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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민건강보험공단 박태영 이사장

노사개혁 없이 공기업 개혁없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노사개혁 없이 공기업 개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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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영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파업사태와 의료대란을 치렀다. 이 때문에 그가 언제까지 공단에 머물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공단 운영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 1주년을 맞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1998년 10월1일 ‘의료보험 체계의 효율적 관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공교(公敎)의보공단’과 ‘지역의보조합’을 1차 통합해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을 설립했다. 2년 뒤인 2000년 7월1일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의보조합’을 2차 통합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출범시켰다.

그로부터 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냈다. 2000년 6월16일 통합공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한 박태영(朴泰榮)씨는 시작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일부 조합원들이 박 이사장을 불법 감금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 이때부터 노사는 지루한 감정싸움을 벌이다 11월이 돼서야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사간 불신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지금도 서울 마포의 공단 건물 앞에서는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전국의 지부 사무실에서는 직장 출신과 지역 출신의 ‘소리 없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6월13일엔 서울·경기지역 사회보험 노조원들이 공단 앞에서 ‘지역과 직장의 업무일원화’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84일에 걸쳐 파업을 벌이는 동안 공단 밖에서는 의약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부는 의료수가 인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이것은 뒷날 공단의 재정적자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박태영 이사장이 공개한 2001년 공단의 재정적자 예상액은 약 3∼4조원. 정부는 서둘러 ‘건강보험재정안정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민들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인터뷰는 6월7일 박 이사장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파업 수습이 가장 힘들어



―취임 1주년을 맞는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그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어요. 부임할 때는 의료대란이 몇 개월째 계속됐고, 공단의 노사갈등도 심각했습니다. 공단 직원 중 7천여 명이 석달이나 파업을 하다 보니까 조직 질서는 엉망이고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1년 동안 조직의 기초가 잘 다져졌다고 봐요.”

―1년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이질적인 기관이 통합됐기 때문에 뭐 하나 단일 문화로 내세울 게 없었어요. 그런데 1년 동안 노력한 결과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됐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접해봐도 그런 게 보여요. 그 점을 정말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면….

“작년 노사분규 때였습니다. 우리 직원이 1만2000여 명쯤 되는데 사회보험 노조원이 7000여 명이에요. 저의 부임전부터 부분파업을 하고 있었고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도 내가 부임하자마자 전면 파업을 시작했어요. 그것도 아주 극심한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언어폭력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당했어요. 불법 파업이 3개월을 끌었잖아요. 그걸 수습할 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잘 풀릴 걸로 봐요.”

의료보험 통합의 장점은 소득의 재분배 효과 및 의료서비스의 개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러한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재정의 불균형에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수입원이 되는 보험료는 인상을 소폭으로 억제한 채로, 의료수가를 네 차례나 인상했다. 게다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 범위까지 확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단의 재정난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참고로 EU(유럽연합)는 의보요율이 15%인 반면, 한국은 3.4%에 불과하다.

―의보통합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단 통합은 잘 한 일이죠. 하지만 빨리 조직을 정착시키고 효율적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통합 후의 조직분규나 재정문제를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다고 봐요. 의료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수가인상 등이 결과적으로 금년 봄에 재정악화로 나타났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표현했는데, 의료수가 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겁니까.

“재정의 균형과 보조를 맞춰 수가를 올렸어야 했다는 그런 생각이죠. 보험료도 같이 올라가면서 지출이 늘어야 하는데, 이게 안됐어요.”

보험재정의 거품 걷어내야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정부가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보험료 인상은 민감한 문제잖아요. 국민들 중에는 급여수준에 비해서 보험료 부담이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아요. 국민들도 이제는 정치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실질적인 의료서비스 개선을 생각해야 돼요. 국민들이 합리적인 보험료 부담을 할 때가 곧 오리라고 봅니다. 공단, 정부, 시민단체, 국민이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합리적 수준의 재정부담을 찾아야겠죠.”

박 이사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내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겠지만, 공단 이사장인데…”라며 쓴소리를 자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공단의 재정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의보통합의 장점을 살린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모순이다. 박 이사장은 거듭된 질문에 정부가 추진해온 의료정책의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의료대란이 작년 10월경에 끝났잖아요. 그때까지 한달 평균 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이 6800억 정도였는데 의료대란이 끝나고 11월에 1조500억으로 50% 가량 늘어났습니다. 12월에는 더 늘어서 1조1000억이 됐어요. 그게 바로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수가인상 등을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란 말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공단에서는 재정 문제를 고민했고, 그 대책을 백방으로 계속 강구해 왔지요.”

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이 급증한 것에 대해 최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의료비 부당청구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의약단체들은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진료내역 이상신고 자료 1차분 813건(373곳) 가운데 불과 3.5%인 13곳만 지정해 복지부에 허위·부당청구 실사를 요청했다. 이것을 두고 의약계의 자정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료비 부당청구 실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맡고 있다.

―심평원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하는 서류가 8000건에서 많게는 1만4000건에 달하고 삭감률도 겨우 0.73%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다고 보나요.

“공단에서는 재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3월부터 진료내역통보를 시작했습니다. 3월에는 6개도시 96만세대 450만건에 대해 통보했습니다. 그 성과가 좋아서 4월부터는 전체 수진자 913만 세대, 3400만 건에 대해 진료내역을 통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일부 의료인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도를 넘었다고 봐요. 환자를 거짓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부정행위가 너무 심각합니다. 이건 국민의 재산을 훔치는 절도란입니다. 어떻게든 불법 청구를 막고 보험재정에서 거품을 완전히 걷어내야죠. 그렇게 해야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재정의 규모가 투명해지고 정확해져요. 의료인들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자정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TV토론을 보니까 일부 의사들은 공단에서 진료비 내역을 통보해주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에선 90% 이상이 ‘잘하는 것’으로 답했습니다. 극히 일부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전체 의료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면, 자체적으로 정화해야 합니다. 진료비 내역 통보는 현실적으로 재정이 급박하니까 경종을 울리고 또 예방적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통보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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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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