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색깔논쟁으로는 경제개혁 안된다

  • 김윤자 < 한신대학교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

    입력2005-03-22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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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구제금융사태 이후 그간 누적돼온 한국자본주의의 병폐를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구가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따라서 새로운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이 계기는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열망에 바탕해 그 지지기반을 확보하기에 따라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호기일 수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DJP합작의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5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도덕적 정통성을 가진 현정부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었다. 또 외환위기를 전후한 밖으로부터의 각종 압력에도 국내의 다양한 ‘민족주의’를 나름의 방패막으로 활용할 여지도 적지 않았다.

    기득권 집단의 반발

    이에 따라 현정부 집권 초반부터 재벌과 수구정치권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향후의 구조조정이 올바른 방향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예컨대 정부수립 50돌에 즈음해 김대중 정부 출범 6개월을 점검하는 한 좌담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모기업이 소유한 지분을 부채와 교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벌총수의 독점적 지배권을 한두 개 계열사로 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으며 “재벌의 경영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재벌의 정치력과 경제력 때문에 개혁이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혹자의 표현처럼 ‘호남권력과 영남지배구조 사이의 불일치’ 속에서 정치개혁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야당과의 소모적 정쟁, 재벌과 일부 언론의 저항, 사학법인 및 이들과 연계된 수구정치권의 저항 등 50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세대에 걸쳐 재생산된 각 부문 기득권집단의 저항은 소수정권의 개혁을 무망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보스정치와 계보정치에 길든 한국 정치권 일반의 문제이긴 하지만 오랜 야인(野人)생활이 남긴 일종의 ‘제도권 밖 막후문화’의 각인일지, 현정권 고위층과 이른바 실세그룹이 가끔 보여주는 제도권 질서에 대한 부조응은 정책 입안 및 집행과정에서 일관성 결여, 체계성 부족을 빚기도 했다. 그것은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적 장악의 실패로 연결돼, 한때 ‘수구 관료세력에 둘러싸인 개혁 대통령의 고립’이라는 논변을 낳기도 했는데 현상적으로 그것은 한국 사회의 오랜 지배지형 속에서 소수정권이 갖는 소심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에서 결국 현정권은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정치적 다수를 확보하는 정국 안정, 곧 권력기반의 안정화를 선택했고 의원영입, 정계개편에 이어 한때 불편한 듯했던 DJP공조의 회복으로 그 기조를 유지했다. 이는 노동계를 포함해 폭넓은 개혁세력 속에서 정권의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상당 부분 개혁의 굴절과 왜곡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개혁보다 권력기반 안정 추구

    그 밖에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에서 ‘정부의 개혁후퇴를 비판하고 개혁의 가속화를 주장하는 야당’이 없는 것도 모처럼 맞은 개혁국면을 굴절시킨 중대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야당의 정치적 성향을 ‘주어진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 점은 야당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개혁의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미숙했던 정부의 책임,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넓은 의미에서 개혁진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노동계 및 시민·사회운동진영이 개혁동력화에 미흡했던 점 등을 점검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적일 것이다.

    기업퇴출, 정리해고 등 IMF 구제금융의 한파가 거셌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작년 총선연대가 일으킨 돌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계기에 대한 국민이 기대가 컸던 만큼, 광범위한 의미의 개혁진영 역시 이를 개혁확산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개혁부진을 김대중 정부의 한계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초국적 자본’의 횡포로만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 3년 반에 즈음한 지금은 정부개혁의 한계에 대한 점검 못지않게 개혁세력의 책임 혹은 개혁진영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엄정한 자기점검이 필요한 때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한국경제는 재벌총수 1인의 취향에 따라 정해지는 기업의 비민주적·비합리적 의사결정구조(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이나 한보·현대의 철강산업 진출 등)와 그에 따른 각종 중복투자와 과잉투자, 그리고 그간의 각종 비리사건이 보여주듯 정권이 그것을 용인해주는 대가로 오고간 거대한 규모의 검은 돈, 단기 외화자금을 동원해 이 왜곡된 자금흐름을 지지해온 재벌 계열 금융사 등이 착실히 금융불안을 예비해왔다.

    그런데 임기 후반 김영삼 정부는 재벌집단과 타협해 오히려 1996∼1997년 겨울 노동법 날치기통과 시도 등으로 노동계와 필요 이상 대립하면서 정책역량을 소진했다. 여기에 세계적 과잉생산에 따른 철강, 반도체 등 수출주력품목의 가격하락은 곧바로 국제수지 적자와 외환 부족을 가져왔고 집권 말기 김영삼 정부의 대응이 신뢰를 받지 못하자 국내외에 심리적 불안이 확산되면서 IMF구제금융 사태로 이어졌다.

    따라서 1997년 외환위기는 한편으로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자본주의 공황에 돌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로서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노정하는 계기였다. 국제금융 불안 속에서 재벌체제의 비효율성이 외환위기 발발로 이어지는 내외의 연결고리는 한국경제의 구조조정 혹은 경제개혁의 방향을 상당 정도 제시하는 것이어서, 구조조정 혹은 개혁은 단순한 경기변동대책을 넘어 기존의 비효율적 구조를 척결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과 관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 시장규율을 강조하는 논변으로 이어졌는데, 출범 초기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현정부의 슬로건은 이러한 정세에서 등장했다.

    현정부는 처음부터 IMF구제금융의 위기에 집권한 위기관리정권이었으므로 적절한 국가개입 아래 시장원리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기관리를 위해 개입하되 민주적 절차를 존중해 효율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야당을 포괄하는 범국가적 위기관리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했으며 개혁에 대한 범국민적 지지기반이 집권 초반에 확충되지 못했다. 이는 내내 정책방향의 혼선과 지지기반의 혼선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벌집단과 IMF로 상징되는 국내외 자본의 정치경제적·이데올로기적 압박 에 정부는 자민련과의 공조정권이라는 속성도 속성이려니와, 재벌을 비롯한 수구 기득권집단과 어정쩡하게 타협하고, 노동계와 긴장을 고조하는 등 국민적 지지기반 확충에 소극적이었다. 구조조정의 논리로 점차 시장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기득권집단의 공격에 스스로 노출한 측면이 있다. 위기관리와 시스템개혁을 위한 국가개입에 대해 기득권집단은 종종 ‘시장원리를 부정한다’는 논변으로 자신들의 저항을 포장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특히 신자유주의 논리와 관련해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는 종종 개혁의 일관성 결여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는 논자마다 조금씩 엇갈리지만 현상적으로는 1980년대 이후 자본운동의 국제화가 용이하게 금융시장 개방, 국가규제의 완화, 시장경쟁의 복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자본주의 선진 각국에서 독점이 고도화하고 세계경제가 국제 독점대자본의 재생산에 좌우되는 시점에서 자유방임적 시장원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다만 신자유주의 정책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효과는 각국 경제의 역사적·구조적 특징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회 전분야의 족벌체제

    역사적으로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 근대화를 경험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그와 불가분인 시민사회의 성숙이 오랫동안 지체됐다. 그 빈 공간은 민간 부르주아지를 대신해 자본축적을 주도한 국가가 채웠는데, 이때의 국가권력은 급속한 자본축적 전략에 맞춰 신속한 노동력 동원과 병영적 노동통제가 용이하도록 상당 기간 군부가 주도했다. 다른 한편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1987년 이전까지 노동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학생운동을 비롯해 급진적 지식인 운동세력이 주도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여타 집단의 사회적 조직화가 미성숙할 때 상대적으로 사회적 동원이 용이한 청년집단·지식인집단이 사회적 발언을 주도하는 예는 아직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최신의 온갖 진보적인 담론이 난무하는 데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강고한 전근대성에 시달리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적 혁명, 곧 시민사회 형성을 진행시킨 경험이 일천한 한국사회는 근대적 개인의 합리성, 개체적 자아의 담론 등을 충분히 경유하지 못하고 전근대적 공동체집단의 ‘우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적 연대로 비약해온 면이 있다.

    이는 보편적 진보 혹은 일반 민주주의적 가치인 다양성과 개(인)성의 발전, 절차의 투명성 등 비물질적 사회인프라 구축에 있어 한국사회를 매우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진보진영’ 내부의 문화조차 때로 생경한 공문구 속에 ‘봉건 사회주의’(feudal socialism)의 희화로 나타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흔히 말하는 가부장주의의 잔재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한다면서 다양성과 개(인)성의 존중 혹은 존재 일반의 존엄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선정적 운동방식을 동원하는 것이 그 한 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관료적 개입의 축소와 투명하고 다원적인 경쟁시스템의 정착’이라는 요구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성, 특히 전근대적 족벌세습경영이라는 특징을 갖는 재벌체제에 대해 강력한 개혁동력을 내포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총수 1인의 족벌적 세습경영’은 비단 재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른바 국가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는 교육현장, 그것도 전체 대학의 80%에 이르는 사립대학 재단이 족벌적 세습경영으로 물의를 빚는 정도다.

    제4의 권부이며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사가 족벌경영과 사주의 편집권 장악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그 좋은 예다. 무엇보다 강령이 아니라 보스와 계보를 따라 분파가 형성되는 정치권의 행태, ‘교단정치’라는 말이 횡행하는 종교계의 구습, 연고주의가 만연한 학계의 구태 등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시장원리의 부르주아적 합리성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전근대성에 신음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러한 행태를 척결하는 데는 혁명에 버금가는 역사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기업은 그간의 정경유착을 통해 이미 조기독점화해 국민경제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 따라서 국민경제 발전에 합치하도록 이들 독점 대기업을 적정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권 차원의 정경유착적 관리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되도록 사회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는 이미 시장원리만으로는 작동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셈이다.

    철저하지 못한 정치개혁

    서구의 신자유주의가 상대적으로 복지 과잉과 그에 따른 노동기율의 이완 등을 논거로 들면서 등장한 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초보적인 사회안전망도 부실하다. 노사관계도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전근대적 관행이 합리적 관계 정립을 가로막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기업과 사회 각 부문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운영의 합리성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의 담론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와 다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19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 1997년 동남아 금융위기,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이어지는 국제금융불안 속에서 한국경제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의 관건은 국제 독점대자본의 일방적인 이윤논리에 희생되지 않도록 나름의 자율적인 국민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경제시스템의 확충은 기존 구조의 일정한 혁파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결국 이해관계의 조정, 그중에서도 특히 기득권의 구조조정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경제적 의사결정구조의 개혁을 요구하고 따라서 그 핵심은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기존의 비효율적 경제구조를 얼마만큼 효율적 구조로 개편하느냐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효율성은 곧 민주성을 전제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문제’는 단순히 ‘대기업집단’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논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나,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독특한 유착구조, 금융과 산업의 특수한 지배구조, 나아가 언론 문화 교육 등에 걸친 한국사회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구조 전반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효율적 재편을 위해서는 재벌체제 등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극복하려는 시민사회적 요구와 함께 이를 전체 사회경제의 거시적 운영원리와 조화시키는 민주적 구조개혁이 요구된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현실인식이 불명료한데다 자체 정치개혁에 철저하지 못함으로써 때로는 시장을 원용하고 때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원용하면서 다분히 파편적으로 정책을 운용했기 때문에 개혁의 지속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뒤에서 보듯이 지식인 진영을 포함해 노동계와 시민·사회운동 진영 역시 개혁이념 혹은 개혁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지 못했으며 사안별로 파편적인 연대 혹은 각개약진에 그쳐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당시 국내외의 객관적 상황이나 정권의 주관적 조건으로 인해 매우 다중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평가도 논자에 따라 다양했다. 50년 만에 교체된 개혁정권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각계의 비판 강도가 더욱 높아 나름의 개혁성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후속의 개혁동력으로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올 7월 초 한국을 방문한 앤서니 기든스 런던정치경제대 학장은 김대중 정부를 중도좌파적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제3의 길’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의 주장에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현정부는 대선 당시 보수이념을 표방해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냈는데 집권 후 사회민주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색깔이 나타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고 응수했다. 그런가 하면 임기 중반 김대중 정부의 재벌규제 정책을 평가하면서 얼마 전 자유기업센터를 비롯한 일부 논자들도 좌익 혹은 사회주의라는 ‘색깔론’을 펼친 바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김대중 정부를 가리켜 ‘신자유주의 초국적자본의 앞잡이’라거나 재벌과 타협해 정리해고·경찰폭력 및 용역폭력을 동원해 등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고 맹비난한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국내외 일부 논자들 가운데는 김대중 대통령을 ‘IMF 서울지부장(IMF’s man in Seoul)’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시민사회 성숙이 그의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했는데 이제 역설적으로 그를 통해 가장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종속적 신자유주의’가 완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DJ 경제정책 3년 반, 그간의 구조조정 혹은 경제개혁에 대해 이처럼 좌파적이라는 평가에서 보수 우익이라는 평가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때로는 본의든 아니든 일종의 ‘좌우 합작의 DJ협공’이라는 형국이 벌어진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성립시킨 가장 큰 내적 요소가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50여 년에 걸친 기득권구조였다면, IMF의 자금지원에 따른 구조조정 이행각서는 밖으로부터 현정부의 경제개혁 방향과 목표를 규정하고 제시하는 현실적인 압력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안팎의 요소에 규정받으면서 진행되는, 운신의 폭이 제한적인 개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안팎의 조건 속에서 적정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있지만 외환보유액이 5월 말 기준으로 936억달러를 넘어서 일본 중국 홍콩 대만에 이어 다섯 번째 외환보유국이 됐다. IMF의 구제금융도 8월 중 남아 있는 17억달러를 상환하면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로써 외환위기의 극복이라는 단기적 과제는 수치상으로는 해결한 셈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불러온 근본원인인 구조적 문제에서는 진척이 대단히 미흡하고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후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째,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당초 현정부는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재벌총수와 맺은 5대 합의사항을 기조로 삼았다. 즉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부문 설정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 강화,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 강화 등이다. 이것은 IMF가 요구한 구조조정프로그램에 비해 상당히 개혁적인 것이었다. IMF는 경영투명성의 제고와 관치금융 척결, 과다차입 해소 등 기업 재무구조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위 합의사항은 일단 재벌의 총수 전횡 및 소유·지배구조, 방만한 다각화 등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후퇴

    그러나 재벌의 구조조정을 기업 자율에 맡기고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폐지(1998년 2월 비상대책위원회)하는 등 정부의 재벌개혁은 일관성을 결여했다. 1998년 8·15기념 대통령경축사를 통해 대기업의 금융지배 차단, 계열사간 순환출자와 부당 내부거래 방지, 대주주의 변칙상속 및 증여 차단 등 관련 정책을 보완하고 다시 대우사태를 계기로 1999년 8월 출자총액 제한제도도 부활하지만 세부 집행의 개혁동력은 이미 상당 정도 떨어졌다.

    예컨대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출자와 SOC출자,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출자,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출자 등 폭넓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 밖에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재벌의 금융지배 온존, 총수체제 척결에 대한 미온적 태도 등은 정부의 재벌개혁을 크게 퇴색시켰다.

    이 과정에 ‘유상증자에 의한 숫자놀음’이라거나 ‘지분정리와 단순합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부채비율이 축소됐고 30대 그룹의 계열사도 1997년 4월 819개에서 2001년 4월 현재 544개로 줄어들었다. 집단소송제의 제한적 도입과 집중투표제 검토 등 소액주주의 권리도 확대됐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조성된 재벌체제 비판 분위기 등 정권 초기의 유리한 국면을 빅딜소동으로 넘기면서 개혁의 핵심인 총수 족벌경영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4%로 제한한 은행지분의 개인소유 한도를 10%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30대 그룹의 지정을 없애는 안이 검토되는 등 재벌개혁의 후퇴조짐이 뚜렷하다.

    둘째, 금융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는 1차로 종금사 영업정지와 증권사 인가취소 등 제2금융권의 대대적 퇴출 외에 5개 은행을 인가취소하고 6개 은행을 합병하면서 약 110조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공적 자금 집행에 대한 민주적 감시체제 부재라는 문제점 외에도 현대건설, 대우차 등 대기업 부실과 11·3 기업퇴출로 실물부문 부실이 다시 드러나면서 은행합병과 금융지주회사설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2차 금융구조조정이 부실의 대형화를 초래하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위 설립과 금감원으로의 감독기능 일원화, BIS비율 등 각종 금융건전성 규제기준이 마련됐으나 금융감독체계의 정비는 권한에 따른 책임구조의 미비와 감독기능의 투명성 결여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외국인 대주주의 은행지배가 국내 산업자본의 배분에 끼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가 높다.

    금융개혁이 부진해지면서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시중자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투기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은행들은 BIS비율을 맞추는 데 주력한 나머지 기업금융을 소홀히 하고 가계금융에 치우쳤다. 이 때문에 먼저 은행을 정상화하고 부실채권을 해소한 뒤 금융기관의 통폐합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부실과 불가분 관계인 실물부문의 부실 처리, 재벌개혁 및 그와 불가분인 정치권 개혁의 부진은 금융기관의 대출심사기능을 부실하게 만들어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재벌의 금융권지배가 외환위기를 가져온 직접적 원인 중 하나였는데도 다시 은행지분 소유한도의 제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공공부문 개혁은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에 선도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부는 오히려 민영화와 인원감축 등 재계와 IMF의 요구에 충실한 방안에 초점을 맞춰 전략적 의의를 살리지 못했다.

    특히 한전, 가스공사, 철도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국민경제의 중장기적 발전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IMF나 IBRD, OECD 등 국제경제기구의 요구에 떠밀렸다는 지적이 많다. 그간 정부는 앞장서 공기업의 비효율을 과장하면서 민영화를 주장했으나 공기업의 규모로 보아 외국 대자본이나 국내 재벌에 매각하는 것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기간산업의 해외매각에 따르는 문제점, 총수경영과 족벌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벌이 공기업을 인수할 경우에 따르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점 등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

    공기업의 경영개선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개입과 관료주의적 비효율을 척결하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4·13 총선을 전후해 여권의 낙천·낙선자가 공기업 임원으로 대거 임명돼 낙하산 인사 시비를 낳은 바 있다. 또 정부가 강조해 온 ‘자율경영 책임경영’의 성과도 미진하다. 그간 공기업 사외이사의 수는 늘었으나 정부가 사실상 임명권을 쥐고 있으므로 경영구조 개선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재벌개혁이 미진하고 민간부문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은 대주주로서 정부의 전략적 지침,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책임경영, 공공부문 노동자의 일정한 경영참여, 공공재 소비자로서 국민을 대표한 시민·사회단체의 공공부문 노동규율 및 경영상태 감시 등 일종의 ‘공공 참여적 전문책임경영체제’가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통해 민간기업 지배구조개선의 모델을 제시하고 참여와 책임에 기초한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의 전범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자 희생만 요구하는 구조조정

    넷째, 노동부문의 구조조정은 한편으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실시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고용보험제도 확충, 기초생활보장제의 마련 등 사회안전망 구축을 추구했다. 노사관계에서도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합법화하고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제한적이나마 노동참여정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원감축 위주의 구조조정, 특히 고통분담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일방적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노동계의 반발은 생존권투쟁의 성격을 띠게 됐다. 각종 노사분규 현장에서 공안당국이 보여준 관성적인 폭압성은 노·정 대립을 심화하고 정치불안과 개혁동력을 소진시켰다.

    흔히 ‘강성 노조’ 때문에 외자유치에 어려움이 따르고 국가신용도가 하락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외국자본에 대한 국민경제적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경제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주장은 무분별한 외자의 유출입으로부터 국민경제를 방어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국민경제 전반을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개별기업의 의사결정 및 경제정책 입안과정에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개혁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과 관련해 전문책임경영체제가 강조되고 있지만 공공부문과 민간영역 모두 관료주의에 길들어 있어 하루아침에 전문경영인이 배출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장 절박한 이해당사자이고 그 때문에 생존을 건 투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노동조합이 개혁의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 함께하고 기꺼이 책임과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상에서 보듯이 구제금융 이후 ‘IMF 자금지원에 따른 이행각서’에 따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IMF와 OECD 등 국제기구와 외국자본의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각종 ‘개혁’에서 일관성 부족,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의 부족 등은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것은 다시 개혁의 일관성 부족과 사회적 합의의 부족이라는 악순환을 빚었다. 개혁 지지기반의 취약성은 국제기구와 외국자본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주체적 대응을 위축시키고 대북관계에서도 미국의 부시 정권 출범 이후 정부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히는 내부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자원부존도가 낮고 수출품목이 철강·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편중돼 국가정책의 자율성이 낮을 뿐 아니라 지속적 경제발전의 국내기반도 매우 취약하다. IMF구제금융사태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났거니와, 이러한 불균형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전환기에 과다한 정치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의 지속적인 개혁과정에 경제정책의 국민적 자율성 제고와 내적 성장기반의 확충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적인 국제공조체제가 정착되지 못한 현단계에서 각종 시장개방과 외자유치 등 대외정책은 정책집행의 국민적 자율성이 전제되고 외국자본에 대한 국민적 관리 역량이 확보되는 데 비례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경제의 안정적 성장기반과 관련해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매우 미흡한 점은 국내외 논자들이 다같이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과정에 노동자를 비롯한 이해당사자간 고용조정이 필요하다고 합의하면 먼저 실업기간의 생계대책과 재취업을 위한 훈련대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은 비용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 관리 차원에서 사회적 투자로 인식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금융 축적의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는 시기에 한국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경제단위가 번영을 꾀하기 위해서는 생산기반 및 내수기반의 안정적 확충이 필수불가결하고 고용안정은 곧 내수기반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올 들어 화두가 되고 있는 상시적 구조조정은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경제의 체질강화를 전제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제도와 평생교육시스템 등 교육인프라의 구축, 기업퇴출과 취업조정기의 복지지원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러한 뒷받침이 없는 상시적 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최근의 사립학교법 개정이나 주5일 근무제 도입, 공무원노조의 허용 등 사안에서 현정부의 관련법 제·개정 움직임은 재계를 비롯해 사학법인이나 이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야당의 정치공세 등으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내년 각종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이들의 결집은 더욱 공공연해질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안 역시 근본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나마 현재 한국사회 정치지형에서는 현실적으로 관철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개혁 후퇴와 수구집단의 대연합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향후의 개혁이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내년 선거를 겨냥해 정부·여당 내에서도 이미 기업 부채비율 200% 적용을 완화하거나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예외를 확대하는 등 가뜩이나 미진한 재벌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문제는 특정 정권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개혁과제와 관련해 어떻게 개혁동력을 확보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간 김대중 정부의 다중적 성격을 둘러싸고 노동·시민사회운동 진영은 필요 이상 대립했다. 현정부의 시민·사회운동 일각에 대한 제한적 포섭전략은 그 대립을 더욱 조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공기업매각이나 금융구조조정과 같이 시민적 삶을 구조적으로 틀 지우는 중대 사안에 대해서 정보와 판단을 소통하는 초보적인 연대의 자리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당해 부문의 직접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단위사업장이나 산업별로 대안을 조직하고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재계와 야당, 일부 언론은 이를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국민(시민)과 노동자를 이간해 허구적인 대립구도를 설정했다.

    노동계와 시민운동의 결집 필요

    기득권세력의 이같은 허구적 대립구도를 무력화하지 못한다면 향후 시민운동은 자칫 노동 없는 시민운동으로서 주변적 사안에 매몰될 수 있다. 또 노동운동은 노동운동대로 우리 사회 전반의 모순을 보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이나 개별 산업 문제에 매몰돼 양측 모두 개혁을 두루 관장하는 총체적 구상을 책임지지 못한 채 파편적 문제집단으로 왜소화될 수 있다.

    시민운동은 시민적 삶의 기반을 만들어내는 건전한 노동운동 없이는 불가능하며, 노동운동도 인권, 환경, 문화 등 시민적 삶의 질을 확충하는 다양한 시민운동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적 삶의 질을 규정하는 국내외 정치경제적 조건을 조망하면서 노동운동과 통일, 환경, 여성, 문화, 교육, 인권 등 각 부문운동 및 시민운동진영이 책임 있는 공조와 연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인고에 찬 근현대사에서 한국사회의 변화는 때로 한없이 더디고 때로 혹독한 역류에 막히기도 했지만 안팎의 쉽지 않은 여건에서 그간 쌓인 국민의 민주역량과 개혁동력은 이제 또 다른 과제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노동계 및 광범위한 시민사회 개혁진영이 역량을 결집할 때 여야를 막론하고 제도정치권의 개혁세력도 비로소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견인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개혁은 노동계와 시민사회 진영이 이 새로운 의미에서 대안적 사회세력으로 결집돼 주체적 역량을 발휘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Profile 김윤자 >

    ▶ 1952년생

    ▶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박사

    ▶ 현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 주요논문 :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관한 몇 가지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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