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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특집|일본역사교과서 韓·日 논쟁

“나는 한국인의 어리광이 정말 답답하다!”

일본 ‘역사교과서모임’ 대표가 한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 니시오 칸지(西尾幹二)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일본 전기통신대 교수 >

“나는 한국인의 어리광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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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분들, 특히 사회주의 환상사관의 부정에서 출발한 한국분들이, 일본 교육계의 이상한 왜곡현상 때문에 고통을 겪어온 일본의 전통(정통) 보수계열 지식인들의 깊은 고뇌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도 역사 교사들의 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일본공산당과 그에 관련된 조직들이다.

역사교과서의 집필자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집필자는 늘 무엇인가에 저항하고 또 적대시(敵對視)하고 있다. 저항과 적대시하기에 안성맞춤인 화제만 역사에서 채집해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과 적대시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경우 그 대상은 근세 일본의 중앙권력인 도쿠가와(德川) 막부고, 메이지(明治)정부이며 미국 제국주의인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이들에게는 작은 것은 ‘선’이고 큰 것은 ‘악’이다. 역대 일본 정부는 예외없이 언제나 ‘악’이다.

우리는 이러한 단순한 역사관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전진할 수 있었고 또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는 일본국가가 이루어놓은 성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국가의 슬픔도,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도 기술해주지 않는다. 민중이 국가를 적대시하는 자세만 언급하고, 적대시당한 국가의 의견은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교과서가 아니라 선동용 정치 팸플릿이다.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에 굴복한 동경재판사관과 소련의 경직된 유물론에 굴복한 사회주의 환상사관, 어떻게 해서든 이 두 가지를 극복하고 역사다운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일본은 정신적으로 주권국가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런 뜨거운 심정으로써 설립된 것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다. 회원은 1만여 명. 이 모임은 1인당 연간 6000엔씩 내는 회비와 인세(印稅) 수입으로 운영된다. 이사를 맡은 학자와 지식인들은 모두 무보수로 봉사한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우리를 향해, “이 모임의 배후에는 무엇인가 정치적인 흑막(배후 원조자)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우리 회원은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노인부터 17세의 고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두텁다.



회원들은 이대로 둔다면, 일본은 망국(亡國)에 늪에 빠져들 것이라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벌떡 일어난 사람들이다. 물론 국가를 소중히 여기는 감정은 기본이지만, 옛날식 국가주의와는 별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관해 교토(京都)대학의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교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적했다.

“일본이 그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유난한 자세로, 바깥 세계로부터 문명을 섭취하는 자세를 기본으로 삼은 나라임을, 전편(全篇)에 걸쳐서 일관된 형태로 명료히 서술하고 있다. 이 일관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산케이신문’, 2001년 4월4일자)

일본 열도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대(大)문명권에 접하며 거기로부터 양분을 얻어 스스로 양육해 독자적인 문화권을 만들었다. 일본 열도가 양분을 얻은 두 문명권은 고대 중국문명과 근대 서양문명이다. 일본 열도는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들과는 다른, 문명 섭취방식과 자기 육성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분들은 일본이 공격적인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전혀 옳지 못하다. 일본 문명은 죠오몽(繩文)시대 이래 수동적이었다. 바깥세계에서 갖가지 생활문화를 받아들였으나, 바깥으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저수지와도 같은 문명이다. 세계의 여러 문명을 실어다주는 바람 길의 종착점이며, 그 영양소들이 겹겹이 축적된 옥토가 일본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그러한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일본은 외압에 의해 국가의지(의사)를 결집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7세기 당 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한 ‘백촌강의 패배’(백마강 전투의 패배)를 겪고 난 후 비로소 ‘일본’이라는 국호가 탄생했고 ‘천황’호가 성립하였다. 수동적인 나라다운 행동 패턴이다.

몽고와 고려에 의한 ‘원구(元寇)’의 습격을 받아 이 섬나라는 다시금 통일 의지를 보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담한 지구 분할을 눈치채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도들을 배제하고 중국문화권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한다(조선출병에는 그러한 의미도 있었다).

한반도 침략은 피할 수 없는 선택

기독교를 거부하고 북경정부와 교류 하기를 거부한 두 가지 외교정책은 그대로 270년간 도쿠가와(德川)막부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아시아로 진출하고 북방에서는 러시아가 남하하고, 이어 남방에서터 미국이 북상하는 위협을 이 열도는 온몸으로 대결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동적이기 때문에 주체성을 지키려고 투쟁을 한 나라, 그것이 일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한국분들은 무언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일본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지구의 저편까지 가서 그곳을 겁탈하였는가? 영국·프랑스·러시아·네덜란드처럼 지구 저편까지 돌아가서 한 나라라도 식민지로 만든 예가 있었던가? 미국처럼 넓디넓은 바다에 띄엄띄엄 자리한 섬들을 모조리 습격하고 내 영토로 만들려고 어금니를 간 적이 있었는까?

일본의 행동은 모두 수동적이며, 따라서 볼품없고 치졸한 면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한반도를 연좌시켜 피해를 입힌 것은 지금 시점으로부터 생각하면 폭거(暴擧)이고 유감스럽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피할 길이 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분들이 일본의 이러한 수동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대 이래 일본의 행동 가운데 항상 ‘악마적인 것, 범죄적인 것’만을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시각에 대해 일본인들은,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 당혹감을 느끼고 오싹오싹한 느낌을 받고 있다.

한국분들에게 내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이 한 가지뿐이다. 물론 긍지 높은 한국인이 타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았던 사실을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만으로 일본의 이미지를 결정하려는 습성은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분들이 역사의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중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은 사실에 관해 고집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의아해하고 있으며 불가사의하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국내 문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 한국분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둑을 터뜨린 것같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막을 방법이 없어 두렵다. 역사교과서문제에 관해서는 이것이 동경재판사관과 사회주의 환상사관 두 가지를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주권회복 열정에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 문제다. 일본인 영혼의 문제다.

이번에 한국에서 제시한 집요한 수정 요구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분들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국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에게는 일본인의 역사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인의 역사가 있듯이 말이다. 우리 일본인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한국의 교과서에 대해 무엇인가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가? 각각 서로가 독립국이고 주권국인 이상, 내정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최소한의 조건이자 예의다. 한국의 대일(對日) 요구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여,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개를 옆으로 휘젓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쓰인 배경에는 전후 50년간 미·소 사이에서 자신의 역사를 잃고 살아온 일본인의 오랜 고통이 깔려 있다. 적어도 그 점에 유의하면서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은 생각해보는 마음의 여유를 한국분들에게 바라는 것이 과연 무례한 것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 같잖은 요구가 되는 것인가?

한국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묻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상대방에게만 이해심 있는 마음을 요구해놓고 자신은 일체 이해심 있는 마음을 안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일종의 어리광에 대해 일본인이 가질 수 있는 답답함과 저항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신동아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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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 칸지(西尾幹二)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일본 전기통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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