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도 그렇지만 한국도 노동자와 서민 가정은 부부가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권대표는 그래서 맞벌이 노동자 가정에서는 남성이 가사를 거드는 수준이 아니라 여성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대표는 실제 가정에서는 어떤 사람일까? 집안에서 그는 옳은 일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는 엄한 아버지지만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는 전통적인 한국 남성은 아니다. 특히 요리만큼은 수준급이다. 그의 요리솜씨는 내력이 깊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밥 하고 국 끓이고 반찬 장만하는 것에 익숙하다.
열 살 남짓부터였다. 학교 때문에 작은집에 얹혀 살았는데 작은어머니가 몸이 불편해서 어린 그가 직접 밥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음식 만들기는 자취생활을 하던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학업 때문에 집을 떠나 있었던 그는 생존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 먹지는 않았고, 원칙이 있었다. 가난한 자취생이었지만 그는 밥에 된장, 국, 생선 이 세 가지를 준비했다. 더 차리지도 덜 차리지도 않았고 국은 빼놓지 않았다. 국은 사철 나는 콩나물국, 채소국 등 가리지 않았다. 별다른 재료가 없으면 그냥 물에다 된장을 풀고 멸치, 호박, 풋고추를 썰어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이러한 식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 그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국이 있어야 밥을 먹고, 가능하면 생선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음식이 대체로 짜고 매운 경남 출신이지만 의외로 싱겁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는 8년 남짓한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파리 특파원 시절 요리솜씨를 더욱 다졌다. 특히 그는 초기 1년과 마지막 1년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음식을 스스로 해먹었다. 당시 파리의 한국유학생들은 주말이면 학교식당과 기숙사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자신 있는 요리를 한 접시씩 만들어서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파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권대표가 만든 된장찌개와 생선찌개였다. 유학생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당시 파리유학생 가운데는 여학생이라고 해서 음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권대표가 만든 된장찌개와 생선찌개는 한국의 보통 가정집에서 맛볼 수 있는 바로 그 맛이었다. 한 주일 내내 서양음식에 지친 유학생들의 위장에 권대표의 가정 음식은 휴식이었다.
외국도 그렇지만 한국도 노동자와 서민 가정은 부부가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권대표는 그래서 맞벌이 노동자 가정에서는 남성이 가사를 거드는 수준이 아니라, 여성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벌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요리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다.
8월4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큰아들 호근(32)씨 내외가 인사하러 집에 들렀다. 이날은 큰아들 내외와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는 큰아들 내외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메뉴는 그가 좋아하고 가족들도 좋아하는 생선요리 중 하나인 병어조림. 그는 병어와 고등어를 조림으로 요리해먹는 것을 아주 즐긴다.
병어는 생선 중에 가장 입이 작고 눈도 동그랗고 작다. 살은 흰색으로 적당히 기름져서 고소하면서 부드럽다. 다 자라면 30∼60cm가 되며, 등은 푸른빛을 띤 은백색이고 배는 희다. 몸 전체에 벗겨지기 쉬운 잔비늘이 있다.
재료는 병어와 무, 피망, 양파, 파, 다진 마늘로 간단하다. 먼저 진간장과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국물을 섞어서 소스를 만든다. 다음은 무를 1cm 두께로 썰어 냄비 바닥에 깐다. 이는 권영길식 생선조림 방식이다. 이렇게 두껍게 썬 무가 푹 익으면 생선과 소스 맛이 무에 배어 생선보다 더 맛있다. 병어는 지느러미를 손질해 잘 씻은 뒤, 몸통에 길이 방향으로 직각의 칼집을 세 줄 정도 낸다. 피망과 양파 같은 채소 재료도 썰어서 준비해둔다. 파도 2cm 길이로 썰고, 다시 반으로 잘라 둔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냄비 바닥에 깐 무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무를 한소끔 끓인 뒤 병어를 넣고 소스를 적당하게 뿌린다. 이 위에 피망과 양파를 얹고 다시 소스를 뿌린 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로 조린다. 조림이기 때문에 불이 세면 안 된다. 물은 다시 넣을 필요가 없다. 병어가 익으면 뚜껑을 열어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간을 본 뒤, 조금 더 끓이다 바로 불을 끈다.
오래간만에 가족이 모여 식사를 같이 했지만, 사실 권대표는 최근 집에서 밥을 먹는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지난 5월부터 ‘민생 살리기 10만km 대장정’이라는 전국 순회 연설회를 강행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민주노동당은 1992년 민중당이나, 진보정당을 표방했던 과거 정당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전국 40개 지부에 1만6000명에 이르는 당원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의 당비로 전체 재정의 95%를 충당하고, 당비를 납부한 당원에 대해서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고 있다. 이런 활동에 힘입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지난 3월 (주)오픈소사이어티의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은 4.7%로 민국당, 한국신당(각각 0.5%)은 물론이고 자민련(4.1%)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도 2000년 12월 2.6%에서 지난 3월에는 3.4%로 높아졌다.
권대표는 ‘민생 살리기 대장정’을 계속 이어, 연말까지 전국의 제조업 공장과 사무실을 돌며 노동자와 서민을 만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일정은 매일 아침 6시에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강행군이라 권대표 개인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사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과 빵으로 때우는 경우가 잦다. 전국을 돌다보면 입맛에 맞는 음식만 있을리 없다. 그러나 그는 닥치는 대로 먹고 소화해낸다. 비결이 있다면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것이다. 술도 전에는 한두 잔씩 했으나 최근에는 가능하면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당원 중에 한의사가 있어 그를 위해 보약을 지어주었는데, 조건이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건강을 염려하는 당원의 정성을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타고난 낙관론자라서 이런 일정을 견딜 수 있단다.
“사서 하는 고생이라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역사 발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렇습니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즐겁게 지내면 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