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노무현· 김근태 협력인가, 경쟁인가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5-03-22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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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과 김근태. 두 사람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지만 뿌리는 다르다. 한 사람은 지방의 인권 변호사에서 청문회스타를 거쳐 대중정치인으로, 또 한 사람은 재야 명망가에서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재선의원이 됐다. 출신이 다른 만큼 정치스타일은 판이하다. 그런 두 사람이 대선 가도에서 만났다. ‘개혁연대’와 ‘열린연대’라는 다른 무기를 들고 나왔다. 이인제라는 강적을 앞에 두고 본격 경쟁에 나선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과연 두 사람은 협력할까.
    “삐리리릭…” 지난 8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 3층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상임고문의 ‘자치경영연구원’ 사무실. 모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노고문에게 이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알까기 명인전’에 대국자로 나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방송국측이 알려준 대국 상대방은 김근태(金槿泰) 민주당 최고위원.

    연구원 관계자는 “녹화 예정일에는 노고문께서 지방 행사가 있어 곤란할 것 같다”며 사양했다.

    이 인사는 “며칠 전 김최고위원이 알까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방송국측이 그 파트너로 여러 사람을 물색하다가 노고문에게 전화를 한 것 같다. 바깥에서는 두 사람을 라이벌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얘기는 대권주자들의 외모 문제로 돌아왔다. 일전에 한 일간지에 노고문도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외모 가꾸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동안 노고문에게 변화가 있었느냐”고 묻자 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는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잠시 후 김근태 최고위원의 머리 스타일이 화제에 올랐다.

    “개혁연대는 위험한 논리”



    “며칠 전 TV 뉴스 보셨습니까? 김최고위원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를 흉내냈다고 했는데 방송뉴스에서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닮았다며 두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정말 비슷하더군요. 누구인지 몰라도 김최고위원의 스타일 전략을 잘못 짠 것 같습니다. 반일감정이 대단한 시기에 그건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같은날 오전 노고문의 사무실에서 50m 가량 떨어진 여의도 미주빌딩 2층 김근태 최고위원의 ‘한반도재단’ 사무실. 재단 관계자는 별다른 설명없이 “최근 우리의 고민거리”라며 ‘열린 연대론’이라는 제목이 적힌 A4 세 장짜리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열린 연대론’이란 최근 들어 김최고위원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세력확대전략.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여권 내부의 대선논의를 개괄한 데 이어 노고문의 ‘개혁연대’에 대한 평가, 그리고 이를 대신할 김최고위원의 ‘열린 연대론’에 대한 정리 등의 순으로 구성돼 있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개혁연대에 대한 김최고위원 진영의 평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7월부터 ‘개혁연대’가 새로운 대선논의로 등장하기 시작했음. 그러나 이 논의는 노고문측의 ‘개혁후보 연대’와 당내 소장파들의 ‘개혁세력 연대’라는 두 가지 다른 흐름을 지니고 있었음.

    ‘개혁후보연대’와 ‘개혁세력연대’는 표면적 유사성에도, 선거전략 측면에서 보면 차기 대선승리를 획득하기 위한 가동자원, 연대의 과정 및 방법, 연대의 결정시기 등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었음.

    천정배 의원의 부산발언(노무현 고문 지지발언)은 이러한 차이를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으로 추측됨.

    그러나 ‘개혁세력 연대’는 현상적으로 선명성과 이슈 선점성이 있으나,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개혁세력 대 보수세력’이라는 지형은 ‘진보세력 대 보수세력’으로 치환되어 정쟁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높고 진보세력이 소수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선거자원에서는 패배를 자초하는 위험성이 높은 논의임.

    더욱이 ‘개혁후보 연대’는 아직 대중적인 메이저 후보가 아닌 GT(김근태 최고위원의 영문 이니셜)와 노고문의 연대를 상정하고 있어, 대중적 폭발력을 가져올 수 없고 또 개혁세력이라고 통칭되지만 젊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개혁세력의 분포도로 보아 개혁세력 자체의 견인력도 미미하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는 논의였음.”

    이처럼 개혁연대, 혹은 개혁후보 연대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GT의 ‘열린연대’는 ‘개혁연대’의 위험성을 희석하고 심리적 보수층을 수용할 수 있는 정당한 논리”라고 규정했다.

    같은날 오전 오후에 나눠 방문한 두 대선캠프의 분위기는 이처럼 미묘했다. 양쪽 모두 분명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상대방을 마뜩치 않게 여기는 기운은 역력했다. 구체적으로 상대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대선전략과 관련, 의견차이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경쟁관계인 두 세력 상층부의 사소한 갈등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각한 대결양상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두 캠프의 상대방에 대한 싸늘한 시선 역시 이런 현상의 일단일 수 있다. 당사자인 노무현·김근태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괜찮은데 실무자들 사이에 미묘한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두 캠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경쟁보다는 협력 관계임을 강조하던 것이 두 캠프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협력과 경쟁 관계라고 보면 정확할 겁니다. 경쟁보다 협력을 앞세우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비록 대권도전에서는 경쟁관계에 있지만 언제라도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 맨 위부터 아래까지 두 캠프의 생각입니다.”(노무현 진영 관계자)

    “굳이 설명하자면 형제 같은 관계죠. 오늘도 저쪽(노무현 캠프) 사람과 전화통화 했습니다. 협력과 경쟁 관계라는 표현은 정말 우리 사이를 잘 묘사한 표현입니다.”(김근태 진영 관계자)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 올 봄, 노무현·김근태 두 사람 사이에는 역대 어느 대선 주자 사이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화가 오갔다. 이른바 ‘양보론’이 그것인데, 지난 4월9일 노무현 고문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민주화 세력의 주자가 대선후보가 되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당내 대선후보 결정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이 단결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만약 민주화 세력이 분열되는 상황이 올 경우, 여러 조건을 고려해 김근태 최고위원을 위해 양보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민주화 세력이 분열되는 상황’과 ‘여러 조건을 고려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노고문의 발언은 당장 노고문 진영과 노고문 지지자 사이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설령 양보할 상황이 오더라도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지 미리 양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내부 비판도 나왔다.

    다음날인 4월10일 이번에는 김근태 최고위원이 “나도 양보할 수 있다”며 노고문의 말에 화답했다.

    “지금은 그 상황과 조건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노고문이나 내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후보와 정책적·전략적 연대도 고려할 수 있다. 대선 경선 과정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나도 노고문을 위해 양보할 수 있다.”

    형제와 같은 관계,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대선 주자도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던 두 진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협력보다는 경쟁관계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정가 관전자들의 중론이다. 노고문측이 ‘개혁연대론’을 공식화하고 나오자 김최고위원측이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열린 연대론’으로 맞받아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정가에서는 지난 7월22일부터 27일까지 엿새동안 벌어졌던 두 사람의 ‘말’을 둘러싼 갈등을 요즘도 화제로 삼는다.

    7월22일 저녁 노무현·김근태 두 사람은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그날의 만찬은 노고문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이날 회동에 앞서 노고문은 민주당 경선 판세가 이인제 최고위원과 자신 간의 대결, 즉 ‘2강 구도’로 좁혀졌다고 주장했었다. 그러자 김근태 최고위원은 자신을 포함한 ‘3강론’으로 치고 나왔다. 22일 저녁식사는 이처럼 양자관계가 서먹서먹해진 가운데 이뤄진 만남이었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한편으로는 1987년 김대중·김영삼 두 김씨가 분열하는 바람에 민주화 세력의 통합에 실패했던 교훈까지 거론하면서 “단결하자”는 데 뜻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7월24일 김최고위원은 한반도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정기 기자간담회에서 22일의 만찬 분위기를 전했다.

    “어느 나라 속담에 두 산은 만날 수 없어도 친구는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장관과 나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그런 친구입니다. 우리는 고교 동년배입니다. 1987년 정권교체 실패 후 국민이 실망했고 민주세력의 대의가 훼손됐다고 지적하고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노고문이 집토끼라면 나는 산토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고문은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능력과 특장점이 있습니다. 또 화끈해서 민주당 지지를 모으고, 당에 활력을 일으키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동안 갈등 통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비(非)DJ 개혁세력을 포함한 중간층 결집엔 내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

    “노고문과 연대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최고위원은 “우리는 경쟁하고 협력하는 친구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정책노선은 근접성이 있다. 대선 연대의 틀은 서로 공감하고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단일화 시점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경선 마지막까지 갈 수도 있고…. 먼저 개혁세력의 몫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사흘 뒤인 7월27일 경기도 안산 공무원수련원에서 열린 국민정치연구회(이사장 이재정) 하계수련회에서 두 사람은 다시 의견의 차이를 드러내고 말았다.

    먼저 김최고위원이 “개혁연대라는 것이 자칫 외연의 축소로, 개혁세력의 왜소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개혁을 거부하며 과거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세력은 소수에 불과한 만큼 최대한 포용해야 한다”며 이인제 최고위원까지 포함한 ‘트로이카 연대’를 다시 제의했다.

    그러나 노고문은 “작고 단단한 핵을 바탕으로 한 뒤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막연한 외연 확장은, 그 뜻은 좋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연대의 시점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분명한 시각 차를 드러냈다. 노고문이 노·김 연대를 가급적 빨리 성사시킨 뒤, 그 힘을 바탕으로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시사한 반면, 김최고위원은 가급적 시간을 두고 개혁세력의 힘을 최대한 결집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난 7월 마지막 주, 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견해 차이를 드러내기도 하는 등 어지러운 한 주를 보냈던 셈이다. 역설적으로 잦은 만남이 두 사람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평가다.

    그리고 8월에 접어들면서 두 진영은 과거와 달리 서로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며 사적인 자리,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말을 쏟아내고 있다.

    가장 먼저 두 진영에 화제가 됐던 것은 지난 8월1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민주당 국정홍보대회. 이날 이인제·김근태 최고위원, 노무현 고문 등 민주당의 대권주자가 모두 나서 한나라당을 공격해 예비 경선장 분위기를 연출했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참석자들의 관심은 자연 세 사람의 연설솜씨를 비교하는 데로 모아졌다.

    결과는 이인제·노무현 두 대권주자가 합격점을 받은 반면, 김최고위원은 그다지 매끄럽게 연설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진영의 한 인사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만큼 김최고위원이 연설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캠프만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김최고위원측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한 측근인사는 김최고위원이 대중연설에 약점을 보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최고위원은 만성 비염을 앓고 있습니다. 코가 막혀 있고 입으로만 호흡을 한다는 얘기죠. 김최고위원이 말할 때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끔 TV토론이나 대담할 때 보면 목을 뻣뻣히 세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다 코가 막힌 상태에서 호흡을 제대로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코가 막혀 있다 보니 큰 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장시간 강연을 하기도 힘듭니다. TV토론 중에도 카메라가 비추지 않을 때마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비염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김최고위원이 수술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인사는 김최고위원의 수술공포증도 ‘민주화 운동의 후유증’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몇 차례 고질병인 비염을 고치기 위해 수술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민청련 의장 시절 고문후유증으로 김최고위원은 수술대 위에 눕는 것 자체에 심한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마취주사를 맞는 것도 무섭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단한 수술인데도 저렇게 오랜 세월 병을 달고 살아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최고위원은 조만간 고질병인 비염을 고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소한 질병이지만 대권경쟁에 장애요인이라면 어떤 심리적 압박감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김최고위원의 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두 진영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했던 부분은 지난 7월25일에 있었던 천정배(千正培) 의원의 노고문 지지선언을 둘러싼 갈등.

    천의원은 7월25일 노고문의 출신지인 부산에서 초청 강연을 통해 개혁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노상임고문을 차기 대권후보감으로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그의 발언은 특정후보에 대한 사실상 첫 공개지지라는 점에서 다른 차기 주자 진영은 물론 정치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천의원의 노고문 지지발언에 맥이 빠진 곳이 김최고위원 캠프였다. 김최고위원과 천의원의 과거 인연까지 거론하며 “믿었던 사람에게 거듭 배신을 당했다”는 격한 반응도 쏟아졌다.

    정가의 한 인사는 김최고위원과 천의원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가 한창일 때였을 겁니다. 국민회의에 입당한 김근태 최고위원도 ‘자기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즉 공천을 꼭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 김대중 총재에게 보냈습니다. 그 명단 두 번째에 천의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단을 받아본 DJ가 의아해하더라는 겁니다. ‘어, 천정배는 다른 사람이 올린 명단에도 있던데…’. 다른 사람이란 동교동의 실세인 아무개씨였다고 합니다. 김최고위원이 반드시 챙겨야 할 사람으로 천의원을 생각했지만 천의원은 나름대로 다른 방향에서 살 길을 찾았다는 얘기죠.”

    김최고위원 진영의 한 인사는 구체적으로 김최고위원과 천의원의 불편했던 과거도 회고했다.

    “지난해 8·30경선 때였을 겁니다. 김근태 의원이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재야의 대표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당시 천의원은 같은 재선그룹인 정동영(鄭東泳) 의원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김최고위원이 쉽게 당선됐다면 천의원의 선택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적었을 겁니다. 그런데 경선 결과 정동영 의원이 3044표, 김근태 의원이 2966표로 각각 5,6위를 차지했습니다. 김최고위원으로선 7명 경선 최고위원 중에 6위로 턱걸이 당선한 것도 부끄러울 지경인데 정동영 의원에조차 뒤지자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니 경선 과정에 김최고위원을 돕지 않고 정동영 최고위원을 지지한 천의원이 곱게 보일 리 있겠습니까?”

    그런 천의원이 공개적으로 노고문을 지지하고 나서자 김최고위원의 후배이자 천의원의 선배인 재야 출신들이 서둘러 천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천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발언이 “노고문의 고향인 부산에서 있었던 행사인 까닭에 나온 발언이지 공식 지지선언은 아니다”며 당초 지지 발언에서 후퇴했다.

    김최고위원도 최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천의원이 부산에서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은 특정 지역의 축사이고, 부산이 노고문의 정치적 고향이라 그런 것이지 다른 인물을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천의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노고문도 “부산에 왔으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한 목소리니 천의원 발언 파문은 그것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노고문측의 밑바닥 기류는 공식적인 목소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 관계자의 얘기.

    “김최고위원 진영에서는 천의원이 원래 김최고위원 사람이었으므로 천의원의 행보가 불만스럽다고 하지만 사실 천의원은 노고문과 더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한 사람입니다. 정계 입문 전까지 두 사람은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에서 같이 일했고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관계였습니다. 천의원과 가깝기로는 노고문이 더 가까웠을 겁니다.”

    노무현과 김근태는 다른 뿌리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의원과 노고문, 그리고 김근태 최고위원 세 사람의 최근 사건을 살펴보면 같은 뿌리인 듯 보이지만 노고문과 김최고위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차이점에 대한 양 진영의 설명은 일치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두 사람의 차이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 김근태 진영 관계자의 설명.

    “1987년 이후 재야운동권은 분열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불행한 것은 김최고위원이 그 재야의 분열상 한가운데 있었다는 겁니다. 김최고위원은 1987년 대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DJ를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의 입장에 섰고 그 뒤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비판적 지지에 반대하는 재야가 떨어져 나간 것은 물론이고 비판적 지지 그룹 내부에서도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재야는 분열을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 김최고위원을 따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지금도 김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재야 출신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김최고위원에게는 재야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다닙니다. 운동권 출신들만 두고 봐도 그렇습니다. 1970년대 학번들, 즉 40대 이후 세대는 김근태가 민청련의장으로 재야운동을 이끌었고 고문 수사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80∼90년대 학번으로 가면 당장 ‘김근태가 뭐하던 사람이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들 연배에서는 정동영 김민석 의원보다 김최고위원의 인지도가 낮습니다. 반면 노고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찍이 대중정치인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고문은 재야 출신이 아닙니다. 재야에 대한 책임도 김고문만큼 절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고문보다는 훨씬 자유롭습니다. 때로는 김고문보다 진보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 인사는 “김영환(金榮煥)·천정배 의원 등 한때 재야 출신으로 함께 당에 들어온 의원들의 경우 스스로 재야 출신이 아니라 ‘전문가그룹’이라고 부르는 것도 재야라는 간판이 정치인의 이력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부담이 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씁쓰레했다.

    노무현 캠프 관계자의 말도 대체로 일치한다.

    “노고문은 젊은 시절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부림사건 변호를 맡는 등 지방에서 이름을 날린 뒤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재야활동가였던 김고문과 출발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재야 활동 경험이 없다는 점이 때로는 강점이 되기도 합니다. 노고문은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이 닥치면 즉각 판단하고 경쾌하게 움직이는데 이 또한 재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겠죠.”

    이처럼 협력 관계에서 벗어나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경쟁과 갈등 구조를 키워가던 두 진영에 최근 공동의 적이 나타났다. 또 한 명의 당내 경쟁자이자 두 사람에게는 거대한 벽과 같은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최고위원은 최근 철저히 뉴스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언론사 세무조사정국에서도, 그 이전 민주당 정풍파동 때도 언론에서 이최고위원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언론에 등장해도 이최고위원은 철저히 말을 아꼈다. 사안이 민감한 만큼 침묵이 때로는 약(藥)이 될 수도 있음을 이최고위원은 몸소 보여주었다.

    대신 그 기간 이최고위원은 지방을 누비고 다녔다. 매일 지구당을 방문했고 내년 경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대의원들을 만나고 다녔다. 세간에는 조선일보와 연일 말싸움을 벌이는 노무현 고문과 연관지어 ‘노무현의 공중전(空中戰)’ ‘이인제의 백병전(白兵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바닥을 누비고 다닌’ 이최고위원의 전략은 주효했다.

    지난 8월 초에 실시된 미디어리서치·시사저널 공동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결과 민주당의 차기 대선후보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3%가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지했다. 2위는 노무현 고문으로 11.6%, 3위는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10.7%), 4위는 김중권(金重權) 대표(10.4%)였고, 김근태 최고위원은 5.8%로 5위를 차지했다. 2, 3, 4위의 지지도를 합쳐도 1위인 이최고위원의 지지도 33%에 미치지 못해 한마디로 ‘이인제 독주현상’이 두드러진 조사결과였다.

    미디어리서치의 조사결과는 여론조사 기관 사이에도 적잖은 화제가 됐다. 과연 경선이 1년이나 더 남은 상황에서 드러난 대의원들의 선택이 실제 경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가 관심거리였던 것.

    조사를 담당한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책임연구원은 “내년에 치러질 민주당 경선까지는 넘어야 할 변수가 워낙 많아 이번 조사결과가 곧 최종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연구원이 내놓은 변수는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지난 대선 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당내경선 때도 여론조사 당시의 지지도와 실제 지지도 간에 변동이 컸던 점, 둘째는 현재 대의원들의 민심과 일반국민의 민심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즉 정치에 밝은 대의원들인데도 정당 내부 경선에서 고려될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가 배제된 조사라는 점, 셋째는 김대중 대통령의 최종 선택, 즉 ‘김심(金心)’이 어느 후보에게 갈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치러진 조사라는 점 등이 이번 여론조사를 실제 결과와 연결짓기 어려운 이유라는 설명이다.

    돌출변수 3당 통합론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조사전문가도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연구소 소장은 한길리서치의 과거 여론조사 경험을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1996년에도 당내 후보 경선 1년을 앞두고 신한국당 대의원 설문조사를 한 바 있는데 당시 1위였던 이회창 후보가 16.3%로 2위인 이한동(李漢東) 후보의 11.9%보다 불과 4.4% 앞선 것으로 조사됐었습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어땠습니까. 2차 투표까지 가긴 했지만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같은 1년 전 조사에서 2위 후보를 20% 이상의 차이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인제 최고위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입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전망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변수’라는 복병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특별한 변수가 발생한다면” 지금의 조사결과대로 확정될 수도, 아니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주변에 그런 ‘변수’가 될 만한 얘기가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이 합당해 여당을 단일정당으로 묶자는 ‘3당통합론’이다. 3당합당이 이뤄질 경우 여당의 대선후보를 어떻게 선출할 것이냐도 변수가 된다. 3당합당은 곧바로 정치권 전반을 뒤흔드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3당합당 후 여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경선 불복 등의 이유로 탈당하는 후보가 나올 수도 있어, 내년 가을 이후 후속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이 무색하게 3당합당론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지금의 민주당 내 경선구도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리서치의 ‘대심(代心) 여론조사’에 이어 3당합당론이라는 뒤숭숭한 소문에 긴장하는 쪽은 아직까지 민주당 내 소수세력인 노무현·김근태 두 캠프다.

    두 캠프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 결론을 내리기 이르다”는 것이다. 시간이 있으므로 대의원들의 여론도 충분히 뒤집을 수 있으며, 3당 합당을 현실화하기에는 장애요인이 많은 만큼 더 두고 볼 일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이상의 대체적인 반응과 별도로 노무현·김근태 두 진영에서는 나름의 필승전략도 꼼꼼히 만들고 있다.

    먼저 노무현 캠프의 현재판세 분석과 전망을 들어보자. 캠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노무현 캠프의 자체 분석을 소개하는 것으로 얘기를 풀어갔다.

    “이번 조사 결과 두드러진 점은 김중권 대표의 몰락과 노고문의 약진입니다. 지난 3월 조사에서 17.9%의 대의원지지를 얻어 27.2%였던 이인제 최고위원을 바짝 추격하던 김대표가 이번 조사에서는 10.4%의 지지를 얻으며 4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우리는 김대표를 이탈한 지지표가 노고문 쪽으로 이동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결과를 보면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의원 지지도에서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최고위원의 지지도는 더 이상 올라갈 여지가 없는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이죠.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지난번 조사에서 5.0%에 불과하던 지지율이 11.6%로 두 배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이제 상승국면의 초기에 들어선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사는 이어서 노고문에게 이롭게 작용할 몇 가지 변수를 소개했다.

    “여기에 노고문에 이롭게 작용할 몇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간에 나돌고 있는 총리 기용설입니다. 둘째는 김근태 최고위원과의 후보 단일화입니다. 만약 노고문으로 단일화만 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겁니다. 셋째는 김중권 대표 지지세가 노고문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만약 당정개편에서 김대표가 물러나 사실상 차기대선 구도에서 이탈할 경우 그 지지도가 노고문 쪽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넷째, 지금까지 우리는 호남 대의원을 전혀 공략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인제 최고위원은 호남 대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다닌 것으로 압니다. 수도권에서 우리와 이최고위원의 지지도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승부처가 될 호남 대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섯째, 지금까지 우리는 대의원을 제대로 공략하지 않았습니다. 청원연수원에서 당원교육이 있으면 강사로 참석해 사실상 대의원인 지구당원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것 정도가 고작인 반면, 이최고위원은 꼼꼼하게 지역 대의원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대의원 접촉을 시작하면 지금의 조사결과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겁니다.”

    “12월 말이면 2강구도 정착”

    이 인사는 끝으로 구체적 시기를 제시하며 노고문의 약진을 예측했다.

    “앞서의 다섯 가지 변수, 즉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아울러 주위 여건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가까운 시일 안에 이인제 최고위원을 따라잡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9월6일 부산에서 있을 후원회를 기점으로 10월 말 정기국회 때까지 이최고위원을 추격한 뒤 연말쯤이면 명실상부한 ‘양강 구도’에 돌입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한편 항간에 나도는 3당합당설에 대해서는 현재로는 현실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노무현 고문도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김근태 최고위원 진영은 노고문 캠프보다 더욱 절박하다. 미디어리서치의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 지난 3월 조사의 5.4%였던 것이 이번 조사결과 5.8%로 상승한 것을 두고 근소하나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데는 안도하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김근태 캠프의 필승전략은 현재로는 노고문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로 모으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노고문의 ‘개혁연대론’이 갖는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대신하면서도 정치적 세력을 널리 포용할 수 있는 ‘열린 연대론’을 대중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최고위원측 인사의 말.

    “사실 노고문측으로부터 다양한 방향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9월 정기국회 개회 이전, 10월 국회 회기 중, 12월 연말까지 등 세 시기를 제시하며 이 기간 안에 김최고위원이 노고문 아래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해오고 있습니다. 하부조직에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제3의 힘’ ‘젊은한국’ 등의 청년조직에서 노고문과 가까운 일부 인사가 우리 쪽 지지자들을 만나 ‘김최고위원이 빠른 시일 내 노고문 캠프에 합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혁연대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는 점입니다.”

    김최고위원 진영의 대선전략은 앞서 소개한 ‘열린 연대론’이라는 보고서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돼 있다. 다음은 열린연대론을 근거로 한 김최고위원 진영의 대선전략 부분.

    “차기 대선은 개혁·민주세력이 집권해야 함.

    그러나 지금은 개혁·민주세력이 단독으로 권력을 획득할 수 없음. 집권하기 위해서는 한층 폭넓은 연대틀을 형성하여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야 함. 그러나 개혁세력의 연대는 ‘개혁 대 보수’의 논쟁을 확산시키고 개혁을 진보로 동치시켜 역공을 당하고 개혁세력을 왜소화시킬 위험이 큼. 지금은 반부패·반특권·반지역주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수구기득권층과 대중을 분리해야 함.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열린 연대임.”

    끝으로 보고서는 “개혁연대가 언론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열린 연대를 ‘대중적 담론’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한마디로 김최고위원 진영의 대권전략은 같은 뿌리로 보이는 노고문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당내 경선을 3강 구도로 정립한 뒤, 열린 연대로 세력을 확보한 김근태 최고위원 중심으로 개혁진영의 후보를 단일화하고 이를 근거로 이인제 최고위원과 최종대결에 나서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대의원 여론조사를 비롯한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김근태 최고위원을 ‘유력한 주자’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이 해소되지 않자 최근 김최고위원 스스로 대선 경쟁에 임하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지병인 비염을 고치겠다고 나선 것도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자인 이인제 최고위원과 노무현 고문 두 사람 모두 연설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합니다. 특히 노고문은 청원연수원의 인기 강사입니다. 강의만 다녀도 대의원이 저절로 공략되는 유리한 상황인데 김최고위원은 그나마도 못 했습니다.

    김최고위원에게는 ‘총재병’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고질병이 있습니다. 당 총재도 아니면서 언제나 총재인 DJ 입장에서 당을 걱정하고 행동을 조심하는 게 김최고위원의 스타일입니다. 지난번 정풍 파동 때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화려한 조명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평소에 김최고위원이 당의 쇄신을 위한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당이 혼란스러우니까 총재를 위해서 공개적으로는 침묵했을 뿐입니다. 그런 태도가 바로 총재병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그런 태도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최고위원은 한 사람의 대선 주자일 뿐입니다.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조언을 쉬지 않고 했습니다. 이 부분도 달라질 겁니다.”

    이처럼 노무현·김근태 두 진영의 모습은 과거의 정겨운 협력관계보다는 경쟁관계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은 어쩌면 두 사람이 제각각 대권도전에 나서면서 당연히 예상됐던 그림이기는 하다. 협력보다는 갈등을 더 흥미로워하는 관전자들이 두 진영의 갈등을 사실보다 커 보이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현재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는 노고문측도, 추격하고 있는 김최고위원 진영도 한결같이 초조해하고 있는 듯했다. 당사자들이 초조해하다 보면 일이 안 풀리는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경향이 나타나기 쉬운데 지금의 갈등은 이러한 초조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근태는 믿을 수 있는 사람”

    - 그러면 1년 뒤 두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될까.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두 사람은 단일후보에 합의하고 대의원들 앞에서 손을 맞잡을 것인가.

    노무현·김근태 두 사람뿐 아니라 당사자들 이상으로 신경전을 펼치는 두 진영 관계자들도 끝내 두 사람이 하나로 합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여러 자리에서 노고문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드러내 보였다.

    “노무현 고문은 개인적 야심이 있지만 야심 때문에 개혁과 민주주의에 부담을 주고 혼선을 초래할 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좋은 친구’이자 분열적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는 ‘시대의 의인’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고문도 마찬가지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믿음이 가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시대의 의인’,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정치권에서는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서로에 대한 찬사다. 더군다나 대권을 향한 당내 경선을 벌이는 경쟁자들의 표현으로는 이 이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아들과도 나눠 갖지 않는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지만 두 사람의 말 속에서는 이런 살벌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두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끝내 둘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끝’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두 진영으로 나뉜 1970, 80년대 운동권과 재야 출신 논객들의 물밑 다툼도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올 연말까지 민주당을 이인제·노무현 두 사람 지지세로 양분(兩分)하겠다는 노고문에 밀리지 않으려면 김최고위원도 최소한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협력보다 대결로 올 가을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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