 성인과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체질을 정확하게 확정짓기 어려운데다, 부모의 유전적 소인을 가장 많이 닮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부모 체질의 경향성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보통 남자는 15∼16세, 여자는 13∼14세 무렵에 2차 성징이 발현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성인이라고 보고 체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요.

    아무튼 부모 체질이 어떤지를 살펴본 다음 아이가 처한 환경 요인, 음식 요인, 그리고 증상이 나타나는 양상 등 여러 가지를 참고해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합니다.

    아토피는 다른 질환에 비해 매우 다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생기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하거나, 기후가 습해 걸리는 식으로 아주 복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원인을 정확하게 감별 진단해 치료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을 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분유 바꾸기로 태열치료

    노건웅: 소아 아토피를 말하기 전에 부모들이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아는 태어나면서 태열을 가지고 있다가 최소 1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하는데, 이때 태열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BCG 예방접종입니다. BCG는 알레르기 유발이 아닌 쪽으로 유도하는 물질인데, BCG를 접종할 경우 소아의 아토피가 치료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최근에 호주에서는 BCG가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 있다는 논문이 보고되기도 했구요.

    그리고 양원장님이 소아는 성인과 체질이 좀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태어난 지 6개월 미만의 소아에게 아토피가 발병하는 경우 그 원인이 대부분 음식물이라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이 시기의 소아는 일반적으로 우유나 분유 같은 이물질에 일차적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개월 미만의 소아 아토피 환자는 먹는 분유만 바꿔줘도 80∼90%는 치료된다고 봅니다.

    한편 분유로 인해 알레르기가 이미 유발된 소아는 6개월이 넘어가면서 이유식을 잘못하면 또 그 이유식에 대해 알레르기를 획득하게 되고, 이후 4∼5년간 집진드기에 노출될 때 알레르기를 다시 획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간단하게 시작된 알레르기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메커니즘이 있어요.

    흔히 부모가 자기 자식이 집진드기나 봄철의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우문(愚問)입니다. 식품과 달리 집진드기나 꽃가루와 같은 환경에 대한 알레르기는 약 4∼5년 정도 노출돼야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집진드기 등에 의해 아토피 피부염이 유발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양성완: 6개월 미만의 소아의 경우 분유가 아토피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소아 아토피 질환의 전적인 원인이 음식물에 있다는 것에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제가 북경의 한 유명 피부과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있었을 때의 경험을 말씀드리지요. 중국 부부들은 거의 맞벌이에다가 아이들 역시 한국처럼 우유를 먹고 자라는데 거기서는 소아 아토피 환자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륙 쪽의 북경과는 달리 해안에 접해 있는 상해 쪽에서는 아토피 환자가 많구요. 또 영국에 2년 동안 교환교수로 갔던 한 중국인 피부과 의사는 북경에서 보지 못한 아토피 환자를 엄청나게 보고 많은 임상을 쌓았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것을 보면 지리나 기후 요인도 작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소아 환자라고 해도 스트레스나 기후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건웅: 물론 100% 음식 때문에 아토피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고, 소아의 경우는 80∼90%가 그렇다는 취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예전의 모유 세대에 비해 분유 세대에서는 태열이 4∼10배 정도 증가한 추세는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나온 최신 논문에 의하면 아예 신생아에게는 무조건 저(底)알레르기성 분유를 먹이자는 얘기까지 등장해요. 우유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 중 ‘카제인’을 가수분해한 저알레르기 분유를 먹이는 것이 좋고, 이때 아이가 설사를 하면 아예 유당을 뺀 저알레르기 분유를 먹이자는 거지요. 아무튼 분유를 알레르기의 시발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유와 같은 음식이 기본 원인 혹은 1차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그 외에 스트레스나 환경 등이 부가적이고 2차적인 요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성완: 아토피 질환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는 실제로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 부분은 나중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임상에서는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환자도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그 음식을 먹으면 괜찮은 사례들도 적잖게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토피 피부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고 보고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회 :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음식과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 짚어보기로 하지요. 흔히 음식을 먹고 난 뒤 몸에 나타나는 이상반응을 식품 알레르기라고 하지요. 전인구의 0.3∼0.7%가 식품 알레르기 환자이고, 나이가 어릴수록 환자가 많아 영·유아 시기에는 8%대에 이른다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국내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식품 알레르기 검사법(DBPCFC)을 도입, 실시하고 있는 노원장님께서 먼저 말씀해주실까요?

    노건웅: 실제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식품 알레르기에 대해 검사한 게 별로 없고 외국통계치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맞춰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아주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어느 환자가 의사에게 찾아와 ‘선생님, 저 어제 삼겹살 먹고 이상해진 것 같아요’ 하면 의사는 ‘외국에서는 돼지고기는 거의 알레르기가 없는 걸로 보고돼 있다’며 무시해버려요. 환자는 분명히 자신이 돼지고기를 먹고 몸이 안 좋아졌음을 체험하고 말하는데, 의사는 외국 논문이나 통계에 그런 것이 없다면서 상대를 안 하려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알레르기 교육강좌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분이 알레르기 유발 식품 순서로 우유, 달걀, 땅콩, 생선 순으로 발표했어요. 그런데 이건 외국 통계치이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라요. 우리나라는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땅콩이나 생선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현재 전국민의 25%가 아토피 유병률이 있고 식품 알레르기를 조금씩 갖고 있는데, 국내 통계가 부실해 잘못 알려진 정보로 환자들이 받는 피해는 엄청나다고 봅니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죠.

    또 하나 짚어보지요.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근거 없이 이유식을 시작하는 시기가 생후 100일로 당겨졌어요. 이유식을 만드는 회사에서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서 날짜를 몇 개월 앞당겼는지는 모르지만, 아토피 소아 환자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소화기 전문의들은 이유식은 생후 6개월이 적합하다고 말하고, 특히 알레르기가 있는 아기는 생후 9∼12개월 이후에 이유식을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한편 생식(生食)이 이유식으로 둔갑해 버젓이 판매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날콩은 어마어마한 항원성을 가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품이에요. 그걸 이유식으로 먹은 아이가 뒤집어져서 콩 알레르기를 얻어 저희 클리닉을 방문한 경우도 있어요. 결국 이런 부분에 대해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건강보조식품 남용이 화 불러

    양성완 : 식품 알레르기의 경우 한방에서는 사상체질론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알레르기를 많이 유발하는 육류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지요.

    쇠고기는 태음인에 맞고, 열성 음식인 닭고기는 소음인에, 찬 성질을 가지고 있는 돼지고기는 소양인에 맞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돼지고기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은 소양인이 아닌 다른 체질인 경우가 많고, 닭고기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은 소음인이 아닌 다른 체질인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양인에 맞는 돼지고기와 소음인에 맞는 닭고기 모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을 살펴볼 때 음식과 체질은 상당히 유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저희는 아토피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체질 구별로 식이요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아 아토피 환자의 경우에는 음식을 먹는 습관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식을 하거나, 특히 밤에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것은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절대 금기사항입니다. 가려움증은 밤에 심해집니다. 한의학적으로는 혈열(血熱) 식적(食積) 담음(痰飮)의 경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아토피 환자들을 임상적으로 살펴보면 밤에 과식을 했을 때 식적으로 인해 가려움증이 심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매우 다양한 건강보조 식품을 먹이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한방에서는 소아들의 경우 오장육부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식을 하거나 의사의 정확한 진단없이 건강보조식품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 임상에서 건강보조식품을 장기간 복용하고 나서 아토피 피부염이 유발돼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건웅: 양원장님이 체질별로 알레르기 유발식품을 제시한 대목은 매우 흥미롭군요. 저희 병원에서 식품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면 돼지고기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 닭고기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 등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겠네요.

    사회 : 본격적으로 난치성 아토피 환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 일단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제제 사용에 매우 민감을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노건웅: 양의학계에서 실시하는 아토피 치료에는 일반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일단 아토피 피부염이 심하면 기본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적절히 써주고, 가려움증을 덜어주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고, 보습제와 같은 외용제를 통해 피부관리를 해주는 정도입니다. 거의 교과서적으로 실시하지요.

    면역학 이론으로 볼 때 스테로이드는 일시적으로는 알레르기를 눌러주는 효과는 있어요. 그러나 계속해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경우 인체 내부는 알레르기가 누적돼 갑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써서 염증을 가라앉힌다 해도 스테로이드를 끊는 순간 당연히 재발하게 됩니다. 결국 스테로이드가 계속 누적될 경우 폭발해버리는데, 이른바 ‘스테로이드 내성’이라고 하지요.

    스테로이드에 과량 노출된 환자를 보면 그 피부가 시푸르딩딩합니다. 그래서 피부색을 보면 스테로이드를 썼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특히 아토피 치료로 소문난 모의원과 모약국의 경우 스테로이드를 과량으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흔히 그런 곳에 다녀온 환자들이 1주일 만에 피부가 극적으로 좋아졌다고 감탄하는데, 기술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가능하지요. 저는 스테로이드를 거의 쓰지 않는 편이지만, 환아가 돌 사진을 찍을 때나 성인이 결혼식을 해야 할 때 등 일시적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아야 할 때 처방하긴 합니다.

    양성완: 한방에서는 스테로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릴 처지는 아닙니다만, 아토피를 치료하면서 느낀 점은 스테로이드가 인간이 만든 약 중에서 마약 못지않게 정말로 대단한 약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스테로이드를 쓰다가 중단하면 금단현상이 나타나요. 조금 심하면 패닉 상태까지 오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 병원을 찾아오는 재발 환자들 중에 스테로이드에 과량 노출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임상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기간과 양에 비례해서 아토피 피부염은 그만큼 더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금방 노원장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이런 환자들은 피부색이 죽어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 피부색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치료가 안 된 것이고 반드시 재발하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피부를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처럼 독립된 장기로 봅니다. 그러면서도 인체 내부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아토피는 피부질환이면서 동시에 인체 내부 질환으로 인식합니다.

    치료에서도 첫째 독립 장기인 피부를 깨끗이 하라, 즉 이물질이 쌓인 피부를 정화시키라는 관점이 있고, 둘째는 피부는 몸속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한의학의 일반원리인 내부의 평형을 조절해 균형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래서 저는 피부에서도 계속 독소를 배출하고 새로운 세포가 자라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피부의 이물질이나 독성 물질을 효과적으로 배출시켜주지 못하면 누적돼 제3, 제4의 피부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면역치료의 세계

    사회: 두 분께서는 아토피 치료와 관련해 독특한 치료약을 개발, 각기 몸담고 있는 의학계에서 주목을 받았지요? 노원장님은 아토피 피부염 질환에 감마인터페론과 알파인터페론이라는 면역제제를 사용해 성과를 거두었고, 양원장님은 특수 한약제제를 개발해 임상실험에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노원장님이 아토피 치료에 사용하는 면역제제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말씀해주시지요.

    노건웅: 저는 스테로이드를 피하는 대신에 감마인터페론이나 알파인터페론이라는 면역 조절제를 사용합니다. 전통적인 치료법인 스테로이드를 써도 치료가 안 되니까 면역제제를 사용해 면역체계를 조절하여 환자 스스로 이겨내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흔히 감마인터페론이 항암제 아니냐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환자들이 묻곤 하는데, 저는 스테로이드 자체도 면역억제제로 항암치료의 기본 제제인데 어떻게 피부에 바를 수 있는지 되묻곤 합니다. 아직 국내에서 양의학적 치료가 너무 획일화돼 있는데다 감마인터페론이나 알파인터페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나온 얘기지요.

    양성완: 감마인터페론이나 알파인터페론이 국내에서는 낯선 치료법인데, 세계 의학계에서 아토피 치료에 적용하는 추세인가요?

    노건웅: 세계적으로는 이들 약을 아토피 치료에 적용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아주 소수에게만 적용돼 유효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돼 의학자들이 놓아버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연구해본 결과 집먼지진드기로 인한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게 감마인터페론을 투여한 결과 효과를 거두었고, 주로 소아에게 잘 듣는 편이었습니다. 세계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개발한 이 치료법이 미국 면역학회 논문집인 ‘사이토카인’지에 게재돼 공인받기도 했어요.

    또 알파인터페론의 경우 감마인터페론 싸이모펜틴 등 기존 치료법으로 잘 치료되지 않는 44명의 아토피 환자에게 시도한 결과 84.6%에게서 좋은 효과를 거둬, 이 역시 ‘사이토카인’지에 실렸어요. 알파인터페론은 전세계에서 제가 13번째로 도전했는데, 그 이전 사람들이 실험해본 결과 아토피 치료 효과가 10%도 안 돼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러나 저희 병원에서는 치료 효과가 있는 10%의 환자에게서 공통점을 추출했는데, 혈중알레르기항체(IgE) 수치가 정상이며 대부분 식품 알레르기가 있었고, 피부 병변에 거의 뚜렷하게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특징을 보이는 다른 환자군에게 적용해본 결과 알파인터페론의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았던 것이지요.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한의학적 체질 구분을 못하더라도 특정한 약물에 반응하는 특정한 환자군이 있음을 파악한 것이지요.

    사회: 최근에 양원장님이 개발한 아토피 치료제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가 한의학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어떤 치료법인가요?

    양성완: 저희 한의원 연구진들이 권백 등을 주 재료로 해 자체 개발한 한방피부연고 ‘지양고’와 생지황, 적작약 등을 주 재료로 한 복용용 탕약 2종에 대해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손낙원 교수)과 산학협동 차원에서 동물실험을 한 바 있습니다. NC/Nga 쥐(유전학적으로 12주가 되면 자연적으로 아토피가 유발되는 특수한 쥐) 실험에서 지양고를 한달간 쥐 피부에 발라보았더니 스테로이드 계통의 피부연고와 비교해본 결과 피부염증반응지수에서 약 35% 우수한 효능이 나타냈고, 긁기 행동지수에서는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효능을 나타냈습니다.

    지금까지 한방에서는 극심한 염증이나 가려움증을 짧은 시간 내에 일시적으로 해소해주는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개발된 지양고는 스테로이드에 비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는 한약제일 뿐만 아니라 스테로이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힐 것 같습니다.

    노건웅: 한의학 분야에서 대단한 접근을 한 것 같군요. 질문이 있습니다만, 특별히 아토피 치료에 쓰거나 잘 듣는 천연 약초가 있습니까?

    양성완: 한의학에서는 특정 약물이 아토피에 유효하다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양방처럼 아토피라고 해서 A라는 약물을 쓰고 건선이라고 해서 B라는 약물을 쓰거나 하지는 않지요. 아까 밝힌 것처럼 인체 내에서 한열조습의 음양균형을 맞추는 게 포인트입니다.

    단지 임상적인 경향성은 있어요. 건선은 이러이러한 경향의 약물을 많이 사용하고, 아토피는 이러이러한 경향의 약물을 많이 사용하는 식이지요. 즉 한방은 물질의 논리가 아니라, 여러 약물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처방의 논리를 사용합니다.

    사회: 양방과 한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굳이 우리나라 환자들이 외국까지 나가서 치료받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국내 치료법에 실망한 아토피 환자들이 일본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건웅: 한국이든 외국이든 아토피 환자들에게 소문난 병원이면 대개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씁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근원적으로 치료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저는 잘 쓰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환자가 식품에 의해서건 환경에 의해서건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거나 조절해주고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처음 올 때가 제일 고통스럽고 힘들죠. 저희 클리닉 경우에는 그 전보다 나빠지는 경우는 없어요. 약이 잘 듣는 환자는 분명히 좋아져서 돌아가고 약이 잘 듣지 않는 환자도 일부 있습니다. 재발된 환자의 경우 환자 스스로 알레르기 유발을 자초했다는 걸 잘 압니다.

    피부호흡이 중요

    양성완: 근원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점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문제는 근원적인 치료를 하는 과정에 환자들이 고통을 더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꾸준히 치료하다 보면 정확한 치료 방향을 바로잡을 시기가 오는데, 그 이전 내재되어 있던 원인이나 불균형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본 모습이 나타난단 말이에요. 정상적으로 균형을 맞추면서 윤기나는 새 살이 돋기까지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양상을 띠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증상 악화가 동반되는 환자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피부과 질환은 다른 질환과 달리 눈에 보이는 질환이라서 환자든 보호자든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건 저도 인정을 해요. 그런데 근본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은 반드시 넘어야 해요. 고통스럽다고 그냥 돌아가서는 해결되지 않아요. 치료 과정에 오히려 악화되는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견디지 못할 때가 제일 안타깝지요. 대개 국내에서 실망해 일본으로 가는 환자들이 거기 가면 하루라도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하거든요.

    사회: 환자로서는 근치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치료 과정에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치료자의 의무가 않을까요?

    양성완: 물론 저는 보조적인 치료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한의원에서는 ‘샌드 배스(Sand Bath)’라고 하는 원적외선 도크를 치료에 응용하고 있어요. 이는 가려운 증상이나 피부 질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피부에 있는 독소를 배설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샌드 배스란 것은 고순도의 맥반석을 이용해 일종의 모래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맥반석은 그 알갱이가 흡착하는 힘이 매우 강한데 도크 속에 들어가 있으면 42℃ 정도에서 원적외선이 분비되면서 환자들이 땀을 흘려 독소를 배출하게 합니다.

    아토피 환자들은 증상이 심해지면 피부가 딱딱해지면서 땀을 흘리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요. 땀을 흘리지 못한다는 건 피부 호흡이 안돼 독소를 배출시키지 못한다는 의미예요. 피부 호흡은 몸을 정화하고 한열의 편차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즉 샌드 배스에 들어가서 피부 재생효과, 독소배설 효과, 그 다음에 대사라든가 모공의 자율적인 개합작용을 통해서 땀을 조금이라도 흘려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사회: 긴 시간 아토피 치료 질환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대담이 난치성 아토피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스테로이드의 마술사인가, 의료 사업가인가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내 환자들과 접촉하면서 니와 유키에(丹羽勒負)라는 일본인 의사 이름이 환자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치료법에 대한 얘기가 아토피 피부염 정보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올라 있는가 하면, 그의 아토피 관련 저서들이 이미 국내에 번역돼 환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니와 유키에는 일본 교토대 의대 출신의 의학박사이며 고치(高知)현에서 아토피 피부염 질환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토사시미즈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의 병원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환자로 늘 붐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아토피의 대가’라며 존경의 뜻을 표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아토피 질환 치료 정보를 ‘신동아’에 소개하면서 니와의 치료법을 검증해보기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중순 니와 박사에게 한 장의 팩스를 띄웠다. 한국의 아토피 환자들 사이에 니와 박사의 치료법이 인기를 끌고 있고, 직접 한국의 환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상황에서 한국의 양·한방 전문가들과 함께 아토피 질환 치료법에 대한 대담 자리를 마련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일본에서 좋다는 회신이 왔다.

    3월21일 한국에서 양방 전문의인 노건웅 박사와 한방 전문의인 양성완 원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 역시 자기 병원에 치료받으러 온 환자들로부터 니와 박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던 터여서 흔쾌히 대담 취지에 응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오전에 출발,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關西) 공항에 내려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 고치(高知) 공항에 도착, 거기서 차로 4∼5시간 걸려 그가 운영하는 토사시미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은 남태평양 바닷가 포구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까지 오는 데만 하루가 걸렸다. 한국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오는 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 이튿날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은 우리나라 의원급 수준으로 생각보다 시설이 낡고 초라한 편이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니 좁은 대기실에 아토피 환자들이 우글거렸다. 병원 관계자는 니와 박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한국인 환자가 현재 3명 있으며, 그들은 병원 근처 여인숙에 숙박하면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병원 관계자에게 니와 박사를 만나기 전 한국인 환자들을 먼저 만나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 2명의 보호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모 무역회사 명함을 가진 중년의 한국 남자도 따라왔는데, 환자들을 한국에서 이곳까지 데려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일본에 온 지 5일째 됐다는 한 소아환자(10살)의 어머니인 조모씨(36)는 일본까지 찾아온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아토피 피부염을 4년째 앓고 있는데, 너무 가려운데다 피부에 진물이 생겨 보기 흉할 정도다. 한국에서 소아과와 피부과를 다니면서 약을 쓰면 잠시 낫는 듯하다가 나중에 더 심해지는 증상을 되풀이했다. 인터넷에서 니와 박사 얘기를 읽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지금 5일째 됐는데 니와 박사는 2주간 치료해보자고 말했다. 아이는 연고로 피부에 생긴 외상을 치료받으면서 몰라보게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4년간 한국에서 치료받았을 때보다도 여기서 5일 동안 치료받은 것이 더 효과가 있는 것같다. 연고에는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지만 니와 박사의 어떤 비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대학생 환자(19살)의 어머니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환자가 니와 박사의 책을 읽고 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연고요법과 피부 독소를 제거한다는 ‘돌 목욕법’으로 효과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또 니와 박사가 활성산소(SOD)를 제거하기 위해 만든 효소식품인 ‘니와나’와 ‘루이보스’라는 차를 복용중이라고 했다. 이런 식품 역시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환자가 일본에서 2주일 예정으로 치료받는 데 드는 비용은 교통비 숙박비 등을 포함해 1000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 비싼 돈을 들인 때문인지 이들은 니와 박사에 거는 기대가 대단한 듯했다.

    불발된 대담

    이윽고 니와 박사와의 대담 시각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오후 3시에 만나자던 사람이 오후 6시로 미루더니, 오후 6시가 되니까 10시에 진료가 끝나므로 그때까지 기다리면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 10분밖에 시간을 못 내겠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기자가 자기 병원을 소개하는 형식으로만 인터뷰하자고 말했다. 그 사이에 무역회사 명함을 지닌 그 한국인이 니와 박사 진료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담에 응하겠다고 해서 한국에서 이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는데 약속을 지키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니와 박사는 병원 관계자를 내세워 만남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대담은 올 여름 자신이 한국을 방문할 때나 하자고 말했다. 자신이 개발한 식품을 한국에 보급하는 한국인 식품업자를 통해 연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아토피 전문가들의 대담 건에 식품업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겠다는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진료가 10시에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는 조금도 짬이 없다던 그는 오후 6시25분경 병원 앞에 조깅을 즐기다가 기자의 눈에 띄었다. 그가 시간이 없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기자는 그런 현장을 보면서 귀국한 후에도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치료를 받고 있는 한국인 환자들이 내내 걱정스러웠다.

    니와 박사와 기자가 줄다리기를 하던 사이에 한국에서 온 의사들은 병원을 둘러보았다. 노건웅 박사의 말.

    “니와 박사한테서 치료를 받은 후 재발돼 찾아온 환자를 살펴봤더니 전형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남용한 상태여서 이번 기회에 니와 박사의 치료법을 확인해 보려 했다. 그 환자는 니와 박사가 스테로이드 처방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고 나한테 말했다. 그런데 이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을 보니 대개가 스테로이드 남용에 의해 피부색이 죽어 있는 상태였다. 아토피 환자로 이 병원을 찾았다가 아예 이 병원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피부색을 보더라도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판단이 든다.”

    현재 니와 박사는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스테로이드를 저량으로 투입하면서 커다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 이에 대해 노박사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니와 박사는 스테로이드와 SOD 제품을 같이 투여하기 때문에 저량의 스테로이드로 큰 효과를 본다고 말하는데, SOD 제품은 비특이적 항염증 작용이 있는 물질로 당연히 스테로이드 양을 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아토피 치료시 가려움증을 덜어주는 항히스타민제를 쓰면 스테로이드 양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는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인데, 마치 SOD 제품에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양 환자들에게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문제의 본질은 그가 스테로이드를 고량이든 저량이든 현재 쓰고 있다는 점이다. 스테로이드는 근치 요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세계학계의 정설이고, 그를 찾아온 환자 대부분이 스테로이드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의 마술사?

    기자는 국내에 귀국한 뒤 니와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은 뒤 재발한 환자를 수소문했다. 의외로 재발 환자가 적지 않았고, 일부는 일본에서 겪었던 일 자체를 아예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해 3월 니와 박사에게 직접 치료받은 박모씨(22)의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니와 박사의 SOD 제품을 국내에 파는 회사를 알게 됐고, 그 약을 3개월간 복용한 뒤 회사 소개로 일본을 찾아갔다. 숙박비와 항공료는 별도이고 10일간 받는 병원 치료비만 220만원이었다. 나는 니와 박사의 치료제에 스테로이드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몰랐고 현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그곳에서 바르는 연고와 원적외선이 나온다는 ‘돌 목욕법’을 받으면서 짧은 시간에 피부 가려움증이 호전돼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과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약을 사용한다는 점이 내심 불안했다.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한국에 들어와서 7개월 정도는 니와 박사의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연고를 계속해서 사용했는데 그런 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자 다시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재발했는데 문제는 일본에서 치료를 받기 전보다 증상이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손에 상처가 나면 쉽게 아물지 않을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양성완 원장은 니와 박사는 자기 저서에 고농도 스테로이드 외용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어서 한국 환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가 스테로이드를 전혀 쓰지 않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아토피 치료는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가려움증이 없어졌을 때 근본치료가 됐다고 본다. 그런데 니와 박사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가려움증이 없어진 환자가 찾아왔는데 여전히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가려움증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 환자는 니와 박사가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는 줄 알고 찾아갔다는 것이다.”

    양원장은 또 니와 박사 역시 자신의 치료법이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라고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는 있으나, 일본 환자들조차 니와 치료법이 근본적인 완치 개념으로 혼동할 정도이고 보면 한국은 그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그러면서도 니와 박사가 스테로이드를 적절히 사용하는 기법을 통해 매우 심한 가려움증을 단시간에 마술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고려해볼 점이 있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니와 박사는 근본치료를 추구하는 과정에 간과할 수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보조치료 관리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 환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할 것이다. 일종의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점을 제외하면 피부색이 검게 변하는 등 더 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국 의사들은 경고한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 고치현의 남국(南國)시 부시장은 “의료계 관련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는 나나 다른 의사들이 니와씨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보면 아웃사이더인 모양”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한국에서 그를 알고 여기까지 찾아오는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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