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신정치의 대표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다. 그러나 두 가신집단의 문화는 많이 다르다. 민주당 이윤수 의원은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 탄압을 심하게 받았다. 그 때문에 동교동계의 결속력은 상도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수장인 YS, DJ 두 김씨의 조직관리 방식의 차이가 조직문화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게 중론이다.
상도동계가 YS 밑에 고만고만한 중간 보스급을 다수 배치하고 그들 나름의 독자영역을 인정하는 횡적 조직이라면, 동교동계는 김대통령에서 권 전위원까지는 분명한 선이 있지만 그 이하는 권 전위원이 ‘장형’으로 지휘하는 종적인 조직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교동계 정치인들 사이에 ‘노갑이형’이라는 호칭은 자연스럽지만 ‘옥두형’ ‘화갑이형’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낯선 것도 이 때문이다.
통상 2인자는 1인자인 대통령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대통령을 만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로서는 2인자를 ‘알현(謁見)’하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누릴 수 있다. 그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과 곧바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2인자에게는 돈과 사람이 쏠리게 마련이다. 돈과 사람은 곧 권력으로 외화(外化)된다. 사람이 넘쳐나는 마포사무실 풍경은 김대중 정권의 권력 쏠림 현상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의 분쟁은 바로 권력의 소유를 놓고 벌어진다. 현재 진행중인 민주당의 정풍(整風)파동도 사실 따지고 보면 권력의 독점에 대한 소외계층의 반발이 그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 하나. 과연 권노갑 전최고위원으로 대표되는 동교동계는 실제 여권의 최대 권력집단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권 전위원과 동교동계로 돈과 사람이 쏠리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소장파들로부터 “비선그룹의 전횡”이라는 비난과 함께 집단반발을 불러올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동교동계와 민주당 소장파 인사들 사이의 시각 차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먼저 소장파의 시각. 문제를 제기한 서명파 의원들은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권 전위원과 동교동계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긴장감을 늦추고 사석에서 마주하면 권 전위원의 인사독점을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의원은 “권 전위원의 마포사무실이 뭐 하는 곳이냐. 한마디로 동교동계 사람들 취직 자리 알선하는 곳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초선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과장급까지 낙하산 인사”
“그 사무실 한편에서 ‘이번에 임기가 끝나는 정부 산하기관의 감사 자리에는 누구를 보내고 또 다른 정부산하기관 이사에는 누구를 보내고 하는 식의 논의가 오간다고 합니다. 정부 산하 공기업 인사가 이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동교동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권 전위원의 ‘눈도장’을 찍는 일에 결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가에서는 정부산하기관 인사에 권 전위원의 핵심측근인 L 의원과 K 전의원 등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의원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권 전위원에게까지 인사안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개각이나 청와대 비서진 개편 등 굵직한 인사의 경우 마포사무실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거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차관이나 청와대 비서진 등 요직인사에서도 권 전위원의 영향력이 미친 흔적이 드러나는 상황이고 보면, 마포사무소와 그 사무소의 실질적 주인인 권 전위원의 파워는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정부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낙하산 인사가 김대통령의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YS정권 때는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의 ‘계장급’ 자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솔직히 표현하면 지금까지 김대중정권의 낙하산 인사의 정도는 YS때만큼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과장급’까지 낙하산 인사의 표적이 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횟수가 잦아지고 있어 직원들 사이에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권 전위원과 동교동계의 인사독점을 고발하는 이런 주장과 달리, 당사자인 동교동계는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고 반발한다.
권 전위원의 한 측근인사는 “솔직히 권 전위원의 추천으로 정부산하기관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아무리 권 전위원의 추천이라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엉뚱한 자리를 차지하는 식의 무리한 인사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얼마 전 제가 잘 아는 사람이 권 전위원을 통해 정부산하기관 간부직에 추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정부산하기관 쪽에서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 사람은 결국 그 기관에 취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제 아무리 권 전위원의 추천이라도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입니다. YS정권 때보다 그런 면에서는 투명해진 겁니다. 낙하산 인사라고 해서 능력과 상관없이 아무나 채용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권 전위원과 동교동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리한 인사청탁은 사라지고 있는 셈이죠.”
실제 이 인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얘기들도 들려온다. 최근 한 경제부처의 장관은 사석에서 “권 전위원의 부탁이라도 10번 가운데 한 번 들어줄까 말까다”고 말해 주위사람을 놀라게 했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지난해 12월 정동영 최고위원으로부터 2선 퇴진 요구를 받고 물러난 이후, 비록 마포사무실을 내고 정치 일선에 돌아왔지만 권 전위원의 파워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권에서 권 전위원의 힘에 대한 평가는 앞서 중진의원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대통령 집권 초기만 해도 그를 통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없을 것 같던 여권 내부 분위기도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번 서명에 참여한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권노갑 전최고위원과 한화갑 최고위원, 두 사람은 앞으로 다른 정치행보를 걸을 겁니다. 권 전위원은 김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할 사람입니다. 김대통령이 물러나면 함께 물러설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건 권 전위원의 김대통령에 대한 충성심과 지금까지 김대통령이 정해준 권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정치스타일로 봐 자연스런 결과죠. 그러나 한최고위원은 김대통령 임기 뒤에도 자립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사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두 사람의 처지의 차이가 민주당 갈등사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차이자 현재 드러나는 동교동 신구파 갈등의 근본이유입니다.”
이 초선의원은 김대통령과 정치적 공동운명체로 엮인 권 전위원과 동교동계로서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곧 자신들의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가려는 동교동의 무리수가 안동수 전법무장관 인사파문과 같은 파행을 초래한 또 다른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서명파들로부터 지탄받은 동교동계의 권력과 인사의 독점현상은, 역으로 그만큼 동교동계가 느끼는 위기감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소장파의 공세에 직면한 동교동계의 정국 돌파전략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풍을 요구하고 나선 소장파들의 동교동계 정국 전망에 대한 반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앞서의 소장파 의원은 동교동계의 정국인식을 이렇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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