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권노갑 선배, 초심으로 돌아가십시오”

민주당 워크숍 화제의 발언자 추미애 의원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입력2005-05-20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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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워크숍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권노갑씨에게 직격탄을 날린 추미애 의원. 예민한 사안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배경과 동교동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지난 5월31일 민주당 워크숍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추미애(秋美愛·43) 의원의 발언이었다.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 발표가 발단이 돼 열린 이날 워크숍에서 당직을 맡고 있는 추의원은 처음에는 의원들의 발언을 지켜보다가 워크숍이 끝날 무렵에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추의원의 발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권노갑씨를 겨냥한 것이었다. 민주당 사람 누구나 사석에서 쑥덕거리면서도 공개적으로 발언하기에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지난 6월8일 추미애 의원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나 보았다.

    -지난 6월4일 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이 “천정배 의원과 추미애 의원이 말한 것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권노갑 전 최고위원 등 동교동계의 막강한 영향력의 문제점을 언급한 것인데….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당이 뭔가 해보려는 열의가 있었는데 지난 3·26개각 이후부터 당에 힘이 빠진 것은 이미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무렵에 권노갑 전최고위원이 마포에 사무실을 냈지요. 그분들은 민주화투쟁 시절에 고생한 선배들의 사랑방이라고 하는데 외밭에서는 신발 끈 동이지 말라고 했듯이 사랑방이 그 이상의 기능을 하고 힘이 있다고 사람들이 의심하면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당보다 당 밖의 사사로운 데를 찾아다니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판을 벌였으면 할 말은 해야

    -마포사무실 문제가 거론된 뒤에도 권노갑씨 측근들은 폐쇄하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피를 흘리고 옥고를 치르는 등 자기를 희생한 분들이기에 역사적으로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공개석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당은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 고생했으니 지금 자리를 보장해달라고 국민들에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민주화 과정에 땀 묻은 성금을 내고 고생했지만 민주화를 이룩한 땅에 살기 때문에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권을 잡아서 영광만 누리려고 한다면 이들에게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워크숍에서 그런 뜻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워크숍에서 애당초 발언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처럼 민감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명을 발표한 의원 중 한 분이 기조발제를 하고 나머지 두 분은 당과 대통령의 견해를 이야기하면서 자제해달라는 분위기로 가니까, 의원들이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부드럽게 말해요. 또 선배들이 옆에 계시니까 무척 부담스러운지 목소리를 많이 낮춰요. 저도 당 서열 네 번째 당직자인 만큼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처지는 못 되지요.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보기 위해 판을 벌였는데 당대표가 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해도 무엇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겠더라고요. 발언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가슴에 닿지 않으면 해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거예요.”

    -김민석 의원은 성명을 발표한 소장파들이 절차를 무시했다고 질타했는데….

    “절차가 내용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면 워크숍도 열지 말고 바로 당기위에 회부했어야죠. 그러나 ‘충정은 이해한다.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자’고 마당을 열었으면 절차 문제는 끝났다고 인정해준 거죠.”

    -이번 파문은 안동수 장관 임명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만….

    “안동수 장관 임명 파문이 단지 추천된 이후에 생긴 해프닝이었으면 오히려 다행스럽지요. 그런데 병역기피나 재산문제도 있었잖아요.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으면, 즉 인사 파일을 관리하는 사람이 문제점을 모두 짚어줬다면 이번과 같은 파문이 생겼을까요? 이런 문제는 예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작동해야죠. 그렇다고 옛날처럼 사직동팀을 다시 가동할 수도 없는 일이고…. 국회가 인사청문회에서 정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해 볼 만하죠.”

    -민주당이 제대로 된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동교동계의 영향력을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인데, 그러면 동교동계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질문에 답이 있어요. 그분들이 들으면 섭섭할 터이지만…. 정당이란 무릇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색깔, 그 정체성은 누가 지키느냐, 당력이 오래된 사람만 지킬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진 않다고 봅니다. 저는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 움직여 변하기 쉬워요. 자기 절제나 극기를 하지 않으면 변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초심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권노갑 고문께서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한 말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 죽어서 비문에 남기고 싶은 것은 ‘김대중 총재의 비서 권노갑’이라는 말이죠.

    “이 말은 김대중 총재를 도와서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룩한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 어떤 영광도 누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분이 남긴 말은 순수하고 귀감이 될 만한 말이어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동교동계 비서 몇 분도 임명직에 나서지 않고 정권교체로 만족한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막후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가 시대적 소명을 다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보좌해달라는 열린 마음, 즉 정권은 우리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 달라는 거예요.”

    -정권교체까지는 동교동이 역할을 했으나 정권을 잡은 이후에 동교동의 역할은 끝났다는 말입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안동수 장관 파문이 있기 전에 ‘골프장 사건’이 있었잖아요. 당시에 내기골프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골프는 대중스포츠가 아니에요. 한나라당이 국민정서와 상관없이 골프장에 가든 말든,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한다면 조심해야죠.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경제위기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더 크게 느낄 터인데,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호화롭게 골프나 즐기고 권력을 향유하는 것처럼 비쳐서 되겠어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국민들에게 개혁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면 진지함이 생기지 않잖아요. 이런 것을 작은 실수로 보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주십시오’ 그런 이야기입니다.”

    -권노갑씨는 현재 직위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공조직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대통령이 방임했다고 할까, ‘교통정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아니면 대통령이 일일이 내놓고 챙겨줄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 챙겨주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저도 지구당위원장인데 어떤 사람이 저 몰래 다른 사람들에게 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어떤 일에 개입한다면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당의 구심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공교롭게도 개각을 발표할 즈음에 아무개 실세가 개인사무실을 연다는 기사가 신문에 잇따라 실린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런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꾀게 마련입니다. 설탕물에 파리가 몰리듯이 욕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을 자제하고 근신해야만 정권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건전한 정치세력화 추구

    -그러면 동교동계 사람들이 유혹받지 않으려면, 그리고 고생한 옛 동지들이 찾아오는데 외면하지 못한다면 외국에라도 나가야 한다는 건가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분이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판단해서 처신하시리라 믿습니다.”

    -동교동계 사람들은 정풍파가 당권을 쥐려고 파문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저희가 당권을 쥘 만큼 성장한 세력은 아니죠. 저도 전문영역에 있다가 들어왔는데…. 정치경력이 길지 않고 자기세력을 만들 만큼 조직관리가 돼 있지도 않아요. 당권 운운은 얼토당토 않지요.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저는 바른정치모임의 회원입니다. 야당 시절부터 우리 정치를 올바르게 가꾸고 정책대안도 내자는 취지에서 만든 순수한 모임입니다. 도덕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 사실이지만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당력이 오랜 분들 못지않게 발이 부르트도록 정권교체를 위해 뛰었고 당에 대한 충정이 있습니다. 정권 출범 이후 당의 심각한 위기를 보면서 당을 건져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순수한 모임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세력화인가’가 중요하지 정치인 세력화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건전한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것이지 파워게임으로 정치세력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을 하는데도 박수를 못 받는 것은 우리의 태도가 잘못된 때문이니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를 우리가 일깨우자는 것인데, 이것이 안 될 때는 세력화의 여지가 있는 거죠.”

    -대통령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성명을 낸 것은 불안했기 때문입니까.

    “불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나 대통령께 전달하는 과정에 중간에 있는 분들이 우리 의견을 잘못 전달하고 왜곡할까 싶은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하소연하는 자연스러운 모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어떤 결단을 하시리라 기대합니까.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할까요.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희생을 했는데 불명예스럽게 퇴진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분들이 일정한 일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하니까 그런 것을 지혜롭게 조화시키는 고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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