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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민주당 권력투쟁

“대통령이 변해야 산다”

김근태 최고위원의 해법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대통령이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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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께서는 개혁이 성공해야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개혁이 중단되면 정권재창출은 물론이고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서는 개혁이 안 됩니다.”
지난해 12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김근태 최고위원은 가장 먼저 발언했다. 그 핵심은 첫째 당정의 핵심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비공식 보고라인을 제거해야 한다, 셋째 이런 일을 늦출 경우 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맨 마지막에 발언한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노갑 퇴진 발언’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을 뿐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이 예고한 ‘권력투쟁’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의 추천 파문이 발단이 돼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초재선 의원 중심의 ‘정풍파’들은 전면적인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동교동계(김대중 대통령 측근들을 지칭)와 그 우호세력들은 정풍파가 당권을 쥐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워크숍을 열고 난상토론을 벌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심판관’인 대통령은 장고(長考)중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가뭄과 파업의 이유를 들어 당정쇄신안 발표를 미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진지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언론보다는 대통령에게 직접 당정쇄신을 건의했던 김근태 최고위원을 지난 6월13일 밤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보았다. 이날 만남은 인터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 최고위원은 단지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털어놓았다. 그의 발언에는 대통령의 당정운영 방식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 등용한 인사가 제대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김최고위원은 지난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최고위원들의 회동에서 어떤 문제를 거론했습니까.



“그날 회동 때 대통령께 민심이 심각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민심 이반은 개혁정책 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점이 있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개혁정책 추진으로 정권이 몰락할 뻔했는데 포클랜드전쟁을 일으켜 위기를 넘겼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뢰가 부족합니다. 지난해 12월 때도 신뢰의 위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문제에서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임명을 위해 법무장관의 출신지역을 안배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4대 개혁을 추진한들 동력이 없습니다. 크게 쇄신해야 합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권한을 분산시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공식라인의 영향력 행사를 불식해야 합니다. 변화와 쇄신을 추진하고 심기일전하기 위해서는 빅3를 교체해야 합니다. 이런 기조 위에서 민주당이 노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변화가 핵심

김최고위원은 매사 진지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 탓에 ‘언론플레이’도 적시에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 탓인지 이날은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내용의 핵심은 개혁정책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라는 동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무총리, 당대표, 비서실장 등 당과 행정부의 핵심인사와 운영방식의 전면적인 교체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면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 대통령께서 탄압받던 시절, 투옥되고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국민의 참여를 요청했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자기 희생과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런 변화를 하려면 읍참마속이 필요한 겁니다. 대통령이 결정한 정책이 행정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으면 레임덕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이 변하는구나, 국민과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요컨대 대통령이 진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데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야당 총재시절에 말씀하시는 바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의중이나 심기를 살펴야 합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한 여당의원이 ‘YS는 정치대통령이 아니고 행정대통령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그 의원은 ‘대통령은 국정책임자이므로 관료들에게 일을 시키면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런 통치행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국민들이 직접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YS는 정치와 관련된 것은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에게 맡기고 자신은 과시적인 일만 하다가 결국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기에 앞서 정치적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나 전략을 가지고 서로 토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토론을 즐기고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는 스타일 아닙니까. 오히려 장관들이나 당간부들이 대통령과 토론을 해낼 능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바쁘신 것 같습니다. 야당 총재직과 대통령직이 하는 일은 달라요.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합니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까 업무량이 과도한 겁니다. 그렇다면 장관이라도 유능해야 하는데 DJP 공조로 인재풀은 적고 그나마 나머지도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등용하니까 일을 맡기고 논의할 만한 장관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논의는 허망하고, 지루하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청와대에는 정치참모가 없습니다. 논의의 틀을 갖추고 있어야, 조언할 정치참모도 생기는데 그런 틀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과의 교감도 적어 대통령은 내가 추진하는 일은 옳은데 당간부들은 무엇을 하는지, 섭섭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구세력을 막아줘야 하는데 당간부들이 적극 나서지 않으니까 불만스러운 겁니다. 적극성을 보이는 사람이 없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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