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대통령이 변해야 산다”

김근태 최고위원의 해법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입력2005-05-20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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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께서는 개혁이 성공해야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개혁이 중단되면 정권재창출은 물론이고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서는 개혁이 안 됩니다.”
    지난해 12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김근태 최고위원은 가장 먼저 발언했다. 그 핵심은 첫째 당정의 핵심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비공식 보고라인을 제거해야 한다, 셋째 이런 일을 늦출 경우 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맨 마지막에 발언한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노갑 퇴진 발언’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을 뿐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이 예고한 ‘권력투쟁’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의 추천 파문이 발단이 돼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초재선 의원 중심의 ‘정풍파’들은 전면적인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동교동계(김대중 대통령 측근들을 지칭)와 그 우호세력들은 정풍파가 당권을 쥐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워크숍을 열고 난상토론을 벌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심판관’인 대통령은 장고(長考)중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가뭄과 파업의 이유를 들어 당정쇄신안 발표를 미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진지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언론보다는 대통령에게 직접 당정쇄신을 건의했던 김근태 최고위원을 지난 6월13일 밤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보았다. 이날 만남은 인터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 최고위원은 단지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털어놓았다. 그의 발언에는 대통령의 당정운영 방식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 등용한 인사가 제대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김최고위원은 지난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최고위원들의 회동에서 어떤 문제를 거론했습니까.



    “그날 회동 때 대통령께 민심이 심각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민심 이반은 개혁정책 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점이 있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개혁정책 추진으로 정권이 몰락할 뻔했는데 포클랜드전쟁을 일으켜 위기를 넘겼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뢰가 부족합니다. 지난해 12월 때도 신뢰의 위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문제에서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임명을 위해 법무장관의 출신지역을 안배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4대 개혁을 추진한들 동력이 없습니다. 크게 쇄신해야 합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권한을 분산시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공식라인의 영향력 행사를 불식해야 합니다. 변화와 쇄신을 추진하고 심기일전하기 위해서는 빅3를 교체해야 합니다. 이런 기조 위에서 민주당이 노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변화가 핵심

    김최고위원은 매사 진지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 탓에 ‘언론플레이’도 적시에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 탓인지 이날은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내용의 핵심은 개혁정책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라는 동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무총리, 당대표, 비서실장 등 당과 행정부의 핵심인사와 운영방식의 전면적인 교체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면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 대통령께서 탄압받던 시절, 투옥되고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국민의 참여를 요청했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자기 희생과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런 변화를 하려면 읍참마속이 필요한 겁니다. 대통령이 결정한 정책이 행정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으면 레임덕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이 변하는구나, 국민과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요컨대 대통령이 진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데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야당 총재시절에 말씀하시는 바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의중이나 심기를 살펴야 합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한 여당의원이 ‘YS는 정치대통령이 아니고 행정대통령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그 의원은 ‘대통령은 국정책임자이므로 관료들에게 일을 시키면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런 통치행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국민들이 직접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YS는 정치와 관련된 것은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에게 맡기고 자신은 과시적인 일만 하다가 결국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기에 앞서 정치적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나 전략을 가지고 서로 토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토론을 즐기고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는 스타일 아닙니까. 오히려 장관들이나 당간부들이 대통령과 토론을 해낼 능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바쁘신 것 같습니다. 야당 총재직과 대통령직이 하는 일은 달라요.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합니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까 업무량이 과도한 겁니다. 그렇다면 장관이라도 유능해야 하는데 DJP 공조로 인재풀은 적고 그나마 나머지도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등용하니까 일을 맡기고 논의할 만한 장관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논의는 허망하고, 지루하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청와대에는 정치참모가 없습니다. 논의의 틀을 갖추고 있어야, 조언할 정치참모도 생기는데 그런 틀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과의 교감도 적어 대통령은 내가 추진하는 일은 옳은데 당간부들은 무엇을 하는지, 섭섭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구세력을 막아줘야 하는데 당간부들이 적극 나서지 않으니까 불만스러운 겁니다. 적극성을 보이는 사람이 없는 거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하여 집권 준비를 했다.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개혁의 정통성은 자신이 갖고 있다고 보고 주로 전문성을 갖춘 학자나 구여권 출신의 관료들을 중용했다. 정책의 방향도 초기에는 IMF위기 극복과 정치적 안정을 위해 구세력과의 연대 모색에 치중하다 보니 개혁 정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화와 개혁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구태여 개혁세력을 보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정 경험이 없다 보니까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구관료나 학자들을 기용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일과 궂은 일을 측근들이 맡도록 한 겁니다. 개혁세력들은 이미 자기 편이니까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당정 시스템의 중요성을 생각은 했겠지만 실제로 작동시키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모든 결정이 대통령에게 올라가고 따라서 업무량이 과다해진거죠. 여기서 지체현상이 생기고 보고의 선후완급을 비서실장이 조절하니까 비서실장에게 권한이 몰리게 된 거죠. 이런 과정에 옷로비사건이 생긴 겁니다.”

    ─당시 김중권 비서실장이 대통령에 대한 언로를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로비 사건 때 대통령이 ‘마녀사냥’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는데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동안 당정협의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역할을 못했다는 겁니다. 당이 민심을 파악해서 정책기조를 결정하는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비서실과 행정부가 각각 따로 가니까 중구난방이 되는 겁니다. 정책조율이 안 되니까 무능한 쪽으로 가는 거지요. 그래서 나타난 시행착오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정국운영을 통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와 당대표, 비서실장이 수시로 만나야 합니다. 필요할 때는 관계장관도 부를 수 있어야 하고요. 여기서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세 사람이 의논해서 대통령에게 올릴 것은 올리고 조율해서 할 것은 거기에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매사를 대통령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총리나 장관이, 당대표나 당간부가 책임져야죠. 그래야 시스템이 작동하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 운영과 정치는 최고위원들이 맡아서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난해 8·30 전당대회 후 대통령께 매월 1,2회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는 최고위원들이 책임을 지고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권 내에는 정책이나 인사문제 등을 토의할 테이블이 없습니다.”

    ─최고위원 회의를 심의기구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까.

    “그렇죠. 그런데 최고위원 회의가 토의를 제대로 해서 정치력을 발휘하려면 9명이하로 구성되는 심의기구여야 합니다. 이곳에서 정치적 사안도 토의해야 합니다.”

    구조적으로 고립된 대통령

    김근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최고위원 회의가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지원할 틀을 갖추고 당대표와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보좌해서 정책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논의의 틀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그런 기능을 했지만 정치적 불신이 컸던 만큼 공식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 기능을 수행해야 정국을 돌파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청와대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잭 웰치 GE 회장은 ‘CEO는 보고서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했어요. CEO는 생산라인이나 소비자 한가운데서 그 사람들의 느낌과 호흡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야당 총재를 할 때에는 늘 현장 한가운데 있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집무실이 경호실에 의해 차단되고 비서실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지금의 청와대 집무실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구조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를 느낄 수 없습니다. 논리적 정합성은 가질지 몰라도 호흡을 함께할 수는 없죠. 그래서 비서들이나 행정부 사람들이 일하는 한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을 둬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백악관은 르윈스키 사건에서 보듯이 대통령 집무실 문을 열면 바로 비서실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청와대 집무실 위치는 차단되고 격리된 구조입니다.”

    청와대의 이런 구조에서는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나 몇몇 측근만 접근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정풍파가 주장하는 인적 쇄신의 이면을 들춰보면 대통령의 귀와 눈을 독점하는 측근들에 대한 불만이 짙게 깔려 있다. 현재 김중권 당대표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는 동교동계 사람들이 불편해했고 동교동계인 한광옥씨가 비서실장이 된 뒤에는 비동교동계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 최근 민주당 워크숍이 끝난 후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당발전위원회의 건의문을 전달하려는 자리에 한광옥 실장을 배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발표도 대통령의 언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봅니까.

    “그런 측면을 부정할 수 없죠. 그런데 정풍파들의 요구는 옳지만 절차는 잘못됐다고 봅니다. 당대표에게 의원총회를 요구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어야 하는데 언론에 먼저 흘린 것은 국민들에게 직소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마지막에 취해야 할 비상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파들은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국민도 두렵고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는 것도 어려우니까 자신들의 입장을 언론에 던진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도 괴로웠을 겁니다. 대통령은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차원에서 초재선 의원들을 발탁해 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은 평소 대통령과 자주 만날 수 있었고 따라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풍 파동의 주역들은 어떻게 보면 대통령이 총애하는 사람들이지요.”

    ─김민석 의원은 민주당 워크숍에서 절차를 중시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동교동계로부터 박수를 받았는데….

    “김민석 의원은 쇄신과 질서를 동시에 주장했습니다. 동교동계에서 주장했으면 설득력이 없었을 텐데 김민석 의원이 주장하니까 설득력이 있었던 거죠. 동교동에서 박수를 치니까 마치 동교동 사주를 받은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동교동계가 정치적 입문 과정에서 386세대를 도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균환 단장도 사실은 소장파들을 도왔습니다. 지난 12월 파동 때 소장파들을 감싼 것도 정균환 단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균환 단장이 어렵게 대통령 면담 약속까지 받아냈는데 소장파들이 틀어버리니까 입장이 곤란했겠죠. 사실 당의 중진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대통령께 문제를 갖고 가는 것 자체가 창피스러운 일 아닙니까.”

    김최고위원이 보기에 이번 정풍 파동이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민주당의 구세대와 대통령이 총애하는 신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친 것일까.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외로움’이 엿보였다. 김최고위원은 민주당 내 재야 출신의 리더격이지만 지난 총선 공천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국민회의 출범 때 반대했죠. 그리고 직언을 하니까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 동안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당직이나 행정직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가지고 언론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언론에 직소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

    “제가 대통령께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개혁이 성공해야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개혁이 중단되면 정권재창출은 물론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서는 개혁이 안 됩니다.”

    ─개혁을 계속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혁을 중단하면 나라가 망가지고 추진하면 이 정권의 지지기반이 축소되는 것 같은데, 이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자기희생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야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어려운 경제생활에서 감내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미래의 전망과 희망을 불어넣음으로써 떠나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혁, 사회개혁 같은 일을 벌이기에는 힘이 부족해요. 그러나 4대 개혁 같은 것은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추진력이 떨어지고 있으니까 당 안팎에서 개혁세력들을 다시 결집해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지요.”

    ─개혁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인가요.

    “당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을 대표해야 합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 개혁법안과 경제 민생법안을 통과시킬 때 여야간에 충돌없이 토론과 표결 규칙을 지켜서 정말 노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자기당 국회의장의 의사봉을 봉쇄하고 선별투표하는 것은 당이나 의원들의 자부심을 손상시킵니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민주당이 절차를 지키는 정당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개혁세력을 활용해야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이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지 않습니까.

    “조기전당대회론은 예정대로 전당대회가 열리는 내년 1월에 후보를 확정해 지자제 선거에 대비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집권세력은 안정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가 없어요. 1월로 집권은 끝나는 거죠. 그래서는 월드컵 축제를 준비할 수도 없어요. 유력한 후보군을 떠올려서 지자제 선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전력을 다하게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월드컵 직후에 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대권과 당권은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제왕적 총재 제도를 극복해야 하는데 1년에 두 번 전당대회를 할 수는 없고 7,8월경 한 번에 전당대회를 해서 동시에 뽑아야죠. 그래야 민주적 정당이 될 수 있죠. 나눠서 하자는 주장은 먼저 당권을 잡은 후에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대권후보로 만들겠다는 거죠. 그것은 반대합니다.”

    ─대권과 당권 후보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동시 선거시에는 대권과 당권 도전 후보가 서로 보완적이어야 하겠지요. 당권이 안정적이면 대권후보는 개혁적이라든가 아니면 거꾸로 말입니다. 한국 정치상황에서는 대권후보가 모든 권한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면 선거에 피해를 끼친다고 보는데, 만약 여당이 채택하면 야당도 고려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날 겁니다. 정당의 민주화와 제왕적 총재의 극복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압력이 될 것이고 권위주의 정치를 끝내는 출발이 되는 셈이죠.”

    ─민주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난해 12월 청와대 회동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국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안이 있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첫째, 여소야대 정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정치적 이해는 한나라당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으므로 부분적으로 공유하되 경제에 관해서는 한나라당과 타협해야 합니다. 둘째, 당시는 자민련과 공조가 깨졌으므로 다시 공조를 회복하는 겁니다. 이 경우 여소야대는 벗어날 수 있지만 부담은 있습니다. 셋째, 정계개편을 하는 방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당의 주도로는 정계개편이 되지 않습니다. DJ당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개혁파나 영남파가 주도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할 만한 정치력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중심 세력과 개혁그룹이 결합하는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대통령께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에 대해 왜 당에서는 가만히 있느냐고 안타까워하시는데 개혁세력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앉으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김최고위원의 주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제대로 사용해보지 않은 ‘개혁세력’을 마지막으로 활용해보라는 호소로 들렸다.

    ─준비된 개혁세력이 있습니까.

    “당 안팎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그렇지 대통령께서 개혁정책으로 정면돌파하겠다고 결심하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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