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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 인터뷰

“재용이는 준비된 경영인, 대견하다”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재용이는 준비된 경영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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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회장께서는 “남의 뒷다리 잡는 것은 절대 용서 못한다”고 호통을 치셨을 만큼 삼성에 상호불신과 개인·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보셨는데, 다른 곳도 아닌 ‘관리의 삼성’에서 그런 현상이 그처럼 심했습니까? 요즘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의약분업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가 이 지경까지 와 있나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삼성에선 상당 부분 희석된 것 같지만 아직도 곳곳에 이기주의가 남아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예컨대 회사 전체의 이익보다 사업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거나, 해외에 진출할 때 회사들끼리 사전에 상의하고 협력하면 서로 도움이 될 텐데 불필요하게 경쟁하다 보니 시너지가 약해져요. 이기주의나 남의 뒷다리 잡는 행동은 자신은 물론, 조직과 사회까지 멍들게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한 개인이나 집단이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가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미를 되찾고 도덕성을 정립하는 사회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경영 당시 업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7-4제’가 불과 몇 년만에 퇴색, 출근시간만 두 시간 앞당겨지고 퇴근시간은 그대로 환원됐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비판적인 이들은 이를 신경영의 실체로 보기도 하던데요.



“7-4제는 출퇴근 시간을 앞당겨 일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남은 시간에 자신을 재충전하고 여가도 즐기자는 뜻에서 시도됐지만, 그 배경에는 시스템을 바꿔 고정관념을 깨고 발상을 180° 전환해보자는 의미가 있었어요. 지금은 사업 특성에 따라 7-4제, 8-5제 등으로 탄력있게 운영하고 있는데, 7-4제의 그러한 근본정신은 살아 있습니다. 몇 시에 출근해 몇 시에 퇴근하느냐는 물리적인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왜 7-4제를 했느냐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죠.

앞으로 더욱 집중력을 키우고 개인 경쟁력과 시스템 경쟁력을 높이면 굳이 하루 8시간까지 일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성과만 제대로 나온다면 일하는 시간을 더 줄이고, 그래서 남은 시간을 공부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면 되는 것이죠.”

-최근 전자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앞으로는 대규모 투자보다는 투자의 효율화에 역점을 두라”고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뜻에서였습니까? 삼성의 ‘간판’인 반도체산업은 투자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업종인데요.

“그것도 양보다는 질로 가자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투자라고 하면 공장 짓고 설비 들여놓는 시설투자, 즉 하드적인 것만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같은 돈을 쓰더라도 전략적으로 고려해 R&D나 마케팅 같은 소프트한 쪽에 써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반도체 라인 하나를 깔려면 20억∼25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지만, 그 돈의 3분의 1 정도를 반도체의 회로 선폭(線幅)을 줄이는 연구에 투자하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어 라인 하나를 까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2005년 세계 1등 제품 30개 목표

-반도체산업이 삼성과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기술개발 속도가 워낙 빠르고 그에 따른 가격등락도 심해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합니다.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또한 삼성전자가 메모리분야에 이어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현재의 반도체는 두세 살짜리 아기의 지능과 비슷한 수준인데, 10년 후엔 초등학교 3∼4학년의 지능 수준인 64기가 반도체 개발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심부름이나 궂은 일을 하는 3D산업은 로봇이 대신하게 됩니다. 로봇이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어요. 또한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 새로운 디지털 기기와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쏟아지고, 복합칩, 바이오칩(bio-chip) 등의 차세대 반도체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수요를 계속 창출할 것입니다.

전문기관들도 반도체산업이 2005년까지 매년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앞으로 수급상황에 따라 다소 기복은 있겠지만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경쟁우위에 있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전망은 여전히 좋다고 봅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자신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어느 분야에서든 한번 세계 1위에 오르면 다른 분야에서도 1등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는 현재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인 시스템LSI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 몇몇 제품에서는 머지않아 세계 1등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관건은 역시 사람과 기술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해외 전문인력을 계속 뽑아왔고 저희 내부에서도 인력을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반도체 1, 3위 업체인 NEC와 히타치가 반도체사업 부문을 합병하고, LG전자와 필립스가 브라운관 부문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경쟁업체간 ‘적과의 동침’이 다반사가 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디지털 세계에서는 장벽들이 계속 무너져갈 것입니다. 지금도 기술의 벽, 기업 간의 벽은 물론, 산업간의 벽까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독불장군은 살아남기가 어렵죠.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더구나 기술표준시대가 되면 서로 장점을 공유하고 약점을 보완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어느 하나라도 확실한 1등 기술, 1등 제품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제휴도 하고 협력도 되는 것이지, 그런 걸 못 갖고 있으면 같이 손잡고 일해보자는 기업이 있을 리 없죠. 삼성은 지금 R&D, 생산, 마케팅 등에서 인텔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제휴와 협력을 더욱 확대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계획입니다.”

-삼성 제품 가운데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는 제품이 메모리 반도체, TFT-LCD 등 13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이들 외에 조만간 세계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은 제품은 어떤 것들입니까?

“머지않아 차세대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이 1등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2005년까지는 세계 1위 제품을 3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현재 55개 품목이 세계 1위에 올라 있는데, 5년 안에 적어도 100개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비로소 일류 국가의 기반을 갖췄다고 볼 수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각 기업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산업별로 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기초분야 기술은 정부가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기업들이 기초기술을 개발하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선진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요즘 회장께선 “10년 후에 삼성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자주 던지신다고 들었습니다. 10년 후의 삼성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이며 어떤 사업에 주력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이는 결국 ‘한국은 10년 후에 뭘로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현재의 산업, 시장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어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지만, 10년 후엔 세계시장에서 1, 2등에 들지 못하는 회사나 사업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회사나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10년 후 삼성은 사업구조나 경영구조에서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욕심이 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삼성은 전자, 금융, 서비스사업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기술과 핵심역량을 갖춘 첨단기업으로 성장하고, 부채가 거의 없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보유한 일류 기업으로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 이미지를 갖출 것입니다.”

기업의 ‘보이지 않는 책임’

-삼성은 상품을 만들고 장사를 잘해서 이윤을 내야 하는 민간기업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경제의 견인차라는 위상 때문에 더러는 공공적 기능까지 떠맡아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양자가 잘 조화를 이룬다면 바람직하겠지만, 충돌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평소 그런 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십니까?

“작년에 삼성그룹 전체가 사회공헌에 쓴 금액을 합쳐보니 1700억 원 가까이 되더군요. 매출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GE, IBM 등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기업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기업에게 이윤창출이 먼저냐, 사회공헌이 먼저냐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봅니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는다면 기업을 경영하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돈만 벌겠다고 나선다면 기업의 의미는 사라집니다.

기업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이익을 내서 영속성을 유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종업원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죠. 그래 놓고 남는 것은 재투자해서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기업의 본질이고 이를 충실히 수행할 때 기업은 본래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요구에 관심을 갖고 사회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 기업의 또 다른 책임입니다. 저는 이것을 기업의 ‘보이지 않는 책임’이라고 여기고, 기업 본연의 책임은 물론, 보이지 않는 책임까지 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강소국(强小國)’을 지향해야 한다”고 하셔서 ‘강소국’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강소국과 삼성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인구가 5000만이 채 안 되고 면적도 남북한 다 합쳐봐야 300억 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양적인 면에서 미국이나 독일,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과 경쟁하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규모는 작지만 선진국 소리를 듣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같은 나라들인데, 이 나라들은 소국이지만 국민소득도 높고 기업경쟁력도 세계 일류입니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사회 전체가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들어 보자’는 의욕을 갖고 기업활동을 음양으로 지원해준다는 것입니다. 핀란드는 노키아를, 스웨덴은 에릭슨을 정부와 국민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고, 그렇게 되면서 나라까지 일류국이 됐어요.

노키아의 수출액은 핀란드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데 삼성도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삼성이 더 노력하고 분발해서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 기업이 되고, 이러한 성장경험을 국내의 다른 기업들과 공유하고 때로는 자극을 주면서 경제계 전체가 힘을 합쳐 나가면 우리도 그런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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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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