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국정지표를 내걸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수많은 개혁을 단행했다. 대기업의 ‘빅딜’을 비롯하여 노동, 금융, 4대 보험제도 그리고 교육개혁 등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개혁들이 너무도 복잡하다. 정말로 만화경같이 보인다. 개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개혁의 수량과 내용의 복잡성 때문에 질려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경처럼 보이는 개혁리스트를 일부 추출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전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식인들은 개혁정책에 이념적 명칭을 부여한다. 일단 명칭을 붙이면 개혁 리스트를 일일이 보지 않아도 정당(政黨)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이념적 정체성이나 정치적 세계관은 정당이 장차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지를 시민들이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념적 정체성이 흐린 정당은 그 정당이 장차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이념적 명칭은 이런 묘미를 갖고 있다. 서구의 정당들이 이념적 개념을 정당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념정당이야말로 시민들이 복잡한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정치적 고향(故鄕)이다.
이념정당의 묘미는 또 있다. 명칭만 보고 유권자들이 투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은 아주 편하다. 이념만 보고도 그 정당이 나에게 이익을 보장해 줄 정당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에도 이념적 정체성은 유용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이 현실을 하나씩 캐내 인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정신은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에서 선천적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인간정신은 좌절한다.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 즉 세계관은 현실의 복잡성과 이에 따른 인간정신의 좌절감을 달래준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안경이다. 반면 이념적 정체성이 희박한 정당은 불안하다. 그런 정당은 정당이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의 정부’, 말하자면 정부여당에 이념적 명찰을 달아주는 논쟁이 한창이다. 현정부에 사회주의(또는 사회민주주의) 명찰을 달아줄 수 있느냐 아니냐가 논쟁의 핵심이다. 이른바 색깔 논쟁이며 정체성 논쟁이다(여기서 쓴 ‘사회주의’는 하이에크가 말한 ‘사회주의’ 개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같은 뿌리이며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 글에서 사용된 ‘사회주의’ 개념 역시 넓은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 논쟁이 벌어진 것은 집권당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불행한 일이다. 단순히 우리 사회에서 색깔 논쟁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색깔 논쟁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에 관한 자유로운 논의와 자유로운 경쟁, 그리고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것, 그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색깔 논쟁이 불행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런 논쟁이 생긴 이유는 정부여당이 자신의 세계관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았거나 일관된 세계관에 따라 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시민들은 정부여당을 이념에 대해 확신이 없는 정당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정부는 색깔 논쟁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을 밝혀주는 것은 아마도 학자의 몫인지 모른다.
좌파 학자를 비롯한 지식인 중에는 국민의 정부의 개혁정책은 ‘효율성만 따지는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일면 옳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와 비교할 때 여러 부문에서 자유주의적 개혁을 단행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외 경제부문이 그렇다. 외환, 자본 그리고 무역자유화 등이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부문이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다. 그 밖의 분야도 과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금융시장의 규제가 많이 풀린 점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요소들을 보면 좌파 지식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개혁정책은 사회주의의 이념적 특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많다. 이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이중 하나는 결과적 평등에 초점을 맞춘 개혁정책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념적 요소는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근원적인 요소로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인성관(人性觀)을 들 수 있다. 바로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정부여당이 시민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그런 정책을 펼치는가의 문제다. 근원적인 요소는 하나 더 있다. 개혁을 뒷받침하는 지식관(知識觀)이 그것이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에 따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계획 전문가가 얼마나 사회경제를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세 가지의 해답이 국민의 정부 개혁정책이 내포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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