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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①

르네상스 발흥의 열쇠 동과 서의 징검다리

  • 정수일 박사

르네상스 발흥의 열쇠 동과 서의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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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이슬람에, 그것도 흡사 몇 고개 너머의 마을처럼 서먹서먹한 이슬람세계에 파고들어 겉핥기가 아닌 그 참 속내를 알아내야 하는가? 그 필요성은 우선, 문명사에서 이슬람이 점하고 있는 무게와 영향력에 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2대 고대문명을 요람으로 하여 태어난 이슬람문명은 아랍의 전통문명과 고대 오리엔트문명, 그리스-로마문명, 페르시아문명 등 여러 외래문명이 융화되어 창출된 새로운 문명으로서 다방면의 문명 영역을 갈무리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여러 문명을 단순하게 계승하고 융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시대적 요청에 맞게 가일층 발전시켜 특유의 중세문화를 꽃피움으로써 고대문명과 근대문명을 순리적으로 이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문명의 가장 큰 세계사적 공헌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사적 공헌 때문에 우리는 이슬람문명을 통해 사라진 고대문명을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문명을 비롯해 생존하는 근·현대문명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문명을 잉태하고 출산해 키워낸 요람은 이른바 고대 4대 문명 중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 즉 오리엔트문명이다. 그리하여 이슬람문명에는 이 두 문명이 남겨놓은 흔적이 역력하며, 그러한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여명을 밝힌 오리엔트문명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다.

예컨대 이슬람교의 근본교리인 유일신관(唯一神觀)은 그 모태인 유대교에서 이어받은 것이나, 유대교의 유일신관은 고대 오리엔트종교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이 중왕국시대(기원전 2060~1780)부터 제국의 수호신인 아멘(Amen) 같은 유일신이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왕(파라오)은 신의 화신으로 추앙되었다. 기원전 1300년경 이집트에서 생존하다가 탈출한 모세는 이러한 유일신교의 영향을 받아 ‘10계명’을 핵심으로 하는 율법(律法)에 기초하여 신(야훼, 즉 여호와)과의 계약종교인 유대교를 창시했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족과 바빌로니아왕국의 설화인 ‘길가메쉬(Gilgamesh)’의 서사시를 유대인들이 번안(飜案)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고대 오리엔트문명의 자양분을 받아 나타난 유대교의 제반 종교적 요소가 이슬람교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사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5경,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다윗과 솔로몬, 소돔의 멸망 등이 그대로 나온다. 물론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등 ‘신약성서’에 있는 내용도 옮겨놓았다.



요컨대 후출한 이슬람교와 선행한 유대교 및 기독교 사이에는 상당한 근친성(近親性)이 있으며, 그 궁극적 원류는 고대 오리엔트문명으로 소급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 종교는 모두 같은 종족인 셈족이 만들었으며, 같은 문명의 배경에서 훈육(薰育)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학자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장자로, 이슬람교를 그 차자(次子)로 비유한다. 아무튼 이러한 역사상은 오리엔트문명과 그 품에서 태어나 자란 유대교나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서 이슬람교가 차지하는 비중의 일단을 말해준다.

문명사에서 이슬람의 기능과 영향력은 유럽문명의 사활이 걸린 일련의 문제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원래 선사시대의 몽매에 허덕이던 지중해 중심의 유럽은 고대 오리엔트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문명시대로 나아가게 되었고, 이른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문명이 싹텄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고대 오리엔트문명을 그들의 문명사 첫머리에 억지로 앉혀놓는 것이다.

한편 이슬람은 출현과 더불어 그리스-로마문명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문명으로 융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럽의 말살로부터 보존하고 발전시켜 중세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재수출함으로써 자칫 영영 멸적될 뻔한 유럽의 고전문명을 다행히도 르네상스(renaissance, 재탄생, 부흥)시켰던 것이다.

유럽에서 중세암흑기가 엄습하여 일세를 풍미하던 그리스-로마문명이 한창 내동댕이쳐지던 7~8세기부터 무슬림들은 그리스-로마 문명으로부터 철학, 학문, 기술을 닥치는 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서, 스트라본의 지리서 등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은 빠짐없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외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을 살찌운 이슬람 선진문명은 13세기를 전후하여 빈혈에 허덕이던 유럽에 수혈되기 시작했다. 아랍어 서적들이 라틴어로 역출되고 이슬람 지리학이나 천문학, 의학이나 수학이 유럽 대학에서 교재로 읽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은 바야흐로 잃었던 문명의 전통을 되찾기 시작했으며, 그를 발판으로 하여 르네상스의 전기를 맞았다. 급기야는 근세의 선기(先機)를 잡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럽사의 서술체계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으로 이슬람사회가 이른바 유럽 중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둔갑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중세 유럽문명에 대한 이슬람의 기여와 영향을 방증해주며, 이슬람문명을 떠나서 유럽의 중세 문명, 특히 그 부흥을 말할 수 없음을 웅변적으로 설파한다.

이슬람은 동서문명의 교류에도 특출한 기여를 했다. 지정학적으로 이슬람세계의 심장부는 동서양의 중간지대, 완충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동서문명 교류의 가교 구실뿐만 아니라, 문명의 산파역(産婆役)까지 맡았다. 일찍이 이슬람문명의 요람인 서아시아 일원은 페르시아문명을 비롯한 오리엔트문명과 그리스-로마문명이 접합(接合)하는 곳이어서 여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동서문명을 한 그릇에 담아낸 헬레니즘문화가 꽃피었다.

기원전 4세기에 단행된 마케도니아왕 알렉산더의 동정(東征, 기원전 334~323) 결과로 출현한 알렉산더제국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유라시아대륙을 아우른 미증유의 대제국으로서 그 판도 내에는 그리스문명과 고대 오리엔트문명, 페르시아문명, 인도문명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다양한 문명이 망라되었다. 종전에는 여러 왕조간의 격폐로 인해 이러한 문명들의 상호 교류가 차단되어 왔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동정과 더불어 대제국이 출현함으로써 이러한 차단 요인이 일시에 제거되었으며 제국의 광활한 판도 내에서 초유의 동서문명 교류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동서문명 교류의 첫 모형(模型)이자 융합체(融合體)인 헬레니즘(Hell- enism)이 출현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러한 동서문명의 융합체인 헬레니즘을 순수한 유럽문명으로 착각한 나머지 기독교의 헤브라이즘(Hebraism)과 더불어 정통 유럽문명의 2대 근간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동양문명의 2대 근간인 유교와 불교에 대응시키는데, 이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중세에 와서 이슬람제국은 동방의 중화제국과 함께 세계사의 쌍벽을 이루어 동서문명 교류의 주역을 담당했다. 이슬람제국은 중국을 비롯한 동방의 문물을 적극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후진 유럽에 그대로 전파하기도 했다. 인도가 발견한 영(零, zero) 개념을 받아들여서 수학의 ‘혁명’을 일으킨 무슬림들은 영을 포함한 숫자(소위 아라비아숫자)를 유럽인들에게 가르쳐주었으며 중국의 4대 발명품을 비롯한 동방 특산물 대부분이 아랍-무슬림들의 손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8세기 말경에 중국의 채후지(蔡侯紙)를 받아들인 아랍인들은 ‘바그다드지’니 ‘다마스커스지’니 하는 따위의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함으로써 유럽인들은 12세기 중반부터 문명 발달의 척도라고 하는 종이를 알게 되었다. 중국의 목판인쇄술은 13~14세기 몽골제국 치하의 이슬람 일칸국(현 이란)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으며, 중국의 화약과 화기(火器) 제조법은 13세기 중엽 몽골군의 서정(西征)을 계기로 아랍세계에 유입되어 ‘마드파아’ 같은 아랍식 화포(火砲)가 제작되었다.

한편 유럽인들은 13세기 말엽부터 아랍인들로부터 화약과 화기제조법을 전수 받았다. 중국 북송 때에 만들어진 항해용 나침반도 13세기 말경 아랍에 전해진 후 곧바로 유럽에 알려져서 14세기 초에 이탈리아는 중국 나침반을 개량한 한침반(旱鍼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중세 아랍-무슬림들은 동방문명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문명을 가일층 풍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럽에 전달하는 문명중개자 노릇도 수행했다.

근·현대에 와서 이슬람세계의 중심부인 중동은 시종 서구 열강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다. 그것은 ‘중동을 다스리면 세계를 다스린다’라는 역사적 경험이 그들에게는 한낱 불변의 명증(明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한 후 한때 세간에는 ‘중동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번지기도 했다. 새 세기를 맞은 오늘 이슬람의 새로운 부흥이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은 인류 보편사의 전개에서 시종일관 중요한 일익을 담당해 왔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는 세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슬람을 알아야 할 보편타당한 필요성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이슬람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민족사의 전개에 꼭 필요하다는 데 있다. 한 민족의 완벽한 역사는 내치(內治)와 외치(外治)의 복합역사다. 내치의 역사란 민족 내부나 민족국가 영내에서 전개된 대내역사를, 외치의 역사란 다른 민족이나 민족국가와의 대외관계 역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치는 내치의 순응적(順應的) 연장이지만, 한 민족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며 내치와 상보상조적 관계이다. 그리하여 외치를 제대로 밝히는 것은 민족사의 전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속에 있는 이슬람

흔히 근세 이전의 한국 외치역사를 말할 때면 고작 인접한 중국이나 일본, 기껏해야 몽골과의 관계사 정도나 언급할 뿐, 더 이상 멀리 취급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서양인에게 한국은 ‘은자(隱者)의 나라’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자신도 타의반 자의반 그러한 ‘운명’을 응분인 양 감내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사실(史實)은 그렇지 않다. 그 역사적 증좌(證左)가 바로 일찍부터 있어 왔던 이슬람세계와의 접촉이다. 1200여 년간 한반도와 이슬람세계의 끊임없는 교류관계는 민족사의 전개에서 뜻깊은 외치의 역사로서 ‘세계 속의 한국’이 결코 오늘의 캐치프레이즈만이 아니라 어제의 엄연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역사는 서로의 관계를 기록한 중세의 이슬람문헌과 한반도에 남아 있는 이슬람유물 및 한국문헌 등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외치의 역사로서 이러한 교류과정은 오로지 이슬람문명의 실체나 전파상을 구명할 때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나간 우리 민족사를 빠짐없이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슬람문명과의 관계를 포함해 이슬람문명 전반을 알아야 할 소이연(所以然)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슬람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과거사를 복원하는 데서도 제기되지만, 더 긴절(緊切)한 것은 민족사의 당면과제를 푸는 데 있다. 이제 한국은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민족 중흥의 일대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인으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누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인 동시에 실리(實利)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의 소명에 부응하려면 외치를 강화하여 이슬람을 포함한 세계와의 만남과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 작금의 실태가 보여주다시피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이러한 만남과 교류가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은 우리에게 그저 이질적이고 멀리 있는 소원한 ‘객체’가 아니라,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있는 실체로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슬람에 귀의한 4만여 명의 무슬림을 핵심으로 한 종교유대체와 더불어 한국이슬람학회를 비롯한 문명유대체를 아우른 이슬람공동체가 형성되어 한국과 이슬람세계의 만남이나 교류를 추진하는 견인차 구실을 하며 이슬람을 알리는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공동체는 다원화한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세계 50여 개 이슬람나라들과 국교를 맺고 활발한 현지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러한 나라에는 예외없이 한국 교민들이 현지 무슬림과 이웃하여 살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 무슬림이 한국을 찾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다. 문자 그대로 공생(共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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