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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 산자부의 IT 산업 대혈투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정통부 · 산자부의 IT 산업 대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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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물 좋은’ IT, 땅 뺏기 싸움 점입가경
  • ● 재경부 중재안에 정통 · 산자부 “택도 없다”
  • ● 밥그릇 싸움인가, 조직의 문제인가
  • ● 정통부 손에 쥐어진 양날의 칼
  • ● IT 기본법 통과되면 정통부 장관에 ‘부통령급 권한’
  • ● 힘 ·자금 ·전문성 갖춘 횡적 통합조직 필요
1999년 2월11일 오후. 문화일보 1면에 충격적인 기사가 났다.

“정보통신부 해체 통신위로 축소개편”

한 달 후 있을 정부조직 개편에 앞서, 기획예산위원회가 정통부 해체 방침을 확정했다는 것이었다.

시커먼 바탕에 희고 굵은 체로 쓰인 열다섯 글자는 정통부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고위관계자들은 요로에 진위를 확인하느라 동분서주했고, 기자실 역시 청와대로 기획예산위로 전화를 눌러대는 조간 기자들의 높고 긴박한 목소리로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한 확인 작업 끝에 기사는 오보로 판명 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모 국장은 기사를 쓴 기자를 두고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한동안 그 기자는 출입처에서 ‘왕따’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달 후인 3월12일, 정부조직개편안을 작성했던 정부 경영진단조정위원회는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정통부를 통합해 ‘산업기술부’를 신설하는 안을 확정해 기획예산위에 제출했다. 민주당(당시 국민회의)마저 이 안을 당론으로 확정, 3부처 통폐합은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100일 넘게 관료들을 뒤흔들어 놓았던 조직개편 논의는 정치 논리와 해당 부처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IT 관련 부처 통폐합론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조직 개편 대비한 명분 쌓기

그로부터 2년, 관가와 정보기술(IT)업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정통부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재부상(再浮上)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 ‘산자부가 정통부의 IT업무를 흡수하기 위해 새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중’이며 ‘산자부와 정통부의 흡수통합뿐 아니라 문화부와 정통부를 합쳐 정보문화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물론 관련 부처는 이러한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요즘 각 부처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기 쪽에 유리한 정부조직개편안을 여·야 공약사항에 포함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공력을 쏟아붓고 있다. 2년 전 ‘적극적 구조개편 대상’으로 지목됐던 정통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정통부 관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통부의 중요성과 존속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산자부에서 IT업무 흡수를 계획중이라는 이야기도 정통부 고위관계자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일부 출입기자나 타 부처 관리들은 이를 ‘정통부 몫을 다른 부처에서 욕심 내고 있으니 잘 감시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접촉한 정통부 관료들은 부처의 앞날에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타 부처 공무원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통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긴장이 덜했다. 가져올 게 있을 뿐 빼앗길 것은 없다는 생각인 듯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요즘 진행중인 부처간 IT관련 업무영역 조정을 조직개편의 전초전으로 보고 있다.

정통부·산자부·문광부 등은 지난 5월 초부터 한 달여간 중복되는 IT 관련 업무 중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4월30일~5월18일, 5월21일~6월7일 감사원이 두 차례에 걸쳐 정부 추진 정보화 사업을 감사한 것도 사실상 업무 중복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믿을 만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6월8일, 조정역을 맡은 재정경제부는 각 부처에 ‘부처간 IT관련 업무영역 조정 합의사항(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로써 IT 업무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이 해소되리라 믿는 관계자는 없다. 조정안이 언론에 보도된 날 둘러 본 세 부처의 반응은, 한마디로 “택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봉책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지금 IT 산업쪽을 보면 꼭 미국 개척기의 서부 같다. 부처마다 대표선수를 선발해 깃발 하나라도 먼저 꽂으려 전력 질주하는 형국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불고기를 먹으러 갔다고 하자. 그 중 한 사람이 ‘그을린 건 다 내 것’이라며 게걸스럽게 먹어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사람들도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맛도 못 보겠다’ 싶어 저마다 날고기를 집어먹게 될 것이다.”

IT업무 중복 문제에 대한 공정위 모 과장의 비유다. IT 업무와 관련, 정통부와 타 부처간에 갈등이 발생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초기에는 산자부와 과기부가 주로 부딪치던 것이 경제·사회·문화 전분야에서 IT의 중요성이 극대화하면서 문광부·교육부·중기청·공정거래위 등으로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문제가 표면화할 때마다 각 부처는 실·국장급 연석회의를 열거나 청와대에 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원인은 조직인데 업무조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깊이 파다가는 자칫 부처 통폐합 문제로 번질까 두려워 봉합 차원의 조정에 무게를 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늘 논란이 돼온 사안이건만, 관계자들이 최근 상황에 유난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대선, 그를 전후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명분 쌓기 혹은 논리 쌓기의 측면이 강하다. 지금 밀렸다간 그 기조가 대선 후까지 이어져 조직개편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계산이다.

조직개편으로 가는 길에 던져질 또 하나의 불씨는 정통부가 추진중인 ‘정보기술산업발전기본법(이하 IT기본법)’이다. IT기본법이 현재의 안(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정통부 장관의 지위는 ‘경제 부총리급’으로 격상된다. 정통부의 위상이 공고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정통부에게는 ‘난세’를 돌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요, 산자부 등 타 부처에는 정책 입안과 업무 수행에 큰 변화를 몰고 올 태풍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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