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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당시 청와대대변인이 40년만에 털어놓은 군사쿠데타의 숨겨진 진실<1>

운명의 첫 대면! 윤보선, 박정희의 요구를 거부하다

  • 金準河 < 5 ·16당시 청와대 대변인 >

운명의 첫 대면! 윤보선, 박정희의 요구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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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문이 헌병대에 포위된 것을 얼마 전에 체험했던 터라 피신이라는 말 자체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날 새벽 3시경 육군참모총장 장도영(張都暎) 장군이 이재항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취침중이라도 급히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한다. 비서실장이 경호실에 연락해 대통령과 장도영 총장이 직접 통화한 것은 새벽 3시 반이 넘어서였다.

장총장은 대통령에게 “지금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들의 서울 진입을 한강에서 헌병들로 하여금 저지시키려 했으나 중과부족으로 실패했으며 쿠데타군에 대한 저지선이 무너져 서울 시내에 들어온 그들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는 요지의 보고를 하면서 “앞으로의 사태가 지극히 우려되는 만큼 대통령은 가능하면 빨리 피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다고 한다.

총성이 청와대 가까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그것도 육군참모총장이, 또 청와대 비서실장이 누누이 대통령의 피신을 진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왜 단호히 거절했을까. 대통령의 피신 문제는 그후 정치 쟁점으로 등장하게 됐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졸지에 박탈당한 세력들 사이에서는 윤대통령의 피신 문제가 날카로운 비난의 초점이 됐다.



만일 대통령이 피신만 했더라면 헌법기관이 완전히 소멸되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미 8군사령관이 쿠데타 세력을 책임지고 독자적으로 진압했을 가능성이 있고 만에 하나 8군사령관이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일선에 포진한 반 쿠데타 부대에 의해 서울 시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 내란이 발생해서 반란군이 진압됐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윤대통령이 피신을 하지 않은 것은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계획된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악의에 찬 루머를 의도적으로 전파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끝까지 청와대에 머물게 된 참된 이유는 당시 청와대의 상황이 대통령의 도피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설혹 가능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인간성이 비겁한 도피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헌병대에 포위되어 외로이 청와대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5·16 아침 8시경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9시 전후해서 청와대를 방문하겠다”는 요지였다. 곧이어 9시를 기해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계엄령 선포자가 ‘군사혁명위원회의장 육군중장 장도영’이라는 것이다. 몇 시간 전에 “쿠데타가 발생했으니 빨리 피해달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장 장군이 어느새 ‘혁명위원회 의장’으로 변신했단 말인가.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모두 아연실색했다. 계엄령 선포의 합법성 여부를 따져볼 여유조차 없었다.

먼저 권총을 뽑지 않은 장도영과 박정희

오전 9시. 장도영 장군과 박정희 장군이 권총을 찬 점퍼 차림의 군복으로 지프에서 내려 청와대 현관에 들어섰다.

두 장군은 약속이나 한 듯이 청와대 정문 입구에서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들 앞에는 무기를 예치하는 작은 석재 탁자가 놓여있었고 경호실 직원 한 사람이 부동자세로 권총의 예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장도영 장군은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으나 박정희 장군은 그 순간이 첫 대면이었다.

장 장군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몹시 피로한 듯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서 있었고, 대조적으로 박 장군은 석불(石佛)처럼 꼿꼿이 서서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가. 두 사람은 좀처럼 권총 벨트를 풀지 않고 땅만 내려다보고 서있지 않은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권총 벨트 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서로를 불신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의 시간이 흘렀다. 정적을 깨고 장 장군이 먼저 권총 벨트를 풀었고, 박 장군이 그 뒤를 따랐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또다시 바닥만 쳐다보며 한마디 말도 없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짧지 않은 순간이 또 흐른 다음 이번에도 장 장군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소형 권총을 꺼내 경호실 경관에게 건넸고 이어 박 장군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첫날부터 불신의 징조를 보였던 장도영 장군은 몇 달 못 가서 반혁명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그후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된다.

마침 두 장군과 동행해서 청와대 정문에 들어선 김재춘(金在春) 대령이 눈에 띄었다. 김남(金楠) 비서관이 그를 본관 2층 비서실장 방으로 데리고 갔다. 김 비서관과 김 대령은 전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들 질문에 김 대령은 서슴없이 말했다.

“장면(張勉) 총리를 놓쳤습니다. 그들을 잡아서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에서 재판을 해 처단하려고 했는데 장관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습니다”.

김 대령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말했다. 쿠데타를 말로만 듣고 알았던 나는 그 순간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피를 보려는 쿠데타가 가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곧 아래층 서재로 내려가 대통령에게 김 대령의 말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박 두 장군을 수행한 경호원들의 행동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동소총과 권총을 찬 채로 본관 복도를 돌아다녔다. 대통령 서재의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 청와대 안을 수색하는 듯했다. 자기들이 모시는 두 장군의 안전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듯했다. 보다 못해 김재춘 대령에게 수행원들의 난동을 항의했다. 김 대령의 명령이 있은 뒤에야 그들은 본관 밖으로 철수했다.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군인들과 대화할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대통령은 무엇인가 마음을 정한 듯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장도영 장군과 박정희 장군은 유원식(柳原植) 김재춘 대령 등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과 박정희 소장의 첫 담판이 시작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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