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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인터넷판 킨제이 보고서 ②

‘보통남녀’ 19인의 고백 “나와 인터넷, 포르노, 섹스”

  • 김문영 < 자유기고가 > noname01@freechal.com

‘보통남녀’ 19인의 고백 “나와 인터넷, 포르노,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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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미선 씨(가명, 40)는 지난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중소벤처기업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인터넷 성인정보를 접했다. 일 때문에 성인사이트에 접속해야 했는데, 그 사이트에서 노골적으로 섹스를 묘사한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당시 김미선 씨는 함께 일하던 학생과 웹하드(웹상에 존재하는 하드디스크 공간)를 공유했다. 김씨가 이용하는 사이트 주소가 ww w.webhard.co.kr였는데 실수로 www. webhard.com을 입력했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에 성인 포르노사이트가 뜨는 것 아닌가. 백주 대낮에, 그것도 옆자리에 동료들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포르노사이트에 접속했으니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자의가 아닌데도 포르노사이트에 접속된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고 말했다.

김미선 씨의 경우 1998년 전화모뎀으로 PC통신을 처음 시작했다. 남편의 아이디(ID)를 함께 사용한 것. 새 아파트로 이사한 후 하나로통신 ADSL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어린 아들이 있어 성인사이트에 접속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 직장에 나가면서 어디서든 손쉽게 성인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도 언제든 쉽게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신영숙 씨(가명, 30)의 경험은 조금 더 황당하다. 결혼 3년째인 신씨는 지난해 초 딸을 출산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씨가 성인사이트에 접속한 것은 올해 초의 일이다.

비교적 한가한 낮 시간, 메일로 정보를 보내주는 메일매거진을 가끔 이용하던 신씨는 그날도 인포메일(www.infomail. co.kr)에 접속했다. 주제별로 여러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갔다. 결과물을 살펴보다가 창 왼편 아래쪽에서 반짝이는 배너가 보여 무심코 클릭했더니 성인 포르노사이트가 뜨는 것이었다.



“제 자리는 칸막이 없이 개방돼 있었어요. 누가 보지나 않을까 걱정돼 두리번거렸죠.”

신씨는 성인사이트가 어딘가에 꼭꼭 감춰져 있어서 정보검색을 잘하는 사람들이나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사이트는 너무나 쉽게, 우연히 접근해왔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전국민이 공범자”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에도 포르노는 존재했다. 오프라인에도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통로는 얼마든지 있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만화나 소설, 잡지에 실린 포르노물이 많았는데 어쩌면 지금보다 더 야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접근이 어려운 만큼 더 짜릿했다고나 할까.”

자영업자인 최인호 씨(가명, 57)의 회고다.

최씨는 인터넷 초보자다. 석 달 전 고등학생인 아들을 위해 한국통신 메가패스를 신청했고 가끔 온라인으로 바둑을 둘 뿐. 성인사이트엔 관심도 없고 접속할 줄도 모른다. 젊을 때는 호기심에 성인만화를 구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별 관심이 없다. 가끔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성인영화를 보는 게 고작이다.

같은 50대인데도 변호사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는 김달식 씨(가명, 52)는 좀더 적극적이다. 3년 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김씨는 한가할 때면 으레 성인사이트에 접속한다.

김씨는 “가정용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야한 비디오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양이 한정돼 있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성인물에 접근할 수 있고 정보량도 무궁무진해 재미있다”며 인터넷 예찬론(?)을 펼쳤다.

김씨는 “예전에는 성인비디오 한 편 구하려면 남다른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다”고 덧붙인다. 용산이나 청계천 등지의 불법비디오 판매상을 찾아가 내 돈 주고 사면서도 파는 사람 눈치, 지나가는 사람 눈치를 살펴야 했다. 비디오에 하자가 있어도 항의할 수도 없었다.

인터넷의 보급 속도는 포르노의 보급 속도와, 인터넷이 실어 나르는 정보의 양은 포르노의 양과 비교해 생각할 수 있다. 백양 비디오 사건은 인터넷의 위력을 입증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수용자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정보의 생산자인 동시에 전달자로 바꿔놓았다. 성인물을 제작하는 생산자도 늘었거니와 ‘제휴와 링크’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성인사이트가 생겨난다. 뿐만 아니다. 강력해진 파일공유 프로그램은 수백 메가바이트 용량의 동영상을 삽시간에 전달한다.

회사 내에서 성인정보 보급자로 통하는 이명수 씨(가명, 29)는 “성인정보 보급에 관한 한 전국민이 공범자”라고 말한다. 정부는 꾸준히 성인사이트 폐쇄를 시도하지만 모든 네티즌이 정보 전달자가 된 상황에서는 누가 최초의 유포자인지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 게릴라처럼 출몰하는 전달자들은 심지어 몇 시간, 몇 분 단위로 성인정보를 담은 ‘와레즈(인터넷의 다양한 프로토콜, 뉴스그룹, 월드와이드웹 등을 통해 정보를 유포하고 공유하는 행위 또는 조직)’ 사이트를 열고 감춘다.

포르노에 밝아야 출세한다?

이명수 씨가 인터넷을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 한 벤처기업에 입사하면서부터. 그때부터 친구들이 이씨에게 e-메일을 이용해 포르노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러닝타임 30초 정도의 용량이 작은 동영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전지현, 송윤아 등 유명 연예인을 닮은 일본 배우의 포르노가 대부분이었다.

뒤늦게 인터넷을 시작한 이씨는 이전 회사에서는 ‘넷맹’ 축에 속했다. 하지만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일 년 만에 포르노 공급원의 반열(?)에 올랐다. e-메일 동영상을 받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이제는 웹하드, 메신저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정보를 주고받는 고수가 된 것이다.

이씨는 웹하드를 이용해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후배 한 명이 웹하드 임차이용료를 내고 다른 사람들은 그 공간에 자신이 구한 정보를 올린다. 주로 동영상이다. 이씨는 아침에 출근해 웹하드에 올라온 내용을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여러 명이 공유하는 공간이다보니 매일 새로운 자료가 올라온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다운로드를 걸어 놓는다. 전과 달리 러닝타임이 한두 시간이나 되는 수백 메가바이트, 1기가바이트 크기의 대용량 자료도 적지 않다.

아침에 다운로드를 시작하면 보통 오후나 돼야 완료된다. 전날 저녁 퇴근하기 전에 다운로드를 걸어 놓고 다음날 출근해 확인할 때도 있다. 이렇게 저장한 자료를 회사 사람들과 공유한다. 23세의 여직원이 있는데, 그녀는 야간 대학에 다니느라 오후 네 시면 퇴근한다. 여직원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자 직원들끼리 모여 동영상을 본다. 여직원과 함께 보는 일은 없고, 그 앞에서 포르노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는 일도 없어 아마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씨는 “대부분의 회사에 나처럼 성인자료를 주로 공급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는 걸로 안다. 주로 20대의 젊은 축이 그 일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메신저를 이용해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선배나 친구들에게 자료를 보내줄 때도 있다. 이씨는 “선배들이 시시때때로 ‘좋은 자료 없냐’고 물어오는 통에 못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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