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전원장이 ‘낙하산 인사’라는 말에 강력히 반발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쉽게 말해 “일개 동네 의사가 대통령 빽으로 덜컥 요직에 기용됐다”는 것은 그의 의학계 위치나 의약 분업과 관련한 역할을 과소평가한 때문이라는 속뜻이 깔려 있다. 오히려 의협 측에서 그의 ‘파워’와 ‘로비력’을 높이 사 난색을 표하는 복지부에 강력 추천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 했다.
-당초 1999년 7월 시행키로 한 의약분업을 1년 뒤로 연기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신 걸로 아는데요.
“그렇습니다. 과정을 간략히 설명드리죠. 1998년 당시 제가 의협 고문이었는데, 의협회보나 의사회지 같은 매체를 보면 의약분업과 관련된 갑론을박이 대단했습니다. 어느날 송년 모임이 있다 해서 나갔는데 또 그 자리가 분업 토론회장 비슷하게 돼버리더군요. 제가 말할 차례가 되어 ‘어쩌면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냐, 이 중요한 문제를 의협회보 같은 데서만 떠들면 뭐하나, 복지부 장·차관, 청와대 복지수석, 필요하면 대통령이라도 만나야 할 것 아니냐’고 했지요. 근데 이 사람들이 ‘대통령은커녕 장·차관 만나기도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러다 그만 얘기가 이상하게 풀려, 제가 정·관계에 분업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으로 낙점이 됐습니다. 모임 참석자들이 그렇게 만장일치로 가결을 했어요. 제 입으로 한 말도 있고, 안하겠다고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명감을 갖고 뛰어들었죠.”
-아무래도 대통령 인척이라는 것이 도움이 됐겠군요.
“그랬지요. 1999년이 되면서 여러 사람 만나 얘길 들어보니, 역시 분업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아요. 이렇게 시작해서는 그 좋은 뜻을 도저히 살릴 수 없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맨투맨으로 독대한 자리에서 지금 분업은 절대 안된다는 말씀을 간곡히 드렸어요. 한 40분, 말씀 한마디 없이 제 얘기를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시던 대통령께서 ‘복지수석한테 연락해 얘기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복지부 장·차관, 복지수석, 김원길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 참여연대 관계자와도 약속을 했는데, 그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나타나질 않는 바람에 대화에는 실패했어요. 국회의원들도 몇 명 만났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 반응이란 게 고작 ‘지금 안 하면 어떻게 하냐, 1년 더 미룬들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참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복지부 측에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그 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차관 말씀이, 1993년에 시작된 일을 이제 와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어떻게 말하느냐는 겁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들이 법으로 정해 놓은 걸 행정기관에서 보이코트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준비 안 된 건 사실 아니냐고 따졌더니 또 이렇게 말해요. ‘언제 한들 준비가 되겠는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약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자는 건데 이 좋은 걸 행정부에서 어떻게 안 한다고 하나.’ 그 때 제 심정은 솔직히 이랬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가까이서 뵙고 평생 존경해온 사람으로서 그 분을 욕되게 하는 일만은 어떻게든 막아야질 않겠는가, 이 상태로 분업을 시행했다가는 국민들 원성이 하늘을 찌를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가…. 그래서 다시 김원길 정책위의장을 만났지요. 대화 끝에 김의장으로부터 ‘1년만 미뤄보자’는 얘길 들을 수 있었어요. 김장관과는 그 일을 계기로 무척 다정한 사이가 됐습니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1999년 2월24일, 국민회의 당3역으로부터 의약분업 실시 연기에 대한 건의를 받고 이를 수용, 연기를 지시했다. 서 전원장으로 대표되는 의학계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완벽한 준비 없이 분업을 강행했다가는 국민연금 확대실시 파동처럼 대량 민원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1년 후인 지난해 7월1일 비로소 의약분업이 시행됐는데요, 그때는 준비가 잘 됐다 싶으시던가요.
“아니지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간에 의사들이 협상 테이블을 보이코트하고 나오면서 문제는 더욱 커져만 갔고….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이 마구 밀어붙여서 결국은 시행되고 말았어요. 스스로들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알 일이에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군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당시 서 전원장은 ‘의약분업안 반대’의 소신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지난해 6월 20일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을 어기고 운영 중이던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재희의원의 폐업계를 제출한 것. 서 전원장은 20~22일 사흘간 폐업한 후 24일부터 정상 진료를 하다 28일 다시 폐업계를 제출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정부의 잘못된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협의 폐업투쟁을 전폭 지지한다”는 의협 성명서에 원로 의사 11명과 함께 서명했다. 서 전원장은 심평원장에 내정된 후 일련의 과정이 문제시됐을 때도 “정부의 의약분업안은 잘못됐다는 신념 아래 의협의 폐업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도 통탄할 것”
-2000년에도 역시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했다면 다시 한번 연기를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시 대통령께 연락을 드렸죠. 그래서 방문 날짜까지 잡았는데 대통령께서 너무 바빠 뵙지 못하게 된 거예요. 그 때가 총선 직전이었거든요.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더군요. ‘분업 강행은 안된다, 이대로 가다간 의대생들까지 들고 일어난다(얼마 후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고 다시 진언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대통령께서는 ‘1년을 더 미루지 않았나. 나라고 이제 어찌 하겠나. 자네가 다시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해 보든지’하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통화를 끝으로 저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미룰 수 없다는 걸 안 거죠. 대통령께서 단안을 내려 특단의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거였습니다. 무엇보다 여야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안 아닙니까.”
서 전원장의 말대로라면 김대통령 또한 의약분업 시행에 완벽한 자신감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끝까지 망설이고 걱정했다는 편이 맞지 않을까.
-지난 3월, 건강보험 재정 파탄 문제가 이슈화되자 김대통령은 여당 최고위원과의 간담회에서 “의약분업은 내 책임이 크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이 (복지부장관한테) “속았다”고 했다는 말을 언론에 전하기도 했지요. 말씀대로라면 대통령의 이런 말들 속에는 진심이 녹아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분명 멋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에요. 아마 통탄을 하고 계실 겁니다. 저한테 들은 말씀도 있으시고….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이나 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런 면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잘못했다는 거예요. 대통령께서 ‘하자’ 그러셔도 ‘죽어도 못한다’고 강하게 소신을 폈어야지, 이제 와서 ‘나는 책임 없네’하고 발뺌만 하면 그걸로 다인 거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그건…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요. 짐작 가는 사람들 그대로겠지. 하지만 넓게 보면 모두의 책임이랄 수 있어요. 우선 자기들이 만든 법 때문에 생긴 일을 나몰라라 하는 정치인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저 책임 벗을 생각에만 골몰해 있잖아요. 분업 문제는 정치권에서 풀어야 합니다. 노력을 해야지요. 막말로 이게 나라 살림이 아니라 집안 일이고, 국민이 아닌 내 아이가 아프다면 이런 식으로 대응하겠습니까. 학자들 책임도 커요. 의약분업이란 ‘대의명분’은 보통 사람들도 주장할 수 있는 일이고 학자들은 좀 더 실질적인 방안을 내놨어야지요. 그걸, 이때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여서는, 아이고…. 만전 기하지 않은 행정가, 화난다고 협상 테이블 박차고 나간 의료인…, 그 누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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